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르네상스에 대해 아시나요?

전종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할렘 르네상스에 대한 역사적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Archibald J Motley Jr, “Black Belt”, 1934. Photograph: Alexander Kravets/From the Hampton University Museum Collection, Hampton, VA.

뉴욕 맨해튼 북부에 위치한 할렘(Harlem)은 오랫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던 곳이었습니다. 할렘 하면 치안이 불안한 범죄 지구, 빈민가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였죠. 지금은 뉴욕의 집값 폭등으로 재개발하면서 우범지역이란 말은 정말 옛날이 되었지만요. (그래도 이스트 할렘이나 할렘 중앙부는 아직도 무섭습니다.) 이런 할렘이 19세기만 하더라도 상당히 전원적인 느낌의 상류층 주거지였답니다. 할렘이 미국 최대의 흑인 거주 지역으로 바뀐 이면에는 ‘흑인 대이동’(Great Migration)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흑인 대이동은 미국 남부에 주로 살던 흑인들이 미국 전역으로 이동한 현상으로 미국 역사에서 말 그대로 대이주로 불리는 엄청난 사건이에요.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흑인의 93%가 남부에 거주하고 있었는데요. 1910년대 중반부터 1930년까지 1차로 160만명의 흑인들이 미국 북동부와 중부로 이동했고, 대공황 이후인 1940년부터 1970년까지 2차로 500만명의 흑인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죠. 1차 이동의 계기는 한 마디로 ‘생존’입니다. 노예일 때는 누군가의 재산이라 손 속에 사정을 두었는데, 이제 이도 저도 아니게 되니까 아예 대놓고 집단 린치를 가했거든요.

The Arthur family arrived at Chicago’s Polk Street Depot on August 30, 1920, during the Great Migration.

게다가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흑인에게 기회나 다름없었어요. 1918년 끝날 때까지 매년 유럽에서 유입되던 이민자 수가 급감했거든요. 당연히 북부에 일할 사람이 부족해졌죠. 게다가 미국의 참전으로 사람이 더 빠져나가니 북부에서는 정착금까지 주면서 흑인들의 탈출을 가속했어요.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세인트루이스,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등 대도시로 빠르게 이주한 흑인은 급속도로 도시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중심지인 뉴욕과 시카고에 자리 잡은 흑인들은 자연스레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할렘인 거죠.

Samuel Joseph Brown Jr, “Self-Portrait”, circa 1941 Photograph © Metropolitan Museum of Art

경제적으로 안정된 흑인 중산층이 탄생하고, 교육받은 인텔리 흑인이 탄생하면서 흑인 사회에서도 자의식이 성숙했습니다. 흑인 사상가, 작가, 음악가, 예술가 등은 할렘을 중심으로 ‘뉴 니그로(New Negro)’를 기치 삼아 흑인예술문화부흥운동을 일으켰어요. 후대에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로 부르는 위대한 움직임의 시작인데요.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는 이런 할렘 르네상스에 초점을 맞춘 대규모 기획전을 열고 있어요. 바로 <할렘 르네상스와 대서양 횡단 모더니즘(The Harlem Renaissance and Transatlantic Modernism)>입니다.

Photo: Courtesy The Met Photo by Anna-Marie Kellen
Photo: Courtesy The Met Photo by Anna-Marie Kellen

이번 전시는 1987년 할렘 스튜디오 뮤지엄에서 다룬 이후, 거의 40년 만에 뉴욕에서 열리는 할렘 르네상스 관련 전시입니다. 미국 예술 권력의 심장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주도한다는 점도 의미가 깊어요. 할렘 르네상스를 흑인이 주도한 최초의 국제 현대 미술 운동으로 규정하고, 1920년대부터 1940년까지 대도시에 정착해 새로운 흑인의 일상을 묘사한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 160여 점을 선보입니다. 작년 여름 전시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2024년 뉴욕에서 열리는 중요 전시회 중 하나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는데요. 뚜껑이 열린 지금, 모든 매체에서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할렘 르네상스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던 당대 흑인 예술가의 다양한 성향부터, 중산층으로 도약한 흑인의 여가 문화를 묘사한 각종 그림, 재즈 문화, 백인 주류와 비등하게 표현한 흑인 부유층의 모습, 할렘 지역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아카이브 사진, 여전히 핍박받던 흑인의 인권과 현실을 표현한 현실적인 작업까지 용광로처럼 섞인 다양함과 광대함 덕분입니다.

