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짜릿하고 믿을 수 없게 외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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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우는 조명 아래 혼자가 된다. 유명해질수록 불안해진다. 가끔은 그 외로움과 불안이 배우 자신을 갉아먹지만, 그건 도통 끊을 수 없는 쾌락이기도 하다. 28년을 배우로 살아온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은 결국 배우들의 이야기 <톱스타>였다. 10년을 배우로 살아온 김민준이, 영화 속 배우의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박중훈이 입은 짙은 회색 터틀넥은 보기, 브랜드의 로고가 수놓아진 회색 팬츠는 브룩스 브라더스, 동그란 프레임의 안경은 장마릴 제품. 김민준이 입은 검은색 터틀넥은 레쥬렉션, 검은색 팬츠는 재희신, 무광택 프레임의 은색 안경은 그라운드브레이킹, 큼직한 다이얼의 검은색 가죽 스트랩 시계는 크로노스위스 제품.

박중훈이 입은 짙은 회색 터틀넥은 보기, 브랜드의 로고가 수놓아진 회색 팬츠는 브룩스 브라더스, 동그란 프레임의 안경은 장마릴 제품. 김민준이 입은 검은색 터틀넥은 레쥬렉션, 검은색 팬츠는 재희신, 무광택 프레임의 은색 안경은 그라운드브레이킹, 큼직한 다이얼의 검은색 가죽 스트랩 시계는 크로노스위스 제품.

이틀 전 부산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올라 왔다. <톱스타>를 관객 앞에 처음 선보인 소감은 어땠나?
박중훈 그렇게 많이 해본 일인데도 정말 떨렸다. 선배면서도 의연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영화제다 보니 영화 관계자와 적극적인 관객이 많긴 했지만, 뭐랄까 기운이 아주 좋았다.
김민준 감독님은 편집을 비롯해 영화를 계속 만져오셨지만, 배우들은 완성된 영화를 스크린으로 처음 본 자리였다.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치고 올라갔다가 떨어졌다가 그러다 다시 가속이 붙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정신없이 즐기다 ‘어, 벌써 끝났네?’ 싶은 영화였다. 자막이 올라갈 때야 어깨에 긴장이 탁 풀렸다. 아, 끝났구나 그러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를 했는데도 여전히 떨린다니 신기하다.
김민준 난 12편 했다. 형님은 40편을….
박중훈 나도 감독으론 처음이지 않나. 배우가 관객에게 모습과 감정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감독은 생각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배우로서 나의 모습과 감정을 보여줄 땐 한편으론 부끄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과시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생각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섰다. 내 생각이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거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영화를 구상하는 데만 5년 정도가, 실제 작업에는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들었다.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의 단초는 무엇이었나?
박중훈 마흔 언저리를 넘으면서 뭔가 가슴에 먹먹함이 있었다. 한참을 뭘까, 뭘까 그랬다. 그러다 내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술 하는 사람이라면 그림을 그렸을테고,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음악을 만들었겠지. 나는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영화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배우 출신 감독이 배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정말 잘 아는 것에 대해, 혹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글을 쓸 땐 오히려 끙끙대며 쓴다. 28년을 배우로 살아온 박중훈이 배우, 연예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역시 그랬을 거라 짐작해봤다.
박중훈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면, 아무래도 자의식이 과하게 들어갈 수 있다. 그걸 끊임없이 경계하는 과정이었다. 그게 가장 힘들었다. 내 이야기를 객관화할 수야 없겠지만,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도 조금은 달랐을 것 같은데?
김민준 어느 날 매니저가 굉장히 놀라서 전화를 했다. 지금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는데, 일단 만나서 얘기하겠다고 하더라.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매니저 둘이 같이 달려와서는 박중훈 선배님이 영화를 연출하시는데 직접 연락을 하셨다고, 처음에는 동명이인의 감독이 있나보구나 했는데 중간에 감독님이 이렇게 말했다는 거다.
박중훈 “저 <투캅스> 했던 배우 박중훈입니다.”(웃음)
김민준 그러니 매니저들이 얼마나 놀랐겠나. 당연히 만나뵙자고 해서, 당장 만나서 간략한 시놉시스를 들었다. 솔직히 다른 감독님이었다면 정중하게 거절했을 것 같다. 그런데 관록의 배우 박중훈이 감독하는 영화, 게다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다루는 배우의 세계. 그럼 내가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나? 무조건 할게요, 그랬다.

