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가 네 명의 게스트 에디터들을 초대했다. 영화감독 김종관, 카투니스트 올드독, 소설가 배명훈, 아티스트 백현진이 바로 그 에디터 아닌 에디터다. 그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배양된 이야기는 저마다 잘하는 영상, 만화, 픽션, 드로잉이라는 각각의 형식으로 숙성해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이것은 인터뷰 아닌 인터뷰다.
클로즈업/블로우업
김종관이 만난 공효진
김종관의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자주, 그리고 길게 등장한다. 작년 말 개봉한 <조금만 더 가까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나 물어뜯는 입술 등을 스크린에 가득 채우는 것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 그에게 배우는 특히 흥미로운 피사체인 동시에 늘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이야기인듯 보인다. 김종관은 공효진에게 묻고 싶은 내용이 많다고 했다. 여배우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한국 영화계에서 그간 자신의 입지를 성실하면서도 용감하게 넓혀온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인터뷰어는 그 중 자신에게 특히 가깝게 다가온 말들을 추려 짧은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감독이 클로즈업한 단면은 공효진이란 배우의 전부를 추측하게 할 결정적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2월 9일 더블유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배우 공효진이 영화감독 김종관과 마주 앉았다. 최근의 관심사부터 연기자로서의 고민까지 방향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흘러간 대화는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의 햇빛과 함께 두 대의 카메라 안에 담겼다.
쉼표, 연기의 여백
작년 5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찍은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연기한 지가 꽤 오래됐어요. 직업이 배우인데 본의 아니게 본업을 소홀히 한 거죠. 그래서 요즘은 카메라만 보면 연기하고 싶어요. 나이를 자꾸 먹으면서 활발하게 일할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다는 생각을 종종해요. 그런데 욕심만큼 작품을 많이 하지는 못하고 있거든요. 결정을 내리기 전 따져야 할 내용이 분명 있으니까. 여배우들은 힘들어요. 제가 데뷔했을 때부터 항상 그랬어요. 남자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적거든요. 여자가 중심에 있는 작품만 찾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허비되면서 시간을 때우고 싶진 않아요.
최근에 구두 디자인을 했어요. 실제로 판매도해요.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한때는 패션 쪽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스타일링보다는 뭔가를 만드는 쪽이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사실 구두보다는 옷을 더 좋아하죠. 그런데 친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말하기를 만들기 시작하면 입는 즐거움이 사라진대요. 그러니까 정말 좋아하면 사업을 하진 마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이유도 있고, 구두가 옷보단 쉬울 것 같기도 했고요.
지금 카메라가 얼굴 아래를 잡고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감독님 영화 보니까 배우들 얼굴 잘 려나오는 장면이 많던데요. 잘라주셔도 돼요. 전 그런 것 좋더라고요. 얼마 전 책(<공효진의 공책>)을 냈는데 거기도 사진이 실렸거든요. 친한 사진가하고 같이 작업했어요. 그런데 찍는 분들이 연예인 얼굴은 자르면 안 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나 봐요. 자꾸 얼굴 위주 컷만 나오기에 그러지 마라고 했어요. 나를 좀 잘라달라 용감하게, 그랬죠.
4~5년 전부터 환경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고, 최근 낸 책도 그에 관한 내용이에요.환경 운동도 잘하면 자전거처럼 붐이 될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자전거는 목적 의식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들 스스로 좋아서 타잖아요? 요즘엔 그게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요즘 세대를 움직이려면‘멋’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는 자유로운 영혼인 척하고 어른들이 혼내거나 말거나 제멋대로 하는 게 멋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절제하는 누군가가 참 멋있더라고요.그래서 요즘은 삼가는 훈련을 하려고 해요. 말도 좀 줄이려고 하고.
느낌표,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것들
전 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이 생각하는 대로 남자랑 욕하고 싸워도 안질 것 같은 와일드한 면이 분명 있어요. 한 살 터울의 남동생과 굉장히 가까운데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굉장히 여성스럽거든요. 극과 극이 섞여 있는데 중간은 없어요.
172cm니까 여자로서는 키가 큰 편이에요. 살도 정말 안 찌는 체질이고요. 좋은 것 같아요. 키 크고 마르지 않았으면 배우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저란 사람을 어필할 수 있는 큰 무기였으니까.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이상학, GETTY IMAGE/MULTIB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