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위로를 노래하는 옥상달빛

여전히 명랑한 채로, 반면 더 깊어진 위로를 건네며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라 했던 옥상달빛은 여전히 위로를 노래한다. 3월 발매하는 정규앨범 <40>에서 이들은 마흔을 통과하고 있는 두 자신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여전히 명랑한 채로, 반면 더 깊어진 위로를 건네며.

데뷔 초부터 ‘프로 힐러’라 불린 옥상달빛도 가끔은 흑화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오늘 촬영을 준비했어요.
박세진 너무 좋아요. 제대로 흑화했어요. 지금 거의 베를린 고스족이에요.
김윤주 덕분에 63빌딩 달빛 됐잖아요. 아니, 입술 지우는 데만 티슈 두 장을 썼어요(웃음).

하하, 올해 1월 싱글 ‘Happy Ending’을 발표했죠. “더 빛나는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제목과 가사를 본 팬들 사이 우리 언니들 은퇴 준비하시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던데요?
박세진 그러니까요. 윤주가 인스타에 해명문까지 올려야 했죠. 그런데 정말 은퇴할 때 그 노래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김윤주 3월에 굉장히 오랜만에 정규앨범이 나와요. 5년 넘게 진행한 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에서도 작년 11월 하차했고요. 시작과 끝남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모두 잘 지내고 우리 음악 안에서 함께 있다가 어디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에 가까웠죠.

정규앨범으로는 2013년 2집 이후 11년 만에 3집 <40>을 발매해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마흔’이란 나이에 주목한 곡들로 꾸렸죠. 우선 마흔을 맞이한 두 분의 2024년 1월 1일은 어땠나요?
박세진 라디오를 5년간 진행하면서 해외여행 한 번 못 갔어요. 라디오도 끝났겠다 연말에 바로 짐 싸서 뉴욕으로 떠났어요. 1월 1일엔 친구네 부부랑 해돋이를 보러 갔는데 한국과 시차가 꽤 나잖아요. 새해 첫 해를 보면서 14시간 늦게 뜨는 해도 참 멋지구나 생각했어요. 뒤늦게 뜬 해도 이렇게 멋진데 남들과 비교해서 잘나가고 뒤떨어지고를 따지는 건 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김윤주 멋지다. 방금 노래 한 곡 뚝딱 나왔네요. 전 온종일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봤는데···(웃음). 그런데 마침내 40이 되었다는 홀가분한 기분은 들었어요. 0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예전부터 마흔이 되길 기다려왔어요.

서른을 맞이한 때와는 확실히 다른 기분이었나요?
박세진 그땐 좋은 시절은 다 갔다 생각했죠. 너무 웃긴 게, 진짜 착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30대가 가장 한창이었거든요. 일도, 사랑도 제일 많이 했어요. 희로애락이 골고루 있었고요. 20대에는 슬플 ‘애’만 있었는데. 40대는 사실 이제 막 맞이해서 잘 모르겠네요. 아, 확실히 알게 된 게 하나 있긴 해요. ‘어제 만든 근육으로 오늘 살아간다.’ 운동만이 살길입니다. 40대가 되니 1월 1일부터 아팠어요(웃음).

자유로운 직업 아닌가요?
김윤주 오히려 저는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옛날부터 나이를 빨리 먹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양희은 선배님이 한 마디 던지는 거랑 제가 한 마디 던지는 거랑 깊이와 무게가 다르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부럽고 멋졌어요. 왠지 내가 하는 이야기는 좀 가벼워 보이고,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얘기 같고. 그래서 나이 먹는 거에 겁이 없었어요. 또 주변에 되게 멋지게 살고 있는 40~50대 언니, 오빠가 많았어요. 그들을 보면서 계속 철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용기를 얻은 것 같아요.

어쩌면 두 분 모두 40이란 숫자를 기꺼이 반긴 셈이네요.
박세진 그렇죠. 소고기 안심처럼 담백해질 수 있는 나이니까요. 일희일비하는 진동의 폭이 확실히 좁아졌어요. 그래서 편안해요.
김윤주 20~30대는 어쩌면 시소의 정중앙에 서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니까요. 그 둘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게 40대란 생각이 들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내가 좀 불안하더라도 타인에겐 불안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 나이 같기도 해요. 이건 <40>의 수록곡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어’에서도 한 이야기인데요. 나이가 들수록 책임져야 하는 일이 점점 생기고 내가 불안하면 안 되는 위치에 서게 되잖아요. ‘나만 믿고 따라와’까진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이 되고픈 마음은 있어요. 점점 더 쉽게 뽑히지 않는 뿌리를 내려가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개인적으론 옥상달빛이 30대로 접어들 무렵 발표한 곡들을 좋아해요. 아프리카 잠비아로 봉사활동을 떠나던 때의 생각을 녹인 ‘염소 4만원’이 대표적인데, 그 무렵 곡들을 보면 ‘나’에 머물던 시선이 ‘세상’으로 확장됐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김윤주 맞아요. 나이대마다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는 것 같아요.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니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 무렵 라디오도 시작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노래잖아요. 20대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했다면 30대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40대에 접어드니까 다시 나를 좀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이번 <40>에 세진이나 저 각자의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전까진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나’를 놓치고 있었더라고요. 다시 ‘나’로 돌아오는 과정인 것 같아요.

