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는 천재라는 수식어를 듣는 디자이너들이 적지 않다. 스키아파렐리, 장 파투, 이브 생 로랑이 그랬고, 고티에와 갈리아노, 마크제이콥스와 매퀸 등이 차례로 그 수식어를 물려받았다. 요즘은 다들 프로엔자 스쿨러의 잭 매컬로와 라자로 헤르난데스가 천재라고들 한다. 시대를 정의하는 패션을 만들고 있는 이 천재 듀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소감을 더블유에 전해왔다.
우리가 프로엔자 스쿨러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일까? 패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브랜드 이름조차 생소할 수도 있다. 어쩌면 ‘프로엔자 스쿨러’가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이 이름은 두 디자이너의 어머니들이 처녀 시절 쓰던 성을 따와 붙여 만든 것이다). 브랜드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연예인들의 잇백, 공항 패션백으로 유명해진 ‘PS 1’이라는 가방의 이름 정도를 알고 있을 테고, 그보다 더 패션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마크 제이콥스, 캘빈 클라인, 알렉산더 왕과 함께 뉴욕 패션위크의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톱 오브 더 톱’ 디자이너 레이블이며, 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기인 두 디자이너의 졸업 작품을 본 미국 유명 백화점 바니스의 패션 디렉터 줄리 길하트가 그 컬렉션을 몽땅 사들여 화제가 되었다는 것, 데뷔한 지 2년 만인 지난 2004년, CFDA 패션 펀드(미국 디자이너 협회가 신인 디자이너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의 첫 우승자로 선정되었다는 것, 그리고 <W>와 <보그>를 비롯한 정상급 하이패션 매거진의 든든한 후원 아래 파리 콜레트를 비롯한 유럽 패션계의 러브콜이 쏟아졌다는 것, 3년 후에는 미국 패션의 상징적 거물인 오스카 드 라 렌타와 함께 미국 디자이너 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받았고, 같은 상을 2007년과 2011년에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승승장구 커리어를 증명하는 객관적 사실과는 별개로, 우리가 아직 프로엔자 스쿨러에 대해 더 알아야 할, 알고 싶은 점 또한 산재해 있다. 일례로 나는 패션계의 중심에서 일하지만 ‘프로엔자 스쿨러의 옷을 입어봤더니 어떤 느낌이 들었다’라는 타인의 증언은 그리 자주 들어보지 못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하우스들은 대부분 특정한 실루엣이나 시즌을 거듭해 변주하여 발표하는 ‘시그너처 아이템’이라는 유산을 바탕으로 승부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제 겨우 10년을 넘긴 젊은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서는 이와 경쟁할 만한 요소를 부각시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이 패션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이유로는 디자이너들의 성격과 외모(이번 더블유 인터뷰 촬영을 함께한 모델 수주는 ‘너무너무너무 잘생기고 귀여운 오빠들’이라는 표현을 썼다),독립 브랜드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패션의 흐름에 대해 기민하고 속도감 있게 대처할 수 있다는 시스템적인 부분도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프로엔자 스쿨러만 할 수 있는 젊고 급진적이면서도 미학적으로 뛰어난 아이디어가 이들의 승부처였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특히 컨템퍼러리 아트와 젊은 세대의 하위 문화에서 차용한 요소를 자체 개발한 신소재와 날카로운 테일러링에 섞어 패션에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단언하건대, 최근 신진 디자이너들 중에 프로엔자 스쿨러가 최고다. 부유한 사립학교 여학생의 교복을 성숙한 여성성과 관능미를 섞어 넓은 연령대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거나, 클래식한 트위드 수트에 강렬한 네온 컬러와 현대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디테일을 섞는 등의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클럽에서 노는 10대 소녀나 세련된 취향의 커리어우먼,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귀부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의상은 바니스, 버그도프 굿맨, 하비 니콜스와 콜레트를 비롯한 전 세계 1백여 개 숍에서 팔리고 있다. 뉴욕 매디슨가에 위치한 단독 매장은 이들이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지난 2012년에야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그리고 2013년, 또 하나의 프로엔자 스쿨러 매장이 서울에 생기면서 한국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매컬로와 헤르난데스는 숨가쁜 미팅과 생산 일정을 조율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느라 세 번이나 시간을 바꾼 후에 뉴욕 쇼룸에서 더블유 취재팀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팬들과 프로엔자 스쿨러가 만나게 된 감흥을 제대로 전하고자 하는 의욕과 기쁨으로, 이들의 눈은 빛났고 심장은 격하게 뛰고 있었다.
