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말을 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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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반드시 이야기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전시와 작가가 있다. 미술가의 내밀한 세계, 수수께끼 같은 작업들이 품은 의미, 우리를 흔드는 예술에 대한 여섯 가지 시선에 그 이야기 가담겨 있다. 

아이 웨이웨이, 소년의 기억 

두개골을 비롯해 인체를 구성하는 골격의 형태가 보이는 ‘검은 샹들리에’.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으로 만들어 샹들리에의 개념을 뒤집는다. <검은 샹들리에(BLACK CHANDELIER)>, 2017-2021, 무라노 유리, 지름 185CM 높이 240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무라노 베렌고 공방에서 제작. 사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도자기로 재현한 유골인 ‘유해’. <유해>, 2015, 자기, 1~10×4.5~29×2~14CM (13).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사진 연작인 ‘원근법 연구’.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사진 연작인 ‘원근법 연구’.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사진 연작인 ‘원근법 연구’.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사진 연작인 ‘원근법 연구’. <원근법 연구, 1995-2011(STUDY OF PERSPECTIVE)> 2014, 흑백 및 컬러 프린트, 가변설치, 25점의 에디션 +5AP,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와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2021. 12. 11~2022. 4. 17. 국립현대미술관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1961년 중국 문화혁명 시기, 시인 아이칭과 가오잉 부부 가족은 신장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1976년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고 문화혁명도 끝나서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올 때까지, 16년간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그들의 아들인 아이 웨이웨이는 시인인 아버지가 동네 아이들의 조롱을 견디면서 화장실 청소라는 낯선 일을 묵묵히, 정성껏 해내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에 소개된 ‘원근법 연구’에는 아이 웨이웨이가 신장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도 포함돼 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폐허 같은 사막, 고대 실크로드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 사막의 바람 속에서 소년 아이 웨이웨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성장했을까. 반체제 인사, 사회운동가, 세계적 예술가, 건축가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문제적 인물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 어린 소년을 종종 떠올렸다. 공산화와 문화혁명 시기 중국에서는 개인의 기호나 예술 애호가 반사회적이고, 봉건적 취향이라고 비판받았다. 아이 웨이웨이의 어머니는 남편이 소중하게 간직한 예술 관련 서적과 품위 있는 소지품이 홍위병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그것들을 서둘러 불태웠다. 그는 수천 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문화예술, 즉 징더전에서 제작된 화려한 도자기, 강향단 같은 고급 목재를 사용한 우아한 전통 목가구, 문인들이 애장하던 ‘벽옥’과 ‘여의’와 같은 소품, 섬세하게 제작되는 대나무 공예품 등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로테스크한 내장의 형태를 딴 ‘여의’, 가락지 모양의 소형 옥 오브제인 ‘벽옥’의 형태를 아프가니스탄산 대형 대리석으로 확대한 작품 ‘벽’, 강향단으로 제작한 ‘수갑’과 ‘옷걸이’ 등을 보면 매력적으로 현대화된 대륙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과 기호를 알고 그에 맞게 수집하는 즐거움, 이 평범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절실한 소망이었을까. 또 우리 모두가 고유한 특성을 가진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일은 얼마나 찬란하고 감사한 일인가.

찬란한 실크로드의 문화가 사라진 사막 지역에서 아이 웨이웨이는 무엇을 느꼈을까. ‘유해’는 신장 지역의 노동 캠프에서 발굴된 인체 유골의 형태를 도자기로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검은 샹들리에’와 함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오랜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아이 웨이웨이는 지난해 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아들 아이라오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를 담아 자서전 <천년의 기쁨과 슬픔>을 발간했다. 책의 제목은 아버지가 신장 지구에서 고대 실크로드의 흔적을 탐사한 후 남긴 시구에서 가져왔다. “천년의 기쁨과 슬픔 흔적 하나 보이지 않네…. 살아 있는 그대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사시오. 이 땅이 기억할 거라고 생각지 마시오.”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라, 이 당부는 그와 같은 삶을 겪지 않은 모두에게도 와닿는다.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갖고,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삶.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 웃고 우는 삶. 아들이 태어난 후 걱정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작가는 지금 이 순간도 부지런히 디지털 공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공감을 얻고, 행동을 이끌어낸다. 전시의 끝부분에 소개된 소셜미디어 캠페인 ‘#RunForOurRights’는 그가 줄리언 어산지에게 보내는 지지와 연대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열렬하게 추구해온 그는 이제 동시대의 타인들을 위해, 또 미래 세대를 위해, 즉 시리아의 아이 웨이웨이와 미래의 수많은 아이 웨이웨이(들)를 위해 오늘 하루를 보낸다.

