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매체가 품고 있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미궁이란 무엇인가. 최근 개봉해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은 영화 <타르(Tar)>의 감독 토드 필드와 <틸(Till)>의 배우 대니엘 데드와일러가 그 미궁을 찾고자 조우했다.
“저는 항상 할리우드 영화에 담긴 은밀한 외침과 속삭임, 비밀스러운 분위기에 흥미가 있었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어느 옥외 촬영지에 서 있던 영화감독 토드 필드가 말했다. 청바지에 감청색 카디건을 걸친 필드는 <더블유>와의 화보 작업을 위해 자신이 가장 아끼는 한 누아르 필름 속 배우 험프리보가트의 모습을 떠올리는 데 마음을 집중했다. “보가트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건 너무 뻔하니까요. 대신 그 특유의 느낌을 여성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제 머릿속에 곧장 배우 대니엘 데
드와일러가 떠올랐죠.”
매혹적인 생로랑의 검정 드레스에 후드를 두른 대니엘 데드와일러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필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데드와일러는 영화 <틸>에서 1955년 백인 지상주의자에게 목숨을 잃은 흑인 소년 에밋 틸의 어머니를 연기했다.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데드와릴러는 영화 속 시종 심각하고 굳은 표정을 보여줬지만, 사실 그녀는 유쾌한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다. “지금 감독님 제 얘기하고 계신 거 맞죠?” 데드와일러가 소리치 듯 묻자 필드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각종 영화 시상식이 개최되던 올해 1월 초, 베벌리힐스의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필드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 <타르>의 주인공 케이트 블란쳇을 기다리며 식당에 혼자 앉아 있던 참이었다. “대니엘이 저한테 다가와서 ‘여기에 혼자 앉아서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라고 묻더군요. 그러곤 제 옆에 앉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하더라고요. 아주 다정하게 말이죠. 그런 친절한 관심을 받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필드가 회상에 잠긴 채 말했다.
필드는 데드와일러가 <틸>에서 보여준 연기를 극찬했다. “슬픔은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전해지죠. 그는 영화의 한 장면을 넘어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강력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필드는 데드와일러에게 자신의 현대적 미학이 반영된 비밀스러운 세계를 구현해주기를 원했고, 오슨 웰스가 연출한 <악의 손길>, 존 휴스턴이 연출한 <말타의 매>처럼 그가 가장 좋아하는 누아르 시대의 영화와 비슷한 배경에서 <더블유> 화보를 촬영했다. 한편 최근 필드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타르>도 스릴러 영화에 속한다. <타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이자 매력적인 여성 리디아 타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뛰어난 지성과 재능을 가진 타르는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다. 하지만 그를 정점에 올라서게 한 힘은 동시에 그를 몰락시키는 힘으로 작동한다. 타르를 둘러싼 주변인의 관대함과 복종이 오히려 그를 매혹적인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타르>는 권력의 부패뿐 아니라 그것이 위대함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예리하게 분석하고 기록한 작품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나치게 ‘높임’을 받는 사람이 건강한 자의식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화보 촬영을 마치고 며칠 뒤, 필드가 LA의 한 호텔에서 카모마일 티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 간의 마찰과 충돌이 부족해지면 거대한 자아가 자라나고 일종의 카오스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전 인격은 숱한 역경을 통해 자라난다고 믿어요. 역경을 모두 제거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리디아 타르가 되는 겁니다.”
필드는 팬데믹 기간 동안 낙농장으로 쓰였던 메인주의 자택에 머물며 <타르>의 대본을 썼다. 2000년대 필드는 소설을 각색한 두 편의 영화 <침실에서>(2001)와 <리틀 칠드런>(2006)이 호평받으며 큰 성공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편 <타르>는 필드가 쓴 오리지널 각본을 영화화한 최초의 작품이다. “집에 머물며 영화 산업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어느 순간 리디아 타르가 떠올랐어요. 제가 업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하기 힘들고, 까다롭고, 범접하기 어려운 동시에 천재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특성 덕분에 그들은 어떤 힘을 갖게 되죠. 그리고 그 힘이 촉진제인가 저주인가는 제게 무시할 수 없는 주제였고요. 그 둘 사이의 연관성도 보였는데, 즉 우리는 천재적인 괴물에게 끌 리고 맙니다. 그를 사랑하는 동시에 파괴하고 싶어 하죠.”
