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뷰티 브랜드 론칭. 그런데 주 원료가 화이트 와인과 하얀 빵이라고요?
55년 예술 인생 동안 뭇사람을 놀라게 하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행위 예술의 전설, 대모, 할머니라 불리는 그는 올해 77살을 맞이했는데요. 지금까지 자기 몸을 도구 삼아 파격적인 실험을 하며 쌓아 올린 명성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거예요.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예술가로 꼽히니까요. 예술계에 끼치는 영향력도 슈퍼 인플루언서 급이구요.
그의 작품 세계를 살짝만 언급해 보자면, 손을 쫙 펴고 칼로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찍고, 면도날로 배에 공산당 별을 그리고, 불구덩이로 돌진하고, 연인과 입술을 맞대고 호흡하다 산소부족으로 실신하고, 2500km를 걸으며 만리장성 중간에서 만나서 이별하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동물의 뼈를 닦으며 노래하는 걸 꼽을 수 있죠.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하루 7시간씩 자리에 앉아 관람객과 상호 응시하며 736시간 넘게 총 1545명을 상대한 것은 전설로 남아서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어요.
이런 작업을 하려면 두려움 없이 마음의 평정을 찾으며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고도의 자아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실제로 그는 오랜 시간 스스로 갈고 닦은 심신 수련법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도 했답니다. 그의 이름이 바로 브랜드인지라, 심플하게 ‘아브라모비치 방법(Abramović Method)’이라고 명명했어요. 아브라모비치 방법은 10년 동안 계속 발전을 거듭해서 2022년 영국 출판사를 통해 여러 가지 수련법을 적은 30장짜리 카드 상품으로 출시하기도 했는데요. 간단히 살펴보면… 3분 동안 얼음물에서 수영하기, 머리카락을 통해 정전기 방출하기,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문 여닫기, 거울 들고 야외에서 뒤로 걷기, 1시간 동안 천천히 이름 한 번 쓰기, 가능한 한 오랫동안 쌀알 세기(그녀는 안내 비디오에서 6700개를 넘겼습니다!), 나무에 불평하기, 2시간 동안 슬로우 모션으로 이동하기, 눈과 귀를 가리고 공간을 탐색하기, 1시간 동안 상호 시선 유지하기, 20분 동안 천천히 물 한 잔 마시기 등이 있답니다. 참 쉽죠?
이런 아브라모비치 방법은 아티스트가 고도의 인내력과 정신력을 키운 노하우의 집대성이라고 해요. 일부는 ‘집 청소’라는 워크숍으로 만들어져 현재 그리스에서 성별 나이 직업 상관없이 체험할 수 있답니다. (물론 유료입니다!) 이런 그가 심신 수렵법을 확장해서 새해 벽두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온라인을 배경으로 한 활동인데요. AI가 촉발한 특이점의 시대에 몸이라는 물질을 버리고, 비물질적 퍼포먼스로 색다른 자극을 주려는 걸까요?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영성을 잃어버린 사람을 위한 도움의 손길은 맞는데요. 그 도구가 바로 페이스 로션과 드롭 영양제입니다.
이게 뭔 소리냐구요? 필자도 처음에는 신박한 아이디어에 살짝 감동 받으며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 마음이 부풀었는데요. 정말 진지하게 웰빙 장수 제품을 판다고 합니다. 이름마저도 심플 그 자체인, ‘마리아 아브라모비치 장수법(Marina Abramović Longevity Method)’입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 저돌적인 면모가 딱 그의 작품 세계를 닮은 거 보니 분명 동일한 사람이 주도하는 것 같아요.
오스트리아에서 단어 그대로 ‘장수 센터’를 운영하는 대체의학 옹호자인 노나 브레너 박사와 2017년 우연히 만난 아브라모비치는 만성적으로 겪던 라임병을 다양한 비법으로 완치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브레너 박사와 합심해 신비의 웰빙 스크릿과 자신이 아티스트로서 계속 정리하던 심신 훈련법인 아브라모비치 방법을 결합해 이번 ‘장수법’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합니다.
심신 수련법이 어떻게 스킨 케어와 영양제로 구성된 웰빙 장수법 제품으로 확장했는지 그 논리적 연관성은 사실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은데요. 다만, 진심이라는 건 확실해요. 페이스 로션을 비롯해 항알레르기, 면역력, 에너지를 향상시키는 세 가지 드롭 영양제를 예약 판매하고 있거든요. 패키지도 직접 디자인했고요. 가격은 영양제가 £99, 페이스 로션이 £199랍니다. 아티스트의 명성만큼이나 가격도 확고하네요.
페이스 로션의 주성분은 비타민 C와 더불어 화이트 와인과 하얀 빵(!)인데요. 이런 소박한 원료로 획기적인 효과를 낸다면 이름에 걸맞은 웰빙 시크릿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33만원이 넘는 로션 용량은 다행히 100ml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시슬리의 에뮐씨옹 에꼴로지끄 에센스 로션이 125ml에 34만원이니, 아티스트 프리미엄이 적당하게 붙은 걸까요. 필자의 정신이 혼미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질어질하네요. 비슷한 증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답니다. 2024년 런칭한 ‘장수법’은 과연 전설이 될까요?
- 사진
- Marina Abramović Longevity Method, Laurence King Publis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