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의 외출 part 1

누군가는 자녀가 3 명 늘었고, 누군가는 문신이 4개 늘었다. 나라 전체를 흔들어놓은 지진을 겪고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작가가 있고, 디지털 혁명 속에 가상의 경험을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7년이란 그런 단위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 시간. 더블유는 창간 즈음 인터뷰했던 걸출한 인물들을 다시 만나러 뉴욕과 도쿄로 날아갔다. 그들의 근황을 듣고 세상의 변화를 논하기에, 일곱 해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시간이었다.

세상은 언젠가 디자인이 될 것이다│카림 라시드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인터뷰 제목을 ‘디지털과 플라스틱의 몽상가’라고 붙였다. 어떤 부분은 완전히 달라졌고 어떤 관심과 욕망은 여전한 채로 그는 점점 더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몽상가’라는 단어만이 오직 후회스럽다. 카림 라시드는 꿈을 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니까.

2005년 1월 27일과 2012년 1월 31일, 7년 하고 나흘 만에 두번째 만남이었다. 일곱 해 전 무릎까지 쌓인 눈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뉴욕은, 이번엔 이상 고온으로 포근했다. 오전 10시, 첼시의 아파트 8층 카림 라시드의 집은 햇볕과 컬러로 온통 가득했다. 색이 곧 에너지라는 그의 지론에 따르면, 공간을 채운 건 어떤 밝은 기운이기도 했다.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사무실 2층에 있던 그의 집은 이사를 했고, 집의 여주인이자 그의 동반자인 아내도 4년 전에 바뀌었다. 부시가 오바마로, 그러고도 4년이 지난 걸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그 시간 사이 에디터는 줄무늬 고양이를, 카림 라시드는 흰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새로 시작됐고, 심해지거나 늘어났으며, 어떤 것들은 멈추고 사라졌다. 변함 없는 몇 가지도 존재했다. 흰 옷과 핑크색을 즐겨 입는 그의 취향, 그리고 더블유와의 인터뷰를 그가 아주 즐거워했다는 사실.

“나 같은 남자 어른이 핑크를 입는 게 이상한가요? 긍정적이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생한 색이잖아요?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롭게 색을 즐기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기를 바라요. 내 생각에 이건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결심과 노력의 문제예요.” 카림의 커리어와 근황에 대한 질문을 들고 가 이야기 나누는 동안 대화는 물질의 세계와 가상 경험의 세계, 일회적이라는 것의 의미, 무엇이 클래식이 되는가, 따위의 주제들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갔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세상의 변화에 대한 그것이 되어 있었다. 크게 다른 주제는 아니었다. 디자인은 곧 삶의 방식이니까. 7년 전, 더블유 창간 2호에 실린 인터뷰를 보여주자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살쪘었냐며 웃었다. 두 번째 결혼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살이 빠지고, 더 밝아졌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촬영이 끝나고 인터뷰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카림 라시드가 자신의 팬톤 머그에 물을 담아서, 자신이 디자인한 식탁 의자에 앉았다. 한 가지씩 컬러칩을 사용하는 그 컵의 색상은 230C, 버블껌 같은 핑크색이었다.

7년 전, 더블유 창간을 위해 인터뷰하러 왔을 때와 다른 집을 또 구경할 수 있게되어 기쁘다. 집 말고 그 밖에 뭐가 또 달라졌나?
이 집으로 이사한 지 4년이 됐다. 전에는 사무실 위층에 살았는데 내 작품들로 된 쇼룸 같은 공간이었다. 덴마크 외교관에게 세를 줬는데 가구들 그대로 물려받기를 원하더라. 그대로 놔두고 옮길 수 있어서 몹시 편했다. 영어에는 ‘7년 만의 권태’라는 표현이 존재하는데, 글쎄 나에게 그런 게 있었으려나? 10년이라면 확실히 뭔가 바꾸고 싶어지는 단위인 것 같긴 한데.

