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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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필가이자, 글쓰기 외에도 여러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여자들의 말과 글이 가을의 서가에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한 저널리스트가 1987년부터 1989년 사이,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인터뷰했다. <뒤라스의 말>(마음산책)은 그 길고 많은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양가휘와 제인 마치의 땀까지 기억에 남는 영화 <연인>이 농밀한 관능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사랑과 상실을 그린 뒤라스의 원작 소설과 시나리오 작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뒤라스는 소설과 에세이뿐 아니라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을 비롯해 다수의 시나리오와 희곡을 썼다. <물질적 삶>이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과 같은 에세이에서도 글을 통해 뒤라스의 육성이 연상되지만, 집안의 몰락, 여성으로서의 삶과 사랑, 글쓰기, 레지스탕스 활동 등에 대해 그녀가 직접 들려주는 이 인터뷰는 한 매력적인 인간의 인생을 추적하기 좋은 통로다. 인터뷰 때 이런 말을, 뒤라스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담담하게 했을 것만 같다. “수년간 여성의 위반은 시에 국한되어 표현돼왔어요. 내가 그걸 소설로 이동시켰죠. 내가 한 많은 것들은 혁신적이에요.”

작년 여름, 93번째 생일 다음 날 세상을 떠난 페미니스트 지젤 알리미는 반전 · 반식민주의 활동가이자 인권 변호사로 낙태와 성폭행에 관한 프랑스의 법이 새로 쓰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페미니즘은 곧 휴머니즘’이라고 굳세게 목소리 내는 그녀의 대표작 <여성의 대의>(안타레스)가 이제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이 책은 프랑스 현대사에서 의미 있었던 재판과 사건을 둘러싸고 그때의 공기를 생생하게 담은 보고서 같기도 하다. 알리미와 함께 여성의 적법한 권리를 찾고자 활동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대표작 <제2의 성>(을유문화사)이 알리미의 대표작과 비슷한 시기에 국내 출간됐다는 우연도 흥미롭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 유명한 명제를 제창한 보부아르의 저서가 어째서 현대 페미니즘의 모태가 됐는지는 1000페이지 이상에 달하는 두께가 먼저 말해준다. 보부아르는 책을 쓰던 시기인 1940년대 중후반에서 원시 사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사회, 정치, 문학, 신화 등등에서 여성이 어떻게 표상되고 다뤄지는가를 촘촘히 분석한다. 그 여정을잘 따라가기 위해선 보부아르 사상의 뿌리인 실존주의 철학에도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완독하는 건 꽤 큰 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을유문화사는 <제2의 성>을 1970년대에도 출간한 적 있고, 이 책의 여러 판본이 국내에 나온 바 있지만, 이 신간은 보부아르 연구자였던 역자가 영역본이 아닌 프랑스 원전을 가지고, 지금 시대에 맞춰 새롭고 올바르게 번역한 것이다. 보부아르가 쓴 첫 문장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여자에 관해 책을 쓰는 것을 오랫동안 주저해왔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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