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거짓말, 그리고 글로 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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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두 번째 책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에서 남녀의 은밀한 시간을 파고든 영화 감독 김종관을 만나 담담한 섹스와 격한 감정에 대해 물었다.

“난 이 책이 어두운 샛길에 접어든 연인의 이야기이길 바랐다.”

“난 이 책이 어두운 샛길에 접어든 연인의 이야기이길 바랐다.”

“이 책은 주로 밤의 이야기다. 일상적인 공간이 비일상적인 모습을 가지는 시간.”

“이 책은 주로 밤의 이야기다. 일상적인 공간이 비일상적인 모습을 가지는 시간.”

“그들이 얻는 새로운 세계. 모험의 시작.”

영화 감독 김종관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김종관 감독이 직접 찍은 것들이다. 그가 그 중 몇 컷을 고른 뒤 나름의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책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에 실린 서른 두 편의 짧은 픽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덩어리로 엉겨 몸을 나누고 욕망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 결국에는 길고 불편한 여운을 남긴 채 퇴장한다. 섹스에 관한 묘사보다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페이지 사이에서 추스를 새도 없이 쏟아져버리는 감정들이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이미 겪어 봤던 그 감정들은 종종 통증 같은 수치심을 안겨준다. 묵묵히 지켜보는 카메라처럼 침착한 문장으로 노골적이고 솔직한 순간들을 그려낸 김종관 감독에게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여전히 궁금해지는 것들을 물어봤다. 밤과 어두움 사이에서 이야기는 이렇게 완성됐다.

Q 서른 두 편의 에로틱한 픽션에 그와 연결고리를 갖는 짧은 에세이들을 덧붙여 구성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일 만큼 많은 섹스와 관계에 대해 쓰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었을까?

A 난 늘 픽션을 구상하는 창작자다. 픽션 가운데서도 영화라는 매체로 시작을 했지만 이번에는 글이 최종의 결과인 픽션을 만들게 됐다. 콩트라는 형식은 영화지 <무비위크>에 같은 성격의 글을 연재하면서 만들어졌다. 다양한 SNS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글을 많이 쓰고 읽지만 장문의 글에 인내가 사라지는 시기에 콩트라는 형식이 재미있게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분명한 테마가 있는 책을 원했는데 사랑이나 섹스라는 테마는 최소한의 관계 안에서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소재다.

Q 섹스가 넘치는 책이지만 해피 엔딩은 드물다. 관계를 통해 더 외로워지고 허무해지고 치사해지는 캐릭터들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끼는 걸까?

A 연애는 나와 누군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너에 대해 끊임 없이 묻다가 나의 내부에 진지한 질문들이 생긴다. 섹슈얼하고 노골적인 연애담에는 욕구에 무너지는 개인의 가난한 윤리에 대한 이야기도, 반대로 이기심을 이기고 타인에 대한 숭고한 희생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있다. 무수한 관계의 이야기들에 매력을 느꼈고 성공과 단정이 아닌 실패와 모순의 이야기에 창작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Q 설명하기보다는 담담하게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그래서 뜨겁고 노골적인 장면을 묘사할 때조차도 글의 온도는 서늘하다. 섹스를 다루되 야하게 그리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더 섹시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A 콩트에 군더더기 묘사가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줄기만 보여주는 것은 좋은 픽션의 창작이 될 수 없다. 간단한 묘사 안에 인상이 있기를 바랐다. 읽는 사람을 감각하게 하기 위해서는 빽빽한 묘사보다는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글을 읽는 취향도 그렇다. 정서적인 전달 외에 다른 수식이 많거나 감정적이고 뜨거운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Q 영상과 문장은 엄연히 다른 도구이고, 그래서 같은 창작자가 다룬다고 해도 표현의 결과물은 미묘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는 김종관의 영화와 김종관의 글이 서로 얼마나 닮아있고, 또 다르다고 생각하나?

A 문장으로 이야기를 하고 독자와 만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다. 십 년 전에 멋 모르고 단편 영화를 만들던 시점부터 내적인 팽창은 끊임없이 있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설계도인 시나리오를 무수히 썼지만 그것을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상업적인 계기를 얻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고민하는 화두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생긴 것은 나한테 중요한 일이다. 글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영화로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대략 비슷하지만 난 영화가 가진 환상성을 믿고 좋아하는 편이며 영화만이 실현할 수 있는 세계에 관심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예쁜 미장센을 추구하는 스타일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창작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아직 진행 중이고 균형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아직까지는 스타일 면에서 오해를 받곤 하는 영화보다 글에 더 내 창작의 본질이 보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Q 개인적으로 특히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소설이나 영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A 옴니버스 영화인 <에로스> 중 왕가위의 ‘그녀의 손길’을 추천한다. 고전적이고 우화처럼 상직적이며 성기가 아닌 신체의 일부로 성적인 영역과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다.

Q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에 실린 콩트 중 딱 하나만을 골라 단편 영화로 각색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고르겠나?

A 마지막 에피소드인 ‘아침의 강’. 베를린으로 여동생을 만나러 온 누이와 테겔 공항으로 마중 나온 매제 간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에피소드다. 만들 수 있다면 해외 로케를 하고 싶은 속물 같은 바람에서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사진
김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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