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가 4대 도시에서 만난 패션 피플들

사람이 미래라고, 어느 기업 광고에서 얘기했던가요? 더블유는 이렇게 믿습니다. 사람이 쇼, 그 자체라고요. 패션위크 기간만 되면 들끓는 도시의 열기는 모두 사람으로 인해 비롯되고, 사람으로 인해 마무리됩니다. 컬렉션은 디자이너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더블유가 4대 도시에서 만난, 이런 사람들이 모두 모여야 비로소 ‘쇼 타임’이 시작됩니다.

PARIS

1. 디보 프랑수아 파티시에
지금 날 찍은 건가? 모델이 아니고? 하하, 내 이름은 디보(Devo Francois). 세계적인 베이커리 업체인 ‘르 팽 쿼티디엥(Le Pain Quotidien) 파리’에 소속된 파티시에이자 케이터링 담당이다. 우리 회사가 튀일리 정원에서 열리는 패션쇼와 계약이 되어서, 여기서 열리는 쇼의 백스테이지에 공급되는 음료와 케이터링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신선한 주스와 커피, 샐러드와 샌드위치, 과일 등을 예쁘게 차려놓기 위해 쇼가 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 어제는 소니아 리키엘, 오늘은 빅터&롤프 쇼를 위해 준비했고, 내일은 뭐더라…. 아, 존 갈리아노군. 난 패션 세계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일 년에 두번, 요맘때가 되면 늘 희한한 사람들을 보는 게 신기하다. 한국에서 왔다고? 이거 10분 보려고 13시간 비행기 탔다고? 당신도 미쳤군! 내가 보기엔 모든 것이 다 미쳐 보인다. 그래도 내가 만든 빵은 정말 맛있다. 백스테이지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얼른 한개 더 먹어봐라.

2. 남현범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
와,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네. 지금 여기(발렌시아가 쇼장 앞- 에디터 주)에서 화보를 찍고 있는 건가? 대단하다. 내 이름은 남현범. 한국에서는 ‘남작가’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은데, 패션위크를 다니면서 스트리트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고 있으며 ‘STREETFSN’이라는 블로그를 방문하면 내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2009년쯤에 우연히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꽤 이름이 알려져 한국 스타일닷컴 등에도 기사를 연재했다. 매 시즌 엄청난 체류비는 어떻게 마련하냐고? (당황스럽게 웃으며) 좀 이름이 알려지면서 미국 <보그>를 비롯한 몇몇 매체와 계약을 했고, 패션 브랜드와의 프로젝트로 돈을 번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는데, 매번 스케줄 짜는 건 좀 골치 아프다. 그래도 현장에 나오면 다시 에너지가 솟는다!

3. 앤 크리스텐슨 <글래머> 패션 디렉터
내 이름은 앤 크리스텐슨(Anne Christensen). <글래머>의 패션 디렉터다. 얼마 전까지 <뉴욕 타임스>의 패션 섹션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최근 자리를 옮겼다. 패션위크? 뉴욕, 런던, 밀란, 그리고 이번엔 파리까지 소화하려니 이제 몸이 좀 힘들긴 하다.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자는 것 같은데… 잠깐만! 미안하지만 나스텔라 매카트니 쇼에 늦었어. 인터뷰를 원하면 내 오피스로 연락해서 비서에게 얘기해줘. 그럼 또 만나.

4. 시그리드 아그렌 모델
어머! 나 시그리드(Sigrid Agren)야! (비주를 해주며) 파리에서 만나니 정말 반갑다. 지난번에 뉴욕에서 함께 촬영했을 때 파리컬렉션에 온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진짜 만났네! 지금 롤랑 무레쇼를 끝내고 나오는 길이고, 이제 잠깐 숨 돌렸다가 랑방 쇼를 준비하러 가야 한다. 10주년이라서 모델들 콜타임이 엄청 빠르다. 그래도 기념적인 쇼에 캐스팅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지금 거의 모든 쇼에서 요청을 받고 있는데, 아마 매니저가 주요 쇼만 고를 것 같다. 정확히 결정된 건 하이더 애커만과 샤넬, 발렌티노, 알렉산더 매퀸 등이다. 아, 더블유 표지 잘 나왔나? 예쁜 컷으로 골라줘. 제발제발제발제발! 다른 쇼에서 또 만나!

