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다이어트에, 건강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패션 피플들이 꿀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새삼 특이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꿀은 대체 어떻게 이들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나도 제발 그것 좀 구해줘.”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미팅 장소에선 어쩐지 다급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무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가 ‘그것’을 원하고 찬양하는 분위기. 뭐지, 이 대단한 물건은?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레 ‘그것’에 대해 물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누카 꿀’. 패션지 부편집장, 메이크업 아티스트, 뷰티 홍보담당자와 에디터까지, 건강
과 뷰티에 관한 정보라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빠삭한 이들을 사로잡은 대단한 (줄로만 알았던) 물건이 겨우 ‘꿀’이라니. 어쩐지 김 새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전조는 진작부터 있었다. 패션계의 소문난 마당발인 모 캐스팅 디렉터는 오랜만에 <더블유> 편집부를 방문해 호주산 꿀을 건네며 침이 마르도록 예찬을 늘어놓았는가 하면, 올해 초 ‘먹는 거’에 유독 까다롭기로 소문난 스무 명의 패션 피플들에게 그들만의 비밀 레시피를 묻었을 때도 비슷한 답변이 여럿 나왔다. 특히 본인 스스로도 ‘안 먹어본 것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타공인 영양제 마니아인 디올의 윤순근 이사는 수많은 식품과 보조식품 가운데 가장 효과를 본 것으로 자신 있게 꿀벌의 부산물인 프로폴리스와 마누카 꿀을 꼽았을 정도. 이런 트렌드를 감지한 것일까? SSG 푸드마켓, 갤러리아 백화점의 고메이 494, 그리고 얼마 전 대대적인 리뉴얼을 마친 신세계푸드마켓 등의 프리미엄 식품관은 최근 꿀 섹션의 비중을 대폭 늘렸는가 하면, 멜비타, 이니스프리 같은 뷰티 브랜드들도 앞다퉈 ‘먹는’ 꿀을 선보이는 중이다. 그런데 대체 왜 갑자기 ‘꿀’일까?
익숙함이 커지면 그 소중함을 모른다 했던가. 있는 둥 없는 둥 집집마다 찻장 어딘가에 하나씩 자리를 차지해왔을 꿀. 꿀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구체적으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연세새봄의원 채용현 원장은 꿀의 효능을 크게 두 가지로 압축했다. “에너지원으로서의 기능과 질병 치유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꿀은 비타민 B1, B2와 같은 비타민과 27종류의 미네랄, 22종의 아미노산, 그리고 80종류의 효소 등을 포함하고 있어 신체의 회복 시간을 단축하고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고대 올림픽 선수들도 경기 전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목적으로 꿀을 복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죠.” 예로부터 원기 회복이 필요한 가족에게 우리의 지혜로운 어머니들이 ‘꿀물’을 권한 것도 바로 이런 까닭!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 진면목은 꿀이 가지고 있는 질병 치유 효능에서 ‘팡팡’ 터진다. 꿀은 과장 좀 더해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항균 물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뉴질랜드의 마누카 꿀이나 호주의 젤리부시 꿀, 우리나라의 밤꿀과 메밀꿀 등은 약리성이 높아 세계적으로 메디허니(치료용 꿀)로 분류될 정도다. “꿀은 강한 살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티푸스균은 48시간, 파라티푸스균은 24시간, 이질균은 10시간 이내에 사멸시키는 것이 학술적으로 확인되었죠.” 아침나라한의원의 이원천 원장은 꿀의 살균력은 우리 몸의 염증을 치료하는 데에도 탁월한 작용을 한다고 설명했다. WE클리닉의 조애경 원장도 이에 동의했다. 벌꿀에는 피부 비타민이라 불리는 ‘니코틴산’이 풍부해 거칠고 칙칙해진 피부를 밝고 매끄럽게 가꿔주는 데 훌륭한 천연 원료다. 말 그대로 ‘꿀피부’로 만들어준다는 말씀. 습기를 빨아들이는 수분 흡수력과 살균력이 고루 뛰어나 여드름이나 뾰루지와 같은 피부 트러블은 물론 비듬균에 의한 두피 건조와 각질 개선, 지루성 두피의 가려움증을 완화하는 데도 한몫한다.
