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로니 혼에겐 그 어떤 것도 영원하거나 명백하지 않다. 이 사색적인 예술가는 끊임없는 변화, 모호함, 그리고 패러독스야말로 우리를 둘러싼 진짜 현실이라고 낮게 이야기한다.
로니 혼의 작품은 단서가 인색한 수수께끼 같다. 두 개의 핑크색 얼음 같은 유리 조각, 조각조각 잘라낸 드로잉을 재조합해 완성한 추상적인 이미지, 일렬로 벽에 걸린채 한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슬라이드 쇼처럼 보여주는 초상 연작,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새겨진 길고 흰 막대 등이 과묵하게 전시장 내부를 채우는 식이다. 또렷한 메시지를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관람객이라면 길을 잃은 듯 혼란스러워할 법한 풍경이다. 게다가 짧게 자른 은발의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에 설명을 덧붙이는 게 썩 내키지 않은 눈치였다. “작품 이해에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아티스트의 의도나 배경을 전해듣기보다는 각자의 시각대로 직접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호함이야말로 로니 혼의 세계를 읽는 데 가장 요긴한 단서일지 모른다. 성별을 단번에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이름도 외모도 중성적인 이 예술가는 ‘다름’과 ‘같음’이란 개념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2초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그 시공간 안의 피사체도 변화하는 게 아닐까? 혼은 우리가 당연하게(혹은 게으르게) 받아들여온 것들에 침착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부추긴다. 물론 수수께끼의 답에 관해선 끝내 함구한 채로. 작가는 그저 다른 세계로 향하는 창문을 열어둔 채 슬그머니 관람객 뒤쪽으로 물러나는 쪽을 택한다. 안정적인 저음으로 느릿느릿 말을 잇고,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리던 로니 혼과 키가 낮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Portrait of an Image’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초상이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거쳐온 여러 캐릭터를 재현하게 한 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배우를 피사체로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잘 알려진 인물을 찍고 싶었기 때문에 누가 적절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대부분의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으면 가면처럼 캐릭터를 뒤집어써서 자기 얼굴을 감춘다. 그런데 이자벨 위페르는 좀 다르다. 오히려 작품 안에서 평소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사람이랄까? 그 같은 면이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위페르라면 캐릭터와 실제 인물 간의 경계를 무척 강렬한 방식으로 드러내보일 거라 생각했다.
유명인을 카메라에 담은 첫 작업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을 촬영할 생각이 있나?
구상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명백한 욕망의 대상, 즉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을 촬영하는 작업이다. 오늘날은 리터칭 덕분에 모두가 아름답기 때문에 오히려 진짜 아름다운 것을 가려내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찍고 싶은 건 야생의, 어떠한 조작도 가해지지 않은 아름다움이다. 카메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만의 심리적 공간 안에 자리한 피사체를 포착할 것이다. 아마도 유명 여배우를 모델로 택하지 않을까 싶다.
일반인을 촬영할 때는 어떤 인물을 고르나? 나름의 구체적인 기준이나 조건이 있을까?
작업의 내용이나 개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You are the Weather’의 경우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소녀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는 콘셉트였고, 그 의도에 부합하는 인물을 캐스팅했다. ‘This is Me, This is You’ 때는 내 조카를 모델로 삼았다. 막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나잇대의 여자아이를 찍고 싶었다. 조카가 약 2년에 걸쳐 다양한 자기 이미지를 실험하는 모습을 담았는데 남자아이들에게선 이런 모습을 관찰하기가 어렵다.
초상 사진과 풍경 사진을 교차시키며 나열한 ‘You are the Weather’나 ‘Becoming a Landscape’를 보고 있노라면 인물은 풍경처럼, 그리고 풍경은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물과 풍경을 뒤섞고 그 경계를 흐리는 것이야말로 작업의 핵심이었다. ‘You are the Weather’는 초상 사진인 것만큼이나 궁극적으로 풍경 사진이다. 의도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얼굴을 하나의 장소처럼 바라본다는 기본 아이디어는 분명히 세우고 출발했다. ‘Becoming a Landscape’는 거기서 좀 더 나아간 경우다. 피사체를 둘러싼 거대한 풍경을 끌어와 인물의 초상과 섞이도록 했다.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나열한 사진 연작에선 나름의 내러티브가 읽히는 것 같기도 하다. 영상처럼 좀 더 구체적이고 정교한 내러티브를 구현할 수 있는 분야에는 관심이없나?
내러티브 자체에는 흥미를 느끼지만 전형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건 별로다. 이건 스토리라기보다는 그저 경험이고 무언가의 모음일 뿐이다. 물론 축적 과정의 역사는 존재하겠지만 그 안에 내러티브는 없다. 영상은 시도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관점에서든 난 스토리텔러가 아니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감상자의 역할을 많이 열어두고 싶기 때문인가?
물론이다. 난 모호함을 사랑한다. 패러독스를 사랑하고, 이런 것들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게 바로 리얼리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대 초에 아이슬란드를 여행한 이래, 여러 작품을 통해 꾸준히 이 나라를 언급하고 있다. 이후에도 많은 국가를 여행했을 텐데 유독 아이슬란드만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어쩌면 아이슬란드가 아닌 다른 어떤 나라였을 수도 있다. 그 당시 나름의 필요에 의해 난생처음으로 외국을 여행했고, 그 목적지가 특별한 의미로 남은 것뿐이다. 가끔은 궁금할 때도 있다. 그때 내가 멕시코든 어디든 다른 나라로 떠났다면? 또 뭔가를 발견하고 돌아왔겠지.
에밀리 디킨슨, 플래너리 오코너 등의 문인이 당신의 작업, 특히 조각에 미친 영향 또한 명백하다. 시각적 이미지보다 텍스트에서 좀 더 큰 자극을 얻는 편인가?
언어적인 것, 가장 목소리와 가깝게 느껴지는 것에 움직인다. 어쩌면 시각적 요소보다 언어를 중시 여기는 유대 문화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내 조각은 일종의 출판물에 가깝다.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의 경우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무척 자유로우면서도 투명하기 때문에 특히 끌린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창과 같은 느낌이 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 규정할 수 없는 정체성은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왜 이런 내용에 이렇듯 강하게 이끌린다고 생각하나?
내 작업이 다소 병적으로 보일 법도 하다. 그런데 난 다른 식으로는 일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난 선택을 내린 적이 없다. 그저 가능한 대로 움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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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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