5. 하넬리 무스타파타 모델, 블로거, VJ
내 이름은 하넬리 무스타파타(Hanneli Mustaparta). 보통은 하넬리라고 부른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모델 겸 패션 블로거로 유명해졌는데, 점점 내 스타일을 따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내 스타일을 다루는 매체도 생겼을 정도다. 고국인 노르웨이에서는 VJ로도 일하고 있다. ‘런던의 알렉사 청을 잇는 뉴 패셔니스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네타포르테(Net-A- Porter)와 랙&본(Rag & Bone)의 모델로 광고에 나오기도 해서 많이 알려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국 매체에서도 가끔 취재 요청이 왔는데, 어디더라. 하하.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만 찍히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오늘 든 백은 멀버리, 팬츠는 루이 비통 제품이다.

6. 제임스 몰로이 메이크업 아티스트
2002년부터 맥(MAC) 프로팀의 일환으로 백스테이지에 참여했으니, 꼭 10년째다. 첫 번째 쇼는 롤랑 무레(Roland Mouret)였는데, 어느새 나는 제임스 몰로이(James Molloy)가 아닌 맥의 아시아퍼시픽 메이크업 아티스트리 디렉터가 되어 백스테이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패션위크 기간은 정말이지 정신없이 지나간다. 아침에 눈뜨면, 일단 하루 종일 굶을 것에 대비해 배를 든든히 채운다. 한 손엔 헤럴드 트리뷴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트위터를 체크하면서. 아, 물론 스타일닷컴에 접속해 어제 진행된 쇼들의 리뷰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메이크업 키트와 브러시 세트를 챙겨 들고 맥 버스(MAC Bus)에 올라타는 것으로 준비는 끝! 보통 하루에 2개 쇼에 참여하는데, 한 쇼당 콜타임부터 피날레까지 걸리는 시간은 5시간 정도다. 이동 시간까지 치면 꼬박 10~12시간 정도 서서 일하는 셈이다(그것도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패션위크는 나를 설레고 흥분하게 만들지만, 어찌 됐든 지금 가장 갈구하는 건 다름 아닌 마, 사, 지!

7. 귀도 팔라우 헤어 스타일리스트
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이다. ‘귀도(Guido)’ 라는 재미있는 이름 덕분인지, 꽤 많은 사람이 기억해준다. 감사한 일이다. <더블유>와는 두 번째 인터뷰인데, 공교롭게도 오늘 그때와 똑같은 셔츠를 입고 왔다(2010년 3월호). 옷이 이것뿐인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웃음). 오늘은 아크리스 쇼의 스타일링을 디렉팅하기 위해샤요 궁에 왔다. 아크리스는 상당히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우아한 룩이기 때문에 헤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살릴 생각이다. 중앙에서 정확하게 가르마를 타고 자연스럽게 말린 머리. 헤어 끝부분에만 아주 살짝 레드켄의 파우더 그립3을 뿌려 약간의 텍스처를 더했다. 아주 심플하면서도 모던하지 않은가! 내가 만들었지만 참 마음에 든다.

8. 프레데릭 매거진 배포 요원
날 찍는다고? 그럼 먼저 우리 책 한 권 먼저 받고… 나는 프레데릭(Frederic)이라고 하며, 패션위크 기간에 주요 쇼장 앞에서 [Gala] 매거진의 특별판을 배포하고 있다. [Gala] 매거진은 역사 깊은 프랑스 패션 잡지로서… 응? 이미 알고 있다고? 더블유 코리아 에디터? 와우, 좋은 매체에서 일하는군. 패션위크 때 특별판을 배포하는 [WWD]와 [WSJ] 등은 우리의 선의의 경쟁자들이다. 더욱 눈에 띄기 위해 우리 팀은 모두 빨간 점퍼를 입고 보타이를 매고 있다. 하루에 5~6군데의 쇼장 입구를 지키는 데, 일부러 와서 받아가는 사람을 보면 정말 기쁘다.

9. 톰 방토르 오토바이 드라이버
당신이 Xiao인가? (손사래를 치며 모델이 아니라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아니라고? 하이고, 이 아가씨를 어떻게 찾지? 난 톰방토르(Tom Vantorre)라고 한다. 패션위크 기간에 오토바이로 모델들을 쇼가 끝난 후 픽업해 다음 쇼장으로 데려다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막 뜨는 모델들은 하루에 몇 개씩 쇼에 서다 보니 빨리 이동하는 게 필수적인데 당신도 보다시피 파리 교통이 지옥 같아서 차보다는 오토바이가 훨씬 능률적이다. 그런데 자오라는 모델은 지금 처음 픽업하는 거라서, 날 잘 찾아야 할 텐데… 눈이 아주 작고 키가 많이 크지 않은 모델이라고? 알겠다. 찾아볼게. 고마워!

