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영상, 그래픽의 삼위일체를 체화 한 음악 프로듀서이자 디제이. 히치하이커라는 세계에서 흥미롭지 않은 요소는 그 무엇도 없다.
‘먼 옛날, 소리를 연구하는 지구의 한 과학자가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지구에서 나는 각종 소리를 수집하던 인공위성은 과학자가 죽은 후, 실수로 그간 수집한 소리를 다 날려버리고 만다. 엄마와도 같았던 과학자에게 미안했던 그것은 제 몸의 일부를 떼내어 ‘히치하이커’를 만든다. 그리고 다시 지구상의 소리를 수집하기 위해 나선다. 그렇게 지구에 내려온 히치하이커의 여정이 시작된다.’
여기, 우주에서 시작된 탄생 스토리를 지닌 캐릭터가 있다. EXO에게 초능력이 있고 에스파가 광야로 떠나 블랙 맘바와 맞서야 하는 것처럼, 히치하이커는 지구에서 각종 재질의 소리를 수집하는 중이다. 중독적인 전자음 위로 알 수 없는 가사가 반복되는 음악. 복잡다단하며 이질적인 요소로 가득한 만화경이 펼쳐지는 뮤직비디오. 사운드, 영상, 그래픽 등을 선보이는 아티스트 히치하이커는 한때 솔로 가수였고, 밴드 롤러코스터의 베이시스트이자 제작자였다. SM엔터테인먼트 산하 스크림 레이블의 총괄 프로듀서이며, SM 아티스트들의 타이틀곡을 EDM 버전으로 리믹스하기도 한다. 포털사이트에서 ‘히치하이커’를 검색하면 로봇을 닮은 캐릭터의 그래픽 이미지가 프로필 사진으로 뜬다. 네이버와 다음 측은 히치하이커의 모습이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물검색 결과에서 사진을 띄우지 않았지만, 최근에야 그 방침을 허물었다. 유수의 IT 회사들이 ‘현실과 가상은 해상도 차이일 뿐’인 시대정신을 이제야 받아들인 걸까? 자연인 본체의 모습 대신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언제나 재밌는 작업을 실험 중인 히치하이커를 만났다. 그는 지금 여기의 오프라인에서도, 그가 직접 CG로 구현한 가상세계에서도, 반짝이는 은빛 피부를 지닌 채 존재했다.
<W Korea> 화보 촬영할 때, 전신에 스와로브스키를 두른 듯 당신이 영롱하게 반짝거려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웃음). 반사 효과가 CG 못지않다.
히치하이커 표면의 소재는 은색 실로 짠 천이다. 레이저 커팅에 손바느질까지 필요해서 슈트 한 벌 만드는 데 공이 많이 든다. 히치하이커는 디지털 결과물로 먼저 존재했던 캐릭터라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게 큰 숙제였다.
방화복처럼 생긴 은빛 슈트는 몇 벌이나 가지고 있나?
지금은 10벌 정도 있다. 그냥 일반 의상 소재가 아니라 딱딱한 소재도 포함돼 있고, 각이 많이 진 탓에 디제잉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다 보면 스크래치가 생긴다. 한창 국내외로 공연 다닐 때는 평균 한 달에 한 벌꼴로 이 슈트를 제작했다.
2022년 1월 1일, SM엔터테인먼트의 레이블 콘서트라 할 수 있는 <SMTOWN LIVE 2022 : SMCU EXPRESS@ KWANGYA>가 온라인 중계됐다. SM 아티스트들의 공연 후 이어진 디제잉 파티가 화제였다. 실재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파티가 아니었기 때문에 ‘히치하이커가 메타버스 세상에서 디제잉 중이다’ 같은 실시간 댓글이 달렸다.
그 공연은, 그러니까 라이브 스트리밍된 그 공연 영상은 작년에 만들어둔 VR 공연 콘텐츠다. VR 콘텐츠를 즐기려면 전용 글라스가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개개인이 그런 글라스를 갖추진 못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SMTOWN 라이브 때는 VR 영상 화면을 녹화해 일반 영상처럼 만들어 내보냈다. VR 글라스를 착용하고 그 영상을 보면 실제 공연장에 있는 것처럼 영상 속 인파 속에서 파티를 즐길 수 있다.
