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 데 있을 신비한 뷰티 잡학 사전

천나리

왜 알아야 하는지 물으신다면, 재미있거든요

향이 없는 꽃 – 겐조 플라워바이겐조 오 드 퍼퓸

겐조 ‘플라워바이겐조’ 향수의 투명한 보틀 속 빨간 포피, 양귀비 꽃은 실제로 향이 없다는 사실! 봄마다 다양한 꽃이 피는 일본의 유적지 히메지에서 태어난 겐조 타카다는 그중 향이 아주 미미해 ‘향기 없는 꽃’으로 불리는 포피 플라워의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이미지에 매료된다. 그는 포피의 향을 상상하며 파우더리한 플로럴 향의 향수 ‘플라워바이겐조’를 만든다. 없던 향을 창조해 포피 플라워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셈이다. 50ml, 12만2천원대.

다섯 번째 시향지 – 샤넬 N˚5 오 드 빠르펭

샤넬 ‘N˚5’는 샤넬의 첫 번째 향수다. 왜 N˚1이 아니냐고? 가브리엘 샤넬은 1번에서 5번까지, 그리고 20번에서 24번까지 번호를 매긴 두 종류의 샘플 향수 중 5번째 향수를 선택한다. 여기에 당시 시적인 이름을 달고 출시되던 향수들과 변별력을 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심플하게 샤넬 N˚5라 명명, 1921년 5월 5일 이를 선보인다. 패션에 진심인 자신의 고객에게만 독점 판매하며 점차 입소문을 타고, 결국 전설의 향수로 자리매김한다. 100ml, 27만5천원.

극한을 견뎌라! – 키엘 울트라 훼이셜 크림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와 그린란드, 북극의 공통점은?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극한 환경이라는 것과 울트라 훼이셜 제품에 정복당했다는 것! 키엘 CEO 중 한 명인 아론 모스는 공군 비행사 출신이자 오토바이 라이더로 모험을 즐기는 탐험가였다. 그는 키엘 제품이 극한의 환경에서 탁월한 보습력을 발휘하는 것을 확인하고, 1988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울트라 훼이셜 모이스처 라이저’를, 2005년 그린란드 원정대와 2012년 북극 탐험가에게 ‘울트라 훼이셜 크림’을 선물했다. 이들은 하루 3번씩 이 제품을 바르며 혹한으로부터 피부를 지켜냈고, 이를 계기로 ‘극한 크림’으로 입소문이 났다. 125ml, 9만3천원대.

더러워도 사랑은 하고 싶어! – 러쉬 더티 스프레이

러쉬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마크 콘스탄틴의 친구는 데이트 직전에만 양치할 정도로 비위생적이었음에도 인기가 많았다. 그 친구에게 영감 받아 치약에 쓰이는 스피어민트의 청량한 향을 담아 만든 보디 스프레이가 바로 ‘더티 스프레이’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 대신 밤새 입은 티셔츠 아래 향수를 뿌리고 외출하는 남자들이 많은 것에 착안, 몸에 대충 뿌려도 깨끗한 향을 내는 제품을 만든 것이다. 200ml, 6만원.

외제니 황후의 향수 – 겔랑 체리블로썸 오 드 뚜왈렛

겔랑의 상징인 벌 문양은 겔랑만 사용할 수 있었다? 겔랑의 창립자 피에르 파스칼 겔랑은 나폴레옹 3세에게 외제니 황후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24K 금으로 칠한 69마리의 벌을 새긴 ‘오 드 코롱 임페리얼’을 바친다. 향을 맡으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할 만큼 이를 사랑한 외제니 황후는 겔랑을 왕실 조향사로 임명한다. 그 결과 나폴레옹 왕가를 상징하는 벌 문양은 오직 겔랑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되고, 이 벌이 새겨진 ‘비 보틀’은 외제니 황후가 독점으로 사용한 3년 뒤 시판된다. 이것이 해마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협업한 보틀 디자인으로 출시되는 겔랑 ‘체리블로썸 오 드 뚜왈렛’의 기원이다. 125ml+30ml, 1백40만원.