Archibald J. Motley, Jr, “The Picnic”, 1936, Howard University Gallery of Art © Estate of Archibald John Motley Jr. All reserved rights 2023 / Bridgeman Images
Palmer Hayden, “The Janitor Who Paints”, 1937.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Gift of the Harmon Foundation
James Van Der Zee, “Couple, Harlem”, 1932. Photograph © James Van Der Zee Archive / Courtesy Metropolitan Museum of Art

전시의 중심에는 흑인 큐레이터 데니스 머렐이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18년 <모더니티의 포즈: 마네와 마티스의 흑인 모델부터 오늘날까지>라는 전시를 컬럼비아대학교 미술관에서 기획해 엄청난 화제를 부른 인물입니다. 마네의 ‘올랭피아’에 나오는 흑인 여성의 존재에서 시작해 할렘 르네상스가 마티스에게 끼친 영향 등을 점검하면서 당시 세계 예술계의 수도였던 파리에서 활동하던 주요 예술가들이 흑인 여성 인물을 표현하는 모습을 통해 모더니즘 미술의 발전을 바라보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2019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순회전이 열리며 국제적인 큐레이터로 발돋움했죠.

그런 머렐이 2020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들어와 수 년간 준비 끝에 선보이는 결과물이 바로 <할렘 르네상스와 대서양 횡단 모더니즘>입니다. 제대로 된 전시를 기획하려고 그는 미국 전역에 흩뿌려져 있는 컬렉션을 찾아 나섭니다. 특히 할렘 르네상스 관련 작품들이 제도권 미술관에 상대적으로 늦게 편입된 터라, 주요 컬렉션을 소장한 하워드대학교, 햄튼대학교, 피스크대학교, 클락 애틀랜타 대학교 등 흑인대학(HBCU)을 방문해 대거 빌려왔어요. 대서양 횡단 모더니즘이란 주제 확장에 맞게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마티스, 피카소, 뭉크 등 모더니즘 거장이 그린 흑인들의 초상, 파리와 런던에서 활동하던 흑인 예술가의 작품도 가져왔습니다.

William Henry Johnson, “Woman in Blue”, 1943. Photograph: Clark Atlanta University Art Museum, Permanent Loan from the National Collection of Fine Art
Laura Wheeler Waring, “Girl in Pink Dress”, circa 1927, Laura Wheeler Waring Family Collection. © Laura Wheeler Waring. Image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Juan Trujillo photo.
Laura Wheeler Waring, “Girl in Green Cap”, 1930. Art work © Laura Wheeler Waring / Photograph © Metropolitan Museum of Art

사실 이번 전시는 때늦은 속죄와도 같은데요. 1969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미국 흑인 문화를 다룬 서베이 전시를 열었을 때 회화나 조각 등 아무런 예술품 없이, 사진, 신문 등만 다루면서 ‘여기에 흑인이 있다’라는 뉘앙스의 어이없는 사고를 쳤거든요. 당시 큐레이터는 모두 백인으로, 할렘 쪽과는 어떠한 교류 없이 열었기 때문에 흑인 커뮤니티의 엄청난 반발을 불렀습니다. “예술이 한 민족의 영혼을 상징한다면, 흑인 화가와 조각가의 부재는 가장 교활한 인종 차별이다”라는 전단지가 나부낄 정도였죠. 그에 비해 이제는 할렘에 대한 역사적인 사진 아카이브도 인수하고, 전시를 계기로 작품도 복원하고, 중요한 작품은 영구 컬렉션에 편입했어요. 백인 중심의 보수적인 뮤지엄으로 정평이 난 곳에서 이례적인 변화인데요. 뉴욕에 간다면 (아마)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이번 전시를 놓치지 마세요. 전시는 7월 28일까지.

사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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