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전시’의 틀을 깬 제18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권은경

건축이 곧 건물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안겨주는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세계 각국이 모여 건축에 대한 당대의 사유를 선보이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역사상 첫 아프리카계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레슬리 로코는 올해의 주제로 ‘미래의 실험실’을 내세웠다. 11월 2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당신은 전형적인 ‘건축 전시’는 마주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식민지를 통해 부를 쌓은 벨기에 정부가 국제 박람회에서 선보이고자 했던 건물을, 트웬티 나인 스튜디오가 모형으로 재현했다.
TWENTY NINE STUDIO / SAMMY BALOJI, AEQUARE: THE FUTURE THAT NEVER WAS, PHOTO BY MARCO ZORZANELLO.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 위원회가 관리하는 행사는 짐작보다 여럿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해 매년 열리는 무용, 음악, 연극 축제, 2년에 한 번 열리는 미술 비엔날레와 건축 비엔날레까지. 작년에는 미술 비엔날레가 이례적으로 3년 만에 열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올해는 건축 비엔날레의 해다. 무려 1895년에 시작해 내년이면 60회를 맞이하는 미술 비엔날레와 달리, 1980년에 시작해 올해 18회를 맞이한 건축 비엔날레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다. 올가을 서울에서 열리는 ‘도시건축비엔날레’도 역사가 채 10년도 되지 않으니, 건축 비엔날레란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행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술과 건축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자르디니 공원에 내셔널 파빌리온을 지을 수 있는 마지막 부지를 확보해 건물을 장만한 1995년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2014년에는 남한과 북한 건축의 흐름을 다룬 <한반도 오감도> 전시로 한국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한국관에서 선보이는 전시 제목은 <2086: 우리는 어떻게?>다. 관객은 세계 인구가 정점에 이르는 2086년까지 미래를 위해 스스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 화면에 뜬 질문들을 보고 직접 버튼을 눌러 답을 고른다. 게임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다.

한국관 전시 중 어반터레인즈 랩이 선보인 디지털 이미지와 관객들의 모습.
URBAN TERRAINS LAB, HUMAN-BOUND. THE SHORE, 2023. DIGITA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 URBAN TERRAINS LAB.

한국관 전시 중 어반터레인즈 랩이 선보인 디지털 이미지와 관객들의 모습.
© OFF TO VENICE.

‘건축 전시’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미술 비엔날레를 치를 때와 같은 장소에서 4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이는 계속해서 갱신되어야 하는 질문이고, 그에 대한 답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과 건축을 막론하고,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술감독이 큰 주제를 제시하면 거기에 맞춰 다양한 본전시가 기획되는 식이다. 그리고 참여국들은 본전시와 별개로 각자의 공간인 내셔널 파빌리온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국가들은 예술감독이 제시하는 주제에 반드시 호응할 필요는 없지만, 대체로 방향 정도는 맞추는 편이다. 올해의 예술감독은 건축가이자 학자, 소설가인 레슬리 로코(Lesley Lokko)다. 여러 나라가 ‘미래의 실험실’이라는 주제에 맞춰 기후이변과 인구문제 등 지구를 둘러싼 위기에 대해 고민과 해법을 제시하는 다채로운 건축 전시를 선보였다.

물론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정도의 자리에서 반 발짝쯤 앞선 흐름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현장을 찾은 전문가 중에도 정답 없는 질문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자하 하디드가 세상을 떠난 2016년부터 자하 하디드 건축 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건축가이자 과격한 발언으로 논란을 몰고 다니는 패트릭 슈마허도 그중 하나다. 오프닝에 참석한 다음 날인 5월 21일, 그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건축’ 전시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 화가 난다는 아주 긴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그에 따르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는 ‘더 이상 건축이라는 말을 제목에 쓰지 말아야 한다. 건축 비엔날레라는 명칭은 건축이라곤 보여주지도 않는 이 행사에 혼란과 실망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패트릭 슈마허는 예술감독이 기획한 본전시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전시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특히 독일에 대해서는 전시 관람에 2초도 걸리지 않은 ‘건설 자재 무더기’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비엔날레와는 별개로, 베니스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프로젝트 전시가 있었다. 자하 하디드 건축 사무소가 설계한 네옴의 스키 리조트 사진.
© NEOM.

