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의 신실한 친구, 알리시아 비칸데르

이예진

루이 비통의 신실한 친구,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가 더블유 코리아와 만난 어느 날. 파리의 한 성당에도, 최근 워킹맘이라는 신세계를 탐험 중인 그녀의 삶에도 따스한 빛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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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여자가 따뜻한 빛에 감싸인 순간들. 할리우드 여배우가 한국 패션지의 커버를 장식하는 건 오랜만이다. 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와 <더블유 코리아>는 몇 개월 전 파리 몽테뉴에 위치한 한 성당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비칸데르는 2016년 영화 <대니쉬 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커리어에 인장을 새긴 인물이다. 물론 발 빠른 자들은 그 전부터 북유럽에서 할리우드로 건너온 이 미묘한 분위기의 배우에게 주목했다. 2012년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키티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에는 <툼 레이더>의 전사 라라 크로프트로 나서기도 한 알리시아 비칸데르지만, 그녀에겐 ‘아름답고 조숙한 소녀’의 이미지가 있었다. 영화 팬들에게 그 이름이 좀 더 거론되기 시작한 건 2015년 개봉작 <엑스 마키나>를 통해서다. SF물에 편견이 있는 관객을 108분 동안 완벽히 포섭하는 이 놀라운 작품에서, 매혹적인 인공지능으로 출연하는 비칸데르는 관객과의 난도 높은 게임을 차분히 끌어간다. 그즈음부터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매력을 알아본
패션 하우스가 루이 비통이다. 모델도, 트렌드도, 모든 게 빠른 속도로 바뀌는 패션계에서 그녀는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신실한 친구로서 루이 비통과 오랜 시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저는 니콜라의 커리어 시작 점부터 그 여정을 따라온 것 같아요. 그는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앞날을 내다보는 장인이죠. 또 패션을 통해 여성들에게 굉장한 힘을 실어줘요. 제가 루이 비통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저는 늘 겸손해집니다.”

화보 촬영 이후 시간이 흘러 인터뷰하기 위해 줌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대기 중이었다. 1시간 후면 친구들과 휴가를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저는 지금 리스본의 집이 아니라… 사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어요. 북쪽으로 차를 운전해서 스웨덴 국경을 넘어갈 거예요. 고향 친구들과 스키를 타러 가려고요.” 그 여행길에는 비칸데르가 파파라치를 비롯한 미디어의 관심을 두 배로 받게 만드는 이유인 남편,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와 어린 아들도 물론 함께한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통해 만난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는 SNS 활동 같은 건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 삶을 온라인에 전시하지 않는 할리우드 셀럽 커플의 일상이란 대중에게 ‘힌트’를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미스터리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배우로 점점 알려지면서, 한마디로 제 모든 게 가시화되는 세계에 진입했어요. 일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제 남편도 만나는 멋진 사건이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유명세와 그에 따르는 온갖 과정을 겪는 건 일반적으로 우리가 따로 훈련을 거친 일도 아니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 자체로만 바라볼 수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제 생각에 요즘엔 많은 사람이 제가 겪은 것과 비슷한 감정과 혼란을 겪지 싶어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의 진솔한 삶이 아닌, 외부에서 그려낸 나라는 페르소나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하는 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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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상상의 영역에 있는 셀럽 커플의 삶을 순식간에 재밌고 흥미로운 생활의 영역으로 바꿔준 건 비칸데르가 친구들과 했던 ‘줌 데이트’를 언급할 때였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매일 친구들과 줌으로 만났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에 만나서 같이 운동했죠. 저녁에는 함께 포커를 치거나 줌을 켜놓고 각자 요리를 했어요. 제 가까운 친구들 대부분은 제 커리어가 도약하기 전, 그러니까 스웨덴에 살던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에요. 이번 휴가도 서로의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거랍니다.”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가 아직 왕자였던 시절 케이트 미들턴과 스웨덴을 첫 공식 방문했을 때,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총리를 포함해 로열패밀리 등과 함께 만찬 자리에 앉았다. 스웨덴을 빛낸 대중문화 분야의 대표 자격이었다. 스웨덴 왕립 발레학교에서 발레를 하던 소녀는 촬영에 따라 노마드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배우가 된 후에도 오랜 벗의 의미를 잊지 않는다.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비칸데르는 다이내믹한 배우의 삶에서 표류하는 일이 없도록 중요한 규칙을 세웠다. 이건 사이좋은 할리우
드 커플들에겐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흔한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는 만나기 시작한 초기부터 서로 떨어져 있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때로는 1년에 단 몇 주밖에 집에서 보내지 못하지만요. 그래서 남편과 저는 늘 하나의 유닛처럼 움직이는 걸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기간에 작품 촬영을 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제가 <파이어브랜드(Firebrand)>를 작업하는 동안, 남편은 아이를 돌보고 저녁을 차리는 역할을 했죠.”

