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셸 빌모트는 서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서울의 관문인 인천공항 내부를 설계했으며, 도심의 갤러리, 주택, 자신의 이름을 딴 타운하우스까지 이 프랑스 건축가의 존재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예술을 즐기는 공간으로서 집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진짜 건축이란, 진짜 삶을 담는 그릇이다.
파리, 그의 사무실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
유수의 갤러리인 가나아트센터와 인사아트센터를 설계한 사람이며, 한국 미술을 사랑하는 컬렉터 로 유명한 장 미셸 빌모트니까. 그리고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그의 오피스를 둘러봤다. 박서보와 배병우, 이응노, 노상균 작가의 작품이 차례차례 눈에 띄었다. 한국 작가의 것들을 포함한 다수의 그림과 사진, 책과 건축물 모델, 아트 오브제들로 둘러싸인 사무실에 파묻힌 장 미셸 빌모트의 덩치는 동그마니 작았다. 감기 기운에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던 이 백발의 건축가는 사진을 촬영할 때는 몹시 수줍어했지만 더블유의 이니셜 W와 자신의 이름 첫 글자가 같다며 천진하게 기뻐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특별한 만남으로 느껴지네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런 만남들 이라고 생각해요. 친구와의 대화, 아티스트와의 만남, 그리고 오늘 우리의 만남 같은 것 말이죠.” 건축가들 가운데는 언제 어디에 건물을 짓든지 자신의 예술성을 떨치는 인물이 있다. 빌모트는 분명 그런 부류는 아니다. 그가 설계한 장소에 제법 가보았음에도 회상하기가 쉽지 않은 걸로 보아 그리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무실 1층의 리셉션에서는 빌모트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계속 LED TV 화면으로 보여주었는데 커다란 복합 운동 경기장부터 공공 건물, 개인 주택을 거쳐 작은 가구까지 무척 다양했다. 동행한 더블유의 파리 통신원은 자신의 집 주방에서 사용하는 칼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빌모트는 최근의 스타 건축가들이 그러하듯이 건축물뿐 아니라 가로등 같은 도시 디자인 요소들이나 제품도 디자인한다. “도시는 마치 사람이 사는 집과 같아요. 집 안의 모든 집기나 조명, 식물 등의 요소가 보기 좋게 꾸며지듯이 도시 역시 사람이 살기 편하게 정비해야 하죠.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술품의 존재가 중요해요. 예술은 공간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거든요.” 한국에서도 홍익대학교 건축과 학장을 지내기도 한 빌모트는 최근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 단체를 하나 세웠다. 일종의 공모전으로, 매년 1000여 명 정도가 참가하는 경합에서 뽑힌 학생에게 베니스 여행 기회와 장학금을 제공한다. 자신의 넓은 집 또한 베니스에 짓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은 주방이 아주 커서 식탁이 넓고, 사람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곳이다. “나에게 아이디얼한 집이란, 우선 커다란 주방이 있어야 하고, 커다란 식탁이 있어서 가족과 친구들이 앉을 수 있어야 하며, 집 안에 벽난로가 있는 커다란 서재가 있어야 해요. 티비는 없어도 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집의 영혼이죠.” 듣고 나니 나무와 콘크리트가 담담한 직선으로 어우러지는 그의 건물에서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던 일이 몹시 당연하게 느껴졌다. 빌모트는 우리가 건물에서 받는 강렬한 인상보다, 그 안에 담기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당신은 서울에 여러 작품을 설계한 건축가다. 자주 방문하고 일하면서 관찰한 서울은 건축가로서 바라보기에 어떤 도시인가?
서울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공간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도시다. 굉장히 생동감 있고, 움직임이 많은 도시임과 동시에, 복잡한 관광 구역과 로맨틱한 마을이 함께 있다. 예를 들어 인사동은 과거와 미래의 교차로 같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평창동 역시 흥미롭다. 산들이 많아서 건축물을 많이 세울 수 없는 동네지만, 한편으로 자연이 그 동네를 지켜 준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산다면 평창동에 집을 짓고 살 것이다. 우리가 이태원, 평창동 등등 이렇게 동네 이름을 말하는 것도 재미있다. 한강이 서울을 둘로 갈라놓는 것도, 한강주변의 고수부지가 만남의 장소로 쓰이는 것도 재미있다. 사람들이 주말에 다 나와서 그곳 에서 만나고 운동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른다는 점은 파리도 같다. 강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서울이 더 창의적이라 생각하나?
서울이나 파리나 잘 활용하지는 못하는 거 같다(웃음). 한강에서 받은 인상은, 서울의 가장 큰 애비뉴 같다는 느낌이었다.
한강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 단지, 그리고 높고 특징적인 건축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에게는 오히려 예전에 본 클래식한 공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비원 같은 곳 말이다. 그리고 63빌딩도 떠오른다. 내가 63빌딩을 방문했을 때 꼭대기 층에 있었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그 사이렌이 연습용이라고 말했는데, 그 순간 군사용 비행기가 창 밖으로 휙 지나갔다. 커다란 빌딩 꼭대기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밖으로는 전투기가 지나간다고 상상해보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웃음).
아마 민방위 훈련 날이었나 보다(웃음). 최근에는 어떤 프로젝트들을 맡고 있는가?
