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가 직접 디자인한 호텔

장진영

‘칼 라거펠트 호텔’에서 보낸 며칠은 그의 유산을 다시금 되새긴 시간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패션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던 칼 라거펠트가 서거한 지 4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고 있다. ‘칼 라거펠트 호텔’에서 보낸 며칠은 그의 유산을 다시금 되새긴 시간이었다.

홍콩에 도착하자 후텁지근한 열대의 공기가 이방인을 반긴다. 긴 강주아오 대교를 가르며 마카오로 향했다. 팬데믹 여파로 꽤 긴 침체의 시간을 지나온 마카오는 규제가 풀리자마자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낮보다 밤이 더 눈부신 휴양과 오락의 도시 마카오, 궁극의 사치는 여전히 뜨거운 욕망을 자극한다. 최근 마카오의 화려함을 한층 업그레이드할 새로운 호텔이 오픈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조용히 개관을 준비해온 ‘칼 라거펠트 호텔’이다. 칼 라거펠트가 살아생전 직접 호텔 인테리어 디자인에 참여하고 가구와 예술품에까지 자신의 영감을 투영한 곳이다. 중국의 황실 문화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바로크 양식이 호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포르투갈령이었던 지난 역사로 중국과 포르투갈 두 문화가 결합해 독특한 양식을 형성한 마카오의 정체성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영감을 받아 1,000개 이상의 열쇠 장식으로 칼 라거펠트의 모습을 형상화한 리셉션. 칼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고 영감을 투영한 호텔 곳곳에서 그만의 미감을 만끽할 수 있다.

중국의 황실 문화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바로크 양식이 호화롭게 어우러진 호텔의 인테리어 및 익스테리어. 칼 라거펠트의 서재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아치형 책장에는 그가 설립한 ‘7L’ 서점에서 직접 큐레이션한 4,000여 권의 책이 빼곡히 차 있다.

칼의 미학적 비전은 로비에서부터 선명하다. 1,000개 이상의 열쇠로 칼 라거펠트의 모습을 형상화한 리셉션 공간의 벽면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비현실적이면서 독특한 광경을 연출한다. 눈을 돌리면 엄청난 크기의 북 라운지(Book Lounge)가 다시 한번시선을 압도하는데, 이 거대한 아치형 책장에는 칼 라거펠트가 1999년 설립한 ‘7L’ 서점에서 직접 큐레이션한 4,000권의 책들이 빼곡히 차 있다. 패션부터 역사, 희귀 골동품,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다양한 주제의 책들은 생전 애서가로 유명했던 칼 라거펠트의 서재를 연상시킨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사이사이에는 금빛을 입은 고풍스러운 조각이 중추처럼 자리해 동양적 심미감을 드러낸다. 이 독특한 곳에서 유럽 상류층 부인들이 긴 시간을 두고 홍차와 디저트를 우아하게 즐기는 프랑스의 차 문화 ‘살롱 드 떼(Salon de Thé)’를 경험했다. 마카오에서 프랑스 문화를 즐기는 순간이라니, 더없이 이국적이었다. 북 라운지에서 티 타임을 즐기거나 포르투갈의 유명 셰프 호세 아비유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메사’에서 다이닝을 경험하는 동안 냅킨이 넥타이의 모양으로 접혀 있거나 그 위에 조그맣게 선글라스가 장식되는 식으로 칼 라거펠트의 아이코닉한 패션적 요소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는데, 그만의 섬세한 프렌치 위트가 느껴져 접할 때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동양과 서양의 상충하는 매력이 되려 조화를 이루는 경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네덜란드 예술가 마르셀 반더스의 정교한 레이스 조각과 장 미셸 오토니엘의 스테인리스 공작품이 현대적 멋을 발산하고 있다면, 호텔 곳곳에 놓인 거대한 도자기 화병에서는 고풍적인 동양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식이다. 특히 도자기로 유명한 징더전 지역의 장인에게서 직접 공수한, 1.8m에서 크게는 3.5m까지 이르는 거대한 화병들은 ‘대륙의 스케일’을 실감케 한다. 룸은 좀 더 웅장한 분위기가 감도는 중국의 전통 요소로 꾸며졌다. 명나라 관료의 모자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장식된 거대한 침대 헤드보드 가운데에는 중국인들이 행운을 부른다고 믿고 있는 옛날 동전 모티프가 자리한다. 스위트룸은 중국의 전통 아치문으로 공간을 구분해 오리엔탈 감성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금빛 타일로 꾸민 욕실 인테리어 역시 어떤 공간이든 상서로운 기운을 중요시하는 중국의 문화가 여실히 배어 있다.

뜨거운 태양을 등에 업고 세나도 광장과 세인트폴 성당 그리고 아기자기한 골목 골목을 둘러보고 돌아오면 차가운 수영장에 몸을 풍덩 던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모자이크 패턴으로 꾸민 수영장의 물빛은 해 아래에서 눈부시게 반짝인다. 물 위를 떠다니며 바깥으로 드넓게 펼쳐진 정원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 높은 건축물 위 푸른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에 맑은 기운이 흐른다. 고요하면서도 충만한 힐링이 이런 것이겠다.

포르투갈어로 테이블이라는 뜻의 ‘메사’를 찾아, 중국의 전통 새장에서 영감을 받은 램프 아래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니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총천연색으로 즐겼다는 행복감이 넘치게 밀려든다. 그 행복에는 서양과 동양의 고풍적 미감을 충족한 공간에 대한 찬탄이 함께 있었다. 칼 라거펠트가 남긴 유산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그가 추구한 이 호텔의 미학 그 끝엔 여행객의 꽉 찬 행복이 남아 있었다.

SPONSORED BY THE KARL LAGERFELD MACAU

에디터
장진영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