그런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전시를 찾아도 좋지만, 컴퓨터를 켜거나 스마트폰을 보면 된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면 일상의 매 순간을 기록한 수많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는 작가 자신의 사진도 있고, 커가는 아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사진도 있다. 귀여운 고양이들도 볼 수 있다. 이 기록들은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가 걸어가는 여정이자 실천으로서의 예술이기도 하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전시장에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또 중국을 떠나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사는 그가 SNS에 남긴 삶의 기록을 통해, 역사를 꿰뚫어보는 시선을 가진 예술가이자 소박하고 따듯한 인간 아이 웨이웨이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글ㅣ이수정(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부르주아 유칼립투스

판화 시리즈 중 ‘유칼립투스의 향기’.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두 점의 대칭이 흥미롭다. 작가가 프린트의 배치만 서로 바꾸어 하나는 잎이 밖으로 뻗고, 다른 하나는 잎이 안으로 수렴하는 형태로 찍어낸 것. (좌) TURNING INWARDS SET #4 (THE SMELL OF EUCALYPTUS (#1)), 2006, ETCHING ON PAPER, 149.9 X 87.3CM. (우) TURNING INWARDS SET #4 (THE SMELL OF EUCALYPTUS (#2)), 2006, ETCHING ON PAPER, 149.5 X 84.4CM.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EW YORK/SACK, SEOUL.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2021. 12. 16~2022. 1. 30. 국제갤러리 <유칼립투스의 향기>. 

국내에서 10여 년 만에 열리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개인전이 연초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관객들이 ‘위대한 여성 예술가’의 명성으로 인식했을 부르주아 작업의 실체와 사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전시는 스스로 상징성을 획득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대규모 판화 시리즈 <내면으로(Turing Inwards)>는 동판 표면을 파내는 극한의 신체성으로 완성한 일종의 드로잉 작업으로, 평생 살을 깎고 심장을 태워 자신의 이야기를 해온 예술가의 심정을 대변한다. “내 모든 작품은 모두 나의 유년 시절에서 영감 받은 것이다”라는 부르주아의 고백이나 “예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선언은 결코 삶을 벗어나 미술 세계를 공허하게 부유한 적 없는 한 예술가를 기억하게 한다.

조각, 드로잉, 설치, 바느질 작업, 퍼포먼스 등 특정 미술사조나 흐름으로 규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부르주아의 예술, 그 방대하고 도저한 세계를 관통하는 진실이 있다면 사적 기억과 현실을 넘나드는 초월적 실험과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의 작업은 갖은 미술 담론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만큼 직관적이고, 직설적이며, 파격적이다. 가정교사와 아버지와의 불륜, 병약했던 어머니의 묵인과 방관, 절망과 상실감으로 방치된 세 남매. 이 뒤틀린 관계에서 잉태된 분노와 배신, 상처와 트라우마 등 날것의 감정은 미술에서 통용되던 ‘여성성’의 개념을 전복했다. 가부장제를 향한 통렬한 비판으로, 모성 이데올로기와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처절한 연민으로, 때로는 방어적인 퇴행성으로 가득 찬 작품들은 그 자체로 작가 자신이었다.

<내면으로>가 특별한 건, 제목이 시사하듯, 그런 부르주아가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들여다보고자 하는 성찰의 의지와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세상을 뜬 작가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제작한 이 후기작은 모성, 섹슈얼리티, 가족, 사랑, 식물 및 자연을 향한 애정 등의 사유로 직조된 39점의 추상, 구상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같은 제목의 첫 번째 세트는 모마에, 두 번째 세트는 테이트 모던에 소장되어 있다(국제 작품들은 네 번째 세트)는 나의 설명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반색하며 작품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다. 이들의 몸짓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작업 가치에 대한 솔직한 반응인 동시에 예술적 요소로 발화하는 작가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제스처로 읽힌다.

