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 2023의 시작점,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한 강서경 작가의 최대 규모 개인전
리움미술관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졌다. 사계절 산에 핀 달을 표현한 설치 작업, 이수대엽 속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담은 미디어아트, 그 사이를 거니는 관객들까지, ‘진정한 풍경’을 직조하는 강서경 작가의 최대 규모 개인전이다.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한 이 거대 전시가 프리즈 서울 2023의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지난해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프리즈 덕분에 서울 곳곳에 들뜬 열기가 가득했다. 대작은 부재했지만 그 대신 서울의 반짝이는 원석들이 해외 미술계를 맞았고, 여기에 패션 브랜드들이 힘을 보탰다. 그 일환으로 서울이 품은 세계적인 미술관 리움미술관에서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하는 강서경 작가의 전시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Suki Seokyeong Kang: Willow Drum Oriole>가 열렸다. 전시 개최 전날, 패션위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우아한 차림의 VIP, 프레스, 미술계 관계자들이한데 모인 오프닝 나이트. 미술관에 들어서자 관객을 맞이한 건 압도적인 규모의 조형 작업이었다. 강서경 작가는 한국의 고전 시와 춤에서 받은 영감을 평면,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표현하며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해온 인물로 그의 다채로운 작업이 한눈에 담기 어려울 만큼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번 전시 제목이자 신작 영상의 제목인 <버들 북 꾀꼬리>는 우리나라 전통 가곡 ‘이수대엽(二數大葉)’의 ‘버들은’을 참조한 것으로,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낸 선인들의 비유에서 가져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각· 촉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과 시공간적 차원의 경험을 아우르는 작업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다른 이들의 존재와 움직임을 인지하고 더불어 관계 맺는 ‘진정한 풍경’에 대해 늘 고민했다고 하는데, 이는 오프닝 나이트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액티베이션(Activation)’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18인의 무용수가 작가의 작품들 사이에서 기호적인 몸짓을 연기하는데, 이는 공간적 서사와 사회 속 개인의 영역에 대한 탐구를 시각화해 탄생한 퍼포먼스였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사이 공간 한쪽에 세계적인 뮤지션이자 열렬한 아트 애호가 BTS의 RM이 등장해 작가와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 악보 ‘정간보’에서 우물 정자 모양의 사각 칸에 음의 높이와 길이를 표현하는 데에서 착안한 격자 모양 작품 ‘정’, 한국화의 방식대로 장지나 비단을 펼쳐 먹과 색을 겹겹이 스미게 한 ‘모라’ 연작도 시선을 끌었다. 특히 조선시대 1인 궁중무용 ‘춘앵무’에서 무대와 경계선이 된 화문석에서 영감을 얻은 ‘자리’ 연작에서는 공예 정신으로 유명한 보테가 베네타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을 연상할 수 있었다. 2층의 전시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가 3차원으로 펼쳐져 공감각적으로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여기에는 사계를 담은 산, 바닥과 벽으로 펼쳐지는 낮과 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귀, 작지만 풍성한 초원과 제자리를 맴도는 둥근 유랑, 그리고 각자의 자리를 만들고 전시의 보이지 않는 틀이 되는 다양한 사각이 자리한다. 관람객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사이사이 존재하는 여백의 공간을 직접 거닐어보며 각자의 움직임과 서사를 더하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작품과 관람객이 함께 모인 전시는 각기 다른 존재들이 연결되고 관계 맺는 풍경으로 제시되며, 작가가 고민해온 ‘진정한 풍경’을 완성하게 된다.
단색화로 대표되는 한국 미술계에 이렇게 다채롭고 풍성한 스펙트럼을 가진 대형 작가를 새로이 조명할 수 있다는 건 반갑고 즐겁고 감사한 일. 전시는 올해 12월 31일까지이니 작가가 고민하는 진정한 풍경에 동참해보길 바란다.
- 에디터
- 이예지
- 제작 협조
- 보테가 베네타
- 사진
- COURTESY OF BOTTEGA VEN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