2022년 한 해,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드라마 홍보 활동과 영화 촬영을 이어갔다. 그녀가 주연을 맡은 HBO 드라마 <이마 베프(Irma Vep)>는 현실과 판타지 요소, 여러 겹의 이야기가 뒤섞인, 경쾌한 혼돈이 가득한 작품이다. 비칸데르는 실제 그녀대로 스웨덴 출신이면서 미국 상업 영화계에서 성공한 배우로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웨이브(Wavve)를 통해 볼 수 있는데, 마침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1996년에 장만옥을 주인공으로 만든 동명의 원작 영화가 2월 1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개봉했다. 비칸데르가 작년에 촬영한 영화 <파이어브랜드>는 헨리 8세의 마지막 아내, 캐서린 파를 다룬 시대극이다. 평생 여러 아내를 두었던 헨리 8세는 앤 불린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기 위해서 16세기에 왕의 이혼이라는 과감한 카드를 밀어붙인, 이른바 ‘천일의 앤’이라는 관련 태그가 21세기까지 따라다니는 바로 그 왕이다. 헨리 8세 역은 주드 로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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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파는 헨리 8세의 아내 중에 가장 덜 알려진 존재예요. 어쩌면 처형당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역사에서 덜 거론되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캐서린은 영국 역사상 자기 이름을 내세운 책을 출판한 최초의 여성이에요! 그녀를 알게 된 건 참 보물 같은 기회였어요.” 인터뷰 전에 매니저는 아직 개봉 시기도 미정인 작품에 대해 많은 말을 들려줄 수는 없다는 듯이 예고했지만,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끊임없이 여러 말을 재잘거렸다. 낮은 목소리로 지저귀는 새처럼, 서울과 오슬로 사이의 거리감 따위는 잊게 할 만큼. 그녀는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튜더 왕조 시대 덕후라고 할 수 있는 역사학자도 만났다고 한다. 튜더 시대를 몸으로 체험하고
자 반년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환경에서 산 적 있는 역사 학자다.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국 시대물이라고 하면 흔히 빅토리아풍 이미지를 떠올리거든요. 하지만 튜더는 빅토리아보다 300년은 앞선 시대예요. 우리 영화에서는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했어요. 왕족이 행동하는 방식, 이를테면 음식을 먹거나 걷는 행위에서도 당시 왕족들에겐 무척 엄격한 기준이 있었더라고요. 나중에 영화를 보면 기존에 접한 것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튜더 스타일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배우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까지 한다는 점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에바 그린과 공동 주연한 영화 <유포리아>는 비칸데르가 설립한 제작사의 작품이다. 프로듀서가 된 건 비칸데르의 표현에 따르면 결심과 실행이었다기보다 유기적이고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영화는 제가 너무 사랑하는 작업이라 더욱 그 일부가 되고 싶었던 거죠. 그저 캐스팅되고 연기하는 걸 넘어 아이디어나 스토리텔링을 발전시키는 일에 관여하게 됐어요.” 할리우드 진출 전부터 그녀는 비영어권 작품 활동을 했고, 10대 때도 종종 방송이나 단편 영화 경험을 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스웨덴 독립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생애 처음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자리가 바로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다. “그곳에서 한국 영화를 처음 접했죠. 그러면서 이후 닫힌 적 없는 예술 세계로 문이 열렸어요. 이창동, 나홍진,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 특히 이창동 감독님 것은 거의 다 봤을 거예요. 전통적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영화들이지만, 그분은 늘 기존의 것을 전복시키면서 꽤 복잡한 테마를 도입해요. 아주 시적이고요. <버닝>은 세 번 봤나? 그 영화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몇 년간 나온 영화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섬세한 깃털과 자수, 비즈 장식 드레스는 Louis Vuitton 제품.

