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루한 심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그리고 서울을 좀 더 재미난 도시로 변화시킬 새로운 숍 9.
동네도 자극적, 그 안은 더 자극적인
COSMOWHOLESALE 우주만물
처음 우주만물의 이미지를 인터넷상에서 접했을 때 일본 영화 속 ‘오타쿠’의 방이 떠올랐다. 강박적으로 수집한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듯했으니까. 작년 5월 효창공원 앞에 처음 문을 열었던 이 요상망측한 숍의 정체는 사진작가 강민구와 이윤호, 패션 브랜드 할로미늄의 디자이너 이유미, 작가 김영빈 등 다섯 친구가 함께 꾸려가는 보물창고 같은 가게. 이들은 ‘쓸데 없는 것을 깨알같이 모으는 공통점이 있다’고 웃으며 말한다. 각기 일상 속에서, 놀러 다니다 모은 것을 하나둘 꺼내 팔다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숍을 열게 된 것. 때때로 우주만물이라는 그룹명으로 설치 전시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두 달 전 인테리어 자재 판매가 활발한 지하철 을지로 3가역 근처로 이사해 새로운 터를 잡았다. 요즘의 을지로는 날것 같은 매력으로 새로운 것을 원하는 이들이 모여들고 있는 핫한 동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술집이자 공연장인 ‘신도시(이 역시 이윤호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도 지척에 있다. 우주만물의 각종 빈티지 장난감과 소품은 특별한 기준으로 바잉된다기보다 다섯 사람의 취향이 있는 그대로 묻어 있는 수집품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하다. 강민구는 피규어를, 이유미는 할로미늄의 아이템과 빈티지 옷가지를, 이윤호는 비디오테이프와 자신의 사진 작품 프린트를 모아서 내놓는 식으로 각자 애정이 큰 대상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 SNS로 주로 홍보하는 만큼 고객 대부분의 나잇대가 젊은 편이지만 의외로 특정 캐릭터나 아이템을 수집하는 중년의 마니아도 종종 방문한다. 금, 토, 일요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만 오픈해 방문에 제약이 있지만, 숨겨진 진주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곳은 요상한 동심을 발현케 만드는 신세기 놀이터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9길 11 3층
진화를 거듭하는
GENTLE MONSTER 젠틀몬스터
하나. 작년 11월 15일, 1969년부터 45년간 계동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해온 상용 목욕탕 ‘중앙탕’이 재정상의 이유로 문을 닫았다. 근방의 최소아과와 함께 동네의 상징이었던 곳. 그런데 다행히 건물을 부수고 다세대 주택이나 빌딩을 짓는 볼썽사나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능했던 배경은 이 공간을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 “설레고, 놀라게 만든다”를 모토를 하는 젠틀몬스터 공간 팀과 아트 디렉팅 팀 패브리커는 ‘창조된 보존’을 주제로 반년간 건물 골자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의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에 돌입했다. 배를 모티프로 한 첫 논현동 쇼룸부터 가변적인 1층 공간이 매력적인 홍대 쇼룸, 주방을 모티프로 한 신사동 팝업 쇼룸까지, 공간 구성에 남다른 행보를 보여온 젠틀몬스터 팀의 네 번째 작업에 관심이 쏠린 건 당연지사. 그리고 오픈을 앞둔 5월 초, 편집부엔 특별한 초대장이 배달되었다. 하늘 빛의 낡은 정사각 타일은 알고 보니 중앙탕 벽에서 떼어낸 것. 지난 5월 말 베일을 벗은 계동 쇼룸은 한마디로 ‘짜릿한’ 공간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외관에 출입구만 철제 구조물을 덧댄 방식부터 범상치 않고, 입장료를 받는 창구의 위치까지 보존된 입구는 더없이 정겨우며, 원래 수도가 자리한 곳에 설치한 물을 동력으로 하는 거대한 기계 구조물은 들어서는 순간 보는 이를 압도한다. 1층은 원래 여탕, 2층은 남탕이었던 공간. 이 두층은 선글라스가 주를 이루며, 이를 지나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반쯤 오르면 중앙탕의 과거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안경이 중심인 3층의 모던한 내부 공간과 이전 목욕탕 굴뚝을 코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테라스까지! 젠틀몬스터 계동 쇼룸은 그야말로 옛것과 새것의 조화로운 공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사한 곳이다.
둘. 계동 쇼룸의 화제성이 여전한 시점에 젠틀몬스터 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엔 신사동에 또 다른 쇼룸을 오픈한다는 것. 주제는 ‘홈 앤 리커버리’라는 이야기와 함께 링거 팩이 초대장으로 배달되었다. 7월 8일 모습을 공개한 가로수길 안쪽의 새로운 쇼룸은 목욕탕을 개조한 계동이나 레스토랑을 개조한 이전 신사동 팝업 쇼룸과 달리, ‘집과 치유’라는 포괄적인 테마 아래 건물 전체를 새롭게 꾸몄다. 상처를 소독하는 요오드 용액에서 힌트를 얻은 붉은빛과 흰색이 메인 컬러.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집과 관련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간의 공간 중 가장 규모가 큰 쇼룸이다. 지하 1층의 작은 영화관과 은밀하게 숨겨진 작은 바, 3층의 감각적인 욕실과 4층의 화분만으로 꾸민 울창한 실내 정원 등은 누구나 집을 그릴 때 꿈꿔보았을 만한 공간. 1층의 이발소와 방직기는 과거의 ‘가내수공업’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부분이다. 공간을 중요시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같은 사물이라도 어디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잖아요. 쇼룸은 젠틀몬스터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죠. 젠틀몬스터의 내피가 아이웨어라면, 외피가 공간이랄까요?”라고 말하던 홍보 담당자 강인영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듯 다각도로 시각적인 부분에 접근해 큰 성과를 거둔 젠틀몬스터. 이에 더해 다가오는 9월 2016 S/S 뉴욕 패션위크에선 후드바이에어, 오프닝 세레모니와의 협업 작업을 공개할 예정이라니, 또 한번 기대해도 좋겠다.