내 일에 관해 얘기해보자면, 7년 전에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 잡지가 완성되었다. 요즘은 인터뷰 동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며, 아이패드로 읽을 수 있게 이북 서비스를 준비한다. 디자이너인 당신의 일에서도 그렇지 않나?
듣고 보니 그렇긴 하다. 대중, 소비자들에게 가상의 체험이 실제 물리적 체험보다 굉장히 중요해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 같다. <뉴욕 타임스>에서 매년 뽑는 크리스마스 선물 리스트를 유심히 보는데, 7년 전에는 8개 정도가 실존하는 것, 두세 개가 가상의 형체 없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그 비율이 반대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더 많아진 것이다.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스파 상품권…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더 이상 커피머신이나 털장갑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 7년 전과 지금의 리스트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유일한 항목은 옷이었다. 물질적인 세계를 다루고 만드는 제품 디자이너로서는, 이런 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고있다. 가상의 기술(virtual technology)을 통해 소비자들은 더 확장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페이스북, 링크드인, 스카이프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난 7년간 진짜 이런 ‘디지털 혁명’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디자인을 처음 공부하던 1970년대 말, 학계에서는 컴퓨터가 어떻게 사람을 외롭게 만들지 예언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로 인해 더 연결되어 세계와 접촉할 수 있다.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지식을 얻고,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수 있다. 디지털 세계가 우리의 창의성을 민주화시키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디지털 혁명, 그건 당신의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기도 하다. 디자인으로 이야기를 좀 더 좁힌다면 어떨까?
갑자기 디자인이 공공의 관심사가 된 걸 느낀다. 예전에 디자인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말하는 주제였다. 예전에 내가 산업디자이너라고 말하면 뭐하는 사람인지 누구도 몰랐다. 많은 사람들은 하루에 6백 개의 물건을 만지고 사용하지만 그걸 누군가 디자인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디자이너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패션이나 건축을 떠올렸다. 그리고 13년 전쯤 나는, 당시 미국의 가장 큰 잡지 중 하나인 남성 패션지의 에디터를 어느 파티에서 만나 매달 칼럼을 연재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의 반응은 “독자들이 제품 디자인 같은 데 관심없어요”라는 거였다. 지금은 물론 이런 분위기가 바뀌어서 어떤 잡지건, 저널이건, 블로그에서건 디자인에 대한 콘텐츠를 쉽게 찾아 읽을 수가 있다.

당신의 글을 거절하다니! 더블유 코리아를 위해 새로 기획을 해보면 어떻겠나.
좋은 생각이다(웃음). 캐나다의 한 잡지에는 ‘카림즈 아이즈’라는 제목으로 5년 동안 매달 여행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내가 다닌 도시들의 사진과 내 관점에서 갈 만한 장소를 추천하고 글을 쓰는 형식이었다.

세계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일하는 당신에게 적절한 주제였겠다. 당신은 많은 한국 클라이언트들과 일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서울을 방문한 경험은 어땠나?
서울에 갈 때마다 비슷한 걸 느낀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에너지로 채워진 거리가 있는데 매번 거기에 가서 무엇이 변했는지 보곤 한다. 가장 좋아하는 호텔은 더블유인데, 시내에서는 좀 멀지만 여전히 좋아한다. 음식도 좋아하는데 무척 맵다. 서울 사람들은 먹으면서도 거기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알아채지 못하는 거 같지만(웃음).

머무르는 도시마다 여권에 스탬프를 찍듯이, 당신이 만들어낸 기호인 ‘카리마롤로그’ 문신을 새긴다. 그동안 어떤 문신이 추가되었나?
서울에서도 5년 전에 문신을 새겼다. ‘사랑’을 의미하는 기호다. 지금 전부 16개인데, 문신에 관해서라면 나는 ‘충분히 나이들고 나서 시작하자’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철없던 시절의 여자 친구 이름을 팔뚝에 새긴 채로 평생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웃음). 서른다섯이 되었을 때 토론토에서 첫 문신을 새겼다. 이후 소니를 위한 작업을 많이 하면서 일본에서도 새겼고, 이런 식으로 도시마다 하나씩 추가하게 됐다. 지금 텔아비브에서 부티크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마 그곳에서 또 새로운 문신을 새길 것 같다. 아내는 그만 좀 하라며 말리지만(웃음). 문신은 극도로 중독적이고,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라 좋아한다. 마치 손톱처럼 자신에게 밀착된 느낌이랄까. 말 그대로 ‘피부에 각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별하다.

