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F/W 서울 패션 위크의 다채로운 시도

W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풍요로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 친환경 코드와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고심이 엿보인 2022 F/W 서울 패션 위크. 런던과 파리 패션위크 진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섞인 하이브리드 방식의 생중계 등 다채로운 시도가 혼재하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두칸 Doucan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의 밤, 그리고 그 밤을 비추는 화려한 빛에서 영감을 받은 두칸은 이번 시즌 파리 패션위크에서 쇼를 펼쳤다. 직선적인 구조의 건축물과 역동적으로 뻗은 도로에서 영감을 받아 곡선과 직선이 교차하는 듯한 실험적인 실루엣을 구현했고, 황홀한 빛의 스펙트럼은 컬러풀한 색과 광택이 도는 원단으로 표현되었다. 붉은색과 파란색, 검은색이 혼합된 날염 패턴에서 디자이너 최충훈의 아티스틱한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노앙 Nohant
오버핏 옥스퍼드 셔츠, 핀턱 팬츠, 빈티지 케이블 니트, 더블 재킷 등 세월이 가도 사랑받는 클래식한 아이템을 웨어러블한 스타일로 재해석한 노앙. 빈티지한 컬러 팔레트에 현대적 패턴을 더해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표현했다. “늘 내가 입는 옷에 생기를 심어주는 그런 상담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디자이너 남노아는 뉴트럴 컬러에 톤다운된 퍼플 컬러와 코발트블루로 중심을 잡은 채 노앙을 대표하는 타이포 아이템이나 로고 플레이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선보인다. 특히 코트 위에 재킷, 재킷 위에 후디, 치마처럼 연출한 셔츠와 카디건 등 일반적인 옷 입기 방식을 벗어난 위트 있는 스타일링도 등장한다.

비욘드 클로젯 Beyond Closet
비욘드 클로젯의 컬렉션 라인, ‘N Archive’ 쇼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렸다. 디자이너 고태용에게 항상 영감의 대상이 되는 클래식과 밀리터리, 스트리트 등의 요소는 여전한 가운데, 회화적인 터치가 느껴지는 프린트와 와펜 등이 장식적인 요소로 등장했다. 디자이너는 이번 시즌엔 <더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과 그들의
마인드가 컬렉션 전개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다.

빅 팍 Big Park
극한의 추위를 견디고 태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있음을 상징하는 동백꽃에 매료된 빅팍의 디자이너 박윤수. 겨울꽃과 여름나라 여행이라는 상상으로 컬렉션을 풀어낸 그는 겹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동백의 형태를 아우터와 드레스에 그대로 프린트로 활용하는가 하면,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멀티 컬러 팔레트로 그만의 독특한 미학을 펼쳐보였다. 옷감을 그대로 액자에 넣어도 될 만큼 색감이 선명하다. 동백꽃 외에 물결무늬나 동물무늬 등 다른 프린트도 시선을 모을 만큼 인상적이다.

카루소 Caruso
끝이 보이지 않던 막막했던 지난 2년을 돌아보며 이번 시즌을 완성했다는 카루소의 디자이너 장광효. DDP에서 열린 피지컬 쇼에 감회가 새로운 듯 말한다.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꿈꾸는 마음으로 스물다섯 착장을 만들었습니다.” 변형된 슈트와 중성적인 실루엣, 전통적 요소를 더한 오리지낼리티를 확인해볼 것. 카루소를 대변하는 넓은 라펠과 형태를 감춘 폭 넓은 팬츠, 스커트에 버무린 파스텔 톤의 로맨스도 여전히 빛난다.