에디터 | 최유경·김희진

LONDON

10. 앨리슨 아크네 백스테이지 헬퍼
나는 아크네 소속으로 스톡홀롬에서 MD로 일하다가 최근에 런던으로 옮겨온 앨리슨(Alison)이다.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이 옷을 잘 입을 수 있도록 챙겨주는데 이번 시즌에는 특히 구조적인 형태가 많아서 나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웃음). 이제 곧 시작하는데 아름답게, 무사히 끝나길 바라고 있다.

11. 올리비아 비디오그래퍼
나는 런던에서 비디오그래퍼로 활동하는 올리비아(Olivia)다. 지금은 [Tank] 매거진에 들어갈 작품을 촬영 중이다. 사진가이기도 하지만 움직이는 영상에 더욱 재미를 느끼고, 특히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이 긴장하는 얼굴 표정 같은 것들이 그대로 읽히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긴장을 풀어줄 때도 있는데 그건 비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

12. 크리스티아나 영국 패션 협회 사무국 직원
나는 런던 패션위크를 총괄하는 British Fashion Council에서 일하는 크리스티아나(Christiana)다. 프레스와 사진가들을 관리하며 패션위크 전에 그들의 리스트를 정리, 등록, 현장에서 원활히 작업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 4~5년간 지켜본 결과 잠재력 있는 신인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후원하여 젊은 패션 시장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BFC의 기획력을 보며 감동했다. 그런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 좋은 패션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3. 가랑스 도레 스트리트 사진가
나, 가랑스 도레(Grance Dore)는 사진가이긴 하지만 마르세이유에서 일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그림을 블로그에 포스팅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패션에 관한 그림들이 있어서 그랬던것 같다. 팬들이 생기고 이름이 알려지자 파리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패션위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다고. 그때부터 사진 작업도 같이했는데 반응이 더 좋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7~8시즌을 참여했는데 쉴 틈 없이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언제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힘들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보는 패셔너블한 소재들이 커다란 영감이 되어준다. 촬영 할 때, 블로그에 스토리를 풀 수 있도록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가방이나 재킷에 포인트를 주거나 포즈를 독특하게 취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14. 토미 톤 스트리스 사진가, 블로거
나는 스트리트 사진가이자 블로거, style.com에 칼럼을 운영하는 토미 톤(Tommy Ton)이다. 런던 패션위크에 참석한 지 5년째 되었는데 내가 스트리트 패션을 담기 시작한 첫 도시라 애착이 있다. 다른 도시보다 훨씬 과감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패션을 선보인다. 가끔 너무 멀리 가기도 하는데 그것이 런던의 매력 아닐까. 촬영을 할 때는 액세서리나 백에 포인트를 준 룩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순간을 캐치하는 본능이다. 개인적으로는 과장된 슈즈를 좋아한다. 프라다의 파이어 슈즈를 신은 사람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하루 종일 촬영한 다음 집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에디팅을 한다. 낮엔 찍고, 밤엔 편집하는 것이 나의 일과인 셈이다. 패션위크 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에디토리얼 일이 있고 크고 작은 작업의 연속이기 때문에 휴가가 따로 없는 것이 아쉽긴 하다. 아, 웹상으로 본 적 있다. 강렬한 커버가 시선을 항상 끈다. 거의 매달 ‘클릭’해서 본다.

15. 앨리스 패션위크 핼퍼
패션 프로모션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 앨리스(Alice)다. 패션위크 기간에 자원하여 헬퍼로 일한다. 서머싯 하우스에서 사람들을 안내하고 브로슈어를 나눠 주는데 날이 좋을 때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고 흐린 날은 확실히 반응이 덜하다. 나 오늘, 당신이 촬영한다고 해서 신경 좀 썼는데, 사진이 잘 나오길 빈다.

16. 벤 DJ
Playlister.fm이란 DJ레이블을 운영하고 있고 런던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파티에서 디제잉을 하는 벤(Ben)이다. 아크네말고도 템펄리 런던, 아쿠아스큐텀의 음악을 담당했고 다음 주에 스텔라 매카트니 쇼를 하기 위해 파리로 건너간다. 음악은 순간적이기 때문에 쇼를 앞두고는 긴장을 하게 되는데 쇼를 앞둔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음악을 즐겨야 듣는 사람도 신나게 즐기니까, 그걸 생각하며 몸을 흔든다.

