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 거북목을 펴고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는 꿈같은 약속. 기능성 베개에 진심인 사람들을 위한 경추 이야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누워 자기만 하면, 숙면은 물론 종일 혹사당해 변형된 거북목이 펴지고 무겁던 어깨는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꿈이 아니다, 목의 이상적인 형태를 회복시켜준다는 기능성 경추 베개 이야기다. 제품의 상세 페이지를 탐독해보면 꽤 설득력 있어 보이는 근거를 갖추고 있다. 목을 받쳐주는 부위와 머리가 놓이는 곳의 높이를 달리해 베고 누우면 자연스러운 목뼈, 즉 경추의 C 커브가 만들어진다. 목이 쏙 들어가게 홈을 파기도 하고 옆으로 돌아누웠을 때 머리가 놓이는 위치를 고려해 길이를 설계하는 등 디자인도 다양하다. 의사 혹은 재활 전문가가 인풋을 제공하거나 직접 만든 제품도 있다. “오래간만에 푹 잤어요”, “아침이 개운해요”, “뻐근하던 뒷목이 편안하네요”, “벌써 몇 개째 구매인지! 어머니 사드리려고요.” 스크롤을 내려 사용 후기까지 섭렵하고 나면 확신이 선다. 이거 사야겠다!
나는 지난 십수 년 동안 10개 이상의 기능성 베개를 경험했다. 그런데 아직도 베개 유목민이라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돌이켜보면 모든 상품의 구매 후기에는 “정착했다”라는 간증이 빠지지 않는데, 나의 목은 왜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걸까? ‘미미한 효과’에 그쳤다면 다행, 몇 달 전엔 “X차 리오더, 완판 베개”를 구입해 사용하고 목이 더 안 좋아졌다. 고개를 뒤로 젖히듯 눕혀주는 베개였는데 뒷목을 받치는 소재의 이물감에 오히려 잠들기가 어려웠다. 급기야 며칠 사용 후 턱관절이 아프고 입이 크게 벌어지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근골격계 전문가에게 전화를 돌렸다.
‘잠든 사이’는 신화
인간의 목뼈는 7개, 한 마디가 2~3cm이니 경추의 총길 이가 20cm를 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균’ 값을 계산한 후 약간의 베리에이션을 가미한 하나의 디자인으로 모두의 목을 케어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면역증진센터 카이로프랙틱 닥터 안준용 원장은 “각자 가진 형태의 고민도 다르고,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목과 주변부의 컨디션이 다르니까요. C 커브라는 구조에만 집착하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윤짐 김성민 트레이너는 호흡 역시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지적한다. “만약 부비동에 문제가 있거나 비염, 천식이 있다면 목만 바로 놓는다고 해서 수면의 질이 개선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뒤척임도 문제다. 혈액 순환, 근육 이완 등을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밤새 움직인다. 잠자리에 들 때 의도했던 대로 이상적인 C 커브를 유지하며 하룻밤을 온전히 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경추 베개에 크게 결여된 것은 ‘인지’이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몸은 뇌가 근육을 ‘의식’하는 동안 교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베개를 이용하든 운동을 하든,이상적인 목의 형태를 되찾는 과정은 깨어 있는 동안, 즉 근육의 센서가 작동하는 동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클리닉 김명신 원장은 “경추는 척추, 골반, 발목 모두와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목의 커브에만 집착하면 잘못된 답을 반복하게 될 뿐이라고 강조한다. 제대로 된 케어 오답 노트는 목의 뿌리, 가슴과 등에 있다. 몸통의 근육이 안정되어야 비로소 목의 C 커브가 그려지고, 근육에 힘이 생기면 자연스레 머리의 무게를 목이 무리 없이 지탱할 수 있는 각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재활의학에서도 경추 베개 형태의 교정 도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깨어 있는 동안 아주 짧은 시간, 마사지 개념으로 이용하죠.”
깨어 운동하라
이제 목의 뿌리 근육을 공략하기 위해 깨어 움직일 차례다. 연세 바른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조보연 원장은 틈틈이 가슴 펴기와 견갑 모으기를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 조언한다. 문틀의 양기둥을 짚고 가슴을 내밀거나,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몸통을 돌려 가슴 앞 근육을 늘려주는 동작, 등의 견갑골 사이를 좁혀 내리듯 모으는 동작 등이다. 김성민 트레이너의 추천은 더 간단하다. 깨작깨작 기지개를 켜는 것. 목과 승모근이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양팔을 위로 든다. 턱을 살짝 당기고 상체를 고정한 채로 팔만 앞뒤로 살짝살짝 움직여보자. 견갑골이 움찔대며 등 근육이 운동 되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 간단한 움직임도 귀찮다면 누워서 스트레칭이라도 하자. 폼 롤러를 등 뒤, 견갑 아래에 대고 머리를 떨어뜨리면 긴장하고 수축돼 있던 흉근들이 시원하게 스트레칭이 된다. 소파 혹은 침대 모서리에 목을 대고 머리만 아래로 내려뜨리는 방법도 좋다. 마치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줄 때처럼 고개만 뒤로 젖히는 모양새 말이다. 이때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오버하지 않는 것이다. “목에는 주요한 혈관이 밀집되어 있어 30초 이상 이 자세를 지속하면 어지러울 수 있어요” 안준용 원장이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시간은 단 3초. 3초씩 3번으로 시작해 익숙해지면 조금씩 시간을 늘려 30초까지 지속한다.
몇 분 동안 머리 무게를 이용해 목을 뽑아내듯 견인하는 스트레처 교정기도 있지만
굳이 돈을 들이지 않고, 기지개만 잘 켜도 충분히 목이 편안해질 수 있다.
좋은 베개의 조건
놀랍게도 내가 인터뷰한 근골격계 전문가 중 그 누구도 경추 베개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공통
적으로 꼽는 좋은 베개의 조건은 있었다. 첫째 푹신하고 부드러울 것. 앞서 말했 듯 목은 주요 신경과 혈관이 지나는 통로라 압박이 느껴지는 딱딱한 소재는 탈락이다. 둘째, 턱이 들리지 않는 높이를 추천한다. 누웠을 때 윗니와 귓구멍, 골반이 평행을 이루면 목은 자연스레 C 커브 모양이 된다. 셋째, 어깨부터 벨 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를 선택하자. 목은 등과 머리를 잇는 다리다. 양쪽 지반이 모두 든든해야 교각이 안정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경추의 모양에만 집중된 베개를 잘못 베면 오히려 근육에 스트레스가 쌓여 아침이 더 피로할 수 있다.
“모든 경추 베개는 사기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를 현혹한 수많은 구매 후기가 원망스럽지만 그건 그대로의 진실일 수도 있다. 단, 그들의 성공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베개는 만병통치 교정기가 될 수는 없다는 체험을 전하고 싶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어깨의 시작점부터 머리 전체를 맡기듯 누웠을 때 푹신하고 낮게 꺼져 들어가는 베개’를 찾는 여정 또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낮보다 아름다운 밤을 위해 그 정도 성의는 보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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