선수 입장! 등 번호 13번 – 바이레도 블랑쉬

바이레도의 로고 ‘B’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창립자 벤 고헴의 농구선수 시절 등 번호 13을 합친 모양이자 By Redolence(향기에 의한, 무언가를 떠올리는 기억)의 줄임말인 Byredo의 B라는 것. 전문적인 향수 교육을 이수한 적 없는 업계의 이단아로 니치 퍼퓸 시장에 뛰어든 그는 일반적인 향수에 50개 이상의 향료가 사용되는 것과 다르게 하나의 향수에 5~10개 정도의 향료만 사용해 향을 단순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00ml, 36만원.

레드 립의 정석 – 디올 루즈 디올 999

다른 립스틱 넘버는 못 외워도 레드 립스틱의 상징인 디올 999만큼은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 999는 왜 999가 되었을까? ‘당신의 미소에는 컬러가 필요합니다. 디올이 여러분의 피부에 걸맞은 드레스를 선사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출시한 디올 하우스의 첫 번째 립스틱은 ‘루즈 디올’. 그중 경쟁사에서 자사 제품을 광고하며 이제 999는 잊으라고 언급할 정도로 레드 립의 대명사가 된 999 컬러는 크리스찬 디올이 처음 출시한 레드 립스틱 컬러 9번과 99번을 합친 숫자로 인종과 시대를 초월한다. 3.5g, 5만9천원대.

글래디에이터의 크림 – 프레쉬 크렘 앙씨엔느 오리지널 크림

바야흐로 2세기. 과학자이자 의사였던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령을 따라 부상당한 로마 검투사를 위한 크림을 만든다. 이는 오일과 왁스, 물로 만든 세계 최초의 크림. 프레쉬의 창립자 레브 글레이즈먼은 이를 재현하기 위해 체코의 한 수도원으로 향한다. 갈레노스의 레시피가 이단으로 여겨지던 동안 피난처를 제공한 장소로, 이곳에서만 바로 그 오리지널 크림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묵언수행을 하는 수도사들에 의해 수작업으로 제조되고 포장되는 ‘크렘 앙씨엔느’는 그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00g, 58만원대.

오드리 헵번의 “나만 쓰고파” – 지방시 뷰티 랑떼르디 오 드 퍼퓸

지방시의 뮤즈이자 베프였던 오드리 헵번. 지방시는 1957년 그녀를 위해 우아하고 대담한 향의 향수를 만들고, 향을 맡은 오드리 헵번은 제품 대중화를 반대하며 “이 향수의 공개를 금지해요!” 라고 장난스럽게 외쳤다. 프랑스어로 금지를 뜻하는 ‘랑떼르디’에서 따온 이름 ‘르 드와 랑떼르디’는 브랜드 최초의 향수로 지방시 뷰티의 근간이 된다. 80ml, 19만9천원대.

천사의 몫 – 킬리안 엔젤스 쉐어

프랑스의 주류 제조 가문에서 태어난 킬리안 헤네시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코냑 저장고에 자주 방문한다. 저장고 천장이 검게 변한 걸 본 어린 킬리안이 할아버지에게 “불이 났었나요?”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알코올이 증발해 생긴 거라 답한다. 이는 코냑 제조 과정에서 오크통 속 원액이 2%씩 증발하는 현상으로, ‘천사들이 훔쳐 갔다’,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엔젤스 쉐어’라고 불린다. 자라서 킬리안 향수의 대표가 된 그는 알코올과 설탕, 나무에 흠뻑 젖은 향에 대한 추억을 상기해 만든 향수에 ‘엔젤스 쉐어’라고 이름 붙인다. ‘엔젤스 쉐어’는 실제로도 최고급 코냑 에센스가 사용된 ‘술 먹은 향수’다. 50ml, 30만5천원.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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