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이영희에게 한복은 생명과도 같다. 1993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에서 한복을 처음 선보였고, 뉴욕 맨해튼에 한복박물관을 짓는 등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12년간 꿈꿔온 파리의 오트 쿠튀르 무대에 선 날, 그녀는 또다시 한복으로 세상에 말을 걸었다.
7월 6일, 르 모리스(Le Meurice)호텔
1:00pm 디자이너 이영희의 생애 첫 오트 쿠튀르 쇼가 열리는 르 모리스 호텔에 도착했다. 길게 드리워진 샹들리에가 홀 안을 밝히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왠지 그 안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을 것만 같은 화려한 분위기가 나는 장소였다. 런웨이 중간에는 모시위에 먹물로 ‘이영희’와 ‘한산모시’라고 쓴 무대 배경이 걸쳐져 있었다. 이렇게 화려하고 전통적인 프랑스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장소에 한글과 영어를 이용해 만든한국적인 배경은 의외로 잘 어우러졌고 동서양의 조화를 잘 구현한 듯 보였다.
1:10pm 백스테이지에는 모델들이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우리나라 모델인 이금영과 강소영의 모습도 보였다. 선생님과 스태프들이 직접 제작한 부채로 얼굴을 가린 첫 번째 모델이 워킹을 시작했다.
1:30pm 드레스 리허설을 하기 전에 분주한 백스테이지의 모습. 디자이너 이영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조그마한 디테일까지 손수 만지고 수정했다. 그리고 리허설 직전에 모델들에게 쇼의 분위기와 워킹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했다.
2:00pm 드레스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2:15pm 백스테이지에서 헤어 및 메이크업 스태프들과 의견을 나누며 수정 사항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한눈을 팔거나 앉지도 않고 모든헤어와 메이크업, 의상, 소품까지 꼼꼼하게 다 챙긴다. 드레스 수정 바느질과 다림질에 여념이 없는 스태프들의 전쟁도 펼쳐진다.
2:30pm 디자이너는 피날레 드레스의 바느질 체크에 열중해 있다.
2:45pm 디자이너 이영희는 가채를 모델의 머리 위로 올린 후 그 위에 비단 조각보를 어떻게 감싸야 하는지, 비녀는 어떻게 꽂아야 하는지 헤어 스타일리스트에게 진지하게 설명했다.
3:12pm 보자기 색깔을 다시 확인한 뒤 더 앤티크한 느낌이 나는 조각보를 머리 장식 위에 올리는 디자이너. 그 후 제대로 만들어진 머리 장식을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3:17pm 쇼가 시작되기 직전 모델들에게 모든 드레스가 입혀졌다.이 순간까지 디자이너 이영희는 비녀를 들고 다니며 모델의 머리 장식을 모두 손수 체크했다.
3:37pm 드디어 쇼 시작.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첫 번째 모델이 등장했고, 총 30여 벌의 아름다운 한복 드레스의 향연이 펼쳐졌다.
4:02pm 마지막으로 고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플래티넘 드레스와 함께 막을 내린 쇼. 피날레 인사를 하며 사람들의 환호에 엷은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4:05pm 쇼가 끝난 후에 많은 이들이 디자이너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와 쇼에 대한 감상을 건넸다. 그 중 꼴레지오니(Collezioni)의 패션 디렉터 바바라 파스퀴니가 다가와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환상적인 컬렉션이라고 말했다.
첫 쇼를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한다. 기분이 어떤가?
모시를 짜내고, 자연염색을 하고, 실크와 모시를 합성하고, 정교한 자수를 넣고 하는 과정에 꼬박 1년이 걸렸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덤덤하다.
1993년 파리에서 패션쇼를 선보인 이래, 한복의 세계화와 현대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번 오트 쿠튀르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가?
