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사진작가들이 애정하는 피사체, 기네비어 밴시너스(Guinevere van Seenus).
크레이그 맥딘, 스티븐 마이젤, 파올로 로베르시와 같은 전설적인 사진작가들이 애정하는 피사체, 기네비어 밴시너스(Guinevere van Seenus). 새파란 눈, 도자기 같은 피부, 우아한 턱선의 소유자 기네비어는 이제 카메라 뒤편에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우리를 몽환적인 사진의 세계로 초대한다.
따뜻하고 화창한 여름날 코네티컷주의 한 시골 동네. 무성한 초원과 낮은 돌벽 사이로 좁은 길들이 나 있다. 한 테라스의 수영장에는 초록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누워 있다. 그녀의 뺨을 간질이는 이끼와 잡초에 시선을 뺏긴 것도 잠깐, 또 다른 형체가 그 존재를 서서히 드러낸다. 얼굴, 팔, 다리, 발 심지어 머리카락까지도 밝은 청록색을 띤 미지의 정체는 바로 기네비어 밴시너스다. 온몸을 파랗게 칠한 그녀는 낮고차분한 목소리로 “팔을 조금만 올려볼까?”라고 카메라를 들며 말한다. “오른쪽으로 좀 움직여볼래? 좋아, 바로 거기야. 완벽해!” 찰칵, 찰칵, 찰칵.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이 낡은 게스트하우스는 그녀의 창의적인 작업실이다. 1990년대, 크레이그 맥딘(Craig McDean),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 파올로 로베르시(Paolo Roversi)와 같은 전설적인 사진작가들이 애정하는 피사체였던 기네비어는 최근 몇 년간 그녀의 재능을 카메라 뒤편에서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오늘 <W> 매거진의 촬영지는 다름 아닌 기네비어의 집이다. 촬영 당일 더 이른 시각, 그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란셀 달리(Francelle Daly)에게 조금 이색적인 주문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페인트칠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 몽환적인 세트 속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셀리나 랄프(Celina Ralph)가 포즈를 취하자, 그녀는 몸소 배경이 되어 청색 알몸으로 나무 사이를 서성거리며 부조화에서 느껴지는 불가사의함을 표현했다. “악! 아직 파란색으로 분장하고 있었지. 잊을 뻔했다!” 잠시 점심 식사를 위해 집으로 복귀한 그녀가 이렇게 외쳤다. 블루맨그룹(Blue Man Group)의 멤버 같은 모습이 익숙하기도 하고 페인트를 씻을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며 그 누구보다 이 프로젝트에 몰입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페어필드 카운티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연인이자 팟캐스트 라우드 트리 미디어(Loud Tree Media)의 창시자인 보 프리들랜더(Beau Friedlander)와 함께 열심히 수리 중인 곳이다. 1911년에 지어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지만 보금자리의 분위기는 꽤 활기차다. 두 사람의 그림과 사진 수집품이 걸려 있는 벽을 따라 쌓여 있는 마크 제이콥스, 디올, 알렉산더 맥퀸의 옷과 액세서리, 홈 인테리어와 취미와 관련된 책 무더기와 페르시안 융단 위에 가지런히 놓인 플랫폼 슈즈와 부츠, 현관에 배치된 메이크업 테이블과 대여섯 개의 가발 등 여러 잡동사니와 촬영을 위한 의상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다리 하나를 잃은 애완견 핀(Finn)은 주변의 낯선 물건들 냄새를 맡느라 분주하다. 보 프리들랜더와 기네비어는 보호소에서 입양한 개 세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
모델, 사진작가, 공예가, 동물 애호가, 유기농 식품 마니아 등 다채롭고 창의적인 영혼의 소유자인 그녀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이다. 기네비어를 15년 넘게 알고 지낸 달리(Daly)가 이렇게 말한다. “본인의 작품에 강하게 집중해요. 모델로서는 거의 메소드 연기자고요. 캐릭터와 하나가 되죠.” 어빙 펜 (Irving Penn), 스티븐 클라인(Steven Klein)과 같은 사진작가와 협업하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네비어를 알고 지낸 베테랑 패션 에디터 필리스 포스닉(Phyllis Posnick)은 그녀가 협업 프로젝트에서 절대 수동적으로 임하지 않았음을 회상한다. “사진작가가 담아내고 싶어 하는 걸 정확히 파악하고, 원하는 그림이 나오도록 전념해요.” 포스닉은 알렉산더 맥퀸의 특별 기획에 참여해 촬영한 기네비어의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본 후 그녀에게 재능이 있음을 확신했다. “매우 독창적인 사진이었고, 기술적으로도 탁월했어요. 엄청난 재능이라고 생각했죠.”