오늘 촬영장에 들어설 때, 둘 다 ‘Crazy day(죽이게 바쁜 날)!’라고 활기차게 소리쳤다. 요즘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가?
사실 거의 매일이 ‘크레이지 데이’의 연속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브랜드와 비즈니스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우릴 흥분시키는 건 물론 기쁜 일이지만 심각하게 바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올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시장 진출이다.
프로엔자 스쿨러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비슷하게 데뷔한 뉴욕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제 전 세계 패션계에서 주목하는 메인 스트림으로 성장했다. 브랜드의 초창기를 돌아본다면 어떤 기억이가장 먼저 떠오르나?
몇 년 사이 급속하게 성장했다. 솔직히 말하면 적당히 안전한 수준까지만 사업을 확장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안주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한 단계 더 위로 밀고 나가는 도전을 택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초기에는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이 많았다. 회사 규모도 작고 직원 수도 적었다. 그러나 회사가 커지고 직원이 훨씬 많아진 2014년에도 우리 둘은 사업의 전반적인 모든 사항에 일일이 다 관여하고 있다. 처음엔 우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디자인과 사업을 모두 다 했는데, 지금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이렇게 큰 오피스를 갖추게 되었고, 세계 곳곳에 매장과 사무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재미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행복했던 순간,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을 들어본다면?
만사가 그렇듯 우리에게도 업&다운이 많았다. 지금 딱 떠오르는 힘들었던 순간은 쇼 바로 전날 오피스의 배수관이 터져서 사무실이 온통 물바다가 된 것! 모델에게 피팅을 하던 도중 그 난리가 벌어져 모두들 자기 몸보다는 쇼 의상을 구하려고 머리 위로 쳐들고 그나마 물 공격을 받지 않은 사무실 이쪽 저쪽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의상은 무사했지만. 그에 비하면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 많다. 우리가 하는 일,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매디슨가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을 때처럼 객관적이고 기념비적으로 기쁜 순간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의 생일 파티를 할 때처럼 단순하고 사적인 시간도 아주 행복하다고 느낀다.
데뷔 초부터 패션계의 거물들이 프로엔자 스쿨러를 후원했다. 눈도 맞추기 어렵다는데, 당신들의 태도는 겸손하지만 늘 당당했다고 들었다. 겁이 없는 성격인가? 실제 둘의 성향은 어떤가?
라자로 헤르난데스 기본적으로 우리는 매우 비슷한 성향이지만, 매일매일 다르기도 하다. 잭은 나에 비해 대체로 좀 더 내성적이고 조용한 반면, 나는 활발한 스타일이다. 아주 심한 것은 아니고 잭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각자가 하는 일이나 원하는 바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하며, 오랜 시간을 한 팀으로 일한 만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캐치할 수 있는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패션계 인물을 인터뷰하다 보면 어린 시절에 패션과 관련된 강렬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성장 배경에서 특히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경험이나 순간이 있나?
라자로 헤르난데스 내 어머니는 마이애미에서 헤어 살롱을 운영하셨는데, 방과 후면 늘 그곳에 있는 패션 잡지를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원래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는데, 어느 날, 마치 계시라도 받은 듯 패션으로 전과했다.
잭 매컬로 내 경우엔 항상 아트에 관심이 많았다. 10대 때는 기숙사에서 혼자 미술을 공부했고, 대학에서는 유리 공예를 전공했지만 최종적으로 패션 디자인을 선택했다. 둘 다 출발은 달랐지만 돌아돌아 결국 패션을 택했고, 그렇게 파슨스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패션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둘 다 아제딘 알라이아를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존경한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프로엔자 스쿨러에서 경험을 쌓은 차세대들이 등장하고 있다. 당신들 밑에서 인턴십을 했던 조셉 알투자라처럼.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멘토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성공으로 향하는 길에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그저 열심히 일했고 열정이 있었다. 지금 프로엔자 스쿨러의 성공은 그간 힘든 노력의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 노력이 아닌 것은 없었다. 만약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의 비전을 실제로 구현시켜주는 멋진 팀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들에게 해줄 말은 이것이 전부다.