17. 케이 시큐리티 요원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는 언제나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린다. 휴. 당신도 좀 떨어져야겠다. 나는 시큐리티를 담당하는 케이(Kay)다. 있는데 원래는 던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일하며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에서만 안전 요원으로 일한다. 이번 시즌에는 쇼장입구가 좁아 통제하는 데 더 힘이 들었다. 당신에게 터프하게 군것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일인걸.

18. 조지 보디가드
나는 헝가리에서 온 조지(George)다. 시큐리티 및 보디가드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으며 리하나, 네요, 스눕 독 등의 보디가드 경험이 있다. 패션쇼 시큐리티 일은 이번이 처음인데 사실 패션에 관심이 별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더 큰 패션쇼를 맡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에디터 | 김한슬

Milan

19. 알렉 웩 모델, 가방 디자이너
어떤 쇼에 서냐고?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델라쿠아의 쇼 No.21을 보러 왔다. 간혹 친구인 디자이너의 제안에는 기꺼이 응하는 편이긴 하지만, 지금은 내 가방 브랜드 디자인에만 집중하고 있다. 브랜드의 이름은 내 이름인 알렉 웩(Alek Wek)에서 이름을 딴 Wek1933!

20. 토니 음향감독
이탤리언 채널의 패션 프로그램 ‘Non solo moda’의 음향감독을 맡고 있고 이름은 토니(Tony). 컬렉션 취재 경력은 25년쯤 됐다. 하루 평균 쇼 4개 정도를 취재한다. 그런데 요즘 어린 모델들은 클론처럼 똑같이 생겨서 기억하기도 어렵고, 너무 자주 바뀌니 영 관심이 안 간다. 최근 패션업계의 불황을 느끼냐고? 절대! 지난 시즌 돌체&가바나 못 봤나? 아무리 힘들어도 패션은 그걸 들켜서는 안 된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화려하게 보여져야 된다.

21. 지오반니 패션 TV 감독
나는 패션 프로그램 ‘tvModa’ 감독 지오반니(Giovanni). 4대 컬렉션 외에도 홍콩, 브라질, 일본에도 간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는 간 적이 없다. 언젠가 꼭 서울 패션위크에 가봐야겠다. 이탈리아의 불경기가 패션위크에 미치는 영향? 흠… 캐비아와 샴페인이 사라졌다!

22. 클라우디아 무가지 배포원
나는 쇼장 앞에서 이라는 무가지를 나눠주는 IED의 광고&마케팅 부서 인턴 사원 클라우디아(Claudia). 페이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인 패션 마케팅의 최전방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 그럭저럭 반갑게 잡지를 받아주는데, 패션위크 이튿날부터는 ‘이미 받았어요’가 태반이라 쉽지 않다.

23. 베네데타 패션쇼 헬퍼
No.21 쇼의 헬퍼를 하고 있다. 사실 나는 패션의 F도 모르는 심리학과 학생, 베네데타(Benedetta)라고 한다. 오히려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이다. 양장 장인인 엄마 덕에 패션 쇼장까지 흘러들어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밀란이라는 패션 수도에 사는 덕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같다. ‘패션은 절대 관심없다!’고 소리치는 나도 이렇게 패션을 피부로 접하고 살고 있으니 이태리에서 패션을 빼고 논할 수있는 건 없는 듯하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이번 시험 때 패션과 심리학에 대해 레포트를 제출해볼까? 꽤 흥미로운 연구 과제가 될 것 같지 않나?

24. 마리나 스테이지 의상 수선사
나는 패션쇼 기간 백스테이지에서 의상을 수선하는 작업을 하는 마리나(Marina). 벌써 10년째다. 엠브로이더리 장식이 많은 요즘은 아주 자잘한 작업 때문에 무척 곤혹스럽다. 패션이고 뭐고 할 일이 너무 많아지는 거라 슬프다. 몇 해 전에 모델이 옷에 몸을 급하게 구겨 넣다가 바느질 선을 왕창 찢은 적이 있었는데, 모두가 예민한 상태로 내 손만 지켜보는데 긴장해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후다닥 수선을 마친 순간, 날 구세주처럼 봐주더라. 그땐 기분이 너무 좋았다.

