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의 <너는 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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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 촬영 현장은 온전히 여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너는 펫> 촬영장에서 만난 김하늘에게만은 예외인 듯 보인다.

그런데 <블라인드>를 마치고 나서는, 바로 <너는 펫>을 택했다.
그땐 너무 지긋지긋해서(웃음). 그 답답한 고통이.

<블라인드>가 관객 200만을 넘어섰다. 정극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주로 로맨틱 코미디로 기억된 터라 성공의 의미가 남다르겠다.
맞다. 남다르다. 어떤 특정 작품을 이렇게 얘기하는 편이 아니지만, <블라인드>는 정말 다르다. 시나리오를 받고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처음해봤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고민했다. 다른 작품에서 연기를 잘 못하면 연기를 못한 데서 그치지만, 여기선 거짓이 된다고 느꼈다. 거짓은 작품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초조함에 촬영 열흘 전부터 잠을 못 이뤘다.

그렇게 걱정하던 첫 촬영 날은 어땠나?
반반이었다. 첫 촬영 전에 조명과 카메라 테스트차 리허설 촬영을 했는데, 매니저가 보면서 괜찮겠느냐고 너무 걱정하는 거다. 그래서 “이거, 연기한 거 아니거든” 그랬다. 그래도 그때, 무언가 감이 왔다.

그동안 흥행 성적과는 달리 영화제 수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받기가 쉽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이번 <블라인드>로 수상 가능성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온다.
그렇더라. 그런데 잘 모르겠다.

받아서 나쁠 건 없지 않나?
나쁠 게 없는 게 아니라, 당연히 완전 좋은 거지! (웃음) 글쎄, 여전히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시상식에선 긴장되고 불편한 기억만 너무 커서 몰랐는데, 팬들이 올린 글을 보니 생각보다 노미네이트는 꽤 여러 번 됐더라. 그때마다 박수를 쳐주는 입장이었지만 아쉬웠던 것도 아니다. 언제나 연기 잘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갔으니까. 이번엔 유독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던데, 오히려 불안하다. 받으면야 감사하지만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런 이야기가 오르내릴 만큼, 스타로서가 아니라 배우로서 최고점이 아닌가 싶다. 이런 좋은 상황이 불안하지는 않나? 지금이 최고점으로 보이나?
한 번도 불안한 적은 없다. 대부분 인식 못하는 것 같지만, <온에어> 전에 나름대로의 슬럼프가 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물론 작품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에겐 그다음 기회가 있으니까.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스스로를 믿게 됐다.

보이는 이미지에 비해 의외로 강한 것 같다. 아마 지금까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대중이 바라보는 이미지의 간극이 커서 답답했을 듯도 싶다. <1박 2일>에 출연한 건 그런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였을까?
그건 아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 실제 나와 보이는 내가 그렇게 다른 줄은 <1박 2일>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냥 저렇게 함께 여행 가서 게임하면서 놀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어 결정했다. 보기보다 깊게 생각 안 한다(웃음). 예능 프로그램 시청층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또 달라서 그 반응이 색다르게 다가왔을 듯하다. 만나는 기자분들마다 내가 불편한 사람일 줄 알고 걱정했는데, 그 방송을 보면서 편해졌다고 하더라. 어찌보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주 접하는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생각해왔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그 이후 시골로 여행을 가면 다 알아보신다. 그전엔 잘 못 알아봤는데.

연예인 친구 없다는 얘기 자주 했는데, 배우들끼리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니 어떤 느낌이었나?
연기를 하며 만나는 것과 그렇게 화장을 지우고 하룻밤을 같이 자는 건 정말 다른 경험이었다. 옆에서 입 벌리고 코 골며 자는 모습을 보니 뭐랄까, 내 자신이 무장 해제되는 느낌이었다.

한 컷을 찍고, 모니터를 바라본다. 스스로 점검하고, 상대 배우와 함께 고민하고, 스태프들과 함께 논의하고 나서는 다시 같은 장면을 찍는다. 그렇다고 언제나 나중에 찍은 컷이 선택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고민하고 반복한 순간들마저 곧 영화의 조각이 될 것이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드라마 촬영장과는 달리, 영화 촬영 현장에선 기다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조명과 장비가 모두 설치되는 시간을 기다리고, 동료 배우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야외 촬영일 경우엔 주변의 소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여주인공에게도 여지없이 똑같이 적용되는 의무이기도 하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윤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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