기네비어 밴시너스는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고, 워싱턴 D.C.와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자랐다. 네덜란드 출신의 히피 이민자였던 부모님은 유기농 식품 가게를 운영하며 수공예, 환경, 동물의 가치를 알리려 노력했고, 고등학생이었던 기네비어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바느질과 뜨개질을 배워 졸업 파티 드레스를 직접 제작했으며, 심지어 공구 상자 속 도구를 사용하는 데에도 능통했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모델 샬롬 할로(Shalom Harlow)는 “기네비어가 오래된 고성능 자동차도 잘 다룬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 정도로 멋진 친구예요”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 모델이었던 어머니의 권유로 18세에 모델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혜성처럼 등장해 승승장구했다. 놀라울 정도로 새파란 눈, 도자기 같은 피부, 우아한 턱선의 소유자 기네비어는 라파엘 전파와 르네상스 시대 그림 속 인물과 닮았다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저는 일반인보다 조금 더키가 크고 마른 건 맞지만, 보통 사람들이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보다 키가 작고 덜 말랐으며 그리 화려하지도 않아요”라고 말한다.
모델 생활 중 가장 애착을 느낀 것은 창의적인 촬영 과정이었다. 쿠바에서 사진작가 필립 로르카 디코르시아 (Philip-Lorca diCorcia)와 함께한 <W> 매거진의 2000년 3월호 촬영을 회상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사진들이 뉴욕 모마의 현대미술관에 전시됐어요. 전 항상 패션 세계의 이상하고도 예술적인 측면에 집중해왔어요.” 2001년, 그녀는 모델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산타모니카 대학교에 입학했다. 메이크업, 인물화, 도예, 공학, 프랑스어, 사진을 배웠고 2015년에는 뉴욕 국제 사진센터에서 다시 사진을 공부했다. “사진의 구도를설계하는 행위 자체가 너무 재밌어요.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포착하는 것보다 조립하듯 여러 요소를 모아 이미지를 구성하는 게 좋아요”라고 말한다. 이번 촬영을 예로 들자면, 기네비어는 오래된 집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 자체를 테마로 삼고자 했는데,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메이크업, 특히 보디페인팅을 자주 활용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을 때 얼굴에 화려한 크리스털을 붙이고 기이한 장식을 더한 상태로 외출하곤 했어요. 저는 메이크업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게 편해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일종의 보호막이 되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라고 기네비어가 설명한다. “사람들은 종종 ‘네 본 모습대로 행동해’라고 말하죠. 하지만 저는 제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별로예요!”라고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아름다움으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음에도(어쩌면 그러한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애티튜드는 본인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인상을 강하게 전달한다. 본인보다는 타인에게 더 큰 관심을 갖고 기꺼이 돕고 나누며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이타적인 모습에 가깝다.
“렌틸콩 카레 더 먹을 사람 있어요?” 기네비어가 묻는다(촬영팀은 다 식사를 마쳤지만 모두 기네비어의 음식을 원하는 눈치다). “잠깐만, 이거 맛 좀 봐요.” 그녀가 냉장고에서 재빨리 홈메이드 비건 무설탕 초콜릿 푸딩을 꺼내며 다음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한 셀리나 랄프와 헤어스타일리스트 조던 엠(Jordan M)을 포함해 한 입만 먹어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모든 이들에게 음식을 먹여주며 돌아다닌다. “이걸 고구마로 만들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요?”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촬영장의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그녀의 초창기 모델 생활을 하던 때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오늘 촬영팀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포토 어시스턴트와 같은 인력은 없지만 오히려 기네비어는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촬영 환경을 선호한다. “이미 고착된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도 촬영할 수 있다니 너무 좋았어요. 아이디어를 모색할 시간이 주어진 것 도요. 가끔 반나절 내내 헤어와 메이크업으로 온갖 실험을 다 해봐요. 만약 점심 먹기 전에 촬영을 시작했다면 그날은 매우 운이 좋은 날이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필름 사진 촬영을 좋아해요. 결과물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게 매력이죠. 어떤 촬영장에서는 모델과 사진작가 사이에 거대한 디지털 모니터가 있고, 세트장에 있는 많은 사람이 각자 본인의 의견을 전달해요. 그러다 보면 분명 중요한 무언가를 잃곤 해요. 중요한 것은 사진작가와 모델이 감정적인 무언가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22세인 모델 셀리나 랄프는 오늘 촬영 현장에서 기네비어를 모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벌써 친밀한 관계처럼 보인다. “기네비어는 모델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예요. 그녀 역시 모델이기 때문에 촬영 중 모델도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죠.” 기네비어 역시 감탄 섞인 눈빛으로 젊은 랄프를 바라본다. “제가 스물두 살이었다면, 랄프랑 아주 친한 친구가 됐을 거 같아요.” 하지만 기네비어가 젊음을 그리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모델 생활 내내 나이가 들면 내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큰 두려움이 있었어요. 커리어의 한 시점에 도달하자 더 이상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지만 사진작가로서 일하면, 예를 들어 예전 같지 않은 피부 탄력 같은 한계는 없어요. 경험이 쌓이는 만큼 실력이 늘기에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어요.”
- 포토그래퍼
- GUINEVERE VAN SEENUS
- 글
- CATHERINE HONG
- 스타일리스트
- PHYLLIS POSNICK
- 모델
- Celina Ralph(the Society Management), Guinevere van Seenus(DNA Model Management)
- 헤어
- Jordan M(Susan Price)
- 메이크업
- Francelle Daly(Home Ag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