텔아비브의 호텔 이야기도 했지만 제품부터 가구, 패키지, 건물 인테리어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당신의 포트폴리오에서 최근 주가 되는 작업은 단연, 공간 같다.
생활 공간,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은 하나의 오브젝트를 디자인하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이다. 공간 쪽이 사용자에게 더 완전한 경험을 줄 수 있다. 내가 이 물잔을 디자인할 때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경험들은 몇 가지인데 적용해야 하는 표준은 매우 제한적이다. 소재라거나, 250ml의 용량을 담아야 한다거나, 손으로 쥐기 좋아야 한다는 등 지켜야만 하는 룰이 여러 가지다. 이게 건물에 관한 것이 되면 사용자가 감각할 수 있는 더 많은 다른 층위들을 건드릴 수가 있다. 더 넓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1981년부터 제품 디자인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어 아테네에 내 첫 호텔을 디자인했을 때 느낌을 기억한다. 어떤 사람이 2~3일 머무를 수 있는 호텔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일하고 잠자고 놀고, 씻는 등 인간의 모든 경험을 다룬다. 그래서 굉장히 넓은 범위에 걸쳐 있는 내 작업의 모든 걸 담을 수 있었다. 변기부터 물컵까지. 그게 재밌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호텔로 어떤 곳이 있나?
그리스 아테네, 영국의 브라이튼, 태국 방콕 … 가장 최근에 문을 연 곳은 베를린의 ‘나우’ 호텔이다. 일종의 음악 콘셉트 호텔이라서 체크인을 하면 방에 기타나 신시사이저 같은 악기를 빌릴 수 있고, 꼭대기에는 강을 내려다보는 레코딩 스튜디오가 있다. 그룹이 머무르면서 음반 녹음 작업을 하는 게 가능하다.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강한 베를린에 어울릴 것 같아 제안한 컨셉트인데, 클라이언트도 마음에 들어 했다.

7년 전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당신의 하얀 옷과 애시드 컬러의 공간의 대비, 그리고 색이 곧 에너지라는 철학이었다. 요즘도 그런 원칙에는 변함이 없나?
보통은 흰색 아니면 핑크를 입는다. 흰색을 입으면 비어 있는 캔버스를 갖는 듯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받는다. 마치 개인적인 종교 의식을 따르는 느낌으로 입는다.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과 같아지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어릴 때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동시에 사람들 개개인은 모두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시스템에 순응하느라 보낸다. 디자인 학교를 다닐 때, 스케치를 똑같은 방식으로 하라고 배웠다. 벽에 붙여놓으면 스타일이 다 비슷해서 누가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배움에도 불구하고 별나게 크는 아이들이있게 마련인데, 내가 그런 소년이었다. 좀 괴짜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강렬했다. 우리 어머니가 형을 푸른색으로 입힐 때 나는 핑크를 입고 싶다고 얘기했다. 사실 핑크가 소녀들의 색이라는 건 만들어진 개념이다. 1930년대 이전에는 미국에서 아이들의 방은 소년 소녀를 막론하고 핑크로 칠했다. 일종의 베이비 컬러였던 셈이다. 그런데 페인트 회사에서 판매를 늘리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아이디어로, 블루가 소년들의 컬러라는 아이디어를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사람들이 색을 더 자유롭게 즐기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시대에도 성인 남자가 핑크를 입는 건 좀 의아하게 여겨지지만, 뭐 어떤가. 기분 좋고 긍정적이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생한 컬러인데. 컬러란 정말 아름다운 현상이다. 우주에는 숱한 색이 있다. 그리고 흰색을 캔버스로 삼으면 무한한 색을 즐길 수가 있다.

