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볼 만한 서울의 갤러리5

전종현

당장이라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인서울 갤러리 5곳을 추천합니다.

이제 2024년도 벌써 반절 가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발동하는 서울에서 여유롭고 시원하게 마음의 양식을 키울 수 있는 장소로 갤러리를 빼놓을 수 없겠죠. 해외 메가 갤러리부터 로컬 갤러리까지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스폿 5곳을 공유합니다.

VSF 서울, <The Unnaming>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베리어스 스몰 파이어스(VSF)의 서울 지점에서 미국 출생의 작가 루민 와코아의 첫 아시아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미국 플로리다주 북부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짚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디 보자”라는 마법 같은 말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명상을 작가에게 가르쳐 줬는데요. 명상을 하다 보면 어떤 대상을 눈으로 정확히 식별하기 이전에, 진동하는 색과 윤곽을 혼합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사전반사적 상태를 겪는다고 해요. 이런 해체적인 관찰 방법은 와코아가 작가로서 처음 훈련한 경험으로서, 지금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실제 그는 리넨 패널 위에 여러 겹의 젯소를 바르고, 직관적으로 빠르게 그림을 그린 후 표면을 사포질합니다. 이후 페인트를 입히는 방식을 고수하는데요. 정확하고 정밀하게 단계를 계획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떠오르는 모양과 흔적의 편집에 반응해 작업하고 있답니다. 원초적이면서 생명력 넘치는 와코아의 작업을 접해보시길 바랍니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79

갤러리바톤, <New Home>

갤러리바톤의 한남동 전시장에는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히라코 유이치(平子雄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갤러리바톤은 그의 첫 번째 한국 개인전을 진행하며, 작가를 한국에 소개한 주인공이기도 한데요. 히라코는 작년 스페이스K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면서 국내 예술 애호가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답니다. 경치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일본 오카야마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숲과 자연의 중요성을 체득하며 자랐는데요. 미술 공부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넘어간 이후, 도시에 자리 잡은 녹지대와 건물 구석마다 존재하는 플랜테리어가 실은 오직 인간의 정서적 위안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은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존재이며, 서로 존중해야만 하는 공존 관계로 엮여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작품에 반영해 왔어요. 그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사람의 몸에 나무 머리를 지닌 하이브리드 캐릭터입니다. 히라코는 자신이 창조한 혼종 캐릭터가 강아지, 고양이, 식물과 함께 떠나는 여정을 포착해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변주해 왔는데요. 이를 통해 인간이 앞으로 마주할 이상적인 미래에 빠질 수 없는 자연의 소중함, 과거부터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자연과 인간 간의 조화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소소하지만 초현실적 광경이 구현하는 기묘한 아이러니의 장력을 느껴보세요. 전시는 7월 13일까지. 📍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116

휘슬 갤러리, <My Sky Your Sky>

경리단길에 위치한 휘슬 갤러리가 공간을 새롭게 확장한 기념으로 국내 작가들의 단체전을 열고 있습니다.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 하늘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는 점에 착안해서, 작업에 임하는 작가들이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상이한 인상을 주제로 전시를 꾸몄는데요. 회화, 조각, 사진 등 각기 다른 매체와 주제로 작업하는 이해민선, 권현빈, 이민지의 작업을 대상, 수행, 감각이라는 키워드로 묶은 후 전시 기획자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전시 안내문의 형식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해민선 작가는 물감을 튕겨내지만 한번 흡수하면 수정이 어려운 인화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표면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회화 작가인데요. 이를 ‘가볍고, 약한 사물, 임시로 놓인 채 방치된 사물, 버티고 있는 것’이라는 오랜 작업 주제와 연결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조각에 몰두하는 권현빈 작가는 마치 스티로폼처럼 연약하고 섬세해 보이는 대리석판에 아주 얇은 석재용 칼로 직선을 반복적으로 파내어 기하학적 패턴을 만든 후 푸른 잉크를 칠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사라지기까지 하는 안료의 특성을 통해 육중한 돌의 성질과 대조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부분이 흥미로워요. 사진가로 활동하는 이민지 작가는 자신의 역사와 관련된 장소에서 시간의 흔적을 추적하는데, 이번 목적지는 인천의 소청도입니다. 현지에서 긴 시간을 머물며 특유의 독특한 화석 지형에서 영감을 얻어 낯선 모습을 포착하고, 이를 감광 작업, 프로타주 등 사진 이외의 다른 물질로 치환하는 탐구 정신을 발휘했어요,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지만,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공통점으로 모인 세 작가의 작품을 흥미롭게 비교할 기회입니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3길 12