그런가 하면 꿀 속에 있는 글루코산은 장내의 비피더스균이 자라는 데 도움을 주어 변비 증상을 개선한다. 채용현 원장 역시 락토바실라이와 비피더스균 등 꿀에서 발견되는 많은 양의 장내유산균, 즉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해 강조했다. 아시다시피 이런 유산균들은 장누수증후군에 의해 발생될 수 있는 다양한 면역 질환에 대한 안전하고도 건강한 예방책. 요거트에나 있는 줄 알았던 유산균이 꿀에도 함유되어 있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몇몇의 꿀은 비만과 노화, 그리고 스트레스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운동 생리학자이자 <동면 다이어트>의 저자인 마이크 매킨스의 따르면 잠자기 전 꾸준히 한두 스푼의 벌꿀을 먹는 것만으로도 수면 장애를 개선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체중 감소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꿀에는 간이 가장 좋아하는 과당과 포도당이 반반씩 들어 있고, 대사 산물로 작용하는 몇 가지 미네랄도 함유돼 잠을 자는 동안 뇌에서 필요로 하는 딱 적절하고 적당한 만큼의 영양을 공급해주기 때문. 염려되는 열량은 고작 100칼로리(약 2큰술 기준)에 불과하며 혈당 지수(GI)도 낮다.
더 무엇을 말하랴. 면역력, 피부 개선, 그리고 다이어트. 여성이라면, 아니 그 누구라도 귀가 쫑긋해질 세 가지 이슈만으로도 벌꿀의 진가를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명약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 있는 법. 꿀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꿀은 그 목적에 따라 먹거나 바르는 시간과 방법이 달라진다. 면역력 예방을 위해서라면 일반적인 유산균제와 마찬가지로 식사 전 공복 상태에 섭취할 것을 권한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마시는 꿀물은 부족해진 미네랄을 빠르게 보충하고,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데에도 탁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숙면이나 목의 염증, 기침 감소 효과를 보려면 취침 전, 반대로 에너지원으로 꿀을 섭취한다면 낮이 적기다. 꿀이 산성을 띠고 있어 금속 제품에 닿으면 변성된다는 설이 있지만,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굳이 나무나 플라스틱 숟가락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쇠숟가락으로 먹는 것보다 안 좋은 건 뜨거운 물에 섞거나 가열하는 것. 이로운 효소들이 파괴될 수 있으니 피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짙은 색을 띨수록 항산화 효능이 좋으며, 초목의 꿀일수록 포도당이 많아 아래에 하얗게 가라앉는 결정이 많다고 알려졌다.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세요
누구나 꿀 피부를 만들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천연 화장품 레시피.
●허니 밀크 마스크
: 꿀 1스푼과 우유 2~3스푼, 밀가루 또는 오트밀가루를 걸쭉하게 섞어서 팩을 하면 피부의 보습력이 즉각적으로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허니 모공 오일
: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흑설탕, 꿀을 각각 1스푼씩 잘 믹스한다. 끈끈한 점성이 살짝 생길 때까지 섞어주는 것이 포인트. T존이나 콧방울에 바르고 부드럽게 마사지하면 피지와 블랙헤드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각질 케어와 피부 진정에도 탁월해 얼굴 전체에 도포한 뒤 1~2분 팩처럼 사용해도 좋다.
●허니 브라운 슈가 보디 폴리시
: 물에 동량의 흑설탕을 섞어 약한 불에서 살짝 졸인 다음, 꿀을 한두 스푼 넣어 취향에 맞게 농도를 맞춘다. 고가의 허니 스크럽 부럽지 않은 보습과 각질 케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김희진
- 포토그래퍼
- 정용선, 서원기(Seo Won Ki, 제품)
- 도움말
- 이원천(아침나라한의원 원장), 조애경(WE클리닉 원장), 채용현(연세새봄의원 원장)
- REFERENCE
- (로완 제이콥슨 지음), (마이크 매킨스 지음)
- 제품 문의
- 콤비타 02-2631-0041·신세계 푸드마켓 02-727-1951·멜비타 02-3014-2997·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02-734-0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