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수난시대

전여울

기후변화 활동가들이 토마토수프를 들고 미술관에 들이닥쳤다.

Just Stop Oil, Letzte Generation.

Just Stop Oil, Letzte Generation.

Just Stop Oil, Letzte Generation.

10월 27일 목요일 오후 2시, 네덜란드 헤이그의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에 머리를 민 한 남자가 자신의 머리를 접착제로 고정시켰다.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관람객은 붉은색 페인트처럼 보이는 액체를 민머리 남자에게 들이부었다.

다행히 작품에는 큰 손상이 없다고 한다. 미술관 측에 따르면 작품 표면에 유리가 씌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로써 베르메르(1632~1675) 역시 최근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술품 공격의 피해자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미 반 고흐(1853~1890), 루벤스(1577~1640), 모네(1846~1920),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등의 작품이 매시드 포테이토, 토마토수프, 페이스트리 빵으로 얻어맞는 수난을 겪었는데, 여러 나라에서 작품을 공격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 모두 기후변화 활동가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외친다. “우리 모두에게 기후 재앙이 닥쳤는데, 여러분은 그림에 토마토수프나 매시드 포테이토가 묻는 게 그렇게 겁이 납니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저 미래를 위해 싸우려는 겁에 질린 사람일 뿐이에요.”

물론, 많은 사람이 이들의 행동에 반감을 표한다.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쳤을 유명한 작품의 이미지를 토마토수프나 일회용 접착제로 망쳐놓다니. 이제 고흐의 ‘해바라기’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꽃 대신 토마토 수프로 뒤덮인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공격한 작품 가운데 큰 손상을 입은 작품은 거의 없다. 사실은 작품 보호를 위해 얇은 유리판을 덧씌워두었기 때문이다. 아마 기후 활동가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무척 과격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예술이 중요한가 우리의 삶이 중요한가?”

에디터
전여울
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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