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살던 장기하와 얼굴들이 공연하러 가서 런던을 들썩여놨다는 소식을. 그래서 청했소, 우리 지금 당장 만나 그렇고 그런 사이에 싸구려 커피나 한잔하자고.
“강남스타일과 싸이의 케이팝은 잊어라.” 믿을 만한 도시 가이드인 <타임아웃> 런던판이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의 런던 공연을 소개하면서 쓴 기사의 내용이다. 장얼의 ‘얼굴들’을 클로즈업한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 속에서는 이들에 대해 엉뚱하고 기발한 한국 밴드라고 이야기 하며, 특히 이들의 노래 ‘그렇고 그런 사이’에 대해서는 ‘록시 뮤직’의 브라이언 페리가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 같다는 언급도 있었다. 6월 20일 공연이 있었던 런던 킹스크로스의 스칼라 극장은 1920년대 세워진 유서 깊은 공간으로, 콜드플레이를 비롯해 케미컬 브라더스, 마룬파이브, 푸 파이터스 등 많은 밴드의 공연이 열려온 장소. 장얼의 이번 런던 공연은 해외문화홍보원이 주최하고 주영 한국문화원이 주관한 ‘K-뮤직 페스티벌’의 한 프로그램으로 성사된 것이다.
“한국분이 많이 오시긴 했지만, 그래도 영국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다는 마음이 기본적이었죠. 멘트도 영어로 했고요. 긴장을 많이 하긴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국내 공연과 다를 바 없이 재밌게 잘했어요.” (보컬 장기하) “외국 관객들이 가사까지 따라 불러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레코드 가게에 판 사러 갔다가 공연 잘 봤다는 인사도 들었지요.”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런던에 거주하는 한국인 건축가 임지선 씨는 한국 음악에 대한 갈증을 채우는 한편으로 영국인 친구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한국 밴드의 음악이었다고 이날 공연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캐나다 대사관 상무관이며 이날 공연을 관람한 윌리엄 사만 씨 역시 장얼의 연주와 사운드가 몹시 뛰어났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록 음악보다 하우스나 일렉트로닉을 많이 듣는 편인데, 그럼에도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은 진심으로 즐겼습니다. 한국어 노랫말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글쎄, 뭔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요?” 장얼은 공연을 마치고도 열흘 정도 더 런던에 머무르며 BBC나 모노클 라디오와 인터뷰를 하고, LP 제작을 위해서 2집 앨범 마스터링 작업을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서 진행했다. 더블유와 브릭레인 스트리트에서 사진을 찍고, 런던에서 본 공연이나 듣고 즐긴 음악 이야기를 함께 나눈 것은 장얼의 귀국 전야 마지막 일정이었다. 멤버가 많아 절반이 주로 대답하는 동안 절반은 맥주를 마셨다. 런던이니까.
런던에서 2주나 머물렀다. 공연이나 영국 매체와의 인터뷰 외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
장기하 : 레코드를 구입하러 음반 가게를 많이 돌아다녔다. 비틀스 데뷔 싱글 오리지널 앨범, 킹크림슨,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음반을 구입했다. 오아시스의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커버를 촬영한 버윅 스트리트 주변에 희귀 음반 가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시스터레이, 레클리스 레코드 등.
하세가와 요헤이 : 다른 밴드들의 공연도 몇 번 보러 갔다. 테임 임팔라는 전 세계 사이키델릭의 최전방에 있는 팀이라 할 수 있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오가듯이 60년대, 80년대, 현재의 음악을 들려줬다. 60년대의 라이트쇼나 70년대에 음을 파형으로 바꾸어 보여주던 영상을 잘 활용해서 보여준 것도 예전의 유행을 잘 가져와서 잘 활용한 예였다.
런던에서는 지금 가장 떠오르는 밴드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한편 아주 오래된 노래를 트는 곳이 많은 것 같다.
정중엽 : 쇼핑을 다니거나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60년대 밴드인 킨크스(The Kinks)였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힙스터들 옷 사러 가는 곳에서 아이돌 음악이나 댄스곡이 아니라 송골매나 산울림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하세가와 요헤이 : 킨크스나, 킨크스 출신 레이 데이비스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는 런던의 장소가 등장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Waterloo Sunset’이나 ‘Victoria’, ‘Denmark Street’, ‘Village Green’, ‘Lavender Hill’ 등… 그것 외에도 영국의 정서와 잘 맞으며 와 닿는 뭔가가 킨크스에 있나 보다.
장기하 : 서울로 대입하면 이런 식이 되나? ‘해질녘 양화대교’, 아니면 ‘59년 왕십리’, ‘청계천 8가’…
음악 하는 사람에게 영국은 정말 뭔가 특별한 영감을 주는 나라인가?
장기하 : 음악적 영감이라는 건 어딜 가나 받을 수도 안받을 수도 있는 건데, 우리 밴드는 한국 음악 말고는 영국 음악을 좋아하니까 확실히 런던이 좋았다. 음악 공연에 대한 수요가 워낙 많으니까. 온갖 공연이 엄청나게 잦아서 맘만 먹으면 좋은 공연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런 것 같다. 하세가와 형이랑은 맨체스터 출신 펑크 밴드인 버즈콕스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고, 작년에 나 혼자 런던에 왔을 때는 폴 매카트니 공연을 봤다.
정중엽 : 예전에 하와이에 갔을 때는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하는 음악이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와이 말로 부르는 민속 음악이나 우쿨렐레 같은 게 그 공간에 잘 어울렸다. 그런데 여기는 여기 정서에 맞는 음악이 있는 것 같고, 좋아하는 영국 밴드들 음악을 듣는 게 장소와잘 어울린다.
하세가와 요헤이 : 나 같은 경우에는 한국 음악이 좋아서 한국에 처음 왔고, 신중현 선생님 음악 듣고 빠져서살면서 밴드까지 하고 있다. 음악의 정서라는 건 그 나라에서 가장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처음 갔을 때 생각한 것도 음악보다 사람을 먼저 느끼자는 생각이었는데, 여기서도 특별한 미술관 같은 데 가는 것보다 펍에 들어가서 커다란 피시 앤 칩스에다 맥주 마시면서 아줌마 아저씨들 이야기 듣는 일상을 경험하는 게 좋았다. 그럴 때 BGM으로는 섹스 피스톨스의 ‘Anarchy in UK’가 나오고…
장기하 : 하세가와 형이랑 기타 치는 이민기랑 셋이 LP사러 다니다가 펍에 들어갔는데, Anarchy in UK가 흘 러나오고 있었다. 참 설정 같지 않나? 영국 갔다 와서 런던에서 이 노래 들었다고 얘기하면 다들 ‘뻥치지 마’ 이렇게 반응할 것 같은데. 아, 참 비틀스의 ‘a Day in the Life’도 들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음악에서는 독특한 가사가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공연에서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정중엽 : 영어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봐도 테임 임팔라 노랫말은 안 들린다고 하더라. 가사의 의미를 몰라도 음악이 좋으면 그만 아닌가 싶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WOO SANG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