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기억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정확히는 향에 대한 기억이다.
구정아가 수집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과 이를 바탕으로 창조된 향들이 머나먼 이국의 도시, 석호와 팔라초 그리고 끊임없이 넘실대는 물의 도시 베니스에 스며들었다.
지난 2월, 서울에서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기자간담회에서 두 명의 예술감독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와 함께 프로젝트의 시작을 설명하는 구정아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번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제안을 받자마자 “즉각적으로 향을 전시하기로 결정했다”며 기대와 자신에 찬 어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체로 시각적인 것을 연상하게 되는 미술 전시에서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들리지도 않는 향이라는 미디엄을 테마로 발탁하다니. 대담하고도 과감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구정아답다’라고 설득되었다. 그녀는 옷장 속 나프탈렌을 활용한 초창기 작품부터 런던 채링크로스역의 사용 중지된 주빌리 라인 승강장, 독일 지겐현대미술관 전시까지 ’오 도르(Odor)’, 즉 향을 활용해 보이지 않는 것에 접해 있는 설치작업으로 예술적 경험의 세계를 확장해왔으니 말이다.
이번 한국관 전시를 위해 구정아가 모은 기억은 무려 600여 편에 달한다고 했다. 누구든 참여 가능한 오픈콜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에 대한 설문에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친근한 향부터 지극히 사적이고 개별적인 향의 표현들이 모였다. 예를 들면 비에 젖은 흙냄새, 아침밥 짓는 냄새, 공중목욕탕 등 따뜻한 기억 속 냄새부터 도시의 매연과 탄내, 아스팔트 냄새, 지하철의 차가운 금속 냄새 같은 오늘날 일상에서 수시로 경험하는 냄새까지 있다. 물론 그중에는 악취도 있었다. 작가는 사연들을 선정하고 분류해 16개의 냄새 경험을 조성했고, 이는 16명의 조향사에게 전달되었다. 도시 향기, 밤공기, 사람 향기, 서울 향기, 짠내, 함박꽃 향기, 햇빛 냄새, 안개, 나무 냄새, 장독대, 밥 냄새, 장작 냄새, 조부모님 댁, 수산시장, 공중목욕탕, 오래된 전자제품 그리고 마지막 오도라마 시티까지, 17개 향기 색인에 영감을 받은 조향사들은 각각의 향을 창조했다. ‘오도르(Odor)’에 드라마의 ‘라마(-rama)’를 결합해 만든 ‘오도라마 시티’는 이번 전시의 내러티브를 품고 있는 하나의 향이자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제목이 되었다. 지난 4월 17일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의 프리뷰 날, 전 세계 88개국의 국가관 속에서 드디어 향기 기억 약 600개를 증류한 구정아의 ‘향기 드라마 도시’가 공개되었다.
올해는 1995년 자르디니 내에 한국관이 건축된 지 30여 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다. 구정아는 단지 향기라는 미디엄뿐 아니라 한국관이라는 건축과 공간적 테마를 활용해 감각을 자극하고 인식과 덧없음을 질문하는 장소 특정적 설치를 꾀했다. 우선 조향사들과 세심하게 커뮤니케이션해 만든 향을 달걀 모양의 하얀 도자 디퓨저에 입혀 공간 곳곳에 숨겨놓았다. 뫼비우스 띠 형태의 거대한 나무 조각 겸 벤치 두 개가 한국관 야외와 내부에 각각 자리하고, 내부 나무 바닥 네 구역에 무한대의 기호를 새겼다. 아주 미니멀한 전시 구성에서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대상은 고요한 허공을 무중력 상태에서 착지한 듯한 브론즈 조각이다. 구정아가 1990년대부터 창안, 확장해온 개념이자 하나의 캐릭터인 ‘우스(Ousss)’로 2017년 세 편의 애니메이션 ‘미스터리(Mysteriousss)’, ‘호기심(Curiousssa)’, ‘참 나(Chamnawana; true me & I’에 등장한 바 있다. 이 캐릭터는 대개 어둠을 횡단하며, 인간적 성질을 벗어난 제스처로 장난스러운 익살과 묘한 감각을 자아내왔다. 이번 베니스에서는 코 부분에서 향기 입자가 분사되어 향을퍼뜨리는 디퓨저 역할을 하고 있다. ‘우스’에서 발산되는 향기인 ‘오도라마 시티(조향을 후원한 논픽션에서 정식 향수로 출시되었다)’ 외에 한국관 내부를 거닐며 어떤 특정한 향기를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섞이고 어우러지면서 냄새와 향기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인지되고 기억에 작용하는가. 무수한 입자가 충돌하고 섞이는 화학 물질이면서 공간 속에서 인간의 신체와 반응해 기억 혹은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향의 작용을 관람객은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비물질주의, 무중력, 무한, 공중 부양이라는 구정아 작가가 천착해온 주제와 맞닿게 된다. 강철과 유리로 건축되어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한국관에 베니스의 햇살이 비추는 고요한 이른 아침, 향을 섬세하게 재배열해놓은 공간에서 작가를 만났다.
<W Korea> 유리 구조로 이뤄진 한국관이라는 장소가 전시 장소로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번 전시를 위해 공간적으로 가장 크게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구정아 사실 그 어느 곳도 쉬운 공간은 없다. 한국관은 설립된 지 30년이나 됐기 때문에 유지 보수가 필요한 상태였다. 이곳에 어떤 제스처를 들여놓으면 공간의 대미지는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말끔하게 제거할 것은 제거하고 정돈하는 과정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이전에 이곳을 와본 사람이라면 변화를 알아챌 수 있을 거다. 한국관을 공간적으로 정돈하는 일도 이 프로젝트 중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 디자인은 ‘사색하는 공간’을 떠올리며 다듬어 갔다. 비엔날레에 얼마나 볼 것이 많나. 한국관에 와서는 시각적 자극보다는 향을 느끼면서 사색하는 경험을 하길 바랐다.
