맵고, 달고 짠 숏폼에서 벗어나는 일
‘도파민 단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2020년, 미국 UC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정신의학 교수가 도파민 단식 요령에 대한 가이드를 발표한 것이 유행의 시초입니다. 당시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도파민 단식이 웰빙 트렌드로 떠올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죠. 그리고 최근, 릴스와 유튜브 등 숏폼을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도파민 소비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도파민 피킹(Picking)’인데요. 이전 도파민 단식과 다른 것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도파민 콘텐츠를 자기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도파밍(Dopamine+Farming) 문화에도 MZ 특유의 주체성이 반영되었다고 평가합니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대안은?
올해 2월, 영국 매체 가디언에서 “Z세대가 다시 종이책에 주목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Z세대가 선호하는 책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의 도서 판매기록이 세워졌으며, 도서관 방문율도 71% 증가했다고 하죠. 우리와는 동떨어진, 바다 건너 이야기 같이 들리기도 하는데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독서율이 감소하는 가운데 20대의 독서율이 74.5%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거든요. 국내에서 독서를 위한 책 파우치, 책 커버, 문진 같은 독서와 관련된 제품 소비가 늘고 있는 점도 요즘 세대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방구석에서 유튜브나 쇼츠를 보는 대신 분조카(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독서를 즐기는 게 더 매력적인 행태가 된 것이죠. 최근엔, 핸드폰을 반납해야만 입장 가능한 북카페도 등장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도파민을 피킹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파민 단식계의 클래식, 템플스테이도 인기입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2030세대의 비중은 2019년 32.1%에서 지난해 40.1%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그간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였던 4050세대를 뛰어넘은 수치입니다. 이뿐인가요? 기업들도 디지털 디톡스를 주체로 한 콘텐츠와 상품을 선보이는데에 열심입니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저용량 휴대전화 요금제를 제공하거나, 하루 동안 자신의 스마트폰 사용량을 측정해 주는 스크린 타임 앱 등이 등장했습니다. 도파민 콘텐츠의 홍수에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진 셈입니다.
트렌드와 반트렌드의 균형에서
2021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페이스북 내부 문건을 공개했던 사건, 기억하시나요? 인스타그램이 젊은 이용자들의 정신건강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이를 방치했다는 것인데요. 페이스북의 한 직원이 증인으로 나와 자신들의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자기혐오와 자살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회사가 알고도 이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말해 세계가 충격에 빠졌었죠. 하지만 이는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는 사용자의 반응을 면밀히 측정하여 사용 및 체류시간, 집중도를 늘리기 위한 기능을 개선해 왔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각종 서비스와 콘텐츠가 필요 이상의 중독 현상을 일으키는 배경이기도하죠.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도파민 단식 혹은 도파민 피킹은 우리의 심리적 본능과 취약점을 노린 그간의 서비스 이용방식을 자의식적으로 성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또한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자극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죠.
한편에선 도파민을 디깅하는 이들과 피킹하는 이들의 대비를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트렌드와 반트렌드가 동시에 나타나는 건 그만큼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파편화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면서요. 각자의 선택이 아닌 모두의 기호가 하나의 흐름이 되던 시대에서, 다채로운 가치관과 소비스타일이 공존하는 파편화된 트렌드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절대다수의 선택이 아닌, 개인적인 가치와 성향에 기반한 ‘선택’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도파민의 갈림길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