물론이다. 이번 컬렉션에선 충남 서천의 한산 지방에서만 나는‘ 한산모시’를 소개했다.(VIP좌석 위에는 주머니에 든 한산모시 양말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오트 쿠튀르에 참가하기까지 콧대 높은 파리지엔들을 상대하기가 수월하진 않았을 것 같다. 이러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대담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무나 입성하기 어려운 파리 오트 쿠튀르에서 한복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만 12년을 했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면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듯이, 한복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얼마 전 자신의 ‘트위터’에 파리로 떠나기 전의 떨리는 심정을 적기도 했다. 어떻게 트위터를 시작하게 된 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잘 모르는 새로운 것 일지라도 알고 싶은 욕망만 있다면 그 무엇도 시도하고 배울 수 있다.
며칠 전 파리에 도착해선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계속해서 옷을 만들고 수정했다. 그 외에 프랑스 요리를 음미하며 저녁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프레타포르테에 비해 한층 뛰어난 손재주와 창의력, 정교함을 요구하는 오트 쿠튀르 쇼이기에‘ 한복 드레스’의 아름다움을 더 잘 어필할 수 있지 않았나?
한복 드레스의 아름다움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칼 라거펠트가 단순히 감각만으로 창조해낼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년간 오트 쿠튀르를 준비하면서 바늘 땀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 손을 안 거친 구석이 없다.
오트 쿠튀르를 준비하며 가장 고집스럽게 추구한 부분은 무엇인가?
기본을 지키며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무조건 새롭고 특이한 것을 지향하는 것보다 옳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전통적인 한복 자체의 아름다움과 경쟁력을 믿는 사람이니까. 이번에는 기본적으로 모시 소재에 맞고그 색감을 살려주는 디자인에 목표를 두었고, 동양적인 요소와 서양적인 요소를 잘 섞어서 풍성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또한 한복의 현대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화학 약품을 입혀 가죽같은 느낌이 나게 해보고, 플래티넘으로 그림도 그려보고, 나아가 장장 10일간 모시 위에 손으로 블루바니시란 약품을 칠해‘ 어디서 본 듯하지만 동시에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한복은 원색의 옷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회색이나 먹자주 등 은은하고 깊이 있으며 오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전통 색감을 그대로 살렸다. 이번 쇼에서 주력한 색감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모시와 가장잘 어우러지는 흰색, 미색, 노란색 등을 자연스럽게 살리려고 했다.당신은 그동안 염색과 직물에 애정을 쏟아왔다. 그만큼 까다로웠을 소재 선택과정이 궁금하다. 파리 오트 쿠튀르의 꿈을 실현시키는 데에는 모시의 힘이컸다. 이미 프레타포르테 쇼에서 여러 차례 모시를 선보였는데, 그 촉감이 좋아 겨울에도 애용하는 파리지엔이 있을 정도다. 이번 쇼에 사용된 모시는 한산모시인데, 뻣뻣한 일반 모시에 반해 입으면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만들 수있다. 이러한 훌륭한 재료로 더욱 맛깔스러운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장인들에게 수많은 요구를 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모시와 실크가 합쳐진옷감 위에 직접 붓으로 날염을 하고, 반짝거리는 효과를 내기 위해 직접 짠모시 위에 블루바니시라는 약품을 바르기도 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모시를 짜고 자연 염색을 거치는 공정이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대부분인 모시 공장에 가서 원하는 모시를 얻기 위해 짜는 작업을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간 장인들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것 같다.
이번 쇼의 주제는‘ 꿈의 정원(LeJardindesReves)’이다. 한산모시에 동양 예술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송죽매란(소나무, 대나무, 매화, 난초)을 형상화한 수채화와 자수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아이디어를 모아 몇 벌의 옷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제와 연결이 된다.이번 쇼의 경우, 1980년대부터 선보인 작품들을 한산모시란 소재를 적용해모던하게 재탄생시켰다. (그녀는 지난 세월 동안 한복 드레스를 만들던 옷자락을 하나도 안 버리고 가지고 있다.) 또 한산모시로 만든 한복 드레스 위에손수 염색을 하고 수를 놓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송죽매란을표현하게 되었고, 마치 꿈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트 쿠튀르 쇼는 프레타 포르테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함이 관건이다. 어떤 이브닝드레스들을 선보였나?
