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 가격이 900배 폭등했어요
네덜란드 황금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 빠질 수 없는 이름,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우리에게는 ‘빛과 어둠의 마술사’, ‘빛을 훔친 화가’로 알려진 서양 미술사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인데요. 적지 않은 수의 작품을 남겼지만, 이미 눈 좋은 사람들에게 픽업되어 미술관에 꽁꽁 묶여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소장한 경우는 극히 드물답니다. 소장자 또한 잘 팔지 않으려고 하고요. 그래서 경매에 한 번 나왔다 하면 대히트를 치는데요. 얼마 전 렘브란트 이름값의 위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작년 12월 소더비 경매에서 렘브란트의 작은 유화 작품이 1380만달러(약 184억원)에 팔렸습니다. 1628년에 그렸다고 추측되는 ‘왕들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Kings)인데요. 2년 전인 2021년에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99만 2000달러(약 13억원)에 낙찰된 작품이에요. 게다가 당시 작품 추정가는 1만 5000달러(약 2000만원)였어요. 2021년 경매 추정가와 2023년 12월 경매 낙찰가를 비교하면 2년 사이에 거의 900배 폭등한 거죠. 비트코인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는 렘브란트, 루벤스 등 바로크 시대에 활약한 거장의 그림을 볼 때 화가에게만 집중하곤 하는데요. 사실 이들은 도제식으로 교육한 사람들과 함께 집단으로 그림을 창작했어요. 거장이 운영하는 공방에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스승님 스타일로 잘 훈련된 제자들이 스르륵 자리를 잡고 자기가 맡은 부분을 열심히 작업한 후, 중간중간 진짜 거장이 검수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장의 매직 터치로 완성해 작품을 납품하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게 힘들죠. 근데 문제는 이런 제자들의 테크닉과 스타일이 스승과 비슷하다 못해 전문가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똑같다는 거예요. 당시에는 훌륭한 일꾼이자 제자였지만, 지금은 진품인지 유사품인지 아리송한 작품을 남긴 사람이 되어버린 거죠.
‘왕들의 경배’도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됐을 때는 공방에서 일한 제자 작품으로 간주했어요. 그래서 추정가도 2000만원이였죠. 그런데 입찰에 참여한 사람들이 렘브란트 진품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가격이 급발진해서 13억원에 팔렸답니다. 그리고 익명의 구매자는 다른 경매 회사인 소더비에 위탁 판매를 맡겨요. 소더비는 18개월 동안 진품 여부를 감정합니다. 회사의 고전 회화 부문 책임자를 비롯해 7명의 전문가가 엑스선, 적외선 영상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62페이지에 달하는 카탈로그로 호소하죠. “이것은 렘브란트 진품입니다!” 덕분에 184억원까지 ‘떡상’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끝날 것 같은 렘브란트 마법에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2월 23일 후속 기사를 낸 거예요. 기사에 따르면 경매 당일날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한 미술 전문가는 렘브란트 전문가 및 16~17세기 작품 전문 보존가의 보증을 받은 서한을 경매사에 보냈어요. 렘브란트 초기작에서 보이는 양상과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견이었죠.
“그림이 너무 렘브란트스럽네요. 맥락 없이 스타일을 적용한 느낌이라 보기 불편할 정도예요.”
이에 대해 소더비는 이렇게 반박했어요.
“너무 렘브란트스러운 이유는 바로 렘브란트가 그렸기 때문이죠!”
이런 가격 널뛰기에는 렘브란트 감식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도 한몫합니다. 지난 2021년 사망한 에른스트 판 더 베테링(Ernst van de Wetering)의 존재인데요. 그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렘브란트 전문가로서 진품, 가품 판정을 종식하는 마지막 보루였어요. 그가 정리한 카탈로그 레조네에 없으면 진품이 아니었죠. ‘왕들의 경배’가 2000만원에 나온 이유이기도 해요. 그가 죽자마자 ‘왕들의 경배’에 대한 진품 의견이 제기된 건 기막힌 우연일까요? 업계 종사자들은 그의 부재가 몰고 올 파장을 경계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그림이 인생 역전에 성공할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 사진
- 소더비 웹사이트, 소더비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