공연 마지막 즈음 무대에 잠시 나타난 남성을 두고 일부 시청자들이 NCT의 태용으로 착각하는 일도 있었다.
그 친구 이름은 ‘써드(3RD)’라고 한다. 내가 만든 가상의 래퍼다. 1월 7일 히치하이커와 써드가 협업한 ‘Alone’ 발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SMTOWN 라이브에서 미리 잠깐 선보였다. 뮤비로 공개된 써드의 모습은 GTA 게임 속 인물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캐릭터 디자인이나 뮤비 모두 언리얼 엔진이라는 게임 툴로 작업해서 그렇다.
‘Alone’은 히치하이커가 음악 프로듀서로서는 가장 최근에 선보 인 작업인데, 써드에 대해 어떤 반응을 얻고 있나?
‘이게 뭐냐.’
이런 댓글을 봤다. ‘아직까지는, 히치하이커가 선보인 뮤비 중에 가장 정상적이다.’ ‘이게 뭐냐’는 물음에는 어떻게 답하겠나?
써드라는 래퍼를 만든 이유는 AI 보이스로 음원 발표를 해보고 싶어서다. 실제 음성이 아니라 여러 목소리를 학습시켜 얻은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파이썬’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짜놓은 오픈 소스를 이용했다. 사람을 대체하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다기보다 ‘써드’ 자체가 나에겐 일종의 아트워크이자 새로운 시도인 셈이다. ‘히치하이커가 AI 코드를 이용해 자신의 악기 하나를 만든 것’이라고 봐주셔도 좋겠다. 지금은 AI 보이스와 관련해 세계 유일의 기술을 보유한 슈퍼톤이라는 회사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곧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
AI 목소리로 랩을 하는 결과물을 얻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AI라고 해도 아직은 사람의 손이 많이 간다. 음정과 박자는 정확해도 진짜 사람의 목소리 같지는 않은 딱딱한 음성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사람이 일일이 매만져줘야 한다. 포토샵으로 사진을 리터칭하는 것처럼 보정 작업을 해주는 거다. 다만 그 보정 작업이라는 게 스튜디오에서 가수가 녹음한 이후 보정할 때의 과정과 똑같다. 써드의 경우엔 발음에 좀 문제가 있었다. 영어 랩들로 학습시킨 목소리라 한국말도 교포 같은 발음으로 하는 결과가 나왔다(웃음). 발표하기 전 써드의 목소리를 보아에게 들려준 적이 있는데, 사람 목소리보다 어색한 상태의 그 느낌이 오히려 재밌고 좋다고 하더라.
당신은 히치하이커가 주인공인 게임 앱을 출시한 적도 있고, 최근에는 해외 셀럽들의 NFT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회사와 무언가를 논의 중이기도 하다. 여러 갈래의 활동을 하는데, 아티스트로서 요즘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있다면 뭔가?
히치하이커는 원래 영상으로만 존재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다 현실에서 국내외를 오가며 디제잉 공연도 했다. 요즘에는 다시 온라인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애초부터 메타버스적 요소를 가지고 태어난 캐릭터가 이제야 물 만난 듯 보다 마음껏 놀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요즘 ‘메타버스 세상이 온다’라는 말이 많은 건, 그런 세상이 그냥 오는 것 같아서 생긴 말이 아니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각종 기술이 실제로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화두다. 이대로 몇 년이 흐르면 정말로 현실과 가상, 시공간을 초월해서 활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메타버스’와 ‘MZ세대’는 요즘 마법의 단어다. ‘시대정신’에 호응하려는 세상의 많은 사람과 업체가 이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쓰는 면도 있다. 메타버스적이라는 건 어떤 특징을 말하나?
예를 들어 ‘메타버스 공연을 한다’는 건 뮤지션이 가상세계로 들어가서 공연을 하고, 관객도 그 세계 안에서 공연을 보고 즐긴다는 의미다. 그런데 보통의 뮤지션이 가상세계에 나타나려면 사람을 아바타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히치하이커는 디지털 캐릭터로 먼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온&오프라인을 넘나들 수 있다. 최근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메타버스 공연을 했다. 그들 몸을 3D 스캔해서 아바타를 만들고, 아티스트는 모션 캡처 슈트를 입은 채 공연해서 작업한 결과물을 온라인에 올려놓은 것이다. 오프라인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들을 100프로라고 한다면, 그 정도로 실감 나진 못해도 메타버스상에서 50프로 정도의 느낌은 내며 공연 문화를 즐기는 셈이다.
