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전하는 이별 통지서
To. X
“좀 이상해 왜 둘 사이에 너만 너만 보이는 걸까” 태연이 최근 발표한 다섯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To. X’는 제목 그대로 상대에게 날리는 이별 통보곡입니다.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지만 관계의 자전축이 늘 한쪽으로 맞춰져 있음을 자각하고 “내가 없어진 나의 매일”을 회복하기 위해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하죠. 그 이별에는 애절함이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태연의 목소리가 냉담함에 가깝기 때문이죠. 넘치지 않게 감정을 차분히 조절하는 듯 말하는 것 같은데요. 미련 없이, 쿨하게. 이별의 주도권만큼은 누가 쥐고 있는지 똑똑히 기억하게끔 말이죠.
KILL THIS LOVE
태연의 ‘To. X’에 감정의 화력을 몇 스푼 가미하면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드럼 사운드의 힘찬 응원 속에서 블랙핑크는 “답이 없는 Test” 같고 “매번 속더라도 Yes”를 강요하는 사랑의 숨통을 끊기로 작심했음을 선언하듯 외칩니다. 휘몰아치는 랩과 보컬이 그 결심에 후회나 미련이 없음을 실감하게 만드는데요. 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노래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거든요. “나 어떡해. 나약한 날 견딜 수 없어. 애써 눈물을 감춘 채 사랑의 숨통을 끊어야겠어”. 이별 앞에서 끄떡없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Congratulations
데이식스의 ‘Congratulations’는 반어적 표현으로 꾹꾹 눌러쓴 제목입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뒤 연락조차 받질 않는 상대에게 “Congratulations 넌 참 대단해. Congratulations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 하며 날 짓밟아”라고 마지막 말들을 전하는데요.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이었죠. 기타 리프 위로 담담하게 시작된 노래는 밴드 사운드가 고조되면서 속마음을 본격적으로 쏟아냅니다. “그 사람이 내 기억 다 지워줬나 봐? 그래 너가 행복하면 됐지, 라는 거짓말은 안 할게. 대체 내가 왜 날 떠난 너한테 행복을 바래야 돼”. 이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검정색하트
검정색하트라니, 어쩜 이렇게 예쁜 표현인지. 프로듀서 토일의 ‘검정색하트’는 다툼이 점점 잦아지고 말투는 무뚝뚝해진 관계를 다룬 곡인데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오늘 사랑한다는 말 대신 검정색의 하트를 보낸다는 가사가 와우 포인트입니다. 검정 하트라는 게 “혼자인 어두운 밤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상대에게 꺼내어 보여주는 투정 어린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자꾸 넌 내게 하라잖아 선택. 예상했어 이따위 뻔한 전개. 낌새가 보였거든 알아? 넌 매일”이라는 구절에 이르러 ‘이별’이란 두 글자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릴러말즈와 비오의 목소리가 긁어내는 무드는 또 어떻고요.
Run Devil Run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에서 걷어차인 상대는 나빠도 너무 나빠요. “사랑보단 호기심뿐”, “네 핸드폰 속 수많은 남잔 한 글자만 바꾼 여자”, “내 곁에서 살며시 흘깃 다른 여잘 꼭 훑어봐”. 그런 못된 놈에게 까불지 말라고, 사랑해 줄 때 잘 했어야 한다고 일침을 날리는 소녀시대의 이별 통보곡에는 원망 대신 자신감이 가득 넘치는데요. “이 넓은 세상 반은 남자. 너 하나 빠져봤자 꼭 나만 봐줄 멋진 남자. 난 기다릴래 혼자”라고 방점을 찍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특히 “더 멋진 내가 되는 날 갚아주겠어. 잊지마”라고 찌를 듯이 솟구치는 태연의 보컬이 속시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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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