<40>의 타이틀곡은 ‘다이빙’이죠.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을 연상시키는 무척이나 경쾌하고 밝은 편곡인데 “마음껏 행복해지자”란 가사가 나오는 순간 울컥했어요.
김윤주 저도 혼자 피아노를 치며 연습하다 그 부분에서 그냥 눈물이 터지더라고요. 뭐 얼마나 불행하길래 내가 이렇게 우나 싶었습니다(웃음).
박세진 윤주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행복의 조건을 가장 많이 가졌을 거예요, 진짜.
김윤주 눈물도 별로 없거니와 노래하면서 운 적은 더더욱 없거든요.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박세진 이 말은 진짜예요. 얘가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 정도밖에 안 울거든요.

하하. ‘언젠가 가장 밑바닥에서 다시 힘껏 올라 올 그날을 기대하면서.’ 앨범엔 ‘다이빙’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어요.
김윤주 작년이 저에겐 굉장히 힘든 한 해였어요. 우울감이 심했거든요. ‘다이빙’엔 정말로 제가 겪은 일들을 썼어요. 매일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내일 할 일을 적는데 막상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고. 주변에서 제발 좀 밖으로 나가라고 얘기했어요. 언젠가는 옷을 다 차려입고 신발까지 신었는데 그다음 문을 여는 게 너무 싫은거예요. 그래서 다시 신발을 벗고 들어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어요. 그런 시간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마음껏 행복해지자’는 말이 되게 평범한 말이기도 하면서 너무 어려운 말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슬픈 마음으로 가사를 썼지만 슬픈 게 슬픔으로만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밝게 편곡해달라 부탁했죠. 그래서 이번 앨범 중 ‘다이빙’이 가장 밝은 트랙이에요.

‘다이빙’에서 행복을 슬픔을 경유해 말하는 것처럼, 감정의 결을 아주 섬세히 다루는 가사는 옥상달빛만의 전매특허라고 느껴져요. 평소 곡을 쓰며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김윤주 무엇보다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노래와 가사를 쓰는 것. 내가 이해되고 내가 위로가 된다면 개인적인 이야기일지라도 대중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저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가사들은 그냥 날아가버리는 것 같더라고요. 한때는 그런 곡을 써보려 했는데 잘 되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영리하지도 못했던 거죠. 그런데 나와 사람들 사이 경험은 달라도 감정이 비슷할 순 있더라고요. 감정이 공유되는 걸 느끼고 나서부터 내가 느끼는 이야기를 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옥상달빛의 많은 곡은 ‘위로’가 키워드잖아요. 그런데 때론 어설픈 위로가 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진정한 위로와 값싼 위로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 경계에 대한 고민이 클 것 같아요.
박세진 맞아요. 처음엔 옥상달빛에 씌워진 ‘힐링’ 프레임이 되게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몇 년 전 저희 둘이 얘기하다가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우리 노래를 듣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걸 인정하니까 좀 나아졌어요. 그리고 예전엔 ‘수고했어’, ‘잘했어’, ‘고생했다’ 같은 말로 위로했다면 지금은 그저 ‘나는 이랬어’, ‘이런 일을 겪었어’,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어’라고 열린 결말처럼 말해요. 어떨 땐 이런 방식이 더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저 솔직히 우리들의 얘기를 할 수 있게 되니까 예전에 비해 부담이 좀 덜해진 건 사실이에요.

“수고했어, 오늘도.” 누구나 한 번쯤 옥상달빛의 이 가사 한 줄에 신세 진 경험이 있을 테죠. 반면 두 분이 신세 진 음악은 무엇인가요?
김윤주 정원영 선배님의 ‘귀향(Thanks 9)’. 2003년 발매된 곡이니 벌써 20년이나 지났네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이 곡이 함께였어요.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듣든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로,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줘요. 김윤주가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의 김윤주로 돌아가게 해줘요. 뭐든 다시 할 수 있고 그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죠. 최근 제주도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도 이 곡을 들었어요. 그때 선생님께 문자를 드린 것 같아요. 좋은 음악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박세진 카펜터스의 모든 음악요. 카펜터스를 들으며 초중고 시절을 보냈어요. 서정적인 멜로디부터 목소리, 화음, 편곡 무엇 하나 빠질 게 없는 음악이라 느껴져요.

그럼 서로에게 빚진 순간도 있을까요?
박세진 너무 많죠. 저희는 전생에 부부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래 붙어있으면서 서로 위로해주고 음악도 같이할 순 없거든요. 남자친구도 다 떠나는 마당에(웃음).
김윤주 세진이는 가장 가까이에서 저를 제일 예뻐하는 사람이에요. 진짜 우리 엄마도 이렇게 나를 예뻐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예뻐해줘요(웃음).
박세진 예를 들어 이런 느낌이죠. TV에 누가 나와서 예쁘다고 하면 ‘야 네가 훨씬 예뻐’라고 말해주는 스타일.

이제 막 <40>이 나왔지만 두 분의 더 먼 훗날도 그려본 적이 있을까요?
박세진 이번에 새해를 맞아 과연 10년 뒤에 뭘 하고 있으면 좋을지 한번 써봤거든요. 원래 그런 걸 쓰는 사람이 아닌데. 거기에 이렇게 적었어요. ‘50이 돼도 음악 하고 있으면 좋겠다.’ 근데 혼자하겠어요? 당연히 같이하고 있겠죠. 60, 70이 돼도 같이 음악 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디너쇼를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웃음).
김윤주 나이가 들어도 하고 싶은 얘기를 계속 펼쳐놓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계속 개구지고 철들지 않고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요. ‘쟤네는 나이가 들어도 그냥 재미있게 사는구나’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어요. 지금처럼만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뭐, 관객은 점점 줄겠지만. 적어진 사람들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게 또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