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성지를 사로잡은 한국 작가의 정체

전종현

올가을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홀에서 이미래 작가가 단독 전시를 열어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전시장을 대보라면 다양한 리스트가 나오겠지만, 동시대 미술의 아이콘을 꼽을 때 단연 빠지지 않는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2000년 개관해 21세기 현대 미술의 성지가 된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홀(Turbine Hall)입니다. 옛 화력 발전소 건물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하면서, 동력을 공급하던 장소의 바닥부터 천정까지 35m에 달하는 공간을 아무런 구조물 없이 완전히 비워버렸죠. 영국 런던이 컨템포러리 아트의 중심지가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보석 같은 전시장입니다. 이곳은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단 한 명의 작가를 위한 꿈의 무대가 되는데요. 지금까지 다양한 작가가 숱한 화제를 뿌렸답니다. 올라퍼 엘리아손의 인공 태양 아래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몽환적인 풍경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이런 터바인홀에 한국 국적 작가로는 처음으로 이미래 작가가 올 10월부터 단독 전시를 엽니다. (짝짝짝)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현대 커미션’의 아홉 번째 작가로 선정된 건데요. 한국 기업이라서 손을 쓴 거 아니냐고요? 전혀요. 테이트 모던의 큐레이터가 선정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보장되는 건 물론이고, 워낙 상징적인 곳이라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오히려 역풍이 붑니다. 지금까지 선정된 작가들 면모만 봐도 누구나 납득할 만했어요. 재작년은 세실리아 비쿠냐, 작년은 엘 아나추이였는데요. 두 작가 모두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거장이에요. 그럼 이미래 작가는 젊은 나이에(그는 1988년생이에요) 어떻게 터바인홀에 입성하게 됐을까요?

“이미래는 오늘날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입니다. 영국에서의 첫 작품을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이게 되어서 기쁘네요. 강력한 조각을 제작하는 작가로서 전복적이고 다감각적인 형태로 터바인 홀의 상징적인 공간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기대됩니다.”

테이트 모던을 이끄는 카린 힌즈보 관장의 말이에요. 좀 뻔한 공치사 같기도 한데요. 이미래 작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왜 이런 반응을 내보이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답니다.

뉴욕 뉴뮤지엄 개인전 일부

그는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이에요. 실리콘과 점토처럼 끈적끈적한 재료를 쇠창살, 철근 및 기타 구조물 주위에 칭칭 매다는 대규모 설치 작업으로 유명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장을 방금 꺼내어 걸어놓은 듯한 작업은 방치된 듯 너덜거리거나, 모터가 작동하면서 스스로 꿈틀거리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점액질이 흐르기도 하고 전체 형상이 뭉개지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심연을 자극하는 그로테스크한 작업인데요. 역겹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에 한 번 보면 쉬이 잊기 힘들답니다. 폭력과 욕망,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과 형식이 압도적으로 개성 있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일부
싱켈 파빌리온 전시
싱켈 파빌리온 전시 일부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박물관 개인전 일부

이미래 작가는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이후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1년 베를린 싱켈 파빌리온에서 영화 <에일리언>의 끔찍한 크리쳐 디자인으로도 잘 알려진 H. R. 기거와 이인전을 가졌고요. 202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본전시에 당당히 초대받았고, 같은 해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박물관(MMK)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년에는 컨템포러리 미술에 집중하는 뉴욕의 뉴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는데요. 전시를 기획한 수석 큐레이터는 “수년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이제 동시대를 선도할 예술가가 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초대했다”라고 말했답니다. 올해 테이트 모던 터바인홀까지 접수했으니, 선견지명이 따로 없네요. 작가 알아보는 눈은 어딜 가나 똑같나 봐요.

2022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 출품작

신작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은 아직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층고가 확 트인 터바인홀의 건축적 특성이 이미래 작가의 작업 성향과 잘 어울리는 터라 대체 어떤 모습으로 깜짝 놀라게 할지 무척 기대됩니다. 전시는 10월 8일부터 내년 3월 16일까지. 이때 테이트 모던을 찾는 분들은 놓치지 마세요.

부산 비엔날레 출품작
사진
Tate Modern, mire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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