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로드와 스트리밍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앨범의 실체를 갖고 있을 때 음악은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품에 안긴다 .
우리에게 영감과 기쁨을 주었던 음악에, LP에 바치는 뮤지션 8인의 오마주.
조원선
조원선은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특히, 그녀의 세련되고 모던한 음색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고다 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애타게도 2006년 롤러코스터의 마지막 앨범, 2009년 자신의 솔로 앨범 뒤에 조원선은 몇몇 뮤지션들의 피처링이나 공연, 네이버 온스테이지 같은 조심스러운 보폭만 떼면서 걸음을 아끼고 있는 중이다.“ 내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때의 환경과는 너무 달라졌기 때문에 조용히 이 과도기를 지켜보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음악을 진짜 좋아하는 팬들만 남을 거라는 면에서 희망적인 생각도 들어요. 요즘처럼 인디나 오버그운라드 구분 없이 평등하게 판이 안 팔린다면, 정말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을 위해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때부터 건반을 치며 노래를 불렀던 조원선은, ‘Power of Love’가 수록된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싱글 바이닐을 처음 샀던 일을 웃으며 회상한다. 합주를 위해 곡을 카피해야 했는데, (사이즈가 LP보다 작은 7인치 판을) 잘못된 회전수로 틀어놓고 듣는 바람에 아주 느린 템포로 따갔던 일이 있었다고. 올해 레코드 페어에서 몇몇 뮤지션의 앨범을 LP로 다시 만들면서 자신의 <Swallow> 음반을 받아본 일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더블유와의 촬영을 위해 그녀가 고른 이미지는 패티 스미스의 그 유명한 <Horses> 앨범이다. 올해 초 서울에서 공연을 갖기도 한 패티 스미스는 자신의 회고록 <저스트 키즈>에서 이 커버 촬영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바란 건 진실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단 하나 내가 로버트(사진가)에게 요구한 건 티 하나 없이 깔끔한 셔츠를 입고 싶다는 것이었다. (……) 며칠에 뒤 그는 내게 밀착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진은 기적이야.’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 그날의 우리가 보인다” 사. 진이 아니라 음악도 때로 비슷한 기적을 만든다. 노래를 부른 사람이 아니라, 그걸 듣던 그날의 나와 누군가를 소환하는 마법. 조원선의 목소리가 앞으로 그런 일을 계속해주기를 동료 뮤지션들 도보,통의 음악팬들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테이스티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커다랗게 듀스의 ‘우리는’이 울려 퍼지는 스튜디오에는 이현도 없이, 김성재만 두 명이 돌아온 것 같았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듀스를 재현하기 위해 웃옷을 벗고 나타난 댄스 듀오 테이스티의 쌍둥이 형제 대룡과 소룡, 두 사람의 큰 키와 가는 몸선은 지금 여기없는 김성재와 꼭 닮아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부추겼다. 스물여섯 쌍둥이 형제는 붙어 자라고 비슷한 음악을 들으며 같이 춤춰왔고, 이제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한 팀이 되었다. “듀스는 오늘 촬영 전에도 이미 좋아하고 있었죠. 예전 가수 선배들을 찾아보다가 영상을 봤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한국에서 힙합을 그렇게 멋지게 들려준 점도 그렇지만 퍼포먼스가 힘있고 멋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소룡)” “듀스 노래 중에서는 ‘나를 돌아봐’랑 ‘여름 안에서’를 좋아해요. 그리고 듀스 노래는 아니고 김성재 선배님 곡이지만 ‘말하자면’ 도 정말 많이 들었고요.”(대룡)
요즘 아이돌들 가운데 흔치 않게 두 사람이 한 팀이라는 점도, 듀스에 대한 유대감을 끈끈하게 하는 부분이다. “무대 위에선 둘뿐이라서 외롭다거나 밀린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무대에서 내려와서 다른 시끌벅적한 장소에 가면 가끔 그렇기도 하지만…. 무대 위에서 그런 생각 들면 안 되지 않아요?”(소룡) “사실 인원수 많은 그룹도 저희한테 와서 멋있다, 잘한다고 해주니까 둘만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대룡). 88년생으로 중국에서 자란 이 청년들은 일곱 살 때부터 H.O.T 음악을 들었고, 주걸륜이나 왕리홍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이클 잭슨 음악도 중국에서 많이 들었지만, 너무앞서 가는 음악이라 이해를 못했으며, H.O.T가 더 멋져 보였다고. 테이프를 한 번 사면 늘어질 때까지 듣던 이 쌍둥이 청년들은 CD를 사주는 팬들에 대해 ‘진짜 우리가 잘되길 바라서 사주는’ 것 같아서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전곡 다운받는 팬들도 물론 고맙습니다. ”
이이언
