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아티스틱 디렉터가 이야기하는 뉴 시즌 컬렉션
2023 S/S 파리 컬렉션이 끝나고 패션계의 시곗바늘이 천천히 흐를 즈음, 루이 비통의 여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한국을 방문했다. 2014년 첫 컬렉션 직후 인터뷰를 했던 더블유와 만나 하우스의 여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의 10년, 새로운 시즌의 컬렉션, 현재와 미래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10월, 눈부신 파란 하늘과 고즈넉한 건물, 현대와 옛것이 공존하는 서울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용산구의 한 스튜디오.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더블유 코리아>의 인터뷰가 있었다. 팬데믹으로 자유로운 여행에 목말라 있던 그는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 하늘길이 열리자마자 아시아에 가고 싶다고 했고, 쇼가 끝난 후 일본과 우리나라에 들러 다음 시즌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줄 다양한 자극과 에너지를 받고 돌아갔다. 거대한 럭셔리 하우스의 여성 컬렉션을 이끌고 있기에 예민하거나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 그는 유난히 맑았던 그날의 날씨처럼 생기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오랜만인 듯 적당한 긴장감과 여유 있는 애티튜드로 포트레이트 촬영을 마친 후 자리에 앉은 그가 2023 S/S 컬렉션 스토리와 10년 동안 그려나간 자신의 미학, 하우스에 대한 애정을 <더블유 코리아>에 풀어놓았다.
<W Korea> 펜데믹 이후 거의 3년 만에 대면 인터뷰를 진행한다. 설렘과 흥분이 교차하는 순간인데, 오늘 기
분은 어떤가?
니콜라 제스키에르 여유롭고 활기찬 한국의 분위기가 좋다. 이곳에서 보이는 나무와 서울의 건물 풍경도 멋지고, 날씨도 이렇게 쾌청하지 않은가.
이번 서울 방문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나. 가장 먼저 무엇을 했나?
3~4년 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루이 비통 메종으로 향했다. 이 다이내믹한 도시의 사람들은 옷을 어떻게 입는지 보고, 이전과 달라진 변화를 감상하는 건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애정하는 한국 전통 공예 정신이 담긴 도자기 쇼핑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관람한 전시도 흥미로웠다.
2023 S/S 컬렉션을 선보인 이틀 뒤에 파리에서 루이 비통의 오랜 프렌즈이자 뮤즈인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커버 촬영을 진행했다.
오래 알고 지낸 알리시아와는 창의적인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다. 최근에는 그녀가 출연하는 HBO 시리즈 작품의 옷 전체를 디자인했는데, 우리의 우정이 더 깊어진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 선택은 늘 흥미롭기에, 배역에 맞는 옷을 만드는작업도 무척 즐거웠다.
새로운 컬렉션 이야기를 해보자. 2023 S/S 컬렉션의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여성성의 넓은 스펙트럼에 대해 주목했다. 흔히 말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도전적이고 파워풀한 요소로 표현했다. 익숙한 사이즈의 변형으로 여성성의 코드를 파괴하고 위협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메종의 DNA를 이야기하는 데 필수적인 자물쇠, 라벨, 잠금장치, 트렁크 모서리 조각, 버클, 지퍼와 같은 요소는 이번 시즌 눈에 띄는 빅 사이즈로 등장한다. 거대한 벨트, 포켓, 3D 프린트 등은 당신이 말한 위협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요소인가?
요소들의 스케일을 키우는 방식을 통해 ‘강조’ 기법을 사용했다. 디지털 디바이스로 이미지를 확장하거나 과장시키는 동시대적인 방식을 접목해 메종의 아이코닉한 요소들을 커다랗게 키운 것이다. 가방에 달린 작은 클로슈 끌레(Cloche cles) 키홀더는 가방으로, 옷에 달린 지퍼는 슈퍼 사이즈로, 클러치에는 커다란 LV 로고를 다는 것이 그런 예다.
쇼가 열린 루브르 박물관의 쿠르 카레(Cour Carrée)는 이번 시즌 비주얼 아티스트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제임스 친런드(James Chinlund)의 지휘로 새로운 시노그래피가 완성됐다. 그 작업은 어땠나?
우리 셋은 오랫동안 친구처럼 지내며 기회가 되면 언젠가 재미난 일을 하자고 늘 이야기 해왔고, 드디어 시점이 맞았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 필립은 아티스트, 제임스는 세트를 담당하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패션의 관점이 쇼에 새로움을 더했던 것 같다. 다른 예술적인 표현 방식을 컬렉션에 접목하는 일은 매우 좋아하는 작업이다.
무대 중앙의 붉은 꽃, ‘몬스터 플라워(Monster Flower)’로 명명한 조형물도 인상적이었다. 원형 캣워크, 금속 그릴과 거울, 수많은 전구로 채워진 세트장은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주요한 요소였다. 컬렉션에서 제시한 주제가 공간과 함께 어떤 식으로 응용되거나 확장되었을까?
사람들은 여성성 하면 쉽게 꽃을 떠올린다. 이번 쇼에서 선보인 거대한 꽃은 이번 쇼에 대한 일종의 선언이었다.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여성성인데, 그 여성성은 평범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 꽃을 몬스터 플라워라고 명명했다. 섬세한 힘과 능력, 거대한 자신감이야말로 여성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정하거나 착하거나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파워풀한 모습 말이다. 더불어 런웨이에는 거울 장식을 설치해 관람객의 모습을 비추게 했는데, 밖으로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요즘 시대와 어울리는 세트였다.