분더캄머 Wnderkammer
파리 브롱나이 궁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신혜영의 분더캄머. 기본적인 아이템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며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해온 그녀는 이번 시즌 윤동주의 시, ‘거리에서’를 읽는 그를 상상하며 컬렉션을 그려갔다고. 깃을 잔뜩 세운 두툼한 모직 코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눈 내리는 겨울밤을 거니는 모습 말이다. 쇼에서는 미니멀리즘 실루엣을 강조한 벨티드 롱 트렌치코트, 맥시 드레스, 점프슈트로 구현된다. 룩의 실루엣을 잡아주는 버클이나 구슬, 매듭 벨트도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미스지 컬렉션 Miss Gee Collction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굳건한 아름다움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것을 표현합니다.” 디자이너 지춘희의 쇼노트에서 알 수 있듯,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강인한 목소리를 패션 미학에 담았다. 서울 남산공원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컬렉션은 배우 고민시의 오프닝 무대로 시작해 클래식한 체크 패턴과 부드러운 컬러 팔레트가 주를 이뤘고, 꽃무늬 프린트와 눈부신 핑크빛이 쇼에 활기를 더했다. 동시대 여성의 멋과 우아함을 담은 룩에는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길 희망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차 스튜디오 Hanacha Studio
디자이너 차하나의 하나차 스튜디오가 몇 번의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단순화 과정과 점선면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점선면을 통한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의 조형적 관점과, 동시대를 살았던 최초의 추상화가로도 알려진 힐마 아프 클린트의 분절된 원형과 나선형 및 자유로운 드로잉을 패션에 적용하여, 점선면의 회화적 요소가 리드미컬한 음악을 타는 듯 어우러지는 조형적 컬렉션을 선보인다.

까이에 Cahier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로 떠났던 첫 설렘을 기억하는가. 디자이너 김아영은 영화 <유 콜잇 러브>를 보고 키운 파리에 대한 환상과 기대, 그리고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인상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대적 배경은 80년대. 과장되고 화려한 실루엣에 까이에만의 여성스러운 터치를 더해 낭만적이면서도 파워풀한 감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카키색 밀리터리 점퍼와 러플 장식 스커트, 테일러드 코트에 물결치는 어깨 장식을 더하는 식이다.

페인터스 Painters
구조적인 형태와 실험적인 디자인 세계를 펼쳐온 페인터스는 이번 시즌 ‘Accepted’를 주제로 한다. 마치 자신의 얘기인 듯, 실험적인 비주얼이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담아냈다고. 과감하게 엮고 부풀리고, 묶는 등 다양한 방식의 장식성은 브랜드의 핵심을 보여주는 장치다. 인사를 넣은 룩북의 마지막 컷은 받아들여짐을 표현한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마치 한 편의 전시를 본 듯한 경건하고 심오한 무드가 룩북 전반에 걸쳐져 있다. 오프닝 룩부터 클로징까지 순서대로 보기를 권한다.

뷔미에트 Bmuet(te)
런던 패션위크에서 라이브 쇼를 선보인 디자이너 서병문, 엄지나는 ‘부르주아의 표현’을 테마로 잡았다. 19세기 유럽 문화의 부흥과 혁신을 주도한 이들은 지적이면서도 우아한 양식을 발전시키며 지난 시절의 귀족을 대체해버린 신흥 엘리트 그룹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블라우스와 볼륨 있는 스커트, 구조적인 재킷, 드라마틱한 실루엣, 여기에 매치한 투박한 메리제인 힐로 브랜드의 강점인 테일러드 유니폼 룩에 부르주아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낭만성을 담아냈다.

듀이 듀이 Dew e Dew e
멕시코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서 출발한 듀이듀이는 ‘서울 여자를 위한 자화상’이 주제다. 프리다가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림을 통해 극복하고자 애썼듯, 디자이너 이수연과 김진영은 이 시대의 여성이 여자이자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을 고찰했고 그들에게 경의를 바친다고. 듀이듀이의 낭만적인 감성을 극적으로 표현한 튤과 티어드 드레스, 코르셋을 변형한 미니스커트와 베스트, 투박한 팬츠를 통해 브랜드의 로맨티시즘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석운 윤 Sekowoon Yoon
역사와 현대미술이라는 광범위한 주제에서 영감이 되는 요소를 포착해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펼치는 석운 윤. 그래서인지 그의 옷은 예술과 기성복 사이의 어느 경계쯤에 서 있는 듯하다. 카디건과 셔츠, 타이를 갖춘 유니폼 형태와 일반적인 슈트, 셋업 스타일링 가운데 올록볼록한 형태의 아우터와 아트 피스처럼 보이는 거대한 코트, 프린트로 뒤덮인 이불에 가까운 스톨을 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얼킨 Ulkin
디자이너 이성동의 얼킨은 여전히 춤에 매혹되었다. 스우파의 댄서들과 함께한 뉴욕 패션위크를 지나 춤이라는 키워드가 서울 패션위크까지 이어진다. 스걸파 출신의 노원과 조은혜, 그룹 펜타곤의 멤버 등 차세대 아이콘이 한자리에 등장하며 쇼의 볼거리를 더했고, 피날레를 장식한 댄스 퍼포먼스는 쇼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과감한 커팅, 펑키한 장식, 글로시한 텍스처 플레이는 스트리트 패션에 더없이 어울리지 않나.