그럼 촬영 전 대기실에서 캐스팅하느라 맘고생 좀 했다는 이야기는 무언가?
박중훈 그러고 나서 시나리오를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해야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1년 정도가 흘렀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다시 찾아갔더니, 그때가 당분간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죽어도 연기를 안 하겠다고 하기에 그랬다. 좋다, 본인 생각이 확고하니까 내가 포기하겠다. 단 하나 약속을 지켜다오. 이번에 나랑 연기 안 할 거면, 죽을 때까지 하지 마라. 그게 나에 대한 예의다. 언젠가 하면, 몇십 년 뒤에라도 하면 정말 화낼 거다.
김민준 정말 진지하게 그러셨다(웃음).
박중훈 진심으로 나온 말이고, 진심으로 느꼈을 것이고, 결국 며칠 지나 함께하게 됐다. 그때는 이 세계에 많이 지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련이 없더라.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믿는다.

배우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와중에 배우를 연기하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겠다.
김민준 정말이다. 어설프게 연예계의 흥과 망을 다루다간, 자칫 관객들은 ‘저게 말이 돼?’라고, 이 세계 사람들은 ‘저건 너무 모르고 찍었네’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 어떤 캐릭터보다 정확한 계량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중간에 박중훈이란 인물이 감독으로 서는 것 아닌가. 걱정보다는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조금 남아 있던 걱정들 역시, 촬영을 하면서 사라졌다. 박중훈 선배가 감독으로서 출중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찍으면서 확신했다.

정말?(웃음)
김민준 옆에 계신데 뭐라고 말하나(웃음). 그런데 옆에 계시지 않아도 똑같이 이야기할 거다. 영화는 다양한 위치에서 수많은 스태프가 함께하는 작업이다. 감독 박중훈이란 사람이 그 모든 사람과 적절하게 의사소통하고 있구나 그런 확신이 들더라. 지금껏 숱한 현장에서 베테랑 감독과도, 신인 감독과도 일했다. 그런데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몇 년을 함께 준비했으면서도, 마치 바벨탑을 짓고 있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이 힘들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영화만큼은 각자 훌륭한 부품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대의 자동차가 됐다는 느낌이다. 현장에서 “이건 말이 다르잖아!”란 이야기가 나올 일 또한 없었다. 예를 들어 감독님이 내게 와서 “야, 민준아, 조명은 이렇게 특별하게 부탁했으니 그렇게 될 거다”라고 설명한 후엔, 조명이 정말 그 말처럼 움직였다. 현장에서 특별한 말이 없어도 이미 다 조율이 되어 있을 만큼, 감독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원준’ 역할에 김민준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박중훈 내가 이런 남자 좋아한다. 이성에게는 인기 있는데 동성 한테는 인기 없는 사람 있지 않나. 사실 배우도 그렇다. 남자 배우 중에 남자가 보기엔 너무 닭살인 사람이 있다. 그런데 김민준은 사내답기도 하고, 섬세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성질이 더러울 것 같다가도, 맑을 것 같은, 동성이 봐도 멋진 남자다. 이 영화를 구상하며 가장 먼저 김민준이란 배우를 떠올렸다.

그 선택에 만족하나?
박중훈 김민준은 아주 예민한 배우다. 어느 날은 마치 접신을 한 것처럼 거침없이 연기하다가도,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데 걸려서 엇박자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김민준의 좋은 예민함만 잘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김민준이 <다모> 이후에 멋있는 배우, 잘생긴 배우, 체격 좋은 배우이기는 했지만 연기파 배우는 아니었지 않나. 이번엔….
김민준 <다모> 이후면 한 번도 안 그랬다는 거 아닌가? (웃음)
박중훈 솔직히 매력 있는 배우였지 연기파 배우는 아니었지. 이번에 봐라. 정말 놀랄 거다. 김민준 아니면 안될 연기를 했다. 지금 이렇게 기대치를 높이면 안 되는데, 정말이다.