아무래도 자기 작업에 대해서 대충 일하고 슬렁슬렁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이이언은 자기 자신을고 삶 고아서 음악을 만드는 지긋지긋한 완벽주의로 소문이 자자한 뮤지션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북 트일레러 영상을 작업하면서 “1700대의 컴퓨터와 제 수명 7개월 정도가 사용되었다”는 말은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 이이언에게 앨범이 해체되는 시대에 여전히 앨범이라는 단위로 음악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낱낱의 곡으로만 음악이 소비되는 요즘의 시장에 대한 회의인 동시에 앨범과 앨범 사이 텀이 긴 과작의 음악가로서 스스로 지속가능한 작업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점점 음악에서의 긴 내러티브가 힘들어지고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니까요. 음악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기라는 것도 있지만, 사실 내 자신에게 그 당시에 마음에 와 닿을 때 감정에 푹 빠져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앨범의 완성도를 위해 오래 붙잡고 있다 보면 내 스스로 열광하던 시기가 지나가서 음악을 내놓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바이닐의 돌아온 유행, 공연과 굿즈 판매 수익 중심으로 음악 시장이 재편되는 해외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이언은 사람들이 음악을 감상하는 데 돈을 안 쓰는 시대에, 어떤 매체가 갖는 매력이 애호가 그룹을 늘린다면 충분히 반가운 일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에는 해외 힙스터들이나 몇몇 뮤지션들 사이에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유행이 일기도 했어요. 이게 수그러들고 요즘은 LP가 돌아온 것 같지만. 이런 트렌드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은 쉽지 않겠죠. LP로 환기되는 정서적인 부분 때문에 아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LP로 디지털 소리가 잘 재생될까 싶었는데, 일렉트로니카를 들어도 나름의 질감이 좋더군요. 사운드의 재해석이랄까.” 그와 음악적으로 더 닮은 제임스 블레이크는 어떨까 제안했지만, 이이언이 찍어보고 싶다고 고른 건 뜻밖에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앨범이었다. 그날 스튜디오에서는 미러볼을 세 개 밟아 깨뜨렸다. 한눈에도 연약한 이 뮤지션은 식은땀을 흘리고 어지럼증을 호소지했만, 음악만큼 수명이 단축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조정치
순한 얼굴과 나긋한 목소리로, 조정치는 차갑도록 염세적인 현실 인식을 꺼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누가 음악을 돈 주고 사겠어?’ 하는 자조를 느껴요. 특히 홍대에서 음악만 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암담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게 좋아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다들 열심히 하는 거죠”. 하지만 최근에 새로 나온 장필순의 7집은 이런 그의 단단한 비관에 긍정적인 균열을 내주었다. “제주도에서 유유자적 살면서 서두르지 않고, 이렇게 멋진 음악을 내놓은 거잖아요. 요즘 나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뮤지션으로서 누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난 아직 한참 멀었지만 어쩌면 이렇게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조정치가 보기에 천천히 ‘지속가능한’ 목표로서의 음악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도다. 음악을 포함해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만들어지고 더 순식간에 소비되고 금세 잊히고 마는 속도. 앨범 단위가 아니라 디지털 싱글로 음악이 소개되는 방식은, 뮤지션로으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한받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의 2집인 <유작>도 삶과 죽음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콘셉트의 내용을 담아 만든 것이었지만 앨범 단위로 음악이 소비되지 않는 요즘 얼마나 사람들에게 가 닿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스스로도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방식의 편리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정치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달라지리라는 기대나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테 응원하는 의미로라도 음반을 사주면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할 뿐.
“싱글히트를 크게 쳐본 뮤지션도 아니고 아이돌이랑 차트 경쟁을 할 수도 없으니까, 차라리 저는 하고 싶은 걸 할래요. 시류나 방식에 따라가기보다는 더 천천히”. 조정치의 다음 앨범은 즐겁고 밝은 록이 될 거다. “제가 기타리스트지만 기타 위주의 음악을 안 해서, 어떻게 얼마나 치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거든요. 내년부터는 일렉트릭 기타를 써서 기타리스트다운 음악을 하고 싶어요.” 지미 헨드릭스, 로벤 포드, 제프 벡 같은 기타리스트의 이름이 언급되었고, 먼 훗날에는 에릭 클랩튼처럼 되면 좋겠다고 했다. “내 음악으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많은 수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러려면, 음악을 계속하긴 해야겠죠. ” 서울 말고 조정치의 속도로 천천히, 느긋하게.
special thanks to 골목 바이닐 앤 펍(촬영한 앨범은 골목 바이닐 앤 펍의 소장품입니다)
- 에디터
- 황선우, 박연경
- 포토그래퍼
- 유영규
- 스탭
- 헤어 / 김귀애, 메이크업 / 이아영, 메이크업 / 이미영, 어시스턴트 / 임아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