그중 ‘유칼립투스의 향기’라는 작업은 부르주아의 기억과 경험을 구술하는 좋은 예가 된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살던 부르주아는 병든 어머니를 간호해야 했는데, 당시 유칼립투스는 귀한 약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자신의 스튜디오 공간을 정화할 때도 유칼립투스를 태워 연기를 피웠다. 그녀에게 유칼립투스의 향기는 어머니의 상징인 동시에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기제, 기억을 촉발하는 감각에 대한 믿음, 궁극적으로는 실질적, 상징적 치유의 모티프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부르주아가 이 식물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가의 문제인데, 세로로 긴 프린트의 배치만 서로 바꾸어, 하나는 잎이 밖으로 뻗어 확장하는 형태로, 다른 하나는 잎이 안으로 수렴하는 형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어떤 작가가 자기 사유를 어떤 논리로 구현했는지는 늘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말해주지 않는 한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데도 능했던 부르주아는 한 편의 시를 남김으로써 그 마음을 짐작하도록 한다.

둘씩 짝 지어진/ 집의 창문들./ 모두 길쭉한 모양한 채./ 둘씩 짝지어 달린/ 유칼립투스 잎사귀들/ 거대한/ 치유의 나무가 있었던/ 르카네에서의 나의 어린 시절/ 자애로운/ 이중상./ 둘씩 짝을 지어/ 거리에 줄을 서는 아이들/ 생브누아 거리의 학교./ 둘씩 짝을 지어/ 가지 줄기 위에 달린/ 잎사귀들/ 창문이 두 개 달린 집에서/ 그 창들이 둘씩 짝지어 밝혀지고–/ 한 남자와 그의 그림자/ 한 나무와 그것의 그림자는/ 둘씩 짝지어 쌍을 이룬다–/ 그리 별것 아니야/ 눈은 영혼의 창/ 짝 – 하나의 쌍 – 짝

이 시를 찬찬히 읽고 전시를 보면, 부르주아의 내밀한 기억을 나눠 가진 느낌을 넘어 급기야 그녀를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온전히 이해한 듯한 착각마저 든다. 비록 현실은 지독했을지언정 어머니와의 시간을 품은 그 시절의 풍경을 다정한 짝과 쌍의 개념으로,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관계의 시간으로 기억하길 간절히 원했다는 사실이 와닿기 때문이다. 이 순간, <내면으로>는 이 거장이 판화라는 매체의 개념과 특성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한 미술가였는지를 증거하는 작업에서 다른 차원으로 진화한다. ‘영혼의 창’인 두 눈에 비친 집, 나무, 동네 아이들, 그리하여 자기가 살아온 모든 순간으로부터 스스로 구원받고자 열망한 부르주아가 과거의 자기 존재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 역시, 부르주아에게 이유 없는 작업은 없다.

노년의 부르주아가 유년을 되살리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초월하는 모성, 즉 인간성의 본질을 관조할 수 있었던 건 평생 치열하게 분노하고 진정으로 슬퍼했기 때문이 아닐까. 미술을 통해서, 오랜 세월 두려워 직면하지 못한 시간, 이해하거나 이해받지 못해 지옥이었던 자신이라는 타자와 마침내 화해한 예술가. 이번 전시는 부르주아의 그 유명한 전언을 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온다. “미술은 복원이다. 그 목적이란 삶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 개인의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파편화된 대상을 완전한 무엇으로 만드는 일이다.” 글 ㅣ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저자)

추상, ‘나’를 찾는 여정

강렬하고 화려한 색색의 물감이 캔버스 위에서 흘러내리고 꿈틀거린다. 원초적인 느낌의 추상화는 ‘Untitled’. YUN-HEE TOH UNTITLED 무제, 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145 X 110.5CM.

1. 14~2. 27. 갤러리현대 <베를린>. 

