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리스 레노마와의 인터뷰

W PROMOTION

프랑스 파리에서 올해 60주년을 맞이한 브랜드 레노마. 1963년 브랜드 런칭 이래로 레노마를 이끌어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리스 레노마 (Maurice Renoma) 에게 레노마의 히스토리와 비전에 대해 물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모리스 레노마입니다. 저는 레노마의 크리에이티브 총책임자로서 1963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브랜드를 60년간 직접 이끌어왔습니다.

레노마 60주년을 축하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모리스 레노마 씨의 시작점이 궁금해요.

레노마는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제 아버지는 테일러셨고 어머니는 재단사 셨어요. 부모님의 아틀리에에서 자라며 재능을 물려받아 저도 상인이 되었고, 17살의 어린 나이에 제법 일찍 일을 시작했습니다. 재봉틀이 있는 아틀리에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즐거운 유년 생활을 보냈죠. 레노마는 그렇게 작은 가족 아틀리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롭네요. 그럼 레노마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런칭하게 되었나요?

1963 10 23 제가 스무 살이 되던 해, 파리 폼프가에화이트 하우스라는 부티크를 오픈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것인데, 두 분은 아틀리에를 접고 저의 새로운 도전을 도와주셨습니다. 이후 제 이름을 딴레노마로 부티크 이름을 바꾼 것이 레노마 브랜드 역사의 진정한 제2막이 되겠네요.

레노마 런칭 이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레노마는 개업 즉시 성공을 거뒀습니다. 당시 저는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에너지로 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하곤 젊고 파격적인 의류를 만들었죠. 당시 패션은 각종 제도들에 대한 도전이자 반향의 첫 시작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패션을 통해 표현되었고, 패션은 젊은 세대의 반란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죠. 색다른 형태의 옷이 등장하기도, 컬러 풀 한 옷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레노마는 그런 사회 현상을 가장 처음으로 이해한 브랜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젊은 세대와 많은 예술가들이 레노마를 즐겨 입게 되었죠

2023년 레노마 파리 쇼룸의 전경

당시 어떤 예술가들이 레노마의 옷을 즐겨 입었나요?

당시 레노마를 즐겨 입은 예술가들은 정말 많아요. 프랑수아즈 아르디, 갱스부르, 제인 버킨, 비틀즈.. 특히 피카소, 앤디워홀, 달리 이 세 명의 위대한 화가들은 레노마를 입었습니다. 이 작가들은 제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오페라 무용수들도 가게를 찾으며 춤과도 연관되어 있었죠. 레노마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우리는 문화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1963년 첫 가게를 열었을 때, 우리는 옷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적 작품과 음악들로 실내를 장식했습니다. 영화, 그림, 사진 등 모든 예술적 요소를 포함한 세계 속에 레노마 패션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소개한 거죠. 처음부터 우리는 그것이 예술인지 모른 채로 자연스럽게 예술을 행했던 것입니다. 레노마는 이렇게 예술가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예술가들도 즐겨 입었던 레노마의 옷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기존 패션과 달랐나요?

재단사이자 디자이너였던 저는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을 뒤집었습니다. 당시 없던 나팔바지를 비롯해 특이한 형태지만 웨어러블 한 옷을 만들고, 온갖 컬러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어요. 그리고 벨벳 같은 특이한 소재를 사용하거나 여러 소재를 섞어 패치워크 기법을 사용해 의류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전까지는 모든 브랜드의 제품 컬러가 잿빛이었거든요.

비틀즈의 존레논이 즐겨입던 레노마의 벨벳 자켓

레노마의 뮤즈 제인버킨의 레노마 화보

앤디워홀이 즐겨 입던 레노마 멀티포켓자켓

60년간 브랜드를 운영해오신 원동력이 있다면요?

저는 아주 이례적으로 패션 업계에 오래도록 종사하고 있습니다. 보통 크리에이터의 수명은 10년 정도니까요. 변화하는 패션 업계에 맞춰 저 또한 변화를 거듭했어요. 60년대의 패션을 지나오며, 제 회사를 꾸렸고 브랜드와 함께 많은 성장을 겪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전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고 앞서 나가기 위해 화가나 작가처럼 생각하고, 픽션화하고, 실제 있었던 일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기도 합니다. 끈질기게 이야기를 짓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현하고 있어요. 지금은나의 인생이라는 소설도 쓰고 있고요. 60년간 한결같이 변화하며 꿈을 꾸고, 계속해서 꿈을 이뤄 나가는 것이 60년간 브랜드를 운영해온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레노마는 어떻게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저는 전 세계를 배경으로 레노마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을 거두었어요. 프랑스를 비롯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가 되었고, 스페인,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1968년에는 아시아,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일본으로 건너갔죠.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다음으로 어느덧 40년이 되었네요. 당시 한국에 입성한 최초의 외국 브랜드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울에 대한 레노마 씨의 인상은 어떤가요?

한국 그리고 서울은 굉장한 문화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지요.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 음악, 영화, 패션…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아방가르드 한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정말 아방가르드 한 나라에요.

앞으로 사회에 기여하시고자 하는 바도 궁금합니다.

레노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마음에 새기고, 그 움직임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특히 해양 오염, 플라스틱 문제 말입니다. 우리는 플라스틱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닌, 재활용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플라스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쪽이죠. 우리는 사람들에게 패션도 좋지만 재활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빨간 물고기크리스토발은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을 경고하는 상징물입니다. 자연은 우리가 오염시킨 것들을 그대로 돌려줄 것입니다. 플라스틱이 바다를 뒤덮으면 공기오염도 피할 수 없겠죠. 패션계에서는 재활용을 필연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상품을 개발하고, 대량 생산하고, 과소비에 참여한 최초의 디자이너들 중 한 명입니다. 마치 한때 건축 디자인에서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우리 레노마는 이제 이 사슬을 끊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크리스토발을 통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발을 머리에 얹은 모리스 레노마

10년 레노마는 어떤 모습일까요?

전설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레노마는 정말 많은 컬렉션을 만들었어요. 부티크 안에 아틀리에가 있었기에, 생산 과정이 엄청 짧았던 덕분이기도 하죠. 옷을 입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해왔던 것 같아요. 이제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레노마의 철학을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때에도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을 누립니다. 레노마는 옷뿐만 아니라 요식업, 호텔업, 아르 드 비브르(art de vivre : 삶의 예술), 책등을 통해 행복을 전할 것입니다. 그저 소비를 위한 제품 소비가 아닌, 사람들이 레노마를 보고, 입고, 사유하고, 먹는 모든 것에서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10 후에도 꿈을 이뤄나가고 있을 거에요.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으시다면요?

최근에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브랜드와 예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도를 한 지 30년이 되었는데요. 이처럼 한 브랜드가아르 드 비브르 (삶의 예술)’, 그리고 문화에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모두가 이해하고 즐겼으면 해요. 더불어 레노마는 앞으로 브랜드의 예술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전시를 하고, 부티크, 레스토랑, 호텔을 통해 레노마의 모든 예술적인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물론 브랜드에서 패션과 제품은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브랜드는 하나의 완전한 환경, 예술적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 레노마와 함께 문화와 예술의 세계를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패션과 예술은 하나니까요.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