프로엔자 스쿨러를 알리게 된 데에는 PS1 백이 큰 역할을 했다. 그 백의 탄생에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
PS1은 학생 가방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리고 로고를 없애서 누가 봐도 브랜드를 알아 차릴 수 없도록 일종의 익명성을 강조했다. 늘 들고 다닐 수 있으면서도 절제된 럭셔리함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반짝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들 수 있는 클래식 백을 만들고 싶었다. 즉, ‘안티 잇백’이 되길 바란 것이다. 그런데 잇백이 된 상황이 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액세서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업도 커졌다. PS1 외에도 한국에서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봄/여름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주로 미술과 여행에서 영감을 받다가 이번엔 인테리어와 리
빙에서 착안했다고 들었다. 주요한 룩이 어떤 것인지도 직접 듣고 싶다.
주요 룩을 꼽자면 칼라 없는 재킷과 넓은 팬츠로 구성된 오프닝 룩, 우리가 개발한 크랙 프린트가 들어간 재킷과 스커트로 된 룩, 우리와 촬영할 때 수주가 입은 메탈릭한 소재의 드레스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이번 컬렉션은 웨스트 코스트의 미국식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 공예품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나무나 가죽처럼 유기적인 것에서 메탈, 태피스트리 등 산업적인 것을 관통하는 소재들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도 소재 간의 믹스 매치다. 부드러운 스웨이드나 가죽을 차가운 크롬 메탈 장식과 매치하는 식으로.
디자이너로서 둘의 역할은 어떻게 구분이 되나?
의견 충돌이 벌어질 땐 어떤 식으로 조율하는지 궁금하다. 요즘 듀오 디자이너들이 많아서 이런 부분을 독자들은 궁금해한다. 우리는 좀 독특하다. 각자의 역할이 시즌마다 자주 바뀌는 편이다. 최초에는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가져오는데,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점차적으로 하나의 큰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식이다. 우리 아이디어와 접근법이 신선하다는 평을 듣는 것이 그런 이유인 것 같다. 오래 같이 일해서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아는 부분이 많은데… 말하자면 우리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한다. 분명한 건, 격렬하게 논쟁할수록 더욱 멋진 컬렉션이 나온다는 것이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의 하나는 스타일링으로, 특히 여러 피스로 구성된 룩이 많다는 건 현대 패션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스타일링을 지향하나?
럭셔리와 정교한 수작업, 창조적인 예술성을 사랑하는 것이 프로엔자 스쿨러가 지향하는 여성성이다. 세련되고 잘 다듬어졌지만 어딘가 살짝 흐트러진 매력이 있는 여자. 우리 컬렉션에서 한 피스보다는 여러 피스로 구성된 룩이 많은 것은 세트로 입거나 다른 것과 입어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즉 여자들이 각자 자신의 감각대로 스타일링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최근 극동 패션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는 상황을 모든 브랜드가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 프로엔자 스쿨러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특히 한국 패션은 매우 빠르고 에너제틱하다. 한국에 매장을 열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프로엔자 스쿨러는 자신감 있고 세련되며, 첨단 테크놀로지에 민감하지만, 동시에 고급 수작업 제품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을 위해 디자인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여성들이야말로 이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패션 시장의 성장과 특유의 다이내믹함은 정말 놀랍다.
한국 여성들이 프로엔자 스쿨러를 어떤 브랜드로 인식하길 바라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럭셔리. 그리고 또 하나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매우 독특한, 우리만 가지고 있는, 남들이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패브릭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매장에 간다면 우리의 옷을 직접 만져봐주길 바란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포토그래퍼
- 김희준(Kim Hee June)
- 모델
- Soo Joo Park
- 스탭
- 헤어 / Seung Hyun Seo, 메이크업 / Sung Hee Park, 어시스턴트 / M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