“전시 제목을 베를린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도윤희 작가의 평창동 스튜디오에서 내가 물었다.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였지만, 찰칵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 그거 좋네요. 음···.” 도윤희 작가가 맞장구를 치며 단어를 음미했다. 생각에 잠긴 그의 얼굴이, 팬데믹 이후 한동안 방문하지 못한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바라본 해 질 무렵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 같았다. 갤러리현대에서 2월 27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베를린>의 전시 제목은, 그렇게 뚝딱 결정됐다. 2015년 <Night Blossom>전 이후 7년 만의 개인전. 이곳에서 우리는 작가가 베를린과 서울의 스튜디오에 스스로 갇혀 지내며 크고 작은 캔버스에 남겨놓은 아름다운 추상적 내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 내면에 존재하던 추상의 이미지와 에너지를 끌어올려 캔버스에 분출해 완성한 도윤희만의 육감적이고 감각적인 회화 4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제목의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독일의 도시 베를린이 아니다. 한 인간에게 영향을 준 모든 영감의 장소들, 기억과 시간 그리고 경험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인생을 뒤흔든 깨달음의 순간들, 색과 형태, 이성과 감각에 관한 다채로운 상념을 은유하는 장치이다. 도윤희의 세계로 진입하는 작은 열쇠라 할 수 있다. 도윤희는 1999년 이후 주기적으로 베를린을 찾았다. 그는 베를린만의 데카당스함과 기괴한 무거움에 매료됐고, 2012년 베를린의 동쪽 지역 공장을 개조한 건물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2011년 <Unknown Signal>전 이후, 작가로서 변화를 갈망하던 시기였다. “베를린에서 무엇인가 영감을 얻고 새로운 작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원래 나란 인간이 누구인지, 내면의 나를 자각할 기회를 마련해줬죠.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지난 내 인생의 시간이 한꺼번에 확 정리되어 새롭게 통합되어 나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지금. 그런 건 내가 상상 못했죠.” 변화는 작가의 내면에서 시작됐지만, 장소의 이동이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연필로 캔버스를 촘촘히 채우고 바니시로 마감하는 과정을 반복해 만들어진 이전 작품의 아스라한 화면은 물감과 붓, 작가의 손이 만나 화면 저 멀리에서 피어오른 색색의 뭉게구름 같은 이미지로 전환되었다. 붓보다 손이 먼저 화면에 닿아 탄생한 <Night Blossom> 연작에서 그는 빛이 사라진 밤에만 보이는 미지의 색채와 형태를 포착했다. 작가는 이를 문학적인 언어에서 회화적 언어로의 전환이라 설명한다.

도윤희에게 <Night Blossom> 연작은 다음 단계로 향하는 중간 무대였던 것일까? <베를린>전을 방문한 관람객은 ‘이게 도윤희 작가의 작품 맞나요?’라며 놀란다. 또 다른 변신의 신화가 전시장을 채운다. 작품의 얼굴이 그 이전 작품과도 확연하게 달려졌다. 화면 저 멀리에서 피어나던 꽃 같던 안개는 물감 그 자체의 신체를 획득한다. 색색의 물감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캔버스 위에서 아슬하게 꿈틀거리고 흘러내린다. 색이 쌓이고 충돌하지만 그 와중에 느닷없이 조화를 이룬다. 도윤희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빛과 색, 형태를 재빠르게 캔버스로 옮기기 위해, 마치 육탄전을 벌이듯 물감을 주물럭거렸고 음악적인 선들을 쌓았다. 화면을 장악한 색의 파노라마와 물결 같은 터치는 인상주의 그림의 세부 장면을, 물감을 움켜쥐었다 빠르게 펼친 손의 흔적은 고대 동굴 벽화를 떠올리게 한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는 느낌! <Night Blossom> 연작 이후 고심 끝에 탄생한 새로운 작품은 내면의 갈증을 해소하듯 완성됐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연을 이미지화해온 도윤희. 그에게 작업은 ‘나를 찾는 여정’에 다름없다. “‘아, 내가 이런 걸 느끼고 알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내는 거. 나 본연의 상태를 발견하는 거죠. 찾아내는 게 아니에요. 내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거죠, 거울같이.” 나의 내면 풍경을 이미지로 옮긴다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글ㅣ김재석(갤러리현대 디렉터)

밤의 수호자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환상 동화 같은 작품 ‘밤의 수호자’. 그림을 구성하는 각 요소마다 사연이, 이야기가 있다. 밤의 수호자 HÜTER DER NACHT, OIL ON CANVAS, 300X250CM, 2014.