마치 이 공간이 하얀 캔버스가 되고 알록달록한 가구가 자리 잡은 것처럼?
아내의 취향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그녀가 내 작품 가운데서 골랐다. 우리는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처음 만났다. 내가 핫 핑크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걸 마음에 들어 했다. 7년 동안의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색에 대한 관용도 역시 중요하게 바뀌었다. 예를 들어 니콘이 만드는 J1이라는 카메라는 준프로들을 위한 기종임에도 핑크 버전이 있다. 나는 이 변화를 충격적인 것이라 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카메라는 당연히 블랙이었다. 나도 언제나 제품 디자인을 할 때 핑크를 넣고 싶어서 늘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시장이나 회사의 반응은 그리 내켜하지 않았던 걸 똑똑히 기억한다. 이제 제품을 대하는 소비자의 태도가 바뀌고,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물건을 사용하는 주기가 짧아지기 때문도 있지 않을까? 빨리 쓰고 버리고 새로운 걸로 대체 하니까 파격적인 색도 하나쯤 살 수 있고.
일회성에 대한 콘셉트가 점점 바뀌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차도 4년마다 바꾼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무언가를 소유하는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뭔가를 소유해서 가족이 돌보고 신경 쓰고 했다면 요즘은 그저 일시적으로 경험하고 버리는데 더 가벼운 태도를 취한다. 무엇이든 리스할 수 있다. 기술 서비스, 자동차, 아파트… 무엇도 영구적이지 않다.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데 대해서 나는 의문을 갖고 있다. 건축은 영구적이고, 영원히 존재할 상징적인 뭔가를 계획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의 개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며칠 전에 패널 토론에 나가서 이런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상대방은 1950년대와 60년대 찰스 임스가 디자인한 클래식 가구들을 보여주면서,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어째서 ‘클래식’을 디자인하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당시에 그 가구를 만들었던 디자이너는 ‘클래식’이 될지 몰랐을 거다. 당신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시기에 꼭 필요하고 적절한 무언가를 디자인하면 나중에 클래식이 될 수는 있다. 디자인의 아이콘이라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어떤 것들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기술이 도입된 새로운 제품이었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어떤 제품을 세상에 선보일 때 성숙할 시간적 기회가 없다. 역사적으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기도 전에, 바로 뒤이어서 수만 개의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7년 만에 만난 당신은 훨씬 밝아 보인다. 그때로 돌아가 당신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7년 전에는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정확한 상대를 나중에 만나게 되리라는 걸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훨씬 밝아 보인다고 얘기하자) 아마 현재의 삶이 썩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삶에서 성취한 것들, 직업적으로 현재 위치에 만족한다. 7년 전에는 일을 너무 많이 할 때 여서 지쳐 있었다. 여행을 너무 많이 다녔고, 그래서 당시의 아내와 관계가 나빠졌다. 세계를 떠돌다가 몇 주 만에 파트너를 만나면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은 밸런스를 찾게 됐고, 일에 대한 접근을 더 효율적으로 하게 됐다. 디자인이란 것은 제품 하나에 3~40가지 아이디어를 넣도록 가르친다. 하지만 몇 년 일하다 보면 4~5가지의 아주 훌륭한 아이디어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다.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서 지치는 것보다, 직관을 믿는 게 더 좋은 결과를 준다. 18살에 직관은 직관일 뿐이지만 50살에 직관은, 그 모든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짧은 시간에 결정을 내리는 것들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성취한 결과는 이전의 어떤 해보다 많았다.

삶의 지혜가 생긴 걸까?
아마도. 그리고 일이라는 것이 ‘충분한 시간’과 꼭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1985년에 이탈리아에서 1년 동안 일한 적이 있는데, 아침 9시 반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모두가 수다를 떨 고 있다. 11시 반에는 길을 건너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러 간다. 12시 반에 사무실에 돌아오면, 3시간 동안 시에스타를 가진다. 이런 식으로 일 하는 시간을 더하면 하루 중 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작은 회사에서 커피머신부터 텔레비전까지 32개의 근사한 프로젝트를 해냈다. 1997년에는 7주 동안 도쿄에서 일했는데 오전 10시에 출근해도, 오후 8시에 퇴근해도 사람들은 일하고 있었다.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고요하고, 오직 차를 마실 때만 얘기했다. 하루에 10~12잔의 차를 마셨는데 아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차가 아니라 여유였을 거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집중하면 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 사무실은 이탈리아 식으로 운영되나, 아니면 일본 식인가?
아마 그 두 가지 시스템 사이의 어디쯤? 보통 9시 반에 출근하고, 6시 반이면 퇴근을 한다. 특별한 마감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주말에 일 하지 않는다.

커피는 많이 마셔 가면서?
아 물론이다. 나도 엄청나게 많이 마시니까(웃음).

2006년 4월호에 실린 카림 라시드의 인터뷰

7년 사이에 카림 라시드는, 사무실 2층에 있던 자신의 거처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왼쪽 사진을 촬영했던 그 공간 핑크색 벽지에레몬 라임 컬러 테이블이 놓여 있던 예전 집은 가구 그대로 덴마크 외교관에게 임대를 주었다고 한다. 이사한 집, 두 달 된 강아지,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하는 그의 새 생활은 아파트에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만큼이나 밝아 보였다. 7년 사이에 알게 된 삶의 비밀이 더 적은 시간에 직관을 발휘해 일하면서 균형을 찾는 거라는 얘기가 과연 틀리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