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와 음악 그리고 패션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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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공작새 같이 화려한 미카는 자신이 떠들썩한 파티, 패션쇼나 사교 모임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아동복을 만들던 어린 시절의 추억, 오트 쿠튀르 장인들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자기 집이 있는 런던이나 마이애미보다 남자들이 옷을 잘 입는 서울이 더 흥미진진한 도시라는 이야기를 미카와 나눴다. 어쩌다 보니 음악보다 패션 이야기가 많았다.

한국에 유독 자주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뮤지션 들이 있는데 미카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서울의 팬들이 그를 매우 사랑하니까.따라 부르기 좋은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 큰 키로 뛰어다니며 무대를 누비는 춤과 악기 연주, 합창단부터 인형극까지 동원하는 퍼포먼스와 무대 연출, 무엇보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끼와 에너지가 미카의 라이브에는 넘친다. 공연을 이틀 앞두고 더블유와 만난 미카는 내한 아티스트들이 종종 말하는 “한국 관객이 유독 열정적이다”라는 코멘트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세계 어느 도시에 가도 관객들은 열정적이며, 이런 평가는 클리셰일 뿐이라고. 대신 그에게 한국 관객은 호기심이 강하고, 디테일을 꼼꼼하게 살피며, 아티스트가 어떤 시도를 해도 함께 따라오는 모험심 넘치는 사람들이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 두 번째 날인 5월 24일 밤 서울 사람들의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는 미카의 사진과 영상, 그리고 ‘체조경기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는 후일담으로 가득 찼다. 그가 앞으로의 여정을 어디로 이끌며 호기심 어린 리스너들이 어떻게 따라갈지는, 새 앨범 <No Place In Heaven>이 공개되면 더 선명해질 것이다.

당신은 내가 만나서 함께 촬영한 인물 가운데 누구보다 더 꼼꼼하게 오래 의상을 골랐다. 옷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당신만의 스타일 원칙이 있나?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경계하려고 한다. 패션의 영역은 빠르게 변화하고 늘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새롭기 때문에 각광받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런 선택은 2년만 지나도 이상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클래식한 룩을 좋아한다고도 볼 수 있을까?

나에게 패션은 성스러워서 숭배해야 할 대상도, 그 자체로 크게 의미 있는 무엇도 아니다. 옷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클래식보다는 모던 엘레강스, 시간을 초월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당신이 볼 때 어떤 디자이너들이 그런 ‘모던 엘레강스’를 갖고 있나?

남성복에서는 재단과 실루엣이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약간의 위트와 장난스러움, 텍스처… 이런 것을 잘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몇몇 있다. 발렌티노에게는 그저 클래식한 것만이 아니라 동시대적 우아함이 존재한다. 구찌의 새로운 방향도 좋아하고, 라프 시몬스도 뛰어난 디자이너이며, 크리스 반 아셰도 특히 본인의 레이블에서 남성의 실루엣을 다루는 데 탁월하다. 여성복에서는 발렌티노가 역시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 중 하나고, 아제딘 알라이아는 여성복 재단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즌 톰 브라운 여성복 역시 훌륭했다. 너무 무대 의상 같은 소재만 제외한다면.

당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발렌티노가 슈즈를 만들어준 걸 봤다.

벌써 2년 동안 여러 켤레를 제작해주었다. TV에 출연해서 라이브를 하는데, 특별한 의상이 필요했지만 단순한 무대 코스튬을 입고 싶진 않았다. 뭔가 패션과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옷이 필요했고, 우리 어머니가 발렌티노의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와 피에르 파올로의 디렉팅을 무척 좋아해서 미팅을 제안했다. 만나서 서로 잘 통한 이후로는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동안 단 하나뿐인 의상을 제작해주고 있다. 발렌티노 쿠튀르 아틀리에에는 나를 담당하는 작은 팀이 있어서 의상을 제작해주는데, 마치 예술 작품 같다. 맨즈 쿠튀르라고 하면 그냥 고급 맞춤복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빌로 스타일의 비스포크 수트와 남성 쿠튀르는 완전히 다르다. 쿠튀르에는 섬세한 수공예가 가미된다. 다양한 종류의 자수, 바느질, 아플리케, 재단 기술이 쓰이고 그 결과물은 아틀리에의 실력에 좌우되는 것이다. 발렌티노는 실루엣은 클래식하게 가져가면서 몸에 붙게 만들어서, 한 번 입고 춤을 추고 나면 망가지기 때문에 두 번은 입을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콘서트장에서만 존재하는 셈이겠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웃음). 쿠튀르 의상은 쉽게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지만 마치 미술관의 작품처럼 동경하고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 존재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당신도 처음부터 패션계의 좋은 친구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다.

물론이다. 좋은 스타일을 갖는 데 꼭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열다섯 살짜리도 스타일을 가질 수 있고, 아무리 큰 부자라도 스타일이 없을 수 있다. 자기 스타일이 있으려면 담대함, 그리고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앨범을 준비할 때는 돈이 없어서 누나와 친구들이 런던의 구제 옷가게와 갭에서 산 재킷을 잘라내고 새로 재봉해 의상을 만들었다.