2021. 10. 28~2022. 1. 26. 스페이스K <경계에 핀 꽃>.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그 주변에는 집게발을 한 여성과 빗자루를 든 남성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이 작품의 제목은 ‘밤의 수호자(Hüter der Nacht)’이다.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은 네오 라우흐가 그린 자신의 초상이다. 최근 스페이스K에서 부인 로사 로이와 2인전 <경계에 핀 꽃>을 선보인 네오 라우흐는 독일 ‘신라이프치 화파’를 대표하는 작가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9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스터로 인정받는 지금도 여전히 머릿속에 부유하는 파편화된 단상들과 싸우며 다음 날 캔버스를 마주할 압박감에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이 그림 속에서 작가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들은 그의 부모이고, 침상의 오른쪽엔 그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청화백자 꽃병이 놓여 있다. 네오 라우흐의 부모는 그가 태어난 지 5주 만에 기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당시 21세, 19세의 라이프치히 미술대학 학생들이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씨앗이 얼마나 근사한 꽃을 피울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물려준 재능 덕분인지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재적 소질을 보인 그는 부모의 길을 따라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그즈음 사진 속 부모는 네오와 비슷한 또래의 모습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작가는 자신보다 어린 부모의 모습을 기억하며 살아왔다. 작가가 부모를 떠나보낸 1960년, 그 다음 해에 베를린에는 동서를 가르는 장벽이 들어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가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에서 만난 로사 로이와 결혼한 때가 1985년이고,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으며, 1990년 독일 통일과 함께 그의 아들이 태어났다. 작가가 나고 자란 라이프치히는 니체와 바그너를 배출한 곳이고, 루터로 대변되는 종교 개혁의 도시인 동시에 유물론과 예수교라는 큰 물줄기가 만나고 충돌했던 곳이다. 독일 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온 네오 라우흐의 삶을 견디게 해준 버팀목은 무엇일까.

“신이시여, 당신을 믿는 우리가 ‘빛의 수호자(Hüter des Lichts)’라면 빛의 그 어두운 입구를 찾아 헤맨 이 남자의 밤은 누가 지켜주나이까?”

그렇게 나타난 ‘밤의 수호자(Hüter der Nacht)’, 어머니는 집게발로 작가의 머릿속에 부유하는 복잡한 단상들을 정리해주고, 그 잔해로 보이는 다 쓴 물감 튜브들을 아버지가 빗자루로 정리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는 네오 라우흐의 작업실이 위치한 슈피너라이(옛 방직공장)의 공장 건물이 보이고 그곳에 뿌리 내린 나무는 자라고 자라 노란 예술의 꽃으로 환하게 피어난다. 이 그림(밤의 수호자)은 작가에게 예술적 재능을 물려준, 한 번도 살이 닿아본 기억이 없는 부모가 그가 예술의 꽃을 피우는 데 조력자 역할을 한 후 꿈의 뒤안길로 손을 맞잡은 채 떠나는(그림 오른쪽 아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그림’이라는 예술로 재현되는 순간이다.

네오 라우흐는 이미 여러 가지 의미로 성공을 거둔 작가지만 그는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 같은 세계의 주요 거점 도시로 이주하거나 해외 스튜디오를 운영하지 않고 조수도 없이 소명의식처럼 그림을 그린다.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자기 부모와 그 윗세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라이프치히 주변을 떠나지 않고 고향이 그에게 건네는 에너지와 영감을 받으며 작센인으로 살아간다.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오늘 아침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에 와서 해가 저물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도 오늘과 같습니다. “ 글ㅣ이장욱(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한국 현대미술의 옆모습

공연 예술 저널인 <옵.신>(Ob.scene), 슬기와 민 작업. 사진: 김경태.

<시청각 도서> 1호, 홍은주 김형재 작업.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 콘셉트를 적용해 만든 <권오상 도록>, 신신 작업. 사진: 박성수.

2021. 12. 23~2022. 2. 27. DDP 살림터 <집합 이론>. 