둥글고 높게 솟은 슬리브와 입체적인 스커트 장식으로 초현실적 느낌을 준 오프닝은 룩 그 자체뿐 아니라 배우 정호연의 등장으로 더욱 파워풀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그녀를 프런트로가 아닌 런웨이에 등장시켰는데.
쇼에 서달라고 물어봤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 호연이 프런트로에 앉는 것도 굉장히 좋고 영광이지만, 런웨이에 서는 것이 더 큰 임팩트를 전달할 거라 생각했고, 그녀의 카리스마와 아름다움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 정호연과는 2017 S/S 쇼를 시작으로 글로벌 앰배서더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모델일 때도 팬이었지만 배우로 변신했을 때 무척 놀랐다. 연기라는 다른 카테고리에서 활약하며 배우로 능력을 인정받고 가치를 보여준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다. 호연을 런웨이에서 또 볼 수 있을까? 글쎄(웃음), 모든 건 그녀의 결정에 달려 있다.
어떤 기준으로 컬렉션 모델을 캐스팅하는가?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개성이나 성격과 같은 자신감이 옷을 입었을 때 어떻게 드러날지 그려본다. 존재감을 돋보이게 만드는 게 내 역할이고, 그걸 잘 표현해주는 얼굴을 찾는다.
매 시즌 쇼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단 하나의 메시지를 골라야 한다면 ‘루이 비통의 스타일을 어떻게 잘 보여줄 것인가’이다.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요소를 더하고, 개발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담는 것. 궁극적으로 동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움 안에 루이 비통스러움을 살려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이번 컬렉션에 나온 쇼트랙은 ‘Work It(Soulwax Remix)’ 리믹스와 TEPR에 의해 믹싱된 ‘King of My Castle(Roy Malone’s King)’이었다. 당신의 작업 전반에 음악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쇼 음악 선정 방식
도 들려달라.
음악은 실제로 내가 즐겨 듣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이다. 음악 안에 여성이 이 성의 주인이라고 선언하는 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성별과 정체성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적절한 음악이기도 하다. 박자와 리듬감이 에너지를 주는 음악이라 현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 역시 즐거웠다. 템포가 느리거나 분위기 있는 음악을 해본 적도 있지만, 오랜만에 다 함께 모여서 쇼를 보게 되었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2013년에 루이 비통에 합류했으니 올해로 10년째다. 지난 10년간 당신의 미학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 10년간 분명히 진화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변화하지는 않았다. 10년, 20년 전에 좋아하던 건축물이나 영화를 여전히 좋아한다는 이야기다. 미래의 새로운 패션 이미지를 창조하고 싶은 갈망은 여전하고, 시즌에 한정적으로 끝나는 게 아닌 오래 지속되는 새로운 코드를 찾아 루이 비통의 어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카이브가 풍부한 럭셔리 패션 하우스 안에서 여성복을 파워풀한 패션 코드로 정립한 점은 자랑스럽다.
해를 거듭할수록 하우스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루이 비통의 훌륭한 팀워크는 여전히 매일 놀라움을 준다. 세계 최고의 패브릭 장인들이 하우스 안에 있다. 패브릭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상상했던 패브릭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고, 아주 특이한 소재를 요청했을 때도 고퀄리티의 소재가 떡하니 나온다. 그런 장인정신과 특출난 실행 능력이 있는 하우스다.
이제 루이 비통과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마치 하나의 행성처럼 보인다. 당신이 들어온 후 하우스에 일으킨 변화 중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일까?
내가 루이 비통에 기여한 게 있다면 혁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메종의 팀워크는 경이로울 정도 인데,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냈을 때, 그들은 한계를 넘는 결과물을 만들어주고, 반대로 그들이 나를 푸시하기도 하며 서로 자극을 준다. 이런 혁신을 통해 새로운 아카이브를 만들어간다. 현재의 상품 가치가 미래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일인 것 같다.
당신이 루이 비통에서 첫 쇼를 한 후 2014년 한국 매체와는 처음으로 <W Korea>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시대 초월적인 패션도 한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신이 창조하는 새로운 것 가운데 다음 세대에 시대 초월적 존재로 자리 잡을 것 같은 패션이나 아이템이 있나?
맞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하나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게 클래식으로 남으며 시간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선보였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용기가 생긴다.
지금 이 순간의 관심사를 묻고 싶다. 현재 당신을 사로 잡고 있는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있나? 다음 쇼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자유로운 여행이 무척 그리웠다. 여행을 하게 된다면 아시아 지역을 제일 먼저 방문하고 싶었는데, 나는 여행하면서 작은 디테일을 발견하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과 컬렉션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한 경험 역시 다음 컬렉션에 대한 구상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당신이 영화 <괴물>의 팬인 거로 알고 있는데, 그곳의 배경이 된 서울의 원효대교 아래에서 루이
비통 컬렉션을 진행하는 상상을 해봐도 될까?
<괴물>은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영화다. 서울을 조금 안다면 한강변과 다리가 더 흥미롭게 보일 거다. 지난번 서울에 왔을 때 두나가 서울의 아름다운 곳들을 보여줬는데도 한강을 제일 가고 싶었을 만큼 애정이 크다. 연출과 연기도 훌륭하고,캐릭터도 인상적인데 희극과 드라마가 함께 있는 캐릭터가 정말이지 ‘크레이지’하다. 루이 비통 쇼를 한강변에서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울 것 같다.
그렇다면 부산에 가본 적이 있나?
서울만큼 흥미로운 도시다. 한국에서 다른 도시를 가본 적은 없다. 부산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는데 열차를 타고 가면 영화 <부산행>처럼 좀비 떼의 위험은 없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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