사실 김민준이란 배우와 톱스타의 이미지가 단번에 연결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의 행보는 톱스타를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톱스타를 원했다면 재벌 2세나 실장님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았을까?
김민준 이미지를 낭비하기 싫었다. 사실 <다모> 이후 그런 역할이 정말 많이 들어왔다. 실제로 하기도 했고. 그런데 열심히 하면서도 재미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원준이란 인물은 재미있었나?
김민준 원준은 누구나 톱스타라고 생각하는 자리에 올랐다가 등락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만약 김민준이라는 배우가 실제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톱스타였다면, 바로 그 김민준이 원준을 연기한다면, 관객 입장에선 원준의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의외의 캐스팅이라 여겼고, 관객이 선입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캐릭터라 좋았다.

자신은 톱스타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래도 영화 속 원준에게 공감하지 못했다면 연기할 수 없지 않았을까?
김민준 나 역시 어느 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했다. <다모>로 신인상도 많이 받았고, 광고도 많이 들어왔다. 레드 카펫을 밟고 영화 시상식장에 들어가서 선배님 눈치 보던 기분도 안다. 그래서 매번 원준을 나와 비교했다. 그러면서 감독님과 캐릭터의 심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독님이 “나는 이랬어”라고 이야기하면, “저도 그런 기분을 알 것 같아요”라며 캐릭터를 세공했다.

이 영화를 촬영하며 외로웠다고 말한 것 또한 그 때문인가?
김민준 원준은 감정의 진폭이 굉장히 큰 캐릭터다. 그걸 시간의 흐름대로 순차적으로 찍을 수 없다 보니, 그런 데서 오는 긴장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선 언제나 굉장히 외롭다. 백여 명의 스태프와 함께 있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내 고민은 나밖에 못 푼다.
박중훈 배우들이 외롭다고 그러면 솔직히 말만 그런것 같지 않나. 쟤들은 잘생기고 예쁘고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있으면서 왜 자꾸만 외롭대? 그냥 멋있는 말 만들어낸 것 같고. 그런데 배우들은 밝은 빛을 받으면서, 자신의 음성과 몸짓을 모두에게 드러내면서, 그걸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다. 큰돈을 받았으니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자신이 연기를 못할 땐, 못하는 걸 안다. 아니 어느 배우가 바보처럼 자신이 연기 못하는 것도 모르겠나. 연기는 안 되지, 스태프들은 다 나만 바라보지, ‘레디’ 소리에 부들부들 떨리지, 그리고 평가받지, 그래서 외로운 거다.

배우 출신 감독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겠다.
김민준 외로운 현장에서 감독은 카메라 뒤의 유일한 끈이다. 그 사람조차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외로워진다. 그런데 이번엔 감독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하고 든든했다. 박중훈 배우가 배우 출신 감독, 선배 앞에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그 부담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첫 촬영 이후 많이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같이, 같은 마음으로, 일생을 카메라 앞에 섰으니까.

배우가 배우 출신 감독 앞에 서는 것이 부담되는 것처럼, 배우 출신 감독 역시 배우 후배 앞에 감독으로 서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박중훈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음 문제로 하고, 현장에서 연출하고 연기를 주문하고 영화를 꾸려가는 건 정말 자신 있었다. 나는 28년 동안 이 곳에서 닳고 닳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감독으로서의 나에 대한 신뢰가 두텁지 않았다. 투자자도, 주변 사람도, 가족도, 그리고 같이하는 배우도 아마 51 대 49의 마음으로 했지, 100의 마음으로 나에게 오지는 않았을 거다.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잘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그런데 배우들은 몇 번 찍어보면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나. 게다가 우리에겐 시나리오가 있었고. 그때부터는 서로 신뢰했던 것 같다.