디자이너들에게 ‘클라이언트’로서 작업을 의뢰하는 일은 항상 조심스럽다. 미술계에서 행하는 디자인 작업이란 예산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전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미술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디자이너들은 참여 작가와 비슷한 면이 있다.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은 자기의 재주로 더 큰 경제적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음에도 나름의 애정, 의지, 사랑, 혹은 착각 속에서 작업에 임한다. ‘사랑의 노동’이라 하겠다. 디자이너의 입장은 어떨까. 상대적으로 미약한 경제적 보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미술-디자인 작업을 이어가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미술이라는 강력한 시각적 재료로 디자인하는 일에는 그들만의 즐거움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미술가와 큐레이터는 디자이너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클라이언트일 수도 있다! 예산은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시각적 비례나 인쇄물의 물성에 놀라울 만큼 까다롭게 반응하며, 이따금 이해하기 어려운 장광설을 늘어놓기 마련인 클라이언트라니. 미술 프로젝트에는 이 모든 난관을 넘어서는 보상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DDP에서 열리는 <집합 이론>은 이렇게 까다로운 미술가 및 큐레이터들과 10년 이상 꾸준히 디자인 작업을 펼치고 있는 세 디자이너 팀, ‘슬기와 민’, ‘신신’, ‘홍은주와 김형재’의 작업물을 모은 전시다. 디자이너 김성구가 이번 전시를 위해 큐레이터 역할을 맡아 각 팀의 연결 고리를 찾아냈고, 문자 언어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연결을 구현했다. 이 전시의 ‘작가’ 격인 세 팀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듀오이고, 프로젝트를 넘어 일관성을 보이는 각자의 스타일이 있으며, 디자인 작업만 하기보다 판을 꾸리는 기획자 역할을 하거나 종종 직접 창작에 나서기도 한다. 이들은 상업적 디자인 작업도 하지만, 이들의 활동에서는 무엇보다 동시대 미술과 연계된 ‘미술적’ 디자인이 돋보인다. 조금 과장하면, 이 세 디자이너 팀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얼굴’을 만들어오고 있다. 이들이 만든 얼굴이란 미술가들이 제 작업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낸 한국 동시대 미술에 대한 이미지와는 또 다른, 전시장의 책자나 전시를 다룬 도록처럼 물리적 무게를 가지고 우리 손에 잡히는 어떤 이미지다. 글을 읽는 당신이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의 주요 미술관이나 주목받는 작은 미술 공간, 비엔날레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면, 이 세 팀이 만든 시각 디자인 작업물을 적어도 스무 번 이상 마주쳤을 거라고 확신한다. 세 팀의 디자인 작업은 어느 미술관 전면을 덮은 거대한 배너를 통해, 비엔날레 오프닝을 기념하는 에코백의 형태로, 버스 정거장에서 마주친 포스터가 되어 당신의 시야를 스쳤다. 독립서점이나 미술관 아트숍 책장에서도 그들의 디자인을 만났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집합 이론> 전시의 주제는 아니다. 이 전시는 말수가 없는 수집가의 컬렉션처럼 관객을 맞이한다. 10년 넘게 축적된 세 팀의 작업물은 세 덩이로 나뉜 거대한 좌대 위에 차분히 놓여 있다. 별다른 설명은 없다. 각 팀의 디자인 언어가 익숙한 관객이 아니라면 어떤 좌대에 놓인 게 어느 팀의 작업인지도 알아채기 어렵다. 국제 책 디자인 공모전인 ‘2021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서 최고상을 받은 엄유정 작가의 작품집 <FEUILLES>(신신 디자인)처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작업물도 있지만, 지금은 사라진 ‘페스티벌 봄’(2007-2016) 초창기 책자와 포스터(슬기와 민 디자인)나 2000년대 후반 주문받은 수량만큼만 제작한 <가짜잡지> 모음(홍은주와 김형재 디자인)처럼 모르고 보면 놓치기 쉬운 작업물도 적지 않다. 수많은 포스터와 책자, 도록, 단행본 사이엔 단순히 이 디자이너들이 클라이언트보다 더 적극적인 창작의 주체가 되어 만든 작업물도 작은 무리를 이뤄 자리 잡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놓인 전시장의 좌대를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에 모자이크를 입힌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서 보면 각기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진 디자인 작업물이 종종 그 내용과 별개로 언어와 기법을 공유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슬기와 민이 박미나 작가를 위한 디자인에서 쓴 딩벳 활자(★✱✽✿와 같이 그림 문자로만 이뤄진 폰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위한 전혀 다른 행사의 디자인 작업물에서 다른 맥락에 맞춰 다시 등장한다.