향을 주요 테마로 잡은 후 이를 공간에 구현하기까지 방대한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번 전시를 마침내 펼쳐놓은 소감이 어떠한가?
프로젝트가 크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고 고려해야 하는 과정이 많았다. 예술적이고 공간적인 면뿐 아니라 주어진 시간과 예산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해야 작은 간섭(Intervention)으로 효과적인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을지 등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 사이 변수도 발생한다. 현장에 와서 설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변수들과 위기들을 조금씩 수용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스릴이 있었다. 흔히 한국관에서 사용하지 않은 구석구석을 활용해서 마지막에 즉흥적으로 설치를 한 부분도 있는데, 아주 입체적으로 컨트롤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 경험이 개인적으로 매우 놀라웠다. 어쩌면 나에게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준 것도 같다.
베니스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베니스를 여러 차례 방문했을 텐데 이번 전시를 맡으며 어떻게 이 도시와 한국관 전시를 연결하고자 했나?
그동안 베니스에 자주 왔고 언제나 전시를 위해 왔다. 크든 작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아주 광범위하게 리서치하는 편인데, 나는 언제나 스스로의 방향성이 명확했다.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다. 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에 품고 생각도 하고 책도 보고 사람들을 만난다. 베니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베니스에 오면 늘 여러 일을 앞두고 있지만, 언제나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넓은 바다 위에 진흙 섬을 간척해 도시를 만들었는가, 르네상스와 비잔틴 양식은 어떻게 발달했는가, 30년 역사의 한국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향상된 생각과 개념을 갖고 프로젝트를 하면 참 효과적이겠다 등등.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작인 런던 ‘오 도라마 시티’에서 시작해 이를 복수형인 ‘시티즈’로 바꾸면서 한국의 자화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떠올린 것 같다.
‘향’과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전시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난해하고 어렵게 들리기도 한다. 매우 큰 용기가 필요했을 듯하다.
예술가에게 용기는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언제나 하는 일이니까. 사실 살아가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웃음). 시각적으로 또 즉각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쉽지도 않고 사람들이 ‘뭘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 또한 예술이다. 후각은 뇌과학으로까지 연결되고, 향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화학 엔지니어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향을 이루는 천연 재료에까지 미치면 그 깊이와 광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말 끊임없이 그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 후각과 연결된 기억 600개의 스토리가 이번 전시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프로젝트에 포함된 어마어마한 인원과 이를 이루기 위한 소수의 프로덕션 팀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혁명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향으로 다른 큰 프로젝트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600개의 한국의 향에 얽힌 이야기 중 지금 떠오르는 것이 있나?
오픈콜로 참여해준 모두가 시인인가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지금 하나를 떠올리자면 ‘저녁 공기’가 생각난다. 편안하고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느꼈던 공기 냄새. 그런데 저녁 공기는 종류가 다양하지 않나. 장소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리고 초저녁인지 한밤인지에 따라 말이다. 나도 종종 산책을 한다. 머리가 맑을 때도 있고 정보가 많이 들어가 있을 때도 있고, 맥락이 완전히 정리돼 있어서 그거를 다시 되짚을 때도 있다. 쉬고 싶거나 하고 있던 일을 잠깐 정리할 때도 있다. 이렇게 매 순간 나의 저녁 공기가 다르듯 그들의 저녁 공기도 그 냄새도 다를 것이다.
일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때도 있나?
한 3년 동안 펼친 여러 프로젝트를 지금 생각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프로젝트 국가도 제각각이다 보니 소통하는 방식도 다르고, 어떤 제안을 확 안아야 하는지 조금 거리를 둬야 하는지,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가 어떻게 전달되고 완성될 것인지 계속 생각한다. 하지만 고민이나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대신 기대를 크게 갖는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크다. 그리고 노력한다. 견주어보고. 그것뿐이다.
‘기대하고 노력한다.’ 심플하면서도 매우 좋은 태도인 것 같다. 지금 노력하고 있는 앞으로의 프로젝트로는 무엇이 있나?
5월 18일에 스위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에서 기념전이 시작된다. 5월 말에는 스웨덴 말뫼 쿤스트할에서 개인전이 있고, 오늘내일 중으로는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인 미스 반데어 로에와의 야외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도 해야 한다. 내년에는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개인전이 있고, 2026년에는 아스펜 미술관에서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모두 베니스 전시 오픈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웃음). 이제 곧 다 몰아칠 것이다.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도 특히 개인전이 매우 궁금하다. 어떤 방식 혹은 테마가 될 것인지 귀띔해준다면?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개인전에서는 완전히 개방된 공간 하나를 디자인할 거다. ‘밤과 낮’이라는 테마를 붙잡고 있다. 물론 이 단어만으로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웃음). 그저 기대해주길 바란다.
당신에게는 ‘모든 곳에서 살고 일하는’이라는 수식이 언제나 붙는다. 이에 대한 당신의 정의 혹은 철학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어느 특정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에서나 나의 활동을 이어가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이 세계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겠다는 확고한 신념이다. 그래서 어디서든 뛰어들어서 일을 하고, 항상 방법을 마련하고, 방향성이 있는 방황을 한다. 어제 미술계 어느 인사가 자기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써 달라고 부탁해왔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늘 도전하십시오.’
- 포토그래퍼
- 전미연
- 프리랜스 에디터
- 강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