대체 지금 베니스에서 어떤 건축 전시가 열리고 있는 걸까? 먼저, 본전시에는 자르디니 공원의 센트럴 파빌리온 및 옛 병기창을 전시 공간으로 바꾼 아르세날레를 무대 삼아 총 95개 팀이 참여했다. 참여 팀 가운데 절반가량은 ‘불가항력’과 ‘위험한 공모’라는 제목이 붙은 섹션으로 나뉘었고, 나머지 팀은 네 개의 소주제, 즉 ‘식량, 농업, 기후변화’, ‘젠더와 지리’, ‘기억술’, ‘미래에서 온 손님’으로 분류되었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역사상 첫 아프리카계 예술감독이 기획한 전시에 걸맞게, 참여 팀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활동하거나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에 속한다. 이 전시들에서는 건축 전시에서 흔히 기대할 법한 전형적인 풍경, 즉 감탄할 만큼 정교한 건축 모형이나 이를 보충하고 설명하는 정보성 자료 등은 거의 살펴볼 수 없다. 그 대신 지난 10년간 시카고에서 운영 중인 흑인 아티스트를 위한 휴식 공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저소득 노동자로 전락한 로봇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인다는 내용의 SF 내러티브, 공간과 신체의 정치적 성격을 다루는 잡지 <The Funambulist Magazine> 아카이브 같은 것들이 전시장을 채운다.

건축 모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개 건축가의 꿈을 실현한 새 건물을 보여주는 모형보다, 갖가지 이유로 구현되지 못한 건축물이나 언젠가 구현될지 모르는 미래의 건물 모형들이었다. 예컨대 브뤼셀의 트웬티 나인 스튜디오는 황금빛 금속으로 각종 희귀 광물의 이름을 간판처럼 달고 있는 건물 모형을 만들었다. 실현되지 못한 이 건물은 19세기부터 여러 아프리카 국가를 식민지로 두고, 그 지역들에서 약탈한 광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벨기에 정부가 1935년 브뤼셀 국제 박람회에서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세울 ‘뻔’ 했던 것이다. 나이지리아 태생의 아티스트 올랄레칸 제이푸스는 아프리카 전역에 일어난 식민지 시절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20세기에 이미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는 대안적 역사를 상상했다. 그가 상상한 풍경에는 아프리카 연안 곳곳에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여행 터미널이 들어서 있고, 작가는 전시장을 내륙에 건설된 터미널 대합실의 일부처럼 꾸몄다. 아프로 퓨처리즘풍 일러스트와 함께, 우주선 혹은 잠수함처럼 보이는 터미널 모형 역시 곳곳에 배치되었다.

나이지리아 태생의 올랄레칸 제이푸스가 상상한 무탄소 여행 터미널의 모습. 아프로 퓨처리즘풍 일러스트도 벽면에 걸렸다.
OLALEKAN JEYIFOUS, ACE/AAP, PHOTO BY MATTEO DE MAYDA,

나이지리아 태생의 올랄레칸 제이푸스가 상상한 무탄소 여행 터미널의 모습. 아프로 퓨처리즘풍 일러스트도 벽면에 걸렸다.
OLALEKAN JEYIFOUS, ACE/AAP, PHOTO BY MATTEO DE MAYDA,

본전시가 열린 센트럴 파빌리온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대형 스크린. 시인 랠 ‘라이온하트’ 케이프가 건축의 실패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 흐른다.
RHAEL ‘LIONHEART’ CAPE, THOSE WITH WALLS FOR WINDOWS PHOTO BY MARCO ZORZANELLO.

전시 공간들을 점유한 영상, 이미지, 설치물은 전체적으로 건축이 물리적 실체로 구현된 건물을 보여주기보다 건축을 둘러싼 온갖 생각을 오늘날의 세계가 직면한 문제와 연결 짓는 개념적 작업에 가까웠다. 결론보다는 질문을, 결과보다는 방법을, 건물보다는 그것에 대한 개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인도에서 건설 중인 키란 나다르 미술관을 아름다운 모형으로 재현해 보여준 가나계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의 설치물이 오히려 조금 어색해 보일 정도였다(건축 전시에서 오직 건축 모형만 사랑하는 것 같은 패트릭 슈마허가 본전시에서 ‘유일하게 볼 만했다’고 평한 것이 바로 이 모형이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들의 얼굴을 생각해보자. 세계 주요 도시에 유리로 덮인 고층 건물 하나쯤은 세웠고, 규모가 큰 건축 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중노년의 남성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 참여 팀의 평균 연령은 40대 초반에 수렴할 정도로 작가로서 젊은 편인 데다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계다.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전형적인 건축가의 얼굴과는 다른 모습이다. 전 세계 건축계의 흐름을 반영하거나 비전을 제시하려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그간 초대받은 건축가들은 대개 중노년 백인 남성들이었다. 피부색도 평균 연령도 확 바뀐 이번 비엔날레는 어떤 방향으로든 새로울 수밖에 없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현지인들과 지은 건축물 일부를 재현했다.
KÉRÉ ARCHITECTURE, COUNTERACT, PHOTO BY MATTEO DE MAYDA.