컬래버레이션하는 또 다른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있나? 

크리스찬 루부탱에 남자 스니커즈가 없던 시절인 6년 전에 누나가 전화해서 내가 신고 춤출 수 있는 슈즈를 제작해줄 것을 제안했고, 지금은 인기 있는 제품이 되었다. 패션과 나의 관계는 관례를 벗어나 있다. 디자이너들과 직접적으로 우정을 나누고 재미와 스토리텔링을 함께 추구하는 관계이며, 홍보대행사나 계약서, 매니저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함께 크리에이티브한 과정을 거친다.

예상보다 더 깊이 패션 하우스와 연루되어 있는 것 같다.

패션쇼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거기 오는 사람들은 사납고, 쇼장은 마치 무시무시한 카니발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패션업계에서 일하지 않는 파티 피플이 많이 오는데 그런 분위기가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럼 음악계 사람들이 낫나?

아니, 최악이다(웃음). 그들 또한 비슷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레이블 파티 같은 데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 있나?

친밀한 소수의 관계 속에 있다. 어느 업계이건 창의적이고 순수한 의도를 계속 지켜가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사교 모임을 피해야 가능한 것 같다.

첫 앨범  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삶이 빠른 속도로 바뀌었을 것 같다.

초창기부터 사교계에 속하지 않아도 음악을 잘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요란한 생활과는 거리를 뒀다. 투어하느라 바빠서 다른 데 신경 쓸 시간도 없고. 오히려 음악 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관계를 이어오면서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에 화려한 파티가 갑자기 내 삶을 채울 일은 없었다.

서울에 와서 ‘탐미주의자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도시’라는 얘기를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 오래 산 사람의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데.

런던과 마이애미에 집이 있는데, 놀러 오는 이들은 다들 좋아하지만 나는 지겹다고 한다.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는 여성보다 남성의 스타일이 흥미롭다. 디자이너 들도 위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방문에서 디자이너 고태용도 만났다고 들었는데

뉴욕 패션위크 때 비욘드 클로짓을 발견한 어머니가 멋진 옷이라고 하시더라.

패션에 대한 어머니의 감식안이 대단한 것 같다.

디올 본사에서 오래 일했고, 삭스피프스 애비뉴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아동복 레이블을 우리 집 거실에서 운영하기도 했다. 직원이 8명쯤 됐다.

그런 성장 배경이 옷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관심과 무관심을 다 설명해준다(웃음). 어린 시절 새벽에 자다 깨서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갈 때면 누군가 거실에서 밤새 옷을 만들고 있었다. 새 옷 냄새를 맡으면 여전히 주말마다 엄마가 시장에서 옷감을 고르고 구입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을 비롯해 자신의 삶과 경험을 곡에 담는 편인데, 경쾌한 멜로디에 다소 어두운 가사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대비를 즐기는 편인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 음악은 어쩌다 보니 팝이 된 경우다. 내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도 의도라기보다 우연히 벌어진 일 같은데, 아마 경쾌한 멜로디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곡을 쓰고 프로듀스를 하고 예술적인 디렉팅을 직접 하는데, 솔이나 R&B나 록 포크가 아니라 팝이다. 이 장르 안에서 나처럼 혼자다 하는 팝 가수는 흔치 않기 때문에 미운오리새끼처럼 느껴질 때 도 많다. 커리어가 참 혼란스럽다.

미운오리새끼치고는 사랑을 많이 받지 않나. 6월 15일에 발매될 새 앨범에 대해서도 언급을 좀 해준다면. 

3집 가 한 땀 한 땀 태피스트리를 짜는 것처럼, 혹은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다듬는 것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면 이번 4집 은 크레용으로 거칠게 그린 것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음악을 작업해놓고 나서 다시 듣지 않는 편인데, 오늘 촬영 와서 스튜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걸 들으니 새삼 그 대비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시대를 초월해 음악 역사상 누군가와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뮤지션을 선택하겠나?

맥주를 같이 마실 한 사람만 고르라면 프레디 머큐리, 대화를 나눈다면 마이클 잭슨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천재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폴 매카트니도 여러 차례 만났지만 그렇게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한국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했다. 서울을 방문하는 뮤지션들은 이곳의 팬들이 열정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당신에게 서울 관객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관객들이 열정적이라는 관찰은 클리셰다. 한국 관객의 특별한 점은 호기심에 있다. 궁금한 것이 많은 오디언스이며, 아티스트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아티스트가 모험을 감수하면, 그들도 함께 감수한다. 앨범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모든 디테일을 살피며 왜 이걸 이렇게 했는지를 이해하려는 갈망이 강하다. 불어 가사로 된 노래(‘Elleme dit’, ‘Boum Boum Boum’)도 따라 부를 정도다.

다른 나라 관객들은 안 그러나?

전혀!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웃음)

에디터
황선우, 스타일 에디터 / 이예진 (Lee Ye Jin )
포토그래퍼
조영수
헤어 메이크업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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