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맨체스터에서 맞닥뜨린 샤넬 2023/24 공방 컬렉션
토마스 스트리트, 피터 사빌, 조이 디비전, 축구, 퀴어, 공업도시, 존 쿠퍼 클라크, 뉴 오더, 아방가르드, 현대음 악, 팩토리, 하시엔다···. 수많은 최초를 지닌 채 투박한 음악과 예술적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도시, 영국 맨체스터. 그곳에서 맞닥뜨린 샤넬 2023/24 공방 컬렉션이라는 우주.
영국 런던에서 16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맨체스터 북부의 토마스 스트리트(Thomas Street), 해 질 무렵 이곳에서 샤넬의 2023/24 공방 컬렉션이 열렸다. 샤넬과 영국, 익숙한 듯 낯선 이 조합은 여러모로 필연적이다. 쇼 전, 메일로 날아온 샤넬 2023/24 공방 컬렉션 프리뷰 이미지는 이 만남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맨체스터의 젊은 세대를 모델로 발탁해 영국의 사진작가 제이미 호크스워스(Jamie Hawkesworth)가 촬영하고, 샤넬 앰배서더 소피아 코폴라의 감독하에 버지니 비아르가 구상한 컬렉션의 첫인상. 영국 소녀들이 입은 샤넬 블랙 티셔츠 드레스에는 자수 문장이 장식되어 있었고, 섬세한 벨벳 저지 스웨터에는 트위드 리본으로 악센트를 준 플리츠 플래스트런을 더했다. 르사주에서 데님 리본 또는 핑크 부클레사로 엮어 만든 멀티컬러 트위드를 사용한 재킷에는 세트인 모자를 연출하고, 파스텔 컬러 니트와 함께 은은하게 반짝이는 팝 레드, 머스터드 옐로, 라일락 컬러의 샤넬 슈트가 등장한다.
맨체스터는 세계를 바꾼 대중음악 문화의 산실이다. 그리고 맨체스터의 음악적 기운과 역사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 그리워하고 찾는 만남의 장소다. “내게 맨체스터는 음악의 도시다.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의 말처럼 영국은 오랫동안 샤넬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영국 여행 중에 산책, 낚시, 사냥 활동을 즐기다 영국 특유의 트위드 재킷, 코트, 아우터를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컬렉션에서 활용했으니 꽤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스타일, 문학, 건축, 디자인, 스포츠 등 샤넬이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영역에서 무수한 영감을 준 영국, 그리고 맨체스터를 향한 애정은 쇼가 시작되기 전 공개된 영상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맨체스터의 토마스 스트리트, 피터 사빌, 조이 디비전, 축구, 퀴어, 공업도시, 존 쿠퍼 클라크, 뉴 오더, 아방가르드, 현대 음악, 팩토리, 하시엔다 등. 영국의 걸출한 스타일리스트 샬럿 스톡데일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팅하고, 소피아 코폴라가 몽타주한 필름에는 맨체스터에 관한 모든 것이 샤넬의 프레임 안에 담겨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필름을 보다 보면, 맨체스터라는 도시가 가진 다양성에 대해 감탄과 경외를 보내게 된다.
이 도시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의상은 컬렉션 전반에 등장한다. 이번 공방 컬렉션은 해 질 무렵이 배경이기에, 색감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슈트, 백, 진주를 엮은 장식이 반짝이는 팝한 컬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새먼 핑크, 펌프킨, 애플 그린, 머스타드, 스카이블루, 레드, 러스트가 여성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컬러로 지평선을 밝힌다.
“이번 컬렉션의 중심은 트위드다.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지만 샤넬 여사가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재킷을 입었을 때의 룩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샤넬 여사가 트위드에 색을 입힌 방식에 착안해 생기 넘치는 팝 정신을 더하고자 했다.” 버지니 비아르는 록 분위기의 룩 대신 60년대 감성으로 다채로운 ‘감정’을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또한 이번 컬렉션에는 영국 하면 연상되는 트위드, 셰틀랜드 니트웨어 및 캐시미어 소재 랩스커트, 고데(godet)를 넣은 미니스커트, 버뮤다 쇼츠, 코트 드레스가 등장하는데, le19M의 공방에서 제작한 플리츠, 깃털 장식, 자수, 모자와 주얼 버튼이 어우러지며 공방 컬렉션의 매력을 끌어올린다. 찻주전자, 레코드판, 귀여운 꽃 장식으로 재미를 더하고, 소박한 블랙 메리제인 슈즈로 담백한 마무리를 지었다. 데님 팬츠, 레더, 베이비돌 잠옷을 포함한 니트웨어, 스트랩리스 드레스로 앙상블을 완성하며, 축구, 맨체스터의 음악계, 영국의 시골 등 다양한 영감을 표현했다. 궁극의 단순함과 절대적 정밀함이라는 하우스 코드도 놓치지 않았다. 컬렉션의 모던함을 부각시켜주는 코드 외에 재킷 하단의 체인, 대비를 이루는 안감, 움직임의 자유를 선사하는 스티치를 넣은 여러 개의 패널에서 가브리엘 샤넬만의 테일러링 기술을 엿볼 수 있었다.
강인하고 과감하고 즐거운 맨체스터 여성, 유쾌하면서도 당찬 느낌을 주는 이들은 버지니 비아르가 사랑하는 여성들의 모습 그 자체다. 쇼가 끝날 즈음 ‘Bizarre Love Triangle’이 흘러나올 때, 멋진 루빅스 큐브가 완성되는 것처럼 한 세기 넘게 이어져온 샤넬과 영국의 변치 않는 인연이 딱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배기가스의 탄생지이자 하치엔다의 본거지, 뉴 오더, 오아시스, 스미스, 스톤 로지스와 같은 전설을 낳은 도시, 그리고 현재 샤넬이 선택한 목적지인 맨체스터. 쇼가 끝난 후 이어진 2023/24 공방 컬렉션 쇼 파티에서 이어진 샤넬 프렌즈 밀리 브래디는 맨체스터 음악을 ‘시끌벅적’, ‘즐거움’, ‘반항적’이라고 표현한다. 이 도시를 유서 깊은 음악의 도시에 헌정하는 쇼는 끝났지만, 투박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음악과 예술적 에너지는 계속될 것이다.
“이젠 영국에서 우리만의 사운드를 찾았고,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게 됐죠. 다른 데서 뭐가 잘나가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그 잘나가는 게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 그리고 여기, 영국은 우리의 고향이죠.”
- 사진
- Cha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