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물론 옷 입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한없이 낯설고 또 그만큼 매혹적인 틸다 스윈턴. 오직 자신만의 우주에 존재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포착했다.
틸다 스윈턴은 누군가로부터 주목받는 일에 실패해본적이 없다. “마치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생경하고,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이 여배우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대략 이렇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녀 자체일 것이다.
게다가 스윈턴에게 있어 변신이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보인다. 다른 스타일 아이콘들이 수시로 스타일리스트를 바꾸며 애를 쓰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변신은 오직 자신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지난 2008년 오스카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던 날 밤의 모습이 딱 그랬다. 한쪽 팔이 드러난 실크 새틴소재 드레스는, 그저 “마치 잠옷을 입는 것처럼 편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가능하면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요”라는 그녀의 바람에 따라 랑방의 수석 디자이너 알버 엘바즈가 디자인했다. 하지만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는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리나 베를린에서 실제로 입고 다닐 법한 간결하고 시크한 드레스가 L.A.에선 그렇게 눈에 띄리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아마 틸다 스윈턴이 패션과 만나게 된 건 10년 전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데릭 저먼과 같은 전위적인 영화감독의 뮤즈였던 탓에 레드 카펫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가, 당시 <타이타닉>으로 막 성공가도에 오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함께 자신의 첫 번째 주류 영화 <비치>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가까운 친구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제리 스태퍼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린 그냥 함께 놀던 친구였어요.” 제리 스태퍼드를 소개하던 스윈튼이 덧붙였다. “우리에게 패션은 게임이에요. 그리고 우린 그걸 즐기고요.”
스태퍼드는 틸다 스윈턴이 랑방의 알버 엘바즈, 하이더 애커만, 이브 생 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 셀린의 피비 파일로는 물론 지난해 개봉한 <아이 엠 러브>의 그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의상을 디자인한 질 샌더의 라프 시몬스, 그리고 스윈턴을 뮤즈로 삼았다는 빅터 앤 롤프의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토에렌과도 친분을 맺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스윈턴은 그러한 우정이 자신을 패션이라는 영역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옷을 입었을 때 편안한지 알려주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에 대해 말해야 해요.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입는다는 건,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요리해준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하죠.” 촬영장에서든 레드 카펫에서든 그들이 의상을 선택하는 과정은 끊이지 않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이번 행사의 특징은 뭐죠? 장소는 어디예요? 누가 주최한 건가요? 언제 시작되나요?” 그러더니 스윈턴은 마치 작품 뒤에 대단한 의미를 숨겨놓은 예술가처럼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물론 이런 질문을 할 차례죠. 자, 이제 내가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을까요?”
스윈턴과 스태퍼드는 사진작가 팀 워커와의 이번 작업을 앞두고도 다양한 이미지들을 찾아왔다. 거기엔 아놀드 젠드가 촬영한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포트레이트,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제7의 봉인>, 그리고 성적 정체성을 뒤엎으며 탐구하는 작업들로 20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프랑스의 예술가이자 선동가 클로드 카엉의 작품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지루하고 따분한 방식으로 양성성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카엉은 바로 그 주제를 끝없이 탐구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 수많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스타일 아이콘은 단 두 사람에게로 귀결된다. 그중 한명은 그녀가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를 본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벗어날 수 없었던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은 스윈턴의 아버지인 존 스윈턴 경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영역에 있어 그녀에게 북극성 같은 존재들이라는 두사람에 대해 스윈턴이 말했다. “나와 같은 행성의 DNA를 공유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면서 지난 2005년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왕실 시사회를 위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 날을 떠올렸다. 스테파노 필라티가 만들어준 드레스에 달린 금색 레이스 칼라와 커프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왕실 근위대의 전 사령관이었던 아버지만큼 휼륭한 조언자가 없었던 것이다.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빠짐없이 기억해요. 어머니의 이브닝드레스보다 더 말이에요.” 그러더니 스윈턴이 자신의 소망을 덧붙였다. “일주일 동안 아름답게 보이는 것보다, 단 1시간만이라처럼 멋져 보이고 싶어요. 마치 내 아버지처럼 말이죠.”
TILDA SWINTON
틸다 스윈턴에게서 뻔한 할리우드 여배우를 기대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이번에도 그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불편하고 불안한 영화 <케빈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We need to talk about Kevin)>를 통해 기존의 ‘어머니’에 대한 정의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모성이 지니는 그 복잡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케빈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에서 폭력적이고 불안한 정서를 지닌 소년 케빈의 엄마 역할을 맡았다.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불안하고 불편한 영화였다. 중간 즈음 그 소년이 주변의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땐,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내내 불안하고, 고요히 분노하고 가끔은 매정하기까지 한 당신의 캐릭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어머니란 캐릭터는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신성하고 완벽하게 그려지는 모성이란 개념에 반기를 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두렵지는 않았나?