건축이 곧 건물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안겨주는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핵심 키워드는 ‘탈식민’과 ‘탈탄소’다. 이는 좀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참여자들이 콘크리트와 철, 유리로 이뤄진 고층 빌딩이 곧 건축이라는 생각에 반대하는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건축이라고 인정받지 못했던 아프리카 혹은 비서구권의 건축 방식과 소재를 가져와 전시의 일부로 보여주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별명이 붙은 프리츠커상 수상자 가운데 첫 번째 아프리카계 건축가인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의 작업도 그렇다. 그는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진흙과 시멘트를 섞어 세운 건축물의 일부를 본전시에 실물 크기로 마련해 놓았다. 건축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한 전통 소재와 현대의 소재를 섞어, 오지에서, 현지 사람들과 함께 지은 결과물. 들어선 지역에서조차 ‘건물을 짓는 데 진흙은 왜 섞냐’는 반응이 나왔던 그의 건물은 프리츠커상으로까지 이어졌고, ‘미래의 실험실’을 이루는 표본으로 비엔날레에 소환되었다. 60개가 넘는 개별 국가들의 내셔널 파빌리온을 여기서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건축 자재 무더기’라는 악평 혹은 오해를 받은 독일의 전시는 살펴볼 가치가 있다. 독일은 작년 미술 비엔날레 때 마리아 아이히호른이라는 작가가 ‘작품’을 전시하는 대신 건물의 페인트를 긁어내고 바닥을 들어낸 작업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나치 시대 이전부터 복잡하게 뒤얽힌 역사를 드러낸 적 있는 나라다. 이번 건축 비엔날레에서 독일은 지난해 그 미술 전시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그냥 두었다. 더 나아가 2022년 미술 비엔날레에 참여한 40여 개국으로부터 전시 종료 후 남겨진 폐자재를 기증받아 인덱스를 만들고, 그것들로 내셔널 파빌리온 건물을 가득 채웠다. 독일은 그 모든 폐자재를 상세하게 분류한 뒤 바코드와 QR코드를 붙여 어느 나라의 어떤 전시에서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확인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 폐자재를 활용한 물건 만들기 워크숍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이 전시의 제목은 ‘유지 보수를 위해 공개 중(Open for Maintenance)’. 무려 두 건축 사무소와 건축 전문지(숨마쿰펨 메어와 뷔로 율리아네 그렙, 그리고 <ARCH+>)가 모여 ‘건물’이라고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임시적인 건축물인 전시 폐자재를 정돈한 전시를 기획한 이유는 뭘까? 미술 전시는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작가가 만든 미술 작품이라는 대상이 존재하는 반면, 건축은 그 실체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건물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듯 느껴진다. 독일의 전시를 담당한 큐레토리얼 팀은 이번 전시를 두고 말한다. “이것은 전시가 아니다. 새로운 건축 문화를 위한 하나의 틀이다.”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는 건물이라는 대상만이 건축이라고 할 수 없고, 서양식으로 만든 건물이나 접근 방식을 거친 것만이 건축이라고 할 수 없듯, 이제 건축 전시는 스스로 전시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전시를 통해서까지 이뤄지고 있다.

건축 폐자재로 의미 있는 작업을 선보인 독일관.
THE WORKSHOP, OPEN FOR MAINTENANCE ©ARCH+ SUMMACUMFEMMER BUERO JULIANE GREB.

건축 폐자재로 의미 있는 작업을 선보인 독일관.
THE GERMAN PAVILION AS A MATERIAL REPOSITORY, OPEN FOR MAINTENANCE ©ARCH+ SUMMACUMFEMMER BUERO JULIANE GREB.

5월 20일 개막해 11월 26일까지 이어지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전시 가운데 상당 수는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도 ‘전시’도 아닐지 모른다. 예술감독 레슬리 로코는 ‘건축 전시는 미술 전시와 달리 전시의 구조와 형식을 빌려’ 만들어지는 하나의 ‘순간이자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꿈꾸는 이번 비엔날레는 반짝이는 결과물을 멋지게 모아둔 전시가 아니라, 전시 자체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 관람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결론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이야기를 기대하고 베니스를 찾아온 사람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레슬리 로코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따르자면 건축은 애초에 완결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건축이라는 ‘이야기’는 완결적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이야기라기보다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지요. (건축) 전시가 중요한 건 바로 이런 맥락 때문입니다”

에디터
권은경
박재용 (프리랜스 큐레이터, 통번역가)
사진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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