25. 다비드 케이터링 스태프
구찌 직원이냐고? 나는 케이터링 마케팅 회사에 소속되어 쇼장에서 프레스들에게 케이터링을 제공하는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다비드(Davide)다. 호텔 경영학과 학생이고 패션위크와 각종 행사 등에 참여한다. 페이는 70유로 정도. 가끔 몰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내일 있을 프라다 쇼에서도 날 볼 수 있을 거다.

26. 나탈리아 에트로 홍보담당
내 이름은 나탈리아(Natalia). 에트로의 아시안 퍼시픽 디스트리뷰션 매니저다. 내 역할은 중요한 바이어를 선정해 쇼에 초대하고 그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 이번 쇼 바로 전이 바이어들을 위한 공식 세일즈 기간이었고, 쇼가 끝나면 또다시 프리 컬렉션 발표와 세일즈, 바로 남성복 컬렉션이 눈코뜰 새 없이 이어진다.

27. 린다 파고 바이어
나는 버그도프 굿맨의 패션 부서 부 책임자이자 바이어인 린다 파고(Linda Fargo)다. 프라다, 펜디, 구찌 등 모든 빅 브랜드의 옷을 바잉한다. 하지만 밀란은 워낙 신인에게 냉정한 곳이라 캣워크 쇼를 보고 신예를 찾기란 불가능하고, 멀티 브랜드를 다루는 작은 쇼룸 등을 방문해 젊은 친구들을 접한다. 훌륭한 인재는 많은데, 통로나 시스템이 부족한 게 늘 아쉽다.

28. 이반 라투아다 백스테이지 사진가
4년 전부터 백스테이지 전담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이반 라투아다(Ivan Latuada)라고 한다. 각 쇼장의 구조와 선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재빨리 파악하는 순발력과 기민함이 요구된다. 모델들이 날 보고 좋은 포즈를 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친화력도 필요하고.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항상 친절한 막달레나! 시리도 착하고… 아! 한느 개비가 한창 냉랭하게 굴었는데, 최근엔 너무 스위트해졌다. 남자친구가 생겼나? 아무튼 기분이 좋아 보인다.

29. 로빈 지반 저널리스트
나는 <뉴스위크> <더 데일리 비스트>의 저널리스트, 로빈 지반(Robin Givhan). (손목시계를 보며) 1시간 전 즈음 리나테공항에 도착했고, 바로 쇼장으로 왔다. 쇼 중간중간 리뷰를 쓰고, 저녁 먹은 후 밤 12시까지는 원고를 쓰는 데 할애한다. 사실 이태리는 저녁 식사를 늦게 시작하는 것이 문제다. 밤 9시까지는 호텔 방 컴퓨터 앞에 앉으려고 애쓰는데, 중요한 저녁 행사라도 있으면 마음은 콩밭에 가 있어 즐기지도 못한다. 봐야 할 쇼는 많지만 그래도 밀란에 왔으니 쇼핑할 시간은 만들어야겠지? 아르마니 아웃렛은 꼭 들를 예정이다.

30. 다프네&알레그라 응급요원
우리는 컬렉션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안전 사고를 대비하는 응급 요원이다. 나는 다프네(Dafne)고 의학을 공부 중인 학생이다. 이 친구의 이름은 알레그라(Alegra)이고 베이커리 매니저인데 봉사 활동으로 응급 단체 일에 참여하고 있다. 우린 겪어보지 않았지만 가끔 살인적인 일정으로 기절하는 모델도 있었다고 하더라. 패션쇼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브랜드의 요청으로 인해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이 저 높은 힐을 신고 다치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31. 다프네 그로에네펠트 모델
으! 드라이버가 왜 이렇게 안 올까? 나는 모델 다프네 그로에 네펠트(Daphne Groeneveld)고 지금 막 No.21 쇼를 끝내고 나왔다. 쇼 초반이라 몇 개의 쇼에 서게 될지는 모르지만 밤 8시인 지금부터 캐스팅과 피팅이 줄줄이 남아 있다. 제일 기대되는 쇼는 나를 무척 예뻐해주는 딘&댄의 디스퀘어드2! 이건 캐스팅이 확정됐으니, 쇼에서 나를 볼 수 있겠지!

