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 도시에서 모여든 미술계 인사와 한국의 셀럽이 돌체앤가바나, VSF, 그리고 더블유가 함께 주최한 파티를 즐겼다. 제1회 프리즈 서울이 쏘아 올린 축제의 날들 속에서 패션 하우스와 갤러리와 매거진이 뜻을 모은 유일한 자리였다.
제1회 프리즈 서울이 문을 연 첫날인 9월 2일, 저녁 7시. 청담동 돌체앤가바나 플래그십 스토어 주변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강다니엘, 서현, (여자)아이들의 리더 소연, 박해수, 이제훈, 이청아 등 한국의 셀럽이 한 사람씩 모습을 드러낸 데 이어 코엑스에서 페어를 둘러본 VIP들이 이 건물로 모여들었다. 2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아트페어를 맞아 서울의 주요 갤러리와 미술관은 페어를 둘러싼 축제 기간인 ‘프리즈 위크’를 즐기느라 분주한 와중이었다. 아트 바젤이 열리는 바젤과 마이애미와 홍콩, 그리고 프리즈가 열리는 LA와 뉴욕에서도 ‘아트’가 쏘아 올리는 흥분된 주간이 있다. 저마다 각자의 이유와 방식으로 페어를 기념하고, 해외 각지에서 입국하는 미술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맞이하는 이벤트를 연다. 그 풍경이 이곳 서울에서 펼쳐진 것이다. 돌체앤가바나, VSF(Various Small Fires), 그리고 <더블유>가 손잡고 마련한 파티는 사전에 진행한 초대에 응답한 이들만 출입할 수 있는 자리였다. <더블유>는 그동안 동시대 미술과 미술 시장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전문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예술에 접근해왔다. 그 여정에서 2020년 1월호 아트 이슈를 제작하며 LA에서 화보를 찍을 때 갤러리 VSF와 처음 연을 맺었다. 패션은, 거대 산업의 한 축으로 현대미술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서로 연결고리가 있었던 돌체앤가바나, VSF와 <더블유>가 함께 파티 프로젝트를 긴밀히 논의하기 시작한 건 지난 9월호 아트 이슈를 준비하면서부터다. 이 파티는 서울에서 맞이하는 첫 프리즈 위크 동안 패션 하우스, 갤러리, 매거진이 뜻을 모은 유일한 자리여서 의미가 컸다.
돌체앤가바나×VSF×<더블유> 파티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럿으로 구성된 ‘호스트 커미티’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10년 전 LA에서 출발해 서울 한남동과 댈러스에 갤러리 지점을 둔 VSF의 오너 에스더 김 바렛(Esther Kim Varet), VSF의 대표 작가이자 구겐하임과 메트로폴리탄 등 35개 뮤지엄 및 기관에서 사진 작품을 소장 중인 니키 리,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브랜드 화요의 부사장이자 미슐랭 레스토랑 비채나 대표인 조희경, 홍콩과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자문 회사 Art-Bureau(아트 뷰로) 공동대표 에드 탱(Ed Tang)과 조나단 청(Jonathan Cheung),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이규범이 그들이다. 파티의 출발점인 호스트가 다양한 색채로 존재하면 그들 각자의 네트워크로 인해 파티를 찾는 이들도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진다. 파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사람’이고, 아트페어를 맞아 열리는 파티란 각 도시에서 모인 사람들이 미술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누며 즐기는 자리다. 여기에 패션 하우스와 매거진이 함께하면서, 돌체앤가바나 플래그십 스토어는 다종다양한 이들로 밀도 높게 채워졌다. 큰 볼륨의 음악 사이로 서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는 이들과 서로의 친구를 소개해주는 이들의 대화, 웃음, 기념 촬영 등이 이어졌다.
장 누벨이 건축한 청담동 돌체앤가바나 플래그십 스토어는 작년 초 오픈했다. 외부에서 봤을 때 4개 층 내부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아래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경사로를 따라 컬렉션이 디스플레이되어 있기 때문에, 파티가 열리는 동안 손님이 몰려 바로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대기하며 자연스럽게 쇼핑할 만한 아이템을 둘러보곤 했다. 건물 1층에서는 이 파티를 위해 듀킴(Dew Kim)이 설치한 ‘Deepspace Exodus’(2022)가 손님을 맞았다. 듀킴은 작업에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이분법 논리에서 벗어나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여러 형태로 유희적 탐구를 하는 작가다. 화강암으로 만든 4개 기둥과 나선형 경사로가 중심인 돌체앤가바나 플래그십 스토어의 구조에선 원형의 빈 내부 공간이 생긴다. 듀킴은 기존에 선보인 적 있는 감옥 형태의 작업을 매장 구조에 맞춰 원형으로 재설치했고, 그 내부 공간에 우주 탐사 이미지의 영상 작업을 틀었다. 정해진 질서와 규칙을 벗어나 새 형태의 인류로 태어나고자 하는 감각이 시종일관 흘렀다.
파티가 열리는 메인 장소는 건물 꼭대기에 있는 야외 공간, ‘마티니 바’였다. 건물 층층이 이어지는 묵직한 블랙의 미감과 화려한 돌체앤가바나 컬렉션을 지나 옥상에 다다르니, 도시에 내려앉은 어둠과 선선한 바람이 파티객을 감싸주었다. 금요일 밤의 거리가 한눈에 보일 정도의 안온한 높이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파티객이 오가는 동안 디제이 썸데프, co.kr, 그루비룸까지 총 세 팀의 디제잉이 파티의 온도를 높였다. 갤러리가 밀집한 삼청동에 머물다가 ‘여전히 파티가 뜨겁다’는 연락을 받고 청담동으로 온 이들까지, 약 350명이 함께한 이 파티는 밤 11시경까지 이어졌다.
주목도 높은 아트페어가 아시아에 상륙한다는 점과 서울을 향한 세계의 관심 때문에 오픈 전부터 화제였던 프리즈 서울은 4일간 총 7만 명 정도의 관람객을 끌었다. ‘갤러리들이 어떤 전략을 갖추고 작가와 작품을 선보였으며 판매는 얼마나 되었는가’ 여부가 페어장이 남기는 이야깃거리라면, 페어장 바깥에서는 같은 기간 한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 간의 만남과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난다. 다양한 인종의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 작가, 누군가 혹은 어딘가의 예술 컬렉션을 구축하는 데 컨설턴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인 아트 어드바이저, 미술 재단 설립자, 칼럼니스트, 컬렉터… 그리고 한국의 셀럽과 기업가 등등이 함께 즐긴 시간. 이토록 하이브리드적인 내용의 파티가 서울 청담동에서 열린 건, 이 자리의 모두에게 분명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프리즈 서울 디렉터인 패트릭 리가 <더블유>에 들려준 말이 떠오른다. “저는 아트페어의 중요한 목표가 ‘좋은 작품을 가지고 오는 것’보다 ‘좋은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제 목표는 페어장 밖에 있어요.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서로 교류하길 원해요.”
- 패션 에디터
- 김신
- 피처 에디터
- 권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