펀칭과 버클 무늬를 프린트한 셔츠와 펀칭 팬츠는 Louis Vuitton 제품.

최근 알리시아 비칸데르를 둘러싼 해외 소식은 많은 부분 그녀와 마이클 패스벤더 사이에서 드디어 태어난 아이를 주목한다. 미국의 어느 기자는, 인터뷰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던 비칸데르가 아이에 대해 기꺼이 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지금 그녀는 두 살배기 아이를 통해 느끼는 온갖 감정과 자신이 엄마가 되었다는 경이에 흠뻑 빠진 상태다. 설레는 억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조잘거림이 계속 되었다. “모두가 집 안에만 머물러야 했던 팬데믹 시기에 아들이 태어났어요. 그래서 아들의 존재가 더욱더 뭔가를 돌아보고 곱씹게 만든 것 같아요. 정말이지,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엄마가 되면서 일과 가정 모든 것에 깊은 감사를 느꼈고, 제 일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됐죠. 우리 아이가 이제 놀이를 시작했거든요. 어떤 사물들을 가지고 자기 혼자 가상의 캐릭터를 지어내며 놀 때나 어떤 역할을 맡고 싶어 할 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런 놀이에서 즐거움을 느끼다니, 놀라운데?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바로 저런 건데!’’’ 자신과 딴판인 캐릭터를 창조할 때도, 결국은 자신이 겪어봤던 감정과 경험을 이용해야 하는 직업. 비칸데르는 자식의 존재를 ‘감정들로 꽉 찬 새로운 사전이 손에 쥐어지는 일’에 비유했다. ‘와! 이런 게 존재하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 하면서 꺼내 쓸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의 차원이 생기는 것 말이다. 일과 가정, 혹은 배우와 엄마. 안과 밖처럼 서로 구분된 영역이라고 짐작한 이야깃거리가 어느새 서로 교차하거나 연결되며 또 다시 대화의 중심에 오르는 건 놀라웠다.

“개인적인 삶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방법이라. 그건 아들이 제가 그 방법을 찾도록 도와줬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일을 멈추지 않고 많이 한 사람들은 알 거예요, 모든 게 찰나에 지나가버리는 것을. 그러다 갑자기 우선순위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져요. 네, 육아는 그렇더라고요. 잠이 부족한 건 아주 힘들지만 그럴 때마다 ‘아니야, 내가 밤샘 촬영을 얼마나 많이 해봤는데.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하죠. 제가 아주 작은 한 사람의 탄생에 일조했고, 그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웃음). 배우로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인생을 살수록 더 많은 경험으로부터 감정을 꺼내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은 제가 맡을 수 없는 미래의 모든 역할을 생각하면 저는 설레요. 이 직업의 장점이죠. 끝이 없다는 점요.” 임신과 출산을 거친 할리우드의 셀럽들은 대체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몸매를 가다듬고 카메라 앞에 나타난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배우로서 말하는 동시에 엄마의 시선으로 말한다. 일과 사랑하는 사람과 생활로 지탱되는 삶의 소중함을 들여다볼 줄 아는 그녀의 자아는 견고하면서 부드러울 것이다. 그런 이들에겐 살면서 이르는 곳마다 재미와 고마울 일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연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는데, 곧 스웨덴으로 가면 아들에게 태어난 후 처음으로 스키를 타게 해줄 예정이에요. 재밌겠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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