백금 원단에 백금실로 수를 놓아 1년이 걸려서 만든 플래티넘 드레스. 직접 플래티넘을 짜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았다.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지니지만 이번 오트 쿠튀르에서 선보인 의상들을 비롯해 단 한 점도 팔지 않을 생각이다. 그만큼 쇼에 선 의상들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만약 주문이 들어오면 똑같이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고, 필요할 때는 빌려주면 되지 않나.
아마 마리 앙투아네트가 살아 있다면 당신의 드레스들을 탐내지 않았을까. 이렇듯 한복을 화려하고 모던한 이브닝드레스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노력에는 어떤 믿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한국과 한복에 대한 열정은 나를 펄펄 날게 한다. 너무 펄펄 날고 싶은 나머지 지난 20년간 한복집을 하면서 모은 재산을 파리나 뉴욕에서 패션쇼를 하는 데 다 써버렸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내가 살 집과 부티크뿐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만약 내게 팔게 남아 있다면 다 팔아서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파리로 간 한복쟁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생에 있어서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감흥이 남다를 것 같다.
내게 영감의 원천은 동시대에 일어나는 문화적,사회적인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삶이다. 그래서 파리의 박물관이나 패션 페어에 가면 그림과 부스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의생각, 라이프스타일, 여행 등을 상상하면서 영감을 받는다.
이번 쇼를 준비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난 사실 쇼보다 쇼를 준비하는 과정이 더 좋다. 막상 산 정상에 오르면 마음은 기쁘지만, 기대했던것보다 마음은 덤덤해지게 마련이다. 이건 내가 정상에 올라서 더는 오를 곳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산을 오르면서 벌레에 뜯기고 다리가 아팠던 기억이마음에 더 오래 남는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쇼가 그러하다. 손으로 치마 저고리에 직접 매화꽃을 그리고, 날염을 하고, 머리 장식으로 쓴 비단 조각보의 색상을 고민하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부분을 수없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또 수정해가면서 너무나 즐거웠다. 아름다운 한복 드레스로 박수갈채를 받은 오늘이 자랑스럽거나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이 신나고 아름다운 일임을 알기에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은 꼭 오트 쿠튀르를 하고 싶다.
이번 오트 쿠튀르 쇼를 통해 파리지엔을 비롯해 세계에서 온 VIP와 프레스에게 이영희의 무엇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나?
한복을 모던한 드레스로변형해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옷으로 만들고 싶었다. 혹자는 옷을 그냥 살아가기 위한, 한 마디로‘ 걸치는 수단’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정한 파리지엔은‘철학이 있는 옷’을 염두에 두고 옷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번 쇼는 감정이 흐르는 쇼로 만들고 싶었고, 그만큼 모델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무조건 예쁘고 키가 크고 잘 걷는 모델을 바란 것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수백 명이 나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라는 최면에 걸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정성을 기울인 작업을 조금 서운하게 읊어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소통은 말이 안 통해도 눈빛만으로 가능한 일이니까.
패션쇼에 있어서 의상이 지닌 무드를 극대화 해주는 무대와 음악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동양적인 무드를 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나?
음악은 몇 달 전에 파리 패션쇼 프로덕션 팀에게서 받은 몇 가지 음악 중에 부드러운 사운드와 템포로 이루어진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택해두었다. (음악 중간중간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는 믹스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신 잔잔한 관현악기의 연주가 들렸고, 이는 마치 고요히 흐르는 강물처럼 부드러우면서 아방가르드했다.) 장소도 이미 작년 1월에 와서 보고 결정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옷의 색감과 조화가 이루어지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고단함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당신을 지탱해주는 힘은 무엇인가?
지치지 않는 열정. 타고난 천재보다는 열정이 식지 않는 사람들이 더 큰 일을 해낸다.
한국에서 이번 오트 쿠튀르의상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있는가?
물론이다. 파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쇼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쇼의 의미 같은 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쉼 없이 일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한복을 통해 세계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고, 나 자신을 말하고 싶다.
- 에디터
- 통신원 / 서꽃님(파리), 박연경
- 포토그래퍼
- Lee Joung 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