히치하이커의 캐릭터와 외양은 어떻게 태어났나?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이런저런 캐릭터를 디자인해보고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기술이 지금 같지 않아서 나 혼자 사람 형상의 캐릭터를 만드는 게 무척 힘들었다. 결국 NASA우주인 같은 캐릭터를 떠올렸는데, 작업을 위해 이 소프트웨어에서 저 소프트웨어로 이미지를 전송하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깨졌다. 동글동글하던 캐릭터의 모양이 부서지면서 각이 생겨버렸다. 그게 지금 히치하이커의 모습이다. 부서진 듯한 상태가 더 재밌어 보였다. 그가 나의 아바타처럼 대신 활동하는 개념이 된 거다. 내가 직접 나서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이 아니기도 했고.
소위 말하는 ‘얼굴 없는 가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될까?
그럴 수도 있다. 디제잉 공연을 할 때 무대에 서 있는 그 캐릭터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백인도 아시안도 아닌, 그저 음악으로만 인정받길 바랐다. 다프트 펑크나 데드 마우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히치하이커로 활동하는 이상, 자연인 최진우가 아니라 히치하이커의 세계관으로만 보이면 좋겠다.
히치하이커라는 ‘이름’으로 K팝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프로듀서가 어느 날 정체불명의 캐릭터로 나타난 건 2014년 ‘일레븐’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곡의 가사는 ‘아바바바바’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뿐이고, 뮤비에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비주얼 대잔치’ 가 벌어졌다(웃음). 그때의 반응을 기억하나?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유튜브 SMTOWN 채널을 통해 그 뮤비를 발표했다. SM 직원들은 뮤비를 업로드하고서 모두 연휴 보내러 갔지. ‘SM유튜브가 해킹당한 거 아니냐’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웃음). 나중에는 10대들 사이에서 ‘보고 있으면 정신병 걸리고 구토하는 영상’ 식의 괴담이 떠돌았다고 한다. 트랩이나 덥스텝, 베이스 뮤직 같은 장르를 지금이야 NCT를 비롯해서 여러 아이돌이 선보이고 있지만, 당시에는 국내에서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복잡하면서 희한한 스타일의 뮤비도 사람들이 낯설어했고. 그런데 3일 만에 조회수가 1백만을 넘겼다.
요상하기도 하고,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집대성한 뮤비 같기도 했다. 그 뮤비를 개인 채널이 아닌 SM이라는 통로로 발표하면서 혹시 걱정은 안 들었나?
‘일레븐’은 특별한 계획 없이 혼자 그냥 작업해본 결과물이다. 나는 그저 작업 자체가 너무 재밌었는데, 아내가 걱정이 컸다고 한다. 1년 넘게 혼자서 이상한 소리와 캐릭터를 가지고 놀고 있었으니까. 가끔 지나가다 날 보면서 ‘그래도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꼽히는 음반을 제작한 사람인데’, ‘나름 밴드 활동하면서 신에서는 인정받은 뮤지션인데’, 그 모든 게 한 방에 무너지면 어쩌나 싶었다더라(웃음).
히치하이커 홀로 또는 NCT 태용이나 래퍼 소코도모와의 합작물을 낼 때마다, 뮤비에서는 늘 만화경 같은 세상이 펼쳐졌다. 이제는 뮤지션이 자기 음악과 관련된 비주얼 작업까지 스스로 해내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당신에겐 음원이라는 사운드와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뮤비라는 비주얼이 유독 한 패키지다. 사람들의 반응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
초반엔 충격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반응을 많이 접했지. 그런데 가장 최근에 낸 써드의 뮤비는 모두 CG로 구현한 세계지만, ‘일레븐’을 비롯해 내 뮤비에 등장하는 배경이나 요소는 대부분 우리 생활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나는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간판이나 슈퍼에 쌓여 있는 과자들의 현란한 색감이 비주얼적으로 흥미롭고 힙하다고 느꼈다. 종로에 가면 한 상가 건물에 피자 레스토랑, 노래방, 교회, 마사지 업소, 결혼정보업체가 모여 있는 식이다. 뮤비라는 매체 속에서는 대개 매끈하고 잘 포장된 장면이 등장하는데 나는 있는 그대로를, 실재하는 혼종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뿐이다. 그걸 무섭고 괴기스럽다고만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부정하는 거 아닐까?
