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알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한 것들이 꽤 된다. 마성의 남자 유희열이 그랬고, 소설가 김연수의 문장이 그랬다. 이번에 위험 신호가 켜진 곳은, 한남오거리다.
정확히 말하면 한남오거리 중에서도 독서당길 초입이다. 강남에서 한남대교를 넘은 후 유엔 빌리지로 올라가는 길. 뚜벅이들에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걷거나 택시를 타야 해 번거롭겠지만, 걷는 맛이 꽤나 여유로운 길이다.
우선 길 초입에 들어서자마 자 ‘펜케이크 오리지널 스토리’, 꽃집인 ‘취원’, 수제 버거를 파는‘ 바나나 그릴’이 서로 벽을 맞대고 일렬로 서 있다. 몇 발자국 더 올라가면 담백한 가정식 요리가 있는 ‘슬로우 키친’, 타코를 즐길 수 있는 ‘오 타코’가 눈에 띈다. 뭘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며 잠시 걷다보면 조형적인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오는 ‘네이키드 그릴’, 노란색 외벽이 화사한 ‘라 꼬꼬뜨’, 이승남 셰프의 ‘린스 컵케이크’, 그리고 아기자기한 수제 쿠키로 가득한 ‘티케스’도 보인다. 어딜 둘러봐도 열 사람이 채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아담한 공간. 하지만 막상 들어가 앉아 있으면 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먹고 나서 특별히 갈 데가 없다는 듯 여유로운 손님들 때문이기도 하고, 한 그릇이라 도 더 팔기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는 주인들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곳은 다 소문 나게 마련인가 보다. 게다가 옛 단국대 주변에 한국판 비벌리힐스라는 ‘한남 더 힐’이 들어서면서, 밥집 찾아 이 길로 들어선 사람들뿐만 아니라 집 찾아 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이 그랬듯 이 길도 변하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와보라고 소문내야 할까, 아니면 그때까지 꼭꼭 숨겨둬야 할까. 아직 결론 내리진 못했지만 양심상 하나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 이곳의 많은 식당들은 일요일엔 문을 닫는다. 무작정 우아하게 일요일 오후의 브런치를 즐기러 왔다간, 근처 이태원에서 시끌벅적한 오후를 맞아야 할지도 모르니 주의하시길.
- 에디터
- 에디터 / 김슬기
- 포토그래퍼
- 김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