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독일 화가, 마티아스 바이셔. 현실과 상상, 무질서와 조화 사이를 부유하는 실내 풍경화로 세계적 인지도를 얻은 그를 프리즈 서울의 쾨닉 서울 부스에서 만날 수 있다. 강렬한 색감의 방 속, 예기치 못한 오브제들로 마치 연극 세트를 연상시키는 그의 신작을 지금 서울에서 만날 기회다.
지난해 4월 쾨닉 서울의 개관전, 그곳에 마티아스 바이셔의 그림이 있었다. 쾨닉 서울의 본거지는 2002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한 쾨닉 갤러리로, 이곳을 이끄는 관장 요한 쾨닉은 다소 특별한 유년기를 겪었다. 그는 열한 살이 되던 무렵 폭죽 사고로 시력이 손상되며 이후 일반인에 비해 30~40%에 불과한 시력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러한 사실은 오히려 갤러리스트인 그에게 눈으론 확인할 수 없는 ‘지각’이라는 지평선을 열어주는 모멘텀이 되었다. 이 때문일지 다만 추측해볼 뿐이지만, 쾨닉 갤러리는 개관 이래 개념미술 기반의 융복합적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들을 유독 두 팔 벌려 환영해왔다. 지난해 쾨닉 서울이 한국에 처음 상륙하며 올린 개관전은 이러한 40여 명의 소속 작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기회였는데, 여기엔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마티아스 바이셔도 물론 포함되었다. 바이셔는 개관전 당시 그가 20년 가까이 매진하고 있는 실내 풍경화 장르의 유화 한 점을 선보였다. 노란빛 방에 여성용 드레스, 레트로한 스툴, 침대 등이 다만 고요히 머물러 있는 풍경. 갖가지 물건으로 채워졌지만 어딘가 텅 비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그림 ‘Flat 2’(2019)에 왜인지 한참이나 시선이 머문 기억이 있다. 가장 고전적 회화 장르의 하나로 꼽히는 실내 풍경화 ‘Flat 2’를 유독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주변에 있던 다양한 매체가 결합된 ‘블링블링’한 작품들 때문이었을 터다. 반짝이는 네온 불빛을 시종 내뿜던 예페 하인의 ‘You Make Me Shine’, 글자 ‘Love’를 쇠사슬로 형상화해 도발적 메시지를 던진 모니카 본비치니의 설치작 ‘Love’ 등등. 바이셔의 실내 풍경화는 그 사이를 비집고 홀로 고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때문에 작품 속 현실과는 다른 시공을 부유하는 듯한 방의 모습은 더없이 연극적으로 다가왔다.
MATTHIAS WEISCHER, PODIUM, 2022, OIL ON CANVAS, 188X205CM | 74X80.7IN, UNIQUE. COURTESY THE ARTIST AND KÖNIG GALERIE BERLIN | LONDON | SEOUL | VIENNA. PHOTO | ENRICO MEYER.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신작 ‘Fundus’(2022)로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나는 마티아스 바이셔는 2000년대 초반 화단에 등장했다. 새로운 매체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며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되던 시대, 바이셔를 포함한 신라이프치히 화파는 21세기 버전의 회화 열풍을 이끈 주역들로 꼽힌다. 1960년대 싹튼 라이프치히 화파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이들은 설치미술이며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며 고속 행진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붓과 물감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세상은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회화의 본질에 집중한 사실주의 화풍, 여기에 어쩔 수 없이 깃든 독일 통일 직후의 혼란한 사회 심리적 상황은 예민한 컬렉터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000년대 초반 컬렉터들은 그들이 찾은 아트페어에서 소위 ‘신라이프치히 물건’을 찾기 바빴는데, 바이셔는 당시의 소란을 이렇게 기억할 뿐이다. “컬렉터들이 라이프치히까지 찾아와 우리의 작품을 미친 듯이 사기 시작했어요. 물건으로 치면, 값은 싼데 품질이 좋다고 여긴 거죠.” 그러곤 덧붙였다. “라이프치히는 빠르게 창조적인 붐 타운이 됐어요. 그런데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죠. 그 당시에도 여전히 아카데미에서 강조한 것은 무엇보다 좋은 그림, 좋은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었고 아카데미 동료들은 그림과 예술 전반에 대해 늘 격렬한 토론을 벌였으니까요. 항상 주변에 어떠한 ‘에너지’가 있었는데, 이는 라이프치히가 문화의 수도로 떠오르는 기틀을 마련해줬죠.”
MATTHIAS WEISCHER, FUNDUS, 2022, OIL ON CANVAS, 120X120CM | 47.2X47.2IN, UNIQUE. COURTESY THE ARTIST AND KÖNIG GALERIE BERLIN | LONDON | SEOUL | VIENNA. PHOTO | UWE WALTER.
