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를 스친 화사한 컬러와 천상의 메탈릭 아이, 음울한 웬즈데이 무드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2023 F/W 메이크업 트렌드.
BEAUTY NOTE
눈두덩 중앙과 언더라인 중앙은 비워둔 채 그레이지 컬러의 바비 브라운 ‘소프트 파우더 매트 아이 섀도우 (시멘트)’를 납작한 브러시에 묻혀 스케치하듯 모양을 잡았다. 그런 다음 디올 ‘모노 꿀뢰르 꾸뛰르(블랙 보우)’를 앞뒤로 조금씩 늘려가며 도포해 눈매를 길어 보이게 연출했다. 입술은 시미헤이즈 뷰티 ‘립 트레이스 쉐이프 라이너(몬순)’로 오버립을 그린 뒤, 양 끝을 연장해 트임 효과를 주었다. 입술 안쪽은 샤넬 ‘레드 까멜리아 립 앤 치크 밤(베리 부스트)’으로 거칠게 채우고, 아래쪽 볼에도 두드려 얼룩진 느낌을 살렸다.
BEAUTY NOTE
화사한 라벤더 컬러의 맥 ‘파우더 키스 아이 섀도우(써치 어툴)’를 눈 앞머리와 눈썹에 스치듯 도포한 뒤, 파우더 핑크 컬러의 디올 ‘루즈 블러쉬(277 오제)’를 눈두덩과 콧등에 브러시로 가볍게 쓸어 자연스럽게 스머징했다. 상기된 두 뺨은 골드 펄이 가미된 오렌지 컬러의 나스 ‘블러쉬(타지 마할)’를 레이어링해 입체감을 살리고, 입술은 입생로랑 뷰티 ‘루쥬 볼륍떼 캔디 글레이즈(레드 쓰릴)’를 여러 번 덧발라 촉촉하게 마무리했다.
비움의 미학, 스페이스드 아이
음침한 아이 메이크업이 F/W 런웨이에 등장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눈이 가는 이유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의외성에 있다. 공통점은 바로 여백. “고정관념을 반전시키는 강인한 여성성을 표현하기 위해 블랙 섀도를 눈 앞머리와 눈꼬리에 이어지지 않게 발랐죠. 눈꺼풀은 깨끗하게 비우고, 언더라인은 점막에 블랙 라이너만 연하게 바르는 식으로요.” 해체적인 스모키 아이를 연출한 디올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이미지 디렉터 피터 필립스(Peter Philips)의 설명이다. 움푹 팬 아이홀만 채운 다음 눈 밑에 펜슬 아이라이너로 속눈썹을 그린 레오나드의 위트도 시선을 끈다. 눈화장이 번질까 봐 걱정인가? 눈두덩에 투명한 글로스를 얹어 얼룩지게 연출한 안토니오 마라스와 패션 이스트, 흐르는 눈물에 눈 밑이 비워진 MM6 쇼를 보면 근심이 사라질 것이다. “짙은 아이 메이크업과 완벽한 대조를 이루려면 깨끗하고 매끈한 피부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실패 없는 아이 포인트 룩을 위한 피터 필립스의 라스트 팁을 참고해 해체된 블랙을 마음껏 즐길 때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웬즈데이 이펙트
팀 버튼 감독의 멜랑콜리한 취향이 한껏 표출된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 때문일까? 고스 룩이 화려하게 컴백했다. 달라진 점은 음울하지만 다가가지도 못할 만큼 기괴하지는 않다는 것. “슬프고, 장난기가 많은 예쁜 소녀를 상징합니다.” 샌디 리앙의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의 입술을 블랙과 검붉은 레드로 번갈아 채운 메이크업 아티스트 마르셀로 구티에레스(Marcelo Gutierrez)의 연출은 웬즈데이를 별나지만 마음이 가는 ‘소녀’로 표현한 팀 버튼의 의도와 일치했다. 매트한 블랙 립에 양 갈래 삐삐머리를 한 보라 악수 쇼의 모델은 웬즈데이 그 자체! 마모된 스머지 립을 완성한 아딤 역시 퍼프 슬리브, 리본, 레이스 등 페미닌한 요소를 절묘하게 매치했다. 어둠으로 가득 찬 입술 대신 립라이너로 테두리를 그리고 입술 안쪽을 붉게 물들인 돌체앤가바나와 바이레의 옴브레 립도 공포감을 덜어주는 굿 아이디어. 여기에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는다는 애티튜드를 장착하면 웬즈데이의 쿨한 아웃사이더 룩이 완성된다.
얼굴에 내려앉은 별빛, 달빛
메이크업에 영감을 불어넣고 싶다면 밤하늘을 주목하길. 금속의 메탈릭한 광택을 활용한 천상의 메이크업이 런웨이를 장악했으니까! 샤넬과 샌디 리앙은 피부가 비칠 듯 시어한 은빛 섀도로 천사처럼 신비로운 아이 룩을 연출했다. 눈 앞머리에 실버와 골드 피그먼트를 터치,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우아한 생기를 불어넣은 끌로에의 스노 페어리(Snow Fairy) 아이도 마찬가지. 알투자라의 메이크업은 어두운 눈매를 가로지르는 금색 붓 터치로 밤하늘의 은하수를 연상시켰고, 프라발 구룽 쇼의 모델들은 미간에 큼직한 보름달을 새겨 넣었다. “아름다움에는 신비로운 것, 다시 말해 ‘환상’이 필요합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이앤 켄들(Diane Kendal)의 말처럼 동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건 어떨지. 별과 행성, 빛줄기를 그려 넣어 표현한 톰 브라운 쇼의 어린 왕자들처럼 말이다.
아스라히 번지는 블러싱 터치
가을 하면 으레 차분한 컬러를 떠올렸다면 생각을 전환하자. 싱숭생숭 마음을 들뜨게 하는 밝고 화사한 셰이드들이 F/W 시즌을 반기고 있으니. 조용한 아우라의 비결은 바로 힘을 뺀 터치. 파우더 핑크, 민트 그린 등 쿨톤 섀도를 경계 없이 바른 리차드 퀸을 시작으로 코너 이브스는 레몬 옐로 섀도를 눈두덩에 여리여리하게, 델 코어는 감귤색 섀도를 노을이 스친 듯 그러데이션해 연출했다. 이들처럼 면적으로만 승부를 볼 필요는 없다. 속눈썹 라인을 따라 가늘게 그린 캐롤리나 헤레라의 라임 그린, 레몬 옐로 컬러 라이너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자꾸만 보고 싶게 애를 태운다. 안나 수이와 디젤의 멀티컬러 아이, 프라다와 빅토리아 베컴의 보송한 속눈썹도 좋은 교본이 되어줄 듯. 더불어 눈이 아닌 입술과 뺨을 택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코르미오까지, 부위는 어디든 상관없다. ‘감질나는 질감’을 강조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Pat McGrath)의 말처럼 손목에 힘을 빼고 살살, 담백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면 그만이다. 피부를 스치는 바람처럼 보드랍게 얼굴을 물들이기.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나!
- 에디터
- 천나리
- 모델
- 김호정
- 스타일리스트
- 김석원
- 헤어
- 장해인
- 메이크업
- 이숙경
- 네일
- 김선경
- 어시스턴트
- 오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