주로 불균질하면서 생활감이 묻어나는 장면들에 끌리는가?
평소 여기저기 소스용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데, 청계천만큼 내게 만족감을 주는 곳이 없다. 재개발 논의가 계속되는 세운상가 주변과 골목들. 요즘 제일 해보고 싶은 건 무언가 엉망진창인 비주얼 작업이다.
지금까지의 엉망진창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웃음)
그래도 이제껏 바닥과 천장이 존재하는 화면을 구성했다(웃음). ‘엉망진창’을 잘 만드는 게 아주 어려운 일 같다. 하늘과 바닥을 뒤집거나, 합성 이미지를 만들면서 일부러 번진 효과를 주는 것 등등. 캘빈 해리스와 듀아 리파의 ‘One Kiss’라는 곡 뮤비에 그런 비주얼이 재밌게 구현되어 있다. 의도된 엉망진창을 볼 때면 ‘그래, 이거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 게 바로 자신감이거든.
2009년 브아걸의 ‘아브라카다브라’는 당신의 음악 커리어에서 분기점이 됐을 것이다. 이후 아이돌 곡 작업을 의뢰받는 프로듀서가 됐다.
의뢰가 들어왔다기보다는 내가 먼저 여기저기 찾아 나섰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소녀시대가 누군지도 몰랐다. 롤러코스터 해체 후에는 클럽에서 디제잉하는 데 집중하며 살았다. ‘아브라카다브라’의 도입부도 원래 클럽에서 디제잉할 때 쓰려고 만들어둔 것이다. 어느 날 아내인 김부민 작사가가 곡을 하나 들려줬는데, 노래가 너무 좋은 거다. ‘마이클 잭슨도 아니고,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그 곡이 샤이니의 ‘줄리엣’이다. 특히 곡 중간의 브리지 부분은 환상적이었다. ‘나도 이런 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이니의 ‘줄리엣’을 들었을 때처럼 좋았던 K팝이 최근에도 있나?
지금은 그 정도 수준의 곡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때만큼의 신선한 충격을 다시 받긴 힘든 것 같다. 가요는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잘 듣지도 않았던 사람이 SM이라는 회사에 아주 놀랐으니까. 그냥 아이돌 음악 내는 곳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소녀시대도 모르던 당신이 SM과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신화의 앤디가 내 노래 ‘엉뚱한 상상’을 리메이크한 적이 있어서 앤디의 매니저에게 연락해봤다. 나는 앤디가 SM에서 나간 것도 몰랐던 거지. 어쨌든 그를 통해 A&R 직원을 만나 내 데모 작업을 들려줄 수 있었다. 한 대여섯 곡 들려줬나? 직원 말이 내 곡들을 전부 다 쓰겠다고 하는 거다. 그 데모들은 이후 소녀시대와 샤이니 등의 앨범 수록곡이 됐다.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SM 이성수 대표다. 처음 ‘일레븐’을 내놓을 때도 어디서 어떻게 발표해야 하나 싶었는데, 곡 작업하며 친분이 생긴 SM 측에서 ‘그냥 우리 채널로 발표하시죠’라고 말해주었다.
히치하이커에 대한 이수만 프로듀서의 반응은 어땠나?
‘일레븐’ 발표 후, 선생님이 먼저 회사에 ‘이 친구 빨리 만나게 해달라’라고 했단다. 만난 자리에서 내가 1시간 동안 히치하이커의 세계관과 활동 계획에 대해 PT를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1시간 반 동안 아이디어를 내셨다(웃음). 그때 ‘앞으로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나와야 한다’는 점과 ‘어느 시점엔 AI나 로봇이 연예인을 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선생님과 그런 얘기가 잘 통했다. SM의 EDM 레이블을 만들자는 계획도 그 자리에서 나왔다. 여러 현실적인 사정으로 레이블 설립에 시간이 꽤 걸려서, 나는 이후 3년간 미국으로 가 활동했다.
