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멸종 위기설, 진짜라면 믿으시겠어요?

최수

기후 위기, 와인과 맞닥뜨리다

지난 4월, 국제와인기구(OIV)에서 보고한 작년 와인 생산량은 전년 대비 9.6% 줄어든 수치였습니다. 이는 1991년 이후 가장 적은 양으로 집계된 것인데요. 국가 별로 살펴보면 호주의 하락 폭이 26%로 가장 컸으며, 이탈리아가 23%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약 20%, 칠레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10% 이상 와인 생산량이 감소했죠. 그나마 프랑스가 이례적으로 4% 이상의 성장대를 보였지만, 전 세계적인 하락세를 극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습니다. 물론,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과 젊은 세대 사이에서 과음을 지양하는 문화가 확대된 것이 와인의 소비량 자체를 줄이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와인 생산량 감소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선, 작년 수확량이 앞으로의 ‘평균’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기도 하거든요.

오늘 마신 와인의 맛,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면?

사실 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은 기후 위기에 있습니다. 최근 네이처(Nature) 학술지에 게재된 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 위기로 인해 전 세계 와인 산지의 70%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와 같이 전통적으로 명성이 높은 와인 산지의 경우 그 타격이 더욱 심각하죠. 극심한 더위와 가뭄, 홍수 및 폭우 등과 같은 기후 변화를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은 가뭄과 이상 기온 현상으로 포도 생육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부 지역에선 이례적인 강우량 증가로 포도 잎에 곰팡이가 생기는 병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유기농으로 포도를 생산하는 사업장의 경우, 약품을 함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포도 생산량을 위해 유기농을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의 영향을 받는 건 비단 생산량뿐만이 아닙니다. 고온 현상이 와인의 맛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거든요. 가뭄과 혹서로 지하 수면이 마르면서 포도의 뿌리가 충분한 물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이로 인해 포도의 잎이 떨어지고 성장이 멈추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데요. 무더위가 포도를 빨리 익거나 타게 만들어 충분한 아로마를 생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은 높아진 기온이 와인의 산도를 떨어트리고 알코올 함량을 높여,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지속 가능한 와인을 위한 노력

와인 업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새로운 포도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 방식을 개선하는 등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죠. 프랑스의 농업연구소 INRAE에선, 현재 보유 중인 400여 개의 포도종 중, 현대 농업에서 쓰이는 것은 3분의 1정도 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종자 중에서, 가뭄과 같은 새로운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종을 발견하겠다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에 강한 종과 교배하여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거나, 적은 물로 포도를 재배할 수 있도록 토양의 농도를 조작하는 등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 해결에 동참하는 곳도 있습니다. 호주 로다이에 위치한 랭트윈스(LangeTwins)와이너리는 와인 양조 후 남은 찌꺼기를 지렁이를 배양하는데에 활용하며, 양조 시설에 해 가림막 역할을 하는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 와이너리에 필요한 전기를 일부 생산하고 있습니다. 소노마 카운티 힐즈버그에 위치한 실버오크(SilverOak) 와이너리에선 양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며, 나파 밸리의 매티아슨(Matthiasson) 와이너리는 ‘재생농업’이라는 이름하에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 포도밭의 생물 다양성을 과거와 같은 상태로 돌리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토양과 포도나무 자체의 면역력을 키워, 기후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논리입니다.

앞으로의 와인 산업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혹자는 향후 수십 년 내에, 새로운 와인 산지가 떠오를 거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미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는 정통 와인 산지들이 약세를 보임과 동시에, 춥고 척박했던 지역들이 와인 생산에 적합한 지역으로 새롭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와 독일 북부, 스칸디나비안 등이 후보에 올랐다고 사는데요. 어디에서, 어떤 방식이 되었든, 와인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기후 위기가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 삶에 다가와 있다는 위기의식까지도요.

사진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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