32. 안나 델로 루소 일본 <보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나는 일본 <보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나 델로 루소(Anna Dello Russo)이고 지금 칼 라거펠트를 만나기 위해 펜디 백스테이지에 가는 길이다. 컬렉션을 위해 몇 개의 수트 케이스를 가져왔느냐고? 모두 들고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리 의상을 준비해서 우편으로 보내놓는다. 이번 시즌 나의 야심작은 성모 마리아를 연상케 하는 헤어밴드다. Alan Journo라는 브랜드고, 밀란 비아 델라 스피가에 숍이 있는 데, 내 상상을 뛰어넘는 근사한 물건으로 넘쳐난다.

33. 유진 슐레이먼 헤어 디렉터
나는 비달 사순의 헤드 헤어 디렉터 유진 슐레이먼(Eugene Souleiman)이고 레이디 가가의 헤어스타일링도 맡고 있다. 밀란에서는 에트로를 비롯해 5개의 쇼만 담당한다. 진짜 전쟁은 파리에서 시작된다. 14개의 쇼를 맡게 되었으니 말이다. 컬렉션 관련 시안 미팅은 4~5회 정도 계속되고 준비 과정이 철저하고 긴 만큼 고되지만 컬렉션 현장에서는 그 작업에만 집중하면 되니 그나마 덜 바쁘다.

34. 브라이언 보이 블로거
브라이언 보이! 저 소리들이 들리나?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내 이름을 부르며 질문하는 통에 너무 정신이 없다. 나는 bryan
boy. com을 운영하는 블로거이고 지금은 구찌 쇼에 초대되어 왔다. 밀란 패션위크를 위해 수트케이스 여섯 개정도를 가져왔다. 마지막 두어 개의 트렁크에는 무슨 옷과 액세서리가 있는지도 모르고 일단 옷장에 있는 것을 쓸어넣어 왔다. 이따 저녁 때 호텔에서 찬찬히 좀 살펴봐야겠다.

35. 파비오 코비치 보안업체 책임자
나는 보안업체 Eventservices의 책임자 파비오 코비치(Fabio Covizzi)다. 프라다, 펜디, 구찌, 질 샌더를 비롯해 이태리 최고 브랜드의 보안을 25년째 맡고 있다. 불황이라 그런가? 요즘 부쩍 컬렉션장에 슈퍼 스타들의 방문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나는 편해졌다, 하하.

36. 안나 백스테이지 의상 수선사
나는 오로지 백스테이지에서만 일하는 수선사 안나(Anna)다. 여기서 백스테이지란 모델 피팅 작업에서 시작해서 컬렉션 당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모델 피팅 작업은 새벽 늦게까지 이어지는데, 피팅 시간에 늦게 도착하는 모델을 하염없이 기다릴 때는 그 예쁜 얼굴들이 정말 밉다. 보수가 얼마냐고?(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에이, 그건 말하면 안 되지 않나? 정년 후 한 시즌 때만 하는 직업으로 보면 나쁘지 않다. 평소 때에는 우리 손주들 봐야 하니까.

37. 지오반나 바탈리아 스타일리스트
나는 [W]의 컨트리뷰팅 스타일리스트이자 패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지오반나 바탈리아(Giovanna Battaglia). 지금은 모스키노의 로셀라 자르디니를 만나러 백스테이지에 와 있다. 오늘 입은 옷? 내가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No.21의 셔츠와 준야 와타나베의 가죽 트렌치코트다.

38. 스테파노 통키 [W] US 편집장
오호, 한국 더블유 팀! 반갑다. 나는 US의 편집장 스테파노 통키(Stefano Tonchi)다. 매달 내 책상 위에 올려지는 더블유 코리아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인쇄도 좋고, 페이지도 아주 많고, 퀄리티가 너무 훌륭하더라. 참, 더블유 코리아 창간 7주년을 위해 인터뷰를 했는데, 잘 나왔는지 궁금하다.

39. 프랑카 소차니 <보그> 이탈리아 편집장
나는 <보그> 이탈리아 편집장 프랑카 소차니(Franca Sozzani)이고 지금은 프라다와 엘자 스키아파렐리 전시 간담회에 와 있다. 오랜 기간 편집장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 한 잡지의 수장을 길게 유지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실제로 디렉팅을 잘 못하고, 결과가 나쁘다면 벌써 그만두지 않았겠나? 이 필드는 가혹하고 냉정하다. 그런데 내가 가벼운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티라미수도 먹지 않을 것 같다고? 흠.. 티라미수가 어떤 맛이었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