내가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두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선 여전히 안전 지대에 속해 있는 느낌이었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이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를 건드린다. 바로 모성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견해 말이다. 물론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토할 것 같은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이 주제에 매료됐다. 그건 두렵기도, 흥미롭기도 한 일이었다. 이 영화의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우린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한 영화 <악마의 씨>를 언급하곤 했다. 혹시 내가 악마를 낳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내 아이와 교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모든 아기를 가진 여자들의 악몽 같은 두려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나 역시 임신 중에 매니저가 다음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을 때, ‘고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자신의 친자식을 죽이는 메데이아 같은 여자’라고 대답했다. 그때 어떤 누구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13살 된 쌍둥이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나?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유령 같은 누군가가 “네가 만약 이 아이들을 싫어하게 된다면?”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이 끔찍한 영화는 바로 그러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약 당신이 자식들과 교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사실 아이를 가질 때엔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니까. 그리고 내가 연기한 ‘에바’는 그 어둡고 허무주의적인 아이가 어디서부터 비롯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아이에게서 결코 낯설지 않은, 자기 자신이 보였으니까. 그렇게 소름끼치는 일이 있을까.
하지만 이상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이건 엄마인 에바와 자식인 케빈 사이의 러브 스토리다. 정상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 둘 사이엔 깊은 유대감이 있다.
러브 스토리 맞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케빈은 마지막까지 엄마는 죽이지 않았다. 영화의 다른 버전에서 그녀가 “왜 나는 쏘지 않았지?”라고 묻자 “쇼에 등장하는 연기자들은 관객을 죽이지 않아요”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이 극 안에 녹아들어 있는 거라 생각한다. 모두 알고 있지만 그저 입에 올리지 않는 그 주제 말이다.
최근 세 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모성이 지니는 복잡한 측면에 관해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줄리아>에선 아기를 납치하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아이 엠 러브>에서는 외도를 하다가 가족을 몰락시키는 밀라노 부르주아 집안의 안주인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에선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확고한 주제를 전복시켰다. 의도한 건가?
물론이다. 난 어머니 삼부작이라고 부른다. 박스 세트를 출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웃음). 꽤 많은점에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인데, 그 안에 담고 있는 복잡한 의미에 있어서는 누가 더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자라온 순간들을 여실히 담고 있기도 하다.
자란다는 의미가 무언가?
나는 역할을 그저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과 함께 자란다. 이 세 편의 영화 모두 투자를 받아 실제 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마이클 클레이튼> 같은 제작 환경이 좋은 ‘할리우드’ 영화는 휴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휴가를 통해 오스카 상을 거머쥐었다!
맞다, 행복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전까지 텔레비전을 통해 오스카 시상식을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중요한 상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를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할리우드라는 프로페셔널한 공간으로 데려가준 계기였다.
악역을 맡은 후 상을 받았으니 그 후로도 악역 제의가 많았겠다.
꼭 그렇지도 않다. 그 역할은 기존에 내가 했던 악역의 세컨드 라인이었으니까(웃음). 내 아이들이 본 유일한 내 영화는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다. 하얀 마녀로 등장한 그 영화를 보고 내 딸은 너무 시끄럽다고 하더라. 하긴 디즈니 영화를 좋아할 만한 아이들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고, 텔레비전도 없으니까. 심지어 내가 오스카 상을 수상하고 트로피를 집으로 가지고 왔을 땐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고, 그 트로피는 식탁 위에 2주간 방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거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의미가 있었나?
그렇지도 않다(웃음). 상을 수상하자마자 밀라노로 떠나 <아이 엠 러브>를 촬영했으니 말이다. 그 이후론 할리우드 영화를 찍지 않았고.
당신에게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 속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너무 일반적인 느낌이다. 당신 역시 복잡하고 때론 어두운 성격의 인물에게 끌리는 것 같아 보인다. 그 캐릭터를 좋아해야만 연기를 할 수 있는 건가?
연민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영화 속의 상황을 실제로 내가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무섭도록 폭력적인 아들이 증오로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 그 엄마가 된 나를 상상할 수 있었다.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보단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리얼한 걸 원한다
- 에디터
- 글 | Diane Solway, 피처 에디터 / 김슬기
- 포토그래퍼
- Tim Walker
- 모델
- Tilda Swinton
- 스탭
- STYLED BY JACOB KJELDGAARD, 크리에이티브 디렉터|Jerry Stafford, 메이크업|Sam Bryant, 헤어|Malcom Edwards
- 기타
- 프로덕션|Bryn Birgisdottir (Pegasus)프린트|Touch Digital Ltd.포토 어시스턴트|Emma Dalzell패션 어시스턴트|Ellie Campag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