북미 시장은 한국과 음악 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아주 다를 텐데. 그 3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한국처럼 한 회사에서 매니지먼트, 음반사, 에이전트의 역할을 다 해내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피트 통이라는 전설적인 프로듀서와 공동으로 영화음악 작업을 한 적도 있는데, 한국식 작업 속도에 깜짝 놀라서 그가 다른 이들에게 ‘히치하이커 얘 정체가 뭐냐’라고 묻고 다녔다고 한다(웃음). 그 영화가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XOXO: 엑스오엑스오>다.
사람들이 히치하이커 스타일의 특이한 코드를 받아들이거나 흥미를 느끼는 지점에 있어서, 국내와 해외의 차이를 느꼈나?
미국에서는 나를 ‘밈’처럼 유쾌하게 받아들인 반면, 유럽에서는 내 뮤비를 디지털 아트나 웹 아트 같은 아트워크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던 것 같다. 단편영화제에서 출품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고. <VICE>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뭘 말하고자 했는가’ 식으로 내 작업에 숨은 메타포를 찾으려 했다. 나에게서 심오하고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나 보다. ‘그냥 내가 재밌는 작업 한 것’이 전부니까 실망했는지, 결국 기사는 안 나왔다(웃음).
기자와 비평가들은 아무래도 해석하거나 의미를 찾으려는 본능이 있으니까.
그 최고봉은 한국의 어느 목사님께서 나를 두고 ‘일루미나티의 증거’라고 분석한 블로그 게시물이다. 뮤비를 조목조목 열심히 분석해놓았더라. 미국인들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일루미나티’라는 반응이 나오면 성공한 거라고 한다.
당신이 솔로 가수 지누나 롤러코스터로 활동할 때부터 알았던 뮤지션들은 히치하이커의 음악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하나?
윤상 씨가 그렇게 좋아해줬다. 나보고 ‘도깨비 같은 놈’이라고 했다. 그건 그 형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칭찬을 쉽게 해주는 분이 아닌데. 솔로 가수 시절 내 앨범 제작자였던 이승환 씨도 응원해주고 자랑스러워한다. 어쨌든 유희열, 윤종신 같은 뮤지션은 이제 중견인데, 그들 대부분의 눈엔 내가 미친놈으로 보이지 않을까?(웃음)
여느 뮤지션처럼 매니지먼트나 크루 없이 혼자서 모든 작업을 한다는 점도 히치하이커라는 아티스트의 중요한 특징이다. 당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음악 작업이나 그래픽, 소프트웨어 관련 툴이 새로 나왔다 하면 무조건 내 컴퓨터에 깔고 본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직접 해봐야 성이 풀린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기술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하나를 좀 익혔다 싶을 즈음엔 또 업그레이드된 다른 것들이 세상에 나와 있다는 거다. 나 같은 사람에겐 요즘 매일매일이 홍수다. 아티스트는 새로운 도구를 쥐었을 때 아이디어도 생긴다.
여건이 마련된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상상하는 꿈의 무대가 있나?
로봇과 같이 하는 공연. 사람처럼 생긴 로봇 말고, 자동차 공장 생산 라인에 있을 법한 거대한 로봇 팔 말이다. 무대 위에서 나는 디제잉을 하고, 주위의 로봇 팔들이 신시사이저 등의 장비를 번갈아 집어주는 모습을 그려봤다. 맨 뒤에는 각종 악기와 장비가 놓인 대형 진열장이 있다면 좋겠다. 몇 년 전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 페스티벌)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구현해보고 싶어서 알아본 적이 있는데, 스케일이 큰 로봇 팔을 설치하려면 바닥에 시멘트를 부어 심어야 한다더라(웃음). 일이 커지는 거지. 그때 현대중공업에 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답은 못 받았다….
히치하이커의 목표는 뭔가?
콘셉트가 괴상하다는 말을 듣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야 많은 사람들과 ‘같이 논다’는 느낌이다. 이 캐릭터로는 음악뿐 아니라 게임, 시트콤, 장난감이나 굿즈 등등 확장할 수 있는 작업이 많다. 10년 전부터 꿈꾸던 것을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다. 써드라는 친구도 생겼고, 내 세계관에 등장하는 기존의 다른 캐릭터들도 있고. 언젠가 이런 것들이 쌓여 세계관이 보다 탄탄하게 완성되면, 그 모든 요소가 총출동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게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
<히치하이커의 뮤직비디오와 공연 영상 캡처 이미지>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