황톳빛 방, 바닥엔 화병 하나가 원근법에서 슬며시 비켜나 우뚝 장식되어 있다. 어쩐지 기만적인 위치와 크기. 게다가 명함 표현이 생략된 채 다만 편평하게 그려져 있다. 방을 바라보던 직진의 시선은 캔버스 왼쪽에 아슬아슬하게 그려진 벽 모서리를 만나면서 사선으로 급격히 확장한다. 한편 동양적 부채와 알록달록한 패턴이 그려진 각종 직물은 캔버스라는 평면 속 또 다른 평면적 요소로 그림에 공존한다. 이는 바이셔가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이는 신작 ‘Fundus’의 이야기다. 친숙한 것과 기괴한 것 사이를 유영하는 바이셔의 방. 그가 캔버스라는 2차원에 구현한 3차원의 공간은, 미묘한 음영과 왜곡된 원근법 등을 통해 공간적 논리를 허무는 것이 특징이다. 관객이 회화에 정면으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주로 텅 빈 모서리로 향하게 유도하는 왜곡된 원근법, 평면의 캔버스 안에 평평한 카펫, 그림 같은 또 다른 평면적 요소를 공존시키거나 실내의 상반된 면을 반영하는 거울을 넣어 혼란을 주는 방식 등은 바이셔만의 독특한 화풍이자 실제 공간과 묘사된 공간 사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한편 그의 그림엔 항상 구동독 시대로 회귀한 듯한 갖가지 오브제가 자리하는데, 이는 그가 즐겨 읽는 1970년대 인테리어 잡지와 책에서 발견해 묘사한 것들이다. 그런데 작품을 읽는 뚜렷한 단서가 될 이 오브제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단서가 거의 제거된 상태로 그려지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할 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마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이것은 실제 집인가, 아니면 오롯이 상상의 공간인가? “저에게 벽, 바닥, 천장으로 구성된 텅 빈 공간은 마치 꼭 채워야만 하는 빈 그릇처럼 다가와요. 강한 공간감이야말로 저를 캔버스 앞에 서게 만드는 동력이 되죠. 방을 묘사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은 특히나 제가 좋아하는 놀이입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1점 투시로 시작한 그림이 다중 투시로 변화하기 일쑤죠. 또 그림에서 다양한 오브제를 가지고 저글링하듯 놀다 보면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게 됩니다.” 바이셔의 말이다.
MATTHIAS WEISCHER, HELLO, 2022, OIL ON CANVAS, 50X40CM | 19.7X15.7IN, UNIQUE. COURTESY THE ARTIST AND KÖNIG GALERIE BERLIN | LONDON | SEOUL | VIENNA. PHOTO | UWE WALTER.
MATTHIAS WEISCHER, KOPF, 2022, OIL ON CANVAS, 50X40CM | 19.7X15.7IN, UNIQUE. COURTESY THE ARTIST AND KÖNIG GALERIE BERLIN | LONDON | SEOUL | VIENNA. PHOTO | UWE WALTER.
MATTHIAS WEISCHER, LAST SUPPER, 2022, OIL ON CANVAS, 183X236CM | 72X92.9IN, UNIQUE. COURTESY THE ARTIST AND KÖNIG GALERIE BERLIN | LONDON | SEOUL | VIENNA. PHOTO | UWE WALTER.
2000년대 초, 갓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지만 이미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혜성으로 불린 마이타스 바이셔. 그는 1995년 라이프치히를 찾았고, 여전히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다. 물론 잠시 이곳을 떠난 적도 있다. 2007년 로마의 빌라 마시모에서 1년간 레지던시 경험을 했는데, 이때 본 파란색과 분홍색의 중세 이탈리아 프레스코화는 그에게 특히 색조에 있어 많은 영감을 줬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에 지고지순한 애정을 가진 그는 말한다. “저는 풍경을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라이프치히가 그런 장소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두려워요. 그래서 가끔 이곳을 떠나지만 라이프치히로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에요. 저의 뿌리와 같은 곳이니까요.” 그런 그는 이런 농담도 덧붙였다. “그런데 그냥 멋진 풍경의 도시로 떠나 잠시 살아볼까요? 최근 노르망디에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정말 놀라웠어요. 작가들의 낙원에 가깝더군요.” 한편 그가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몰두해온 그림이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실 무엇을 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명확한 주제나 큰 비전보다 그저 그리는 것이 중요하죠.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자연’ 에서 그리는 것이 가장 좋은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그림을 그릴 때 내가 하고 있는 것, 묘사하는 것은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더 그릴수록 더 보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죠.” 프리즈 서울에서 그가 펼치는 ‘공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맛보기 했다면, 9월 1일부터 쾨닉 서울에서 열리는 개관전 <Mirrors and Things>의 관람도 권하고 싶다.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최근 몇 년간 그가 몰두하고 있는 이른바 ‘쌍둥이 그림들’, 즉 언뜻 서로 동일해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를 지니며 하나로 쌍을 이루는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다. 나란히 걸린 두 점의 작품을 서로 번갈아 보고, 가끔은 뒤로 물러나 하나로 바라보며 시선의 저글링을 즐길 때 그의 작품은 공간의 놀라운 층위를 펼쳐 보여줄 것이다.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사진
- THE ARTIST AND KÖNIG GALERIE BERLIN |LONDON | SEOUL | VIENNA. PHOTO | UWE WAL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