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열두가지 영화.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여행의 목적보다 핑계에 가까웠다. 낯설고 난해한 상영작들이 푸짐한 먹거리에 종종 우선순위를 빼앗겼던 탓이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해외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화제작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포진한 상태다.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이어질 축제에서 우선적으로 살펴야 할 목록을 이렇게 추렸다.
1.<언더 더 스킨> – 조너선 글레이저
마이클 파버의 동명 소설을 <섹시 비스트>, <탄생>의 조너선 글레이저가 영화화했다. 스칼렛 요한슨이 트럭을 몰고 스코틀랜드를 횡단하며 남자들을 유혹해 살해하는 에일리언으로 등장한다. SF 스릴러의 외피를 빌린 불길하고 기괴하며 낯선 상상력.
2.<업스트림 컬러> – 셰인 카루스
애벌레를 먹은 뒤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된 두 남녀가 있다. 서로를 가깝게 여기게 된 주인공들은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 한 덩어리로 내던져진다. 복잡한 서사를 시적인 이미지에 담아내 비평계의 찬사를 받은 작품. 감독 셰인 카루스가 직접 주연까지 맡았다.
3.<프란시스 하> – 노아 바움백
27세의 무용수 지망생 프란시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코미디는 누벨바그의 전통을 우디 앨런풍 코미디로 변주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배우 그레타 거윅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4.<그레이트 뷰티> – 파울로 소렌티노
사교계의 핵심 인물인 저널리스트가 문득 진실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로마 곳곳을 누빈다. 이탈리아 영화의 미학에 바치는 찬사이자 고전적인 예술 언어에 대한 향수라고 할 만한 작품.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이다.
5.<동경가족> – 야마다 요지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에 대한 재해석. 스즈키 세이준, 오시마 나기사 등과 작업했던 중견 배우 요시유키 가즈코부터 젊은 스타인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오이 유우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캐스팅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6.<더블> – 리처드 아이오와디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을 원안으로 한 작품.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도플갱어와 한 직장에서 일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불길하면서도 강렬한 비주얼과 주연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에 기대를 걸 만하다.
7.<어뷰즈 오브 위크니스> – 카트린 브레야
한때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실제 사기 전과자를 캐스팅하려 했던 카트린 브레야는 결국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상대의 농간에 놀아나 무려 65만 유로에 이르는 돈을 빼앗겼던 것.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을 맡은 <어뷰즈 오브 위크니스>는 감독이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랄하고 솔직한 고백이다.
8.<로크> – 스티븐 나이트
<이스턴 프라미스>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스티븐 나이트의 야심만만한 연출 데뷔작. 톰 하디가 과거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밤새 차를 몰고 런던으로 향하는 남자를 연기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서스펜스를 유지하려는 도전이라는 점에서 히치콕의 <로프>부터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베리드>까지 이어지는 영화적 실험의 끝자락에 놓일 만하다.
9.<무드 인디고> – 미셸 공드리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을 미셸 공드리가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해 각색했다. 20세기 초의 재즈 선율, 수공예적 특수 효과, 오드리 토투와 로망 뒤리스라는 스타 캐스팅 등이 애절한 로맨스를 아기자기하게 장식한다.
10.<조> – 데이비드 고든 그린
<언더토우>부터 <파인애플 익스프레스>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신작. 니컬러스 케이지가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는 소년과 교감을 나누는 벌목업자 역할을 맡아 오랜만에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11.<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 실뱅 쇼메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로 잘 알려진 실뱅 쇼메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실사 영화다. 부모를 여읜 뒤 말을 잃은 채 두 숙모와 함께 사는 폴이 이웃인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작물을 먹은 뒤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는 줄거리. 자크 타티의 영향은 전작에서만큼이나 선명하게 읽힌다.
12.<베리만 통과하기> – 자네 마구손, 휘네크 팔라스
스웨덴 출신의 거장인 잉마르 베리만은 감독들이 사랑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미카엘 하네케, 클레어 드니, 이안, 라스 폰 트리에, 우디 앨런, 마틴 스코세이지, 웨스 앤더슨 등 동시대 작가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과 애증을 읽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