(계동)서울 종로구 계동길 92,
(가로수길)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10길 23
필연일 것만 같은 우연
WATCO! 왓코
SNS를 통한 즉각적인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숍이 일부러 찾아 가야 하는 지점에 오픈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월 말 오픈한 슈즈 편집숍 겸 카페 왓코 역시 그런 공간 중 하나. ‘What a Coincidence(이런 우연이!)’의 약자를 이름으로 지은 이곳을 운영하는 송우범은 위치 선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작년 7월부터 이면 도로를 광범위하게 뒤졌어요. 의외의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재미난 숍을 머릿속에 그렸기 때문이에요. 북한산 둘레길도 가봤고, 낙산공원 부근, 성수, 문래 등 많이 살폈죠. 그러던 중 지인이 신수동을 아느냐고 물었어요. 얼마 전까지 개발이 제한되던 동네여서인지 아늑하고 좋더라고요.” 서강대학교 후문 가까이에 위치한 왓코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었던 건물을 편집숍으로,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을 카페로 개조한 뒤 둘 사이의 텅 빈 공간에 아늑한 정원을 조성해 한낮의 휴식에 제격인 장소를 마련했다. 누구나 가볍게 들어설 수 있게 ‘열린 공간’을 지향한 까닭은 단순한 숍 이상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 왓코는 슈즈, 그중에서도 스니커즈에 중점을 둔 편집숍으로 메인 브랜드로는 이탈리아 태생의 부테로와 펜타 폴라도로를 꼽을 수 있다. 위빙 가죽이 시그너처 아이템인 부테로는 수트에도 잘 어울리는 우아함이 특징. 축구화에서 시작된 펜타 폴라 도로는 스포티하면서도 간결한 디자인이 매력으로, 동시대적인 세련됨을 지녔다. 뿐만 아니라 ‘합체와 분리’를 모티프로 한 슈즈 디자이너 윤진곤의 브랜드 코트 플러스처럼 특이한 슈즈 브랜드를 찾아 소개하고, 다양한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매 시즌 운영해 “낯섦을 지속적으로 선사하는 것”이 왓코가 지향하는 목표. 이에 더해 플리마켓과 공연 등 다채로운 즐거움도 제안하고 있으니, 함께 누리고 싶다면 우연을 기다리지 말고 일부러 찾아가볼 것.
서울시 마포구 서강로 16길 63
멋도 부리고, 술도 마시는
RUE15 흐이15
처음 흐이15에 들어서면 아리송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왼편에는 칵테일 바가, 오른편에는 패션 편집숍이 경계 없이 어우러진 흔치 않은 모습 때문. “파리에서 지낼 때 낮술 문화가 발달한 점이 참 좋았어요. 거기에 착안해 패션 편집숍과 바를 결합해보기로 했죠.” 세계적인 패션 트레이드 쇼 컴퍼니 ‘후즈 넥스트’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월 청담동에 숍을 오픈한 흐이15의 대표 김보니가 말하는 오픈 바를 선택한 이유다. 대신 낮에 쇼핑하며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도록 알코올 도수 15도의 칵테일만 판매하는 것이 특징. 숍을 구성하고 있는 브랜드는 프랑스 레이블이 9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그녀는 파리 패션에 대한 애정이 크다. 특히 마레 지구에서 사랑받는 브랜드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녀가 꼽는 흐이15의 대표 브랜드는 서정적인 스윌덴스, 사랑스럽게 펑키한 아메리칸 레트로, 세련된 여성스러움과 합리적인 가격이 매력적인 발렌타인 고티에, 모던한 누드, 그리고 주얼리 브랜드인 레드라인과 비주 드 파밀. 또 콜테세를 비롯한 남성복 브랜드 아이템을 작은 사이즈만 바잉해 ‘여자가 즐겨 입기 좋은 남성복’도 선보인다. F/W 시즌엔 스프렁 프레르의 퍼, 인베르니의 비니를 비롯한 겨울 액세서리, 미켈라 버거의 스웨트셔츠와 스커트 등 새로운 브랜드를 대거 들여올 예정. 바잉부터 공간 구성, 칵테일 제조까지 동생과 함께 둘이 직접하며 반년 만에 흐이15를 사랑방같이 아늑하고 감각적인 숍으로 키워낸 그녀는 매 시즌 신선한 브랜드를 들여와 이를 꾸리는 이도, 찾아오는 이도 늘 재미를 느낄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55길 22
- 에디터
- 이경은
- 포토그래퍼
- 조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