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고통 받아온 어느 탈모인의 눈물 겨운 경험담
Since 2012
탈모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던 건 주변인들의 포착 덕분이었던 것 같다. “소라님, 정수리가 점점 휑해지는 것 같아요. 병원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심장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날부터 이상하게 지하철만 타면 타인의 정수리부터 보게 되는 요상한 집착이 시작됐던 것 같다. 그리고 거울 2개를 사용해 뒤통수, 정수리를 샅샅이 관찰하며 보이지 않는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풍성한 머리숱으로 머리끈이나 집게핀이 튕겨져 나가던 나였는데! 믿기지 않아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다.
그날로 전문 병원에 등록해 각종 케어와 약물 치료를 한동안 열심히 받았으나 극도의 다이어트와 스트레스로 인해 이미 진행된 탈모를 단시간에 막기란 쉽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00탈모 병원에서는 각종 명절이나 휴가 시즌 때마다 안부 문자가 날라온다. 그럴 때마다 쓴웃음이 지어진다.
2016~2019
병원에서 처방해 준 먹고 바르는 약을 통해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제는 각종 기기, 도구와 민간 신앙으로 눈을 돌렸다. 우선 두피열을 내릴 수 있는 족욕 기계를 구매해 밤마다 발을 집어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홈 케어를 시작했다. 얼마큼의 효과를 거뒀는지 측정하긴 어려우나, 족욕 자체가 전신 혈액 순환과 숙면에 도움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결국 탈모란 단기간에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기보단 안 좋은 습관을 개선하고 체질 전반을 개조해 나가는 장기전이란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규칙적 수면, 건강한 식습관, 스트레스 감소 등 직장인이라면 응당 실현하기 어려운 정석 같은 것들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 ‘득모’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바르고 씻어내는 것만큼이나 탈모에는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때부터 모든 음식의 단백질 함량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달걀, 두부, 콩 등 양질의 단백질을 지닌 음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리고 지성 두피일수록 저녁에 반드시 샴푸를 하고, 잠들기 전 머리를 잘 건조하는 것처럼 의외로 놓치지 쉬운 것들을 꼼꼼하게 잘 지켜 나갔다.
2020~ing
이 시기는 주로 각종 광고에 낚이는 나날들을 보냈다. 악마 같은 SNS 알고리즘은 내게 주기적으로 탈모에 좋은 각종 샴푸, 영양제, 홈 케어 제품 등을 추천했고 나는 기꺼이 소중한 월급을 지불했다. 물론 대부분의 상품들은 반도 사용하지 못한 채 서랍 어딘가를 나뒹굴고 있다. 큰돈을 쓰든 작은 돈을 쓰든 탈모에 좋다는 상품들은 묘하게 유사과학, 종교 같은 특징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하니까. 믿는 자에게만 해방을 선사하는 심리 싸움 같달까?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다면, 본인이 한 달 동안 탈모에 투자할 수 있는 적정 비용을 설정해두고 무엇이라도 꾸준히 해보는 것은 정신 수련에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한동안 탈모에 좋은 지식을 얻기 위해 ‘이마반’이라는 커뮤니티에 꾸준히 들락날락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를 알게 돼도 그다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탈모는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기 쉬운 질병이다. 인간은 노화 혹은 유전적 이유로 인해 누구나 머리카락을 잃어갈 수 있고,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순리라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없는 머리카락을 있게 하는 ‘기적’을 바라는 것만큼, 현재 가지고 있는 소중한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 프리랜스 에디터
- 김소라
- 사진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