극 중에 “유명세가 사람을 괴물로도 만들더라”라는 대사가 등장하다. 유명한 사람으로 사는 일이란 어떤 건가?
박중훈 내가 지금 마흔여덟이다. 스무 살 때 배우가 되고 유명해진 게 스물한 살 혹은 스물두 살? 이렇게 말하면 재수없을지 모르는데, 음… 유명하지 않은 삶이 잘 기억이 안 난다. 유명한 게 익숙해져버렸다. 그런데 하루 세 번씩 배가 고프니까 배고픈 감각이 익숙하면서도, 그런데도 적응은 안 되니까 배고프면 꼭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나는 유명한 게 익숙하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특히 식당에서 밥 먹을 때 모두가 쳐다보면, 여전히 밥알이 뱃속에서 날카롭게 서는 기분이다. 28년을 이렇게 살았는데도. 그러다 보니까 삶이 좁아진다. 일할 때 말고는 집, 운동, 그리고 청담동이나 한남동의 깊숙한 데 숨어 있게 된다.
김민준 나는 막 다니는 편이다. 불편을 몸으로 부딪치며 체험하고, 기분 나쁘면 툭툭 털어버린다. 가까운 거리에서 “야, 김민준이다, 김민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손가락질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서 설명하는 거다. 삿대질은 한판 붙자는 얘기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생각해보라고, 농담처럼. 나와 십수년을 함께해온 친구들이 옆에서 재미있게 거들어주기도 한다. 이제 조금 노하우를 알 것 같다.
박중훈 다들 하늘의 별이나 달을 우러러본다. 그러면서 “저 달 봐”라고 손가락질도 한다. 유명세라는 게 그렇게 양면성이 있다. 그래도 남들이 알아본다는 것,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준다는 것, 유명하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김민준 물론이다. 식당에서 5천원짜리 백반을 시켜도, 정말 맛있는 거 많이 주신다(웃음).

그래서일까. 아이가 연기에 소질이 있다면 싫어해도 설득해서 배우를 시키고 싶다는 박중훈의 인터뷰를, 배우란 다시 태어나도 도전해보고 싶은 직업이라는 김민준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런데 만약 배우인데, 유명하지 않은 배우라면, 그때에도 같을까?
김민준 배우만큼 멋진 직업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국내외 배우들을 봐도, 영원히 멋있는 모습, 젊은 모습으로 살아 있지 않나. 나에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내 자손은 우리 할아버지 저랬구나 알 수 있도록 기록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이렇게 수많은 삶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냥 잊혀진다는 건 서글프니까.
박중훈 그런데 무명 배우더라도? 유명하지 않더라도? 성공하지 않더라도?
김민준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내 주변에 연극 하는 선배들이 있는데, 현재 자신의 위치가 불행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자신의 좌표를 알고,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캐릭터로 캐스팅해도 자신을 지킨다. 그런 사람들의 에너지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 터지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류승룡 선배도 난타를 7년 하셨지 않나. 그때도 무대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보면서 저 선배는 정말 나중에 장난 아니겠구나, 왜 저렇게 많이 기다리고 숙성을 시키지 그런 생각을 했다.
박중훈 글쎄, 나는 행운이 많았던 배우다. 아이가 세 명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배우가 되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좋은 모습만 보며 자랐다. 당연히 배우로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잘되지 않을 때의 모습은 떠올리지 않을 거다. 그러다 보니 모두 배우란 직업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그중에 소질 있는 아이가 있다면 한 명은 배우가 나오질 않을까? 그런데 걱정이 된다. 배우의 삶에 있어 너무 좋은 모습만 보지 않았나 하고. 여긴 소질 없으면 너무 힘든 곳이다.

배우는 그렇게 누가 알아봐주고, 확인받는 에너지로 사는 사람들이다. 박중훈 역시 지난 28년을 대중에게 확인
받으며 살아온 배우다. 하지만 현장에서 “잘했어!” “멋있어!”는 배우의 몫이지 감독의 몫이 아니다.