<집합 이론>이 선보이는 작업물들은 디자인 전시에서 어련히 기대할 법한 시간순 배치를 따르기보다, 작업물의 시각 언어와 디자인 기법을 실마리 삼아 징검다리를 놓듯이 배치되었다. 관람객은 세 개의 원이 겹친 벤다이어그램을 넣은 이 전시의 포스터에서처럼 전시장을 빙글빙글 돌며, 추측과 발견을 통해 이 전시가 제안하는 ‘맞추기 놀이’에 임하게 된다. 전시장에는 꽤 많은 단서가 흩어져 있고, 각각의 단서를 발견하는 데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디자이너 팀의 작업물에서 반복되거나 겹쳐 등장하는 장소나 이름에서 시작해보기를 추천한다. 게임에 참여하며 전시장을 몇 바퀴 돌고 나면 머릿속에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동시대 미술계와 연동되어 만들어진 미술-디자인에 대한 비공식적인 지도가 하나쯤 만들어질 것이다. 글을 읽는 당신이 나처럼 큐레이터이거나 미술가라면 세 디자이너 팀의 작업물 가운데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다른 미술가나 큐레이터, 미술 공간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글ㅣ박재용(프리랜스 큐레이터) 

우리 각자의 빛

빛의 찬란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올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입자’. 올라퍼 엘리아슨, 우주 먼지입자, 2014, 스테인리스강, 반투명 거울 필터 유리, 강철줄, 전동기, 조사등, 직경 170CM. 테이트미술관 소장. 니콜라스 세로타 경을 기리며 작가가 2018년 기증. 사진: 김대호

특정 시간대를 눈에 보이도록 카펫에 고정시킨 필립 파레노의 ‘저녁 6시’. 필립 파레노(1964-), 저녁 6시, 2000-6년, 카펫, 가변크기. 테이트미술관 소장. 2007 테이트 컬렉션 확충을 위한 2006 아웃셋프리즈 아트페어 기금 제공 재원으로 구입. 사진: 김대호

2021. 12. 21~2022. 5. 8. 서울시립미술관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한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이 관람객의 사진 촬영을 허용했다면, 지금쯤 이 전시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내세운 인증과 간증으로 SNS를 물들이고 있을 것이다. 이미지보다 말로 더 퍼질 이 전시는 그 덕분에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 듯하다. ‘테이트’라는 보증된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상하이 푸동미술관을 거쳐 순회전으로 서울 노원구에 왔다(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본관을 비롯해 여러 군데에 분관이 있고, 이 전시가 열리는 곳은 북서울미술관이다). 이곳에 근대 명화와 현대 설치 작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매체의 작품 110점이 16개 섹션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18세기의 윌리엄 블레이크, 19세기의 클로드 모네와 윌리엄 터너, 20세기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바실리 칸딘스키, 야요이 구사마, 제임스 터렐, 브루스 나우먼, 애니시 커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등 43명의 작가 이름은 미술 문화 향유에 촉을 세운 이를 낯선 동네로 향하게 할 만큼 충분히 유혹적이다.