세인트 밀 Saint Mill
무용수의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한 편의 공연을 펼친 디자이너 명유석. 그의 브랜드 세인트 밀은 ‘적막 속에서 손짓하는 또 하나의 나’를 주제로 짧은 필름을 선보였다. 베이지, 초코, 캐멀 등 브라운 계열의 부드러운 컬러에 테이핑 디테일로 포인트를 주었고,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점프슈트와 원피스 등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사진만으로는 담기기 힘든 2분여 길이의 영상은 또 다른 울림을 전한다.

미나 청 Mina Chung
모델 곽지영의 솔로 퍼포먼스로 옷을 표현한 미나 청은 ‘濃淡(농담)’이라는 심오한 미학 개념을 컬렉션에 담았다. 동양 미학의 핵심인 농담을 화두로 화려한 프린트와 실험적인 실루엣을 반복적으로 차용한 점이 돋보인다. 비대칭 형태, 해부학적인 구조, 주름 기법과 오리엔탈리즘이 느껴지는 패턴에서 그녀가 그리는 미의 본질을 살펴볼 것.

잉크 Eenk
레터 프로젝트로 컬렉션을 전개하는 잉크 디자이너 이혜미는 이번 시즌 ‘V for Vintage’ 컬렉션을 선보인다. 1980년대의 파워풀한 우아함과 글래머러스함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레터링과 체인, 주얼 버튼 장식으로 구현되었고, 맨즈 웨어의 테일러링을 반영한 슈트로 앤드로지니어스 무드를 표현했다. 커다란 페이크퍼 볼레로와 극적인 실루엣의 케이프, 클래식한 페도라로 룩에 드라마를 부여한 점도 눈에 띈다. “빈티지는 잉크의 핵심 DNA입니다.”

홀리 넘버 7 Holy Number 7
디자이너 최경호, 송현희는 매번 컬렉션에 메시지(변화는 우리 손에 달렸다)를 담아 모두와 소통하길 원한다. 이번 시즌엔 이 시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을 컬렉션으로 풀어냈다. 현실에 반항하는 듯한 전위적인 장식이 눈에 띄는데, 특히 헤드피스와 비대칭 재킷, 반짝이는 텍스처에서 그러한 시도가 읽힌다. 한편 메탈릭한 소재와 그래픽적인 패턴을 통해 미래적인 무드도 드러낸다.

라이 LIE
가방 대신 화분을 들고 등장한 라이의 이번 시즌은 반려식물과 함께 떠나는 스키 여행이 모티프다. 현대 사회에서 반려견만큼 익숙해진 반려식물과의 동행은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상상하게 한다. 고전적인 스키복의 그래픽 패턴과 커팅, 실루엣을 발전시킨 컬렉션은 액티비티와 도심 그 어디에서도 유용하게 고안되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이너 이청청의 고심도 이어진다. 친환경 소재와 테크닉을 더한 업사이클링 패션으로 환경을 지키는 데 일조한다.

비건 타이거 Vegan Tiger
비건, 지속가능성, 에코 프렌들리…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는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운 지금. 이름에서 정체성이 드러나는 디자이너 양윤아의 비건 타이거는 비동물성 소재로 동물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을 꿈꾼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행진’을 주제로 한 컬렉션에서는 비건 타이건스러운 키치한 프린트와 풍부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인조 모피로 만든 베스트와 모자, 라펠이 커다란 아우터, 다양한 물감이 혼재된 듯 뒤섞인 아우터가 눈에 띈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