언제나 커다란 프로젝트들이 복수로 진행 중이다. 최근에 진행한 스펙터클한 작업으로는 니스의 운동장을 꼽을 수 있겠다. 4만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으로 축구장 같은 용도로 쓰일 것이다. 또 파리에 변호사협회 건물을 설계하는 중이다. 방금 끝낸 프로젝트 중에는, ‘라 뮤추알리테’라고 하는 파리의 공연장이 있고, 모나코의 하이라이징 건물도 디자인했다. 얼마 전 시작한 프로젝트 중에는 도시 미관에 관한 것도 있다. 파리 트램웨이 2호선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대전에서 열린 대전문화원 공모전에 당선됐다(한글로 된 상장을 보여주며).
날짜를 보니 바로 어제인가 보다.
그렇다. 당신들이 오는 줄 알고 보내 온 거 같다, 하하.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런 도시에 디자인적 요소들이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도시는 마치 사람이 사는 집과 같다. 집 안에 모든 집기나 조명, 식물 등의 요소가 보기 좋게 꾸며지듯이 도시 역시 사람이 살기 편하게 정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를 집처럼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예술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당연하다. 예술품의 존재는 그 공간에 특성, 즉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고 다른 장소와 차별화시킨다. 마치 어떤 상징이나 신호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은 개인이 주택을 지을 때도 어떤 컬렉션을 어떻게 배치할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큰 공공 시설일수록 퍼블릭 아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기서도 건축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생각하나?
물론이다. 프랑스에서는 건축가와 예술가가 함께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발코니나 현관을 데커레이션 주물 뜨는 것이 모두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성당의 장식 같은 것도 아티스트와 건축가의 협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국 클라이언트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일을 한다. 나라별로 건축을 대하는 관점이나 특징이 있을 것 같다.
클라이언트 각각의 캐릭터가 있고, 나라마다 그들의 문화가 있고 행동 양식이 있다. 러시아와 한국의 클라이언트의 특징이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들은 계획적이다. 작업장은 항상 구별되어 있고 정리되어 있다. 깨끗하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이태리 사람처럼 저돌적이기도 하다. 가나아트센터를 작업할 때 건축주와의 작업은 특히 흥미로웠다. 그가 원하는 것을 세세하게 말하면 난 머릿속에 그가 말한 것을 스케치하곤 했다. 한국인이랑 일하는 것은 정말 좋으며, 물론 한국 미술도 마찬가지다.
한국 작가들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컬렉션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나, 좋으니까 하는 것이고 맘에 들어서 사는 거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문화다. 그 문화를 좀 더 아는 것 같아서 좋다. 정기적으로 많이 사는 편이고 배병우를 좋아한다.
큰 예산을 움직이며, 한번 지으면 몇십년 돌이킬 수 없는 건축 분야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건 가벼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당신만의 소신이나 원칙이 있다면?
내가 전체적인 것에 대해 관여하고, 각 프로젝트마다 헤드들이 그 밑을 관리한다. 우선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해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이 하는 말에 그들이 원하는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뽑는지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직원을 뽑을 때 언제나 직접 관여한다. 그러고 나서 내 스타일을 알려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설명하면 그 팀의 팀장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더 잘 그려줄 수 있다. 이렇게 사람들과 서로 보안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가로서 성공하려면 어떠한 자질이 가장 중요한가?
궁금증, 호기심이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당신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을 지나갈 때 보는 발코니, 건물의 높이 등등 모든 이미지를 계속 보면서 실제 스케일이 어느 정도 될지 가늠해보며 항상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건축가란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특히 많이 생각하는 사람인 듯싶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족과 우정. 그 다음은 예술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한국 아티스트들을 매우 좋아한다. 이우환의 작품은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못 샀다. 작가와는 친하게 지내서,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엽서를 썼다. 그에게 언제 같이 보르도 와인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아티스트를 만나서 그의 새로운 작업에 대해 얘기하는, 그런 대화를 사랑한다. 지금 우리가 함께 있는 것 또한 중요한 만남이다. 게다가 잡지의 이름이 W이지 않나? 내 이름의 이니셜처럼(웃음).
그러고 보니 더욱 의미로운 만남으로 느껴진다. 가족과 우정, 그리고 예술을 중요시하는 당신에게 이상적인 건축이란 어떤 것인가?
이상적 건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만약 존재한다면 굉장히 권태로울 것이다. 왜냐면 건축에 앞서 장소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어떤 환경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태리의 토스카나 같은 곳인지, 멕시코의 바라비안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만일 이태리 북부 토스카나의 어딘가라면 나무 옆의 돌로 된 집이 이상적일 것이다. 이런 식의 이상적인 조합은 아주 많을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떤 장소인지가 중요하고, 그 다음은 어떤 건축물이 들어가는지가 중요하며, 그 다음은 거기에 누가 사는가의 문제다. 근처에 친구들이 살고 있다면 더 이상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백 가지의 조합 가운데, 당신 자신에게 이상적인 집은 어떤 모습일까?
나에게 아이디얼한 집이란, 우선 커다란 주방이 있어야 하고, 커다란 식탁이 있어서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앉을 수 있어야 하며, 집 안에 벽난로가 있는 커다란 서재가 있어야 한다. 방과 화장실은 동쪽을 향해 있어야 한다. 왜냐면 그쪽이 해가 뜨는 방향이니까. 많이 크지 않아도 되고 동쪽을 향해 있는 커다란 샤워실, 커다란 부엌에 커다란 식탁에 커다란 서재에 벽난로. 티비는 없어도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집의 영혼이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조보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