박중훈 맞다. 감독은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게 감독의 숙명이다. 그런데 <사랑은 비를 타고>의 스탠리 도넌 감독이 90년대 말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을 때, 탭댄스를 추며 이렇게 노래했다. “감독은 훌륭한 스태프 누구누구누구… 훌륭한 배우 누구누구누구… 감독은 이런 사람들을 뽑아 놓고, 정확한 시간에 세트에 등장하고 끝나는 시간에 나오면 된다. 단, 그 재능 있는 스태프와 배우들을 방해만 안 하면 된다.” 감독이 되어 좋은 건 그렇게 좋은 배우들, 팀원을 잘 이끌어만 나가면 그 사람들이 다 해준다는 거였다.
김민준 그런데 ‘셀프 확인’을 하신다. 배우와 스태프들을 불러 모아선 “야, 이리 와봐, 내가 이렇게 했는데 좋지 않아? 난 좋다고 생각해.” 그래서 다들 그렇다고 끄덕이면 이러시는 거다. “야, 이거 내가 맨날 얘기해야 하니? 나 잘한다고?”(웃음) 그런데 그렇게 다 같이 모여 그 장면을 믿게 되면, 그 다음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이 다음에도 이렇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겠지 하고. 그래서 정말 급박한 상황이라 급하게 찍어야 할 때도, 믿어달라고 하면 믿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이 여지없이 돌아왔다.
박중훈 맞아, 그 장면이 제일 좋았다. 영화에서 드라마어워드 레드 카펫 장면이 있다. 엑스트라도 많고 너무 힘든 장면이었는데, 이제 막 해가 뜬다고 해서 아마 1시간 반도 안 돼서 다 찍었을 거다. 그런데 그 장면이 정말 좋았다.

감독이 된 선배 배우를 보며, 연출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김민준 고등학교 때, 영화를 해야겠다는 꿈을 꿨다. 그땐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도, 나는 언젠가 영화를 하겠구나 그런 생각 말이다. 물론 배우가 될지는 몰랐지만. 그런데 감독님의 연출 과정을 지켜보니까, 지금 생각엔 나에게 그런 재능은 없구나 싶다. 하지만 카메라에도, 사운드에도, 미술에도 관심이 많으니까, 어느 한 분야에 매진해서 영화를 만드는 일원으로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다음에도 또 감독이 되고 싶나?
박중훈 물론이다, 물론이다. 지금껏 배우로 40여 편의 영화를 했다. 최근엔 무얼 해도, 마치 답습하는 기분이었다. 배우 자신도 피로감이 왔는데, 보는 관객들은 얼마나 식상했을까. 배우로서 특단의 결정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가 꽤 오래됐다. 그런데 감독을 하니까 정말 신난다. 다만 한국적 현실에서 감독은 첫 작품이 일정 성과를 내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다. 첫 작품이 그 토대를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개봉을 앞둔 지금 더 떨리겠다.
박중훈 아우, 나는 정말 잠을 못 자겠다(웃음)

박중훈이 입은 가운 형태의 검은색 카디건은 스티브J & 요니P, 하얀색 셔츠는 그라운드웨이브, 검은색 팬츠는 레쥬렉션 제품. 김민준이 입은 모직 소재 코트는 그라운드웨이브, 보랏빛이 도는 면 티셔츠는 레이, 밝은 회색의 체크무늬 팬츠는 브리오니 제품.

박중훈이 입은 가운 형태의 검은색 카디건은 스티브J & 요니P, 하얀색 셔츠는 그라운드웨이브, 검은색 팬츠는 레쥬렉션 제품. 김민준이 입은 모직 소재 코트는 그라운드웨이브, 보랏빛이 도는 면 티셔츠는 레이, 밝은 회색의 체크무늬 팬츠는 브리오니 제품.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목정욱
스탭
메이크업 / 이미영, 스타일리스트 / 김하늘, 헤어 /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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