타데우스 로팍 서울, <빛나는 그림자: 요셉 보이스의 초상>

한남동에 위치한 글로벌 메가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황제라 불리는 앤디 워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워홀의 작업 세계는 무척이나 방대한데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시리즈는 아마 유명 인사의 초상화 연작일 것입니다.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 등 미국에서 위명을 날리던 셀러브리티가 워홀의 작품으로 들어왔죠. 이번 전시에 출품된 초상화 연작의 주인공은 바로 요셉 보이스입니다. 전후 유럽 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거물이죠. 플럭서스 운동을 비롯해, 퍼포먼스, 개념 미술, 사회적 조각 등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보이스는 1979년 독일의 한스마이어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워홀을 처음 만났는데요. 이후 여러 번 만남을 가지면서 보이스를 뉴욕의 스튜디오로 초대한 워홀은 그의 초상을 촬영하게 됩니다. 펠트 모자와 낚시 조끼를 입은 보이스의 모습은 1980년~1986년 사이에 다양한 스크린 프린팅 초상화 연작의 재료로 쓰였어요. 이번 전시에 출품한 20여 점의 평면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색상, 구성, 재료적인 면에서 다채로운 변주를 꾀했는데요. 원화, 드로잉, 트라이얼 프루프, 종이 위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린 실크 스크린 작업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122-1

바라캇 컨템포러리, <블루 데저트 온라인>

미국 뉴욕과 중동 아랍에미리트(UAE)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파라 알 카시미의 국내 첫 번째 개인전이 삼청동에 위치한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국내에 낯선 알짜배기 해외 작가의 첫 한국 개인전을 자주 여는 곳인데요. 1991년생 아랍 여성이라는 배경을 가진 알 카시미는 이미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을 비롯해 뉴욕 솔로몬 R.구겐하임, 아부다비 구겐하임,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 센터 등 세계에서 알아주는 현대 미술관에서 영구적으로 작품을 소장 중인 젊은 거장입니다. 그는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를 통해 걸프 지역 아랍 국가의 탈식민주의 권력 구조, 성별, 취향에 대해 비평하고, 사적·공적 공간을 유동적으로 넘나들며 장소, 순간, 사물에 내재한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탐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 중입니다.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한국의 MMORPG ‘검은 사막 온라인’에서 유래했는데요. 디지털 환경에서 비롯한 불안과 현실, 도피와 환상을 포착한 지난 5년 간의 작품 활동에서 엄선한 사진 19점과 영상 2점을 선보입니다. 알 카시미의 전시는 디스플레이가 무척 화려하기로 유명합니다. 마치 광고가 연상되는 대형 벽지를 배경 삼아 알루미늄 액자, 평면 모니터, 스마트폰을 레이어하죠. 이색적인 설치 광경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신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작품에 숨은 주제 의식은 가볍게 볼 수 없지만요. 바라캇 컨템포러리 특유의 친절한 브로슈어와 함께 알 카시미의 작업 세계에 접근해 보길 권합니다. 전시는 8월 11일까지. 📍 서울 종로구 삼청로 58-4

사진
VSF, 갤러리바톤, 휘슬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 바라캇 컨템포러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