만약 이 전시작들을 관통하는 ‘빛’이라는 단어에서 명상이나 환상적 기운을 크게 기대한다면 미술관을 찾았다가 조금 당황할 수 있다. 실내 아틀리에가 아닌 실외에서 시시각각 다르게 인지되는 풍경의 찰나를 포착해 ‘인상주의’ 사조를 연 모네의 빛. 파동과 굴절에 대한 과학자적인 관심으로 복잡한 기제의 키네틱 작품을 만든 릴리안 린의 빛. 그리고 ‘악’을 상징하는 어둠과 ‘하나님’이 창조한 빛을 활용해 종교적 관념을 나타낸 18세기 영국 화가들. 혹은 도시를 밝히는 인공조명의 시대 속에서 형광등을 조각 재료로 쓴 미니멀리즘 작가의 빛 등. 이 전시는 시대에 따라 빛을 둘러싼 미술가들의 실험과 실천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그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학습형’ 전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장을 거치며 관람객 각자의 이야기와 기억이 재구성될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빛이 내리쬐는 바다 표면을 정밀하게 묘사한 존 브렛의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과 모네가 ‘그까이꺼 대충’ 휘갈긴 듯한 ‘엡트 강가의 포플러’를 비교하며 곱씹을 것이다. 또 군가는 제임스 터렐이 창조한 몽롱한 빛의 사각형 앞에서 숭고함과 약간의 어지럼증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내게 의외의 여운을 남긴 빛은 ‘바닥’에 있었다. ‘실내의 빛’ 섹션에 들어서면, 어딘가의 창문을 통해 빛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다. 사방이 막힌 미술관이 아니었다면 진짜라고 착각할 법한 빛과 그림자. 그건 카펫 무늬다. 색의 명암 덕분에 이 가상의 빛이 통과한 창문의 프레임은 어떻게 생겼을지, 그 창문에 달린 커튼의 존재까지 연상할 수 있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카펫의 제목은 ‘저녁 6시’(6.00 PM), 필립 파레노의 작품이다. 필립 파레노는 영상, 음향, 조명, 조각, 테크놀로지, 퍼포먼스 등 여러 요소를 끌어들여 전시장 자체를 작품화하는 작가다. 2016년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홀에서 현대 커미션 전시(<Anywhen>)를 했을 때, 그는 그 큰 공간 안에 하늘을 떠다니는 물고기 풍선, 높낮이가 계속 변하는 대형 스크린과 신비로운 영상, 번쩍이는 조명들, 일상에서 채집한 음향 등 다채로운 것을 펼쳐놓았다. 터바인홀은 공원 같은 공간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자 자유롭게 보내다가 한 순간 같은 곳을 쳐다보며 반응하길 반복했다. 필립 파레노는 이 전시에 대해 ‘전시 주제는 없다. 다만 이곳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보낼 것이고 무언가 일어날 것’ 이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온갖 물질과 비물질을 동원해 변화하는 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관객에게서 벌어질 일련의 순간을, 그 공간에서 형성될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소품일 ‘저녁 6시’가 인상적인 이유는 카펫을 본 순간 ‘빛이 들어오는 따뜻한 집’ 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가는 하루 중 특정 시간대를 눈에 보이도록 카펫에 고정시켜놓았다. 빛을 머금은 카펫은 일시적이나마 미술관이라는 공간과는 이질적인 서정성을 자아낸다. <화양연화> 같은 영화 속에서 남녀가 함께 있는 좁은 공간으로 드리운 그림자나 빛과 어둠의 대비가 그 장면을 다른 공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대가들의 여러 작품 사이에서, 어떤 관객에겐 가벼운 위트로 다가왔을 ‘고작 카펫 따위’는 햇볕이 잘 드는 집의 따스한 공기가 그리운 사람에겐 위트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건 2020년 <더블유>와 서면 인터뷰를 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말이다. “누군가에게 빛은 아름다움이나 신성함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 빛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사치품이기도 하다.” 유사 과학으로 대자연의 광학적 경이를 안겨주는 작업을 하는 작가. 이번 전시에서는 ‘빛’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도 물론 만날 수 있다. 천장에 매달린 대형 구조물과 조사등이 반사광을 흩뿌리는 작품, ‘우주 먼지입자’(Stardust Particle)다. 강철 골조와 유리로 구성된 구형 다면체는 회전하면서 사방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의 그림자를 만든다. 움직이는 그 매혹적인 반짝임이 최면을 거는 듯하다. 빛의 환영을 만드는 ‘저녁 6시’와 빛의 찬란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우주 먼지입자.’ 아래를 바라보게 만든 미술가와 위를 올려다보게 만든 미술가. 나는 농담처럼 바닥에 깔린 가짜 빛과 사람의 넋을 빼는 화려한 빛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빛의 차원을, 그립기도 아름답기도 한 빛의 두 얼굴을 느낀다.  글 | 권은경(<더블유> 피처 에디터)

피처 에디터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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