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부활한 전설의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의 잊힌 걸작이 100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동한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요즘 엄청난 사랑을 받는 예술가입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마치 한 몸처럼 껴안고 있는 그림 <키스>는 비엔나에 갈 때 꼭 챙겨봐야 할 명물 중 하나죠. 직접 가지 않고는 캔버스 위에서 신비롭게 반짝이는 금박 느낌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는 간증기가 수도 없이 많아요. 물론 비엔나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 클림트의 그림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눈에 띄어요. 마우스패드, 안경닦이 등 생각지도 못한 라이프스타일 소품에 단골로 등장하니까요!
이런 클림트에 대한 인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이에요. 클림트가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완성한 <키스>는 금박 그림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던 일명 ‘황금 시기’의 대표작인데요. 비슷한 시기의 또 다른 걸작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만 하더라도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열린 경매에서 1억 3500만 달러에 팔리며 당시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어요. 그런데 클림트가 꼭 이런 블링블링한 금박 그림만 그린 사람은 결코 아니랍니다. 1918년 당시 56세의 나이로 갑자기 쓰러지며 폐렴으로 죽을 때까지 마지막 10년은 금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어요. 작품 세계가 원숙해지고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되면서 그를 사로잡은 건 부드럽고 풍부한 색채였답니다. 당시 비엔나 사교계에서 활동하던 여인들에게 초상화가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그는 신비하고 환상적인 표정으로 인물을 묘사하면서 옷과 배경은 조금 무심하게 처리해 오히려 보는 이를 끝없이 끌어당기는 마법을 부렸어요. 이런 매력이 잘 나타난 클림트의 유작은 작년 열린 경매에서 유럽 미술 작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어요. <부채를 든 여인>이 그 주인공인데요. 무려 8530만 파운드, 약 1419억원에 낙찰됐답니다.
이렇게 엄청난 가치를 보장하는 작가의 작품이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100년이 지나서 우리 앞에 나타나면 기분이 어떨까요. 어떤 그림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과 대체 이번 그림은 얼마나 할까, 궁금한 마음이 마구 섞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불과 바로 얼마 전에요. 지난 1월 25일 비엔나에 위치한 경매 회사 임 킨스키는 전설로만 떠돌던 클림프의 유작을 공개했어요. 바로 <리저 양의 초상>입니다.
전설이 된 이유는 간단해요. 그림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흑백으로 찍은 사진 한 장만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에 남아 있거든요. 전문가들이 자료를 분석해 보니 1917년쯤 완성한 것 같은데, 이듬해 급사하면서 그림을 의뢰했던 가문에 양도됐다는 기록만 있어요. 그리고 1925년 전시를 준비하던 기획자가 그림을 빌려와 기록용으로 사진 한 방을 남기고, 그 뒷면에 ‘리저 부인이 소장 중’이라는 메모를 써놨죠. 1926년 열린 전시에는 실제 출품하지 않아서, 정말 극소수의 몇몇만 빼고는 대중에 공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셈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아마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훼손되거나 유실됐다고 생각했답니다. 당시 유럽 대륙을 점령하던 나치는 부유한 유대인의 재산을 서슴없이 강탈했거든요. <리저 양의 초상> 속 리저 양은 비엔나에서 잘 나가는 유대인 사업가인 리저 집안의 영애였어요. 그러니 전쟁 통에 나치가 빼앗아 갔거나, 혹은 퇴폐미술이라고 불태웠을 가능성도 높았죠. 나치는 클림트 그림을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걸. 알고 보니 100년 넘게 오스트리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1965년부터는 어느 집 별장에 늘상 걸려 있었대요. 세상에 그림의 존재가 알려진 것도 2년 전 먼 친척으로부터 그림을 상속받은 현 소유주가 그림을 팔기 위해 수소문한 게 계기가 됐답니다. 경매회사는 이게 클림트의 그림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엄청나게 조사했는데요. 클림트가 배경 부분을 더 고치고 싶어서 완성을 미루고 있던 차에 갑자기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림 위에 그 흔한 서명도 남기지 않았어요. 고증할 수 있는 자료는 앞서 말한 기록용 흑백 사진 뿐이었죠. 그래도 전문가의 눈으로 계속 감정하니 결론은 하나였어요.
‘이건 클림트가 아니면 그리지 못하는 말년의 걸작이다. 단 한 번도 대중에 내보인 적 없는 전설 속 그림이 100년의 세월을 넘어 21세기에 부활했다!’
<리저 양의 초상>은 리저 양의 전신을 화폭에 모두 담지 않고, 4분의 3 정도만 표현했어요. 기록을 찾아보니 초상화 하나 그리려고 무려 클림트 집을 아홉 번이나 찾아가야 했대요. 클림트는 밖을 나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었고, 초상화를 의뢰하는 쪽에서 오히려 마음이 급해지는 ‘슈퍼을’이기에 어쩔 수 없었나 봐요. 대신 클림트도 최선을 다했죠. 20장 넘는 스케치를 하면서 다양한 자세를 잡아봤거든요. 그러다 최고라고 생각한 게 지금처럼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답니다. 하얗고 맑은 피부, 혈색이 도는 두 뺨, 부드럽고 깊은 갈색 눈, 알 듯 모를 듯 미소 짓는 모습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넘어가는 10대 후반의 아름다운 소녀가 살아 숨 쉴 것 같아요. 거칠게 묘사했지만 도리어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꽃무늬로 가득 찬 파란색 계열의 옷은 또 어떠하고요. 특히 배경을 가득 메운 은은한 붉은 색까지 더하자 보색 효과 덕분에 신비로운 생명력과 화사함이 극대화되어 보는 이의 마음마저 밝힙니다.
오는 4월 경매회사는 <리저양의 초상>을 경매에 부친다고 해요. 예상가는 최대 5000만 유로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700억원이 넘는 금액이죠. 경매의 세계는 예측 불가입니다. 실제 최고 가격이 얼마까지 오를지는 입찰이 끝나봐야 알아요. 만약 불사조처럼 세상에 나타난 그림의 아름다움과 스토리에 매료된 사람들이 몰린다면 호사가들이 수군거리는 것처럼 1000억원을 훌쩍 넘을지 모르죠. 결국 그림을 쟁취하는 사람은 돈 많고 용기 많은 부자겠지만, 모니터 화면을 뚫고 전해오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림을 가진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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