<타르>는 오로지 케이트 블란쳇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집필한 작품이다. “블란쳇이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영화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엄격한 미적 감각과 극도의 섬세함을 지닌 필드가 말했다. (일례로, 필드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오래된 블랙 윙 연필로 직접 대본을 쓰고, 독일 제품인 KUM 연필깎이만 사용한다.) 다행히도 블란쳇은 즉시 리디아 타르를 연기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앉은 자리에서 대본을 전부 읽었답니다. ‘좋다’는 대답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모든 면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캐릭터였거든요.” 필드가 말했다.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블란쳇은 오케스트라 지휘와 독일어를 익히고, 피아노로 바흐의 곡을 연주하고, 포르셰를 레이싱카처럼 모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고. “포르셰에서 옛 유명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위해 차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리디아 타르를 위한 차도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요?”
<타르>는 주인공이 지휘하는 필하모닉이 있는 베를린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팬데믹 때문에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영화 속 음악가들이 배우가 아니기도 했고요.” 필드는 배우 겸 음악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두 직업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공감력을 가지고 있다. 필드가 마지막으로 연기한 인물은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톰 크루즈를 살인적인 광기로 유혹하는 피아니스트였다. “연기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는데, 큐브릭 감독의 연락을 받은 거죠.”
다시 유니버설 스튜디오 현장으로 돌아가보자. 데드와일러가 바닥에 있는 정사각형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화보의 프로듀서이자 필드와 <타르>를 함께 작업한 프란체스카 렌티니가 세트장의 의자 위치를 재조정하고, 코엔 형제와의 협업으로 잘 알려진 프로덕션 디자이너 제스 곤초르가 화병과 화분의 위치를 옮긴다. 데드와일러는 자신의 몸을 고정하고 시선은 아래를 내려다보되, 고개는 위를 향하고 있다. 솟구쳐오르는 호기심과 그것을 억누르는 힘이 동시에 느껴지는 최고의 연기다. “완벽하게 이해한 연기예요. 대니엘에게는 애매모호한 태도란 것이 없습니다. 그의 행동에는 언제나 의도가 담겨 있죠.” 촬영을 마친 뒤 필드가 말했다,
한편 다음 촬영을 위해 데드와일러는 밴에 탑승했다. 최근 그녀는 매우 분주한 일주일을 보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틸>을 통해 미국 배우조합상 (SAG)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고섬(Gotham) 상을 수상한 데드와일러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지명받지 못한 사실을 납득할 수 없어 했지만, 데드와일러는 논쟁이 될 만한 어떤 이야기도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주어진 일에 충실히 몰두하기로 했다. <틸>에서 가장 절망적인 장면을 연기하느라 매우 힘들어하고 있던 시기에도, 데드와일러는 배우라면 농담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배우는 울기 위해서 웃을 수 있어야 해요.”
동굴처럼 생긴 촬영지로 들어서니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보인다. 잠깐, 계단의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괜찮은 걸까? “마틴 스코세이지가 <분노의 주먹>을 촬영할 때 사용한 것과 똑같은 흑백 필름을 사용하고 있어요.” 완벽한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 조명 스태프를 기다리는 동안 필드가 설명했다. “대니엘에게도 동일한 어둠과 빛을, 그 강렬한 긴장감을 연출해주고 싶어요.”
필드는 데드와일러가 베일에 싸인 한 남자와 매혹적인 어느 여성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딘가 위험하고 은밀한 분위기의 플롯 라인을 구상했다. “거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필드가 데드와일러에게 물었다. “이 계단은 어디로 이어질까요? 어째서 박스를 열었을까요? 이 조명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드와일러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비밀이 좋아요.” 필드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더 이상 설명을 이어가지 않았다. “이것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예요. 우리는 이유를 잘 알면서도 인물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말아요. 답은 가려져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해답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면서 보는 것을 멈추지 못하죠.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필드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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