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외계인, 여자 슈퍼 히어로, 컴퓨터 운영 시스템, 매캐한 음색이 근사한가수… 그리고 한 아이의 어머니. 스칼렛 요한슨은 우리가 알다시피 수많은 얼굴을 가진 배우인 동시에 아주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다.
“딸이 내 몸에서 나왔을 때 정말 놀랐어요.” 어느 추운 12월에 스칼렛 요한슨이 내게 말한다. 우리는 이 기사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는 중이었고, 석 달 전에 딸 로즈를 낳은 요한슨은 타이트한 진과 편안한 흰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거의 흰색에 가까울 정도의 짧은 금발머리는 뒤로 넘겨 빗었다. 그녀는 곧 블론디 시절의 데비 해리와 비슷한 가발을 쓸 것이다. “나는 내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뚜렷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당연하지만, 내 딸은 그 모습 과는 굉장히 달랐어요. 완벽하지만, 내가 상상한 거랑은 딴판이었어요. 지금은 물론 다른 외모는 떠올릴 수가 없지만요.” 요한슨이 미소를 지은 채 말한다. 나는 요한슨이 주목 받기 시작한 2003년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때부터 그녀를 정기적으로 인터뷰했는데, 그녀는 늘 그렇듯 툭 터 놓고 말하는 동시에 대단히 신중하다. 이제 서른 살이 된 그녀는 7살 때부터 직업적으로 연기를 해왔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어시스턴트가 개인 탈의실을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내 가슴을 못 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여기서 갈아입어도 돼요”라고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 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비밀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가 프랑스 저널리스트 로맹도 리악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불과 몇 달 전에야 알았다.
요한슨은 크리에이티브한 쪽에선 언제나 예상치 못한 모험을 해왔다. 영화배우로서 스타덤의 정점에 오른 2010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아서 밀러 원작의 연극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에 출연해 평론가들의 뒤통수를 쳤으며, 그 연기로 토니 상을 수상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60년대 카바레 여가수와도 같은 용기로 앨범을 몇 장 녹음하기도 했는데, 그건 단지 허영심으로 했던 일은 아니다. 너무 예술영화 전용관 쪽으로만 향하는게 아닌가 싶었을 때 <어벤져스>의 여성 슈퍼 히어로 블랙 위도우 역을 맡았다. 5월 1일 개봉할 예정으로 기대를 잔뜩 받고 있는 속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예고편이 온라인에 뜨자마자 24시간 만에 343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한 해는 요한슨에게 있어 대단한 해였다. 어머니가 되었고, 여성 캐릭터가 중심으로 나 온 2014년 개봉작 중 유일하게 흥미롭다 할 수 있을 두 편이 바로 그녀의 출연작이었다. 세계적 블록버스터였던 <루시>에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되게 해주는 약을 먹고서 염력을 쓰고 엄청난 액션을 했으며, <언더 더 스킨>에서는 매혹적이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외계인을 연기했다. “그 영화에서는 홀딱 벗고 나왔어요.” 요한슨은 별 감정 없이 말한다. “캐릭터가 완전히 다른 종이었기 때문에, 벗고 나와야 했죠. 검은 머리도 했어요. 그건 내 아이디어였어요. 내가 섹시한 금발 여자가 되어야 할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알몸이지만, 너무 섹시하지는 않게. ”
뉴욕에서 자란 요한슨은 쇼 비즈니스의 모든 면에 매혹된 아이였다. “난 상상력이 대단했어요. 주디 갈렌드를 특히 좋아했죠. 내게 갈렌드는 모든 걸 다 이룬 사람으로 보였지요. 기억할 수 있는 한, 난 언제나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모든걸 다 하고 싶었죠. 어린 배우는 광고 오디션을 많이 보게 돼요. 난 물건 파는 일은 정말 못해요. 광고 모델 역은 따낼 수가 없었죠. 지하철에서 울던 게 기억 나요.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했죠. ʻ얘야, 잊어버리자. 이제 다른 걸 해보자.ʼ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ʻ안돼요, 이걸 못하면 안돼요. 난 배우가 되고 싶어요!ʼ 지하철 B 선을 기다리면서요. 인생이 바뀌는 순간을 겪었던 거죠. ”
그래서 요한슨, 그리고 후에 그녀의 매니저가 된 어머니는 영화 오디션만 보기로 결심한다. 소녀 때부터도 조숙한 섹시함과 귀여움을 같이 지니고 있었던 요한슨에겐 다른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깊고, 조금은 쉰 듯한 매캐한 목소리였다. “어렸을 때 말을 하면 다들 내가 감기 걸린 줄 알았어요. 하지만 영화 쪽으로 가보니 내 목소리가 좋다고 하더군요. 다른 세상이었어요.” 2013년에 스파이크 존즈는 <그녀>에서 요한슨의 이런 음성을 멋지게 활용했다. 호아킨 피닉스가 사랑하는, 육체가 없는 컴퓨터 운영 체제의 목소리였다. 존즈는 내게 요한슨이 카메라 앞에 설 일이 없는데도 매일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촬영장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건 말도 안돼요.” 요한슨은 쉰 듯한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립스틱을 조금 발랐을지는 몰라도. 스파이크는 내가 파자마 차림으로 가지 않아서 안도했을걸요? 호아킨과 스파이크는 그 무렵엔 둘 다 파자마 차림으로 촬영장에 나왔거든요. ”
묘하게도 존즈 전에는 어떤 감독이나 애니메이터도 요한슨의 목소리를 이렇게 활용한 적이 없었다.
“난 픽사에 가본 적이 있어요. 혹시 만화에 나를 써주지 않을까 해서요. 안 써주더라구요. 난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요한슨은 잠시 말을 멈춘다. “이젠 나한테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줘야 해요! 들었죠, 픽사?” 신경증에 걸리지 않은 여배우가, 아니 여배우 아닌 누구라도 이렇게 겁 없이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이려 하는 경우는 드물다. 요한슨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다.
“내가 그래픽 노블 속의 여자 영웅을 연기하고 싶어 하니 사람들이 놀라더군요. 하지만 난 <아이 언 맨>이 정말 좋았고, 가능한 역이 뭐가 있나 싶어 마블 사람들을 만났어요. 나도 나름대로 연구를 해갔고, 블랙 위도우 캐릭터에 공감이 가더군요. 그녀는 어둡고, 죽음을 여러 번 마주해봐서 삶의 가치에 대해 깊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후편에서는 블랙 위도우의 과거에 담긴 슬픔을 더 알게 될 거예요.” 요한슨은 서사시와도 같은 복잡함을 지닌 클래식한 여자 영웅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블랙 위도우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요. 슈퍼 히어로지만, 인간이기도 해 요. 작지만 강하죠. 그녀를 존경하지 않기란 쉽지 않아요.” 요한슨은 웃음을 터뜨린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만치 않은 사람이죠.” 요한슨은 근처에서 자고 있는 딸을 살피러 일어난다. “우린 모두 사악한 힘과 맞서 싸우려 애쓰잖아요. 블랙 위도우처럼, 우린 계속 노력해야 해요.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언제나 있어요”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MERT ALAS & MARCUS PIGGOTT
- 